134화 차라리 내 몸을 월 낭자에게 팔겠어요
날이 밝기까지 한 시진도 남지 않았다. 그전에 연무장을 어떻게 원상 복구하라는 말인가.
육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새 말뚝을 가져올 만한 사람을 찾았다. 동시에 육삼 등이 부러진 말뚝을 파내면 하인들이 밖으로 내가게 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들은 잠시도 숨을 고르지 못하고 일했다. 그래도 날이 밝기 전에 연무장을 원상 복구하지는 못했다.
육장봉은 조회에 참석하기 전, 특별히 연무장을 들렀다. 곳곳에 구덩이가 파인 울퉁불퉁한 연무장을 훑어보았다. 그다음 육이한테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음산한 한기를 뿜어내는 어두운 눈망울이 육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제가 무능하니, 벌을 내려 주십시오.”
육이는 변명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묵묵히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앞으로 일 년 치 봉록은 없다! 매일 새벽 성 밖의 병사들과 함께 훈련에 참여해라. 내일 훈련 성적이 십 위 밖으로 밀려나면, 알아서 두 배로 훈련해라.”
육장봉은 차갑게 말을 마쳤다. 그리고 육일에게서 철갑 손 보호대를 받아 느긋하게 끼기 시작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철갑으로 된 손 보호대가 육장봉의 손과 완벽하게 밀착되었다. 새카만 손 보호대가 그의 손에 밀착되는 순간, 섬뜩한 한기를 뿜어내는 듯했다
육장봉은 철갑 손 보호대를 착용한 손으로 뒷짐을 지고, 성큼성큼 떠나갔다.
육이 등은 땅에 무릎을 꿇은 채 감히 고개도 들지 못했다. 육장봉의 옷자락이 규칙적으로 펄럭이다가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았을 뿐이다.
“으아아! 일 년 치나 봉록을 못 받다니. 그럼 나는 일 년 동안 어떻게 살라는 말이지? 돈도 못 버는 인생이 백수와 무슨 차이가 있어?”
육장봉이 떠나자, 맨 뒤에 무릎을 꿇고 있던 육십이는 땅에 주저앉아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대장군은 분명 나를 벼랑 끝으로 모는 거야! 우리 몸이라도 팔아서 월 낭자에게 돈을 갚으려는 거잖아. 일 년 동안 봉록이 없다니. 나더러 죽으라는 소리야. 어흐흑, 난 망했어.”
육이 등도 몸을 천천히 일으켜 고개를 돌렸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구르기 일보 직전인 육십이를 바라보았다. 육십(陸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돈이 없는 것보다 훈련 성적을 더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큰형님 빼고 우리가 함께 훈련하는데, 우리는 열한 명이잖아. 너도 대장군의 말씀 들었지? 훈련 성적이 십 위 이하로 떨어지면 훈련량이 두 배로 늘어난다고. 이 말은 우리 열한 명이 아무리 목숨을 걸고 열심히 뛰어봤자, 우리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십 위 밖으로 떨어질 거란 뜻이야. 친위대에서 우리 둘의 실력이 제일 떨어지잖아. 십이야, 매일 두 배로 훈련하고, 정상적으로 당직까지 서는 게 얼마나 힘들지 생각해 봤냐?”
육십은 성 밖의 사병들과 겨루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자신들은 장군의 친위대였다. 그들 각자가 일당백의 고수였다. 실력으로는 일반 사병보다 훨씬 위였다.
그러나 육십은 뒤에 서 있는 여덟 명의 형님들을 바라보자 묵묵히 눈물을 삼켰다.
그가 강한 만큼 다른 형님들도 똑같이 강했다. 아니, 그보다 훨씬 강했다. 여러 형님과 비교하면 육십은 뛰어난 축에도 못 끼었다. 고작 육십이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였다.
그러나 육십이는 잠재력이 뛰어났다. 만약 육십이가 목숨을 걸고 열심히 한다면, 꼴찌는 자기가 될 게 불 보듯 뻔했다.
“뭐라고? 대장군께서 우리끼리 서로 물고 뜯으면서 십 위 안에 들라고 하셨다고?”
육십이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육십과 다른 형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군이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그러라는 뜻이나 다름이 없었다.
“세상에! 대장군이 어쩜 이렇게 잔인하실 수가 있지! 차라리 나더러 가서 죽으라고 하시지!”
육십이는 괴성을 지르고 풀이 죽어서 바닥에 철퍼덕 드러누웠다. 두 팔과 두 다리를 크게 벌리고 떼쟁이처럼 굴었다.
육십 등은 그런 육십이를 보자,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저게 무슨 꼴이야!’
육이는 얼굴을 굳히고 앞으로 나가 육십이를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육십이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렇게 끔찍하게 죽느니, 차라리 내 몸을 월 낭자에게 팔겠어요. 월 낭자는 돈이 그렇게 많으니 백수 한 명 키우는 것쯤은 일도 아닐 거예요.”
육이는 쓴웃음을 짓고 우울하게 말했다.
“우리 장군이 월 낭자보다 돈이 많지는 않지. 하지만 불구자 하나 먹여 살리시는 건 문제도 아닐걸.”
육십이는 깜짝 놀라 바닥에서 벌떡 일어났다.
“둘째 형, 같은 편끼리 이럴 거예요!”
“얼른 가서 말뚝을 가져와서 세워 놔!”
육이는 앞으로 다가가 육십이를 걷어찼다.
분명 허리를 찼는데, 그는 엉덩이를 움켜쥐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면서 이상한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악악악……! 둘째 형님이 제 탐스러운 엉덩이를 부러워하는 줄은 알고 있었어요. 둘째 형님, 잘 들으세요. 전 절대로 내주지 않겠……!”
사람들은 육십이가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안심의 미소를 지었다.
‘좋다. 육십이가 이렇게 팔팔하니 매일 훈련을 두 배로 받아도 끄떡없을 거야. 우리도 봐줄 필요가 없겠네.’
그들 열두 명 중 육십이만 실력이 아니라 연줄로 들어왔다. 진짜 실력을 겨루게 되면, 연줄로 들어온 육십이는 그들에게 실컷 굴려질 게 뻔했다.
* * *
조회는 늘 그렇듯 떠들썩했다. 문무백관은 각자 배후의 이익 집단을 위해 큰일, 작은 일 가리지 않고 입씨름부터 했다. 이기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쨌든 기 싸움에서 질 수는 없었다.
오늘 조회에는 원래 큰 안건이 없었다. 문무백관이 최근의 고만고만한 몇 가지 안건으로 한바탕 싸우고 나자, 대전이 잠시나마 조용해졌다.
황제의 옆에 있던 내관이 일어서서 조회가 끝났음을 선포하려 할 때였다.
문신 중 한 사품 관원이 일어섰다. 그는 육 대장군이 근무를 게을리했고,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녹봉을 축내고 있다며 탄핵했다.
그 말인즉슨, 육장봉이 성 안팎의 치안을 소홀히 해, 황제의 신임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구체적인 증거로는 월령안이 성 밖에서 습격당한 사건을 들먹였다.
불순한 무리가 성 밖에 숨어들었는데 육 대장군은 전혀 몰랐다. 심지어 그놈들이 성 밖에서 죽어 있는 모습을 가장 먼저 발견하신 사람도 경기(京畿)의 치안을 책임지는 육 대장군이 아니었다. 이건 육 대장군이 직무상 과실을 범했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이번에 강도들이 성 밖에서 잠복하고 죽이려던 사람이 고작 상인 집안의 여인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번에는요? 저희를 노릴 수도, 성안으로 들어와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 강도들은 하나 같이 살인 사건에 연루된 자들이라 하더군요. 범죄를 저지른 것도 처음이 아니고, 성 밖에 하루 이틀 숨어 있던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성 밖에 그렇게 극악무도한 강도들이 숨어들었는데 육 대장군이 전혀 몰랐다니요. 심지어 그놈들이 일을 저지른 뒤에도 모르고 계셨다고요. 경기의 치안을 책임지는 대장군으로서, 대체 어떻게 책임을 다하셨다는 말입니까?”
육장봉을 탄핵하러 나선 대신의 말은 논리적이면서도 신랄했다. 마지막으로 함정을 파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폐하, 성 밖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육 대장군은 보통 사람들처럼 나중에야 알았다고 합니다. 신은 육 대장군의 능력이 부족한지, 아니면 그가 경기의 치안과 저희의 안위를 신경 쓰지 않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폐하께서 부디 잘 살펴 주시옵소서.”
그가 탄핵을 마치자, 또 다른 문관이 일어났다.
“폐하, 신은 육 대장군이 친척의 만행을 눈감아 줌으로써 백성을 핍박한 사실을 따지려 합니다. 육 대장군의 친척은 백성의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육 대장군의 사촌 동생은 사람을 데리고 가서 채권자의 점포를 부쉈답니다. 그러면서 육씨 가문 사람이 돈을 갚지 않겠다고 말한 이상, 절대 갚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배짱이 있으면 육씨 가문으로 찾아오라고 했다지요.”
그 문관은 격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눈가에는 눈물마저 맺혀 있었다.
“폐하,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먼젓번 육 대장군의 사촌 동생이 사람을 데리고 민가를 쳐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육 대장군은 권력으로 사람을 협박해 이 사건을 무마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육 대장군이 친척을 방임하여 백성들을 괴롭힌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폐하, 육 대장군은 군공을 믿고, 법률과 규율을 무시하였습니다. 또한, 친척을 방임하여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육 대장군의 수하인 심민은 육 장군의 지시를 받고, 심씨 가문의 재산을 빼돌리기 위해 다른 사람을 매수하여 생부를 고발했습니다. 이는 하늘이 용납하지 못할 짓입니다.”
“폐하, 육 대장군이 군공을 세워 종묘사직을 지킨 공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게 친척을 방임하고, 근무에 태만하고, 백성들을 괴롭혀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나치게 관용을 베풀지 마시고 부디 엄벌하여 주시옵소서!”
“육 대장군을 엄벌하여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우르르…….
일고여덟이나 되는 문관이 일어나 대전에 무릎을 꿇었다. 게다가 아주 처절하게 울부짖듯 말했다. 육장봉을 엄벌하지 않는다면, 황제가 어리석은 군주가 될 거라고 협박하는 듯했다.
옥좌에 앉아 있던 황제는 무릎을 꿇은 대신들을 보자,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렸다.
‘고작 삼 년 사이에, 다들 장봉이의 성미를 잊어버렸나? 다들 하나같이 장봉이를 짐처럼 물러 터진 감인 줄 아는 건가? 삼 년 전, 장봉이를 탄핵했던 문관 중에서 잘된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이들은 왜 얌전해질 줄을 모를까? 기어이 짐에게 골칫거리를 찾아 줘야 속이 시원한 모양이야. 정말 성가시군!’
황제는 화가 났다. 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육장봉에게 시선을 옮기더니 부드럽게 물었다.
“장봉, 네 생각은 어떠하냐?”
육장봉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한 손으로 뒷짐을 지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폐하, 추밀원 사람들은 전부 죽었습니까?”
“장봉의 말이 맞다. 이 일은 추밀원에서 조사해야 한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온화한 말투로 대신들에게 물어보았다.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의 있나?”
“없습니다.”
무장들은 육장봉을 우두머리로 여겼다. 육장봉이 나서서 추밀원의 조사를 바란다고 하자, 그의 결백함을 믿었다.
하지만 문관들은 달랐다.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들의 입으로, 글로 전해진다. 입담과 문필로 따지자면 문관들이 두려워할 상대는 없었다.
육장봉을 탄핵한 내용은, 애초에 그가 저지른 일들이었다. 설령 하지 않았더라도, 춘추필법(春秋筆法 – 공자가 저술한 《춘추》를 본받아, 엄격하게 비판하는 서술법)으로 누명을 씌우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관리 사회에서 남의 죄명을 나열하는 데는 이골이 난 능구렁이들이 누구를 두려워하겠는가.
게다가 육장봉도 정말로 청렴결백하지는 않았다. 모든 일을 규칙대로만 처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한 달 후, 북요에서 평화 회담을 위한 사절단이 올 예정이었다. 육장봉은 그 야만인들의 기를 누르는 데 꼭 필요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오늘 문관들은 더 심각한 죄명을 들이밀었을 것이다. 육장봉이 사병을 키웠으니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