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제 말은 들을 것 같지 않네요
두 하녀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저희는…….”
그녀들은 당황해하며 월령안을 보았다. 그리고 조계안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대인…….”
“물러나라!”
조계안이 냉혹한 시선으로 쏘아보자, 두 하녀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물러섰다. 그녀들의 새 주인인 월령안의 명령은 무시한 채였다.
월령안은 냉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제 말은 들을 것 같지 않네요.”
“월령안!”
조계안이 경고하듯 고함을 질렀다.
‘월령안이 트집을 잡고 있군.’
월령안은 조계안을 신경 쓰지 않았다. 차가운 시선으로 두 하녀를 바라보았다.
“너희는 내 시중으로 온 것이냐, 아니면 월씨 가문에서 아가씨 대접을 받으러 온 것이냐? 안중에 주인도 없는 것들이구나. 내가 너희를 먹여 살리고, 시중을 들 사람을 붙여 주기를 바라느냐?”
사람을 받은 이상, 어찌 부릴지는 그녀 마음이었다.
“월 낭자, 저희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두 하녀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다음에야 무릎을 꿇고 억울하다는 얼굴로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싸늘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녀도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대인, 제 시중을 들라고 주신 하녀들이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만?”
“너 역시도 내 말은 안 듣지 않느냐?”
조계안은 월령안을 음산하게 노려보았다. 그녀의 손에서 손수건을 빼앗아 대충 닦더니 일어섰다. 그리고 손수건을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내가 방금 너에게 준 사람들을 내 앞에서 괴롭히다니. 왜, 내게 불만이라도 있느냐?”
‘이 인간이 정말 몰라서 이러나?’
월령안은 단지 그의 손을 닦아주기 싫었을 뿐이다.
조계안은 말을 마치고도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손수건을 발로 짓밟으며 사납게 말했다.
“오늘은 네가 다친 것을 보아 그냥 넘어가마. 다음에는 어림도 없다.”
“대인, 오해하셨습니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살펴 가십시오.”
월령안은 몸을 일으켜 조계안에게 살짝 허리를 굽혔다. 입술을 다문 채 웃는 모습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했다.
조계안은 겨우 수그러들었던 울화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발걸음을 멈추고 월령안을 바라보며 음산하게 말했다.
“월령안,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이 말을 명심해라.”
“네.”
월령안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얼굴의 미소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 평온한 웃는 얼굴을 보자, 조계안은 말할 수 없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섰을 때,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짙은 약 냄새를 맡았다. 아무리 화가 나도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흥!”
조계안은 싸늘하게 콧방귀를 뀌며 옷소매를 떨쳤다. 밖으로 성큼 걸어 나갔다.
월령안은 돌아서서 조계안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기다려 조계안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그제야 다시 몸을 돌려 무릎을 꿇고 있는 두 하녀를 내려다보았다.
“너희 둘…….”
“소인들이 잘못했습니다. 아가씨,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두 하녀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그녀들은 월령안의 곁에서 빨리 자리를 잡도록 조 대인이 뒤를 봐줄 줄 알았다. 물론, 월령안이라는 이 여자 상인도 그녀들을 감히 막 대하지 못하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조 대인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는 그녀들의 죽음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들은 자기 주인의 수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월령안에게 쫓겨나 돌아간다면, 대인은 그녀들을 산 채로 포를 뜰 게 뻔했다.
과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산 채로 포를 뜰 것이다.
조 대인이라는 뒷배가 사라졌으니, 새 주인님의 불만을 없애는 게 급선무였다. 새 주인님이 그녀들을 받아들이게 해야 했다.
두 하녀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월령안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아가씨들, 별말씀을요. 그렇게 절 높여 부르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어서 일어들 나세요.”
월령안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의자에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앉았다. 그 자세에서는 알아차리기 힘든 약간의 압박감이 풍겼다.
이 말을 들은 두 하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가씨, 용서해 주세요. 전부 소인들 잘못입니다. 아가씨, 용서해 주세요…….”
월령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입구에 서 있는 월씨 가문 하녀에게 말했다.
“뭣들 하느냐? 얼른 이 두 아가씨를 일으키지 않고.”
“예, 아가씨.”
월씨 가문 하인들은 월령안의 성미를 잘 알고 있었다. 얼른 앞으로 가서 두 하녀를 부축해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 하녀들은 감히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빌었다.
“아가씨, 제발 용서해 주세요. 소인들이 잘못했습니다.”
그녀들은 정말 잘못을 깨달았다. 조 대인이라는 배경에 기대 주인의 기세를 누르려고 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월령안은 차가운 시선으로 월씨 가문의 하인들을 쳐다보았다.
“왜? 이제는 너희 둘도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냐?”
두 하녀는 월령안의 이 말이 그녀들에게 들으라고 한 소리임을 알았다. 그녀들이 계속 무릎을 꿇고 있으면, 또 주인님의 명령을 어기는 게 되고 만다.
“소인들이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두 하녀는 하는 수 없이 전전긍긍하면서 일어났다. 움츠린 몸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마치 비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하얀 꽃처럼, 연약하고 처량해 보였다. 아까까지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만약 월령안이 남자였다면 그녀들을 불쌍히 여겼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물러져 이번 일은 그냥 넘기고, 앞으로 잘하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들의 주인님은 바로 월령안이었다. 남자보다도 차갑고 단단한 여인이었다.
‘마음은 하늘보다 드높으나, 목숨은 종잇장보다 가볍구나.’
상대방에 따라 뻗댈 줄도, 굽힐 줄도 안다. 이 두 사람은 마치 월령안 자신을 보는 듯했다.
‘정말이지 아주 얄밉군.’
조계안이 무슨 의도로 사람을 보냈는지는 상관이 없었다. 월령안은 그녀들을 믿을 수도, 중용할 수도 없었다.
원래는 사람을 보내면 일단은 내버려 두었다가, 트집을 잡아 돈을 쥐여 주고 내보내려고 했다.
뜻밖에도 조계안이 준 사람들은 꼭 그처럼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월씨 저택에 들어선 첫날부터 주인의 체면을 무시했다.
이렇게 좋은 트집거리가 손에 굴러들어왔으니, 그녀가 놓칠 리 없었다.
“집사!”
월령안은 두 하녀의 애걸하는 시선을 무시했다. 큰 소리로 집사를 불렀다.
“아가씨.”
월씨 저택의 집사가 빠른 걸음으로 화청에 들어섰다. 그리고 인사를 올렸다.
월령안은 눈도 들지도 않고 분부했다.
“이 두 아가씨는 추밀원 조 대인이 보내오신 분들일세. 자네가 직접 송아거(頌雅居 - 별당의 이름)로 모시도록 하게. 하녀, 어멈, 주방장까지 다 갖춰서 이분들의 시중을 들게. 절대 홀대해서는 안 되네, 알겠나?”
“아가씨, 조 대인께서는 아가씨를 모시라고 소인들을 보내셨습니다. 손님 대접을 받으라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두 하녀는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가씨, 소인들이 정말 큰 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월령안은 두 하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집사하고만 이야기했다.
“이 두 분은 월씨 저택에 오신 귀한 손님일세. 집사, 어서 두 분을 부축하게.”
월령안은 말을 마치자, 상대방에게 말할 틈조차 주지 않고 밖으로 성큼성큼 나갔다.
“아가씨, 아가씨…….”
두 하녀는 월령안이 조계안의 체면을 무시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둘은 황급히 일어났다. 월령안의 앞으로 비틀거리며 달려가 다시 무릎을 꿇었다.
“아가씨, 소인들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소인들을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월령안은 여전히 그녀들을 완전히 무시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더니, 그녀들을 둘러서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두 하녀는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에서 한참 기었다. 월령안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다급한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아가씨, 소인들은 대인의 명령을 받고 아가씨를 보호하러 왔습니다. 소인더러 아가씨를 모시지 못하게 하신다면, 보호를 받지 않겠다고 하신다면 소인들은……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월령안의 발걸음이 멈췄다.
두 하녀는 순간 희망을 본 듯 흐느끼며 말했다.
“아가씨, 소인들을 용서치 않으신다면, 저희는 계속 꿇어앉아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월령안은 돌아서서 냉소를 지었다.
“무릎을 꿇으려면 우리 월씨 저택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꿇거라. 나 월령안이 너희와 조금이라도 타협한다면 성을 갈겠다.”
‘이것들이 날 협박해?’
그녀들의 주인인 조계안도 월령안을 협박해서 타협하게 하지는 못했다. 이 두 하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무릎을 꿇은 채 일어나지 않는 건 물론, 그녀의 앞에서 머리를 박고 죽더라도 상관없었다. 월령안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을 것이다.
“아가씨…….”
두 하녀는 절망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내가 두 가지 선택지를 주마. 하나는 밖에 나가서 무릎을 꿇는 것이다. 무릎을 꿇다가 죽으면 너희에게 멍석은 덮어서 시신을 처리해 주겠다. 다른 하나는 고분고분하게 집사를 따라가서 송아거에 머무르는 것이다. 내가 잘 먹이고 입혀줄 것이다. 잘 생각해 봐라. 너희가 죽기 전에, 또는 말할 기력이 있는 한, 언제든지 선택을 할 기회는 있다.”
말을 마친 월령안은 씩 웃더니, 돌아서서 떠났다.
이번에는 두 하녀가 뭐라고 하든, 발걸음을 멈추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 * *
월령안은 고열이 막 내린 참이었다. 팔의 상처도 은근하게 아팠다. 평소보다 영 기운이 없었다. 원래 푹 쉬어야 했지만, 육장봉과 조계안이 잇달아 문병을 왔다. 억지로 기운을 차리고 접대할 수밖에 없었다.
방으로 돌아온 월령안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그녀는 약을 먹은 뒤 몽롱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뒤, 지나가듯 한마디 물었다.
“그 두 하녀는 어떻게 되었느냐?”
“아가씨가 가신 뒤 한 시진도 안 되어 집사를 따라 송아거로 갔습니다.”
하녀는 말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한 시진만 꿇었다고? 날 보호하러 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한 시진밖에 버티지 못하다니. 이렇게 나약해서 어찌 날 보호한단 말이냐?”
그녀가 열 살이었을 때, 소여방과 소함연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밖에서 세 시진이나 꿇어앉고 나서야 홀로 돌아왔다.
‘성인 두 명이, 그것도 무술을 배웠다는 자들이 고작 한 시진밖에 버티지 못하다니. 조계안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보낸 거야? 고작 그 정도 수준으로 나를 보호하겠다고. 조계안이 장난이라도 하나?’
하지만 이 쓸모없는 못난이들을 보내온 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최소한 조계안의 입은 막을 수 있었다. 다시는 사람을 보내지 않으리라.
“잘 모시거라. 먹는 것, 입는 것 모두 가장 좋은 것으로 내어 주어라. 원하는 것도 다 들어줘라. 단, 절대 송아거를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