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형제는 수족과 같다
육장봉 일행은 향 한 대가 탈 정도의 시간 동안 말을 달렸다. 마침내 싸운 흔적과 땅 위의 핏자국을 발견했다.
“조왕의 말입니다! 말발굽 자국을 보아서는 조왕이 여기까지 추격해 왔습니다.”
육삼(陸三)이 말에서 뛰어내려 살펴보더니 말했다.
“쫓아라!”
육장봉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육삼에게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라고 명령했다.
육삼은 선두에서 한참 달리더니 또다시 말에서 뛰어내렸다. 흙탕물이 된 길을 살펴보고 말했다.
“싸운 흔적이 있습니다. 조왕께서 상대방과 맞붙었던 것 같군요. 적은 일곱 명 이상으로 보입니다.”
육장봉은 머리를 끄덕였다. 육삼에게 계속 추적하라고 명령했다.
육장봉 일행은 일각 정도 더 달려 땅 위의 얕은 웅덩이 몇 개를 발견했다. 웅덩이 크기는 성인 남자의 크기만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널브러진 나뭇조각들이 있었다. 아마 마차에서 떨어져 나온 흔적인 듯싶었다.
그 외에 발자국도 있었다. 어수선한 발자국이 현장을 완전히 파괴하다시피 했다.
육장봉은 여기가 어제 월령안이 습격당했던 곳임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잘난 척하더니 헛똑똑이였군!”
‘월령안은 길을 잘못 들어선 것도 몰랐나 보군. 세상 모든 위험을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굴더니…….’
육장봉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장군, 조왕의 옥패입니다.”
육삼이 흙탕물에서 벽옥 옥패를 발견했다.
“피 냄새가 지독하네요.”
육십이가 코를 벌름거리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른 수색해라!”
육장봉이 손을 젓자, 뒤에 있던 친위대가 빠르게 흩어졌다. 육장봉도 말을 몰아 조금 더 앞으로 달렸다.
다그닥, 다그닥…….
바로 그때, 말발굽 소리가 앞쪽에서 들려왔다. 육장봉의 친위대는 서둘러 경계 태세를 취했다. 육장봉과 가장 가까이 있던 육일은 칼까지 뽑아 들었다.
“조왕입니다!”
시력이 가장 좋은 육사(陸四)가 다가오는 사람의 신분을 말했다.
육장봉이 말을 달려 조계안을 맞이했다. 조계안의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옷도 여러 군데 찢긴 것을 보고는 물었다.
“야율제를 만났나?”
야율제를 제외하면, 지금 변경에서 조계안과 맞먹는 실력자는 없었다.
“맞아.”
조계안은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놈을 만났지만,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조계안이 기분이 대단히 언짢았다.
야율제를 찾지 못했으면 모를까. 오늘 정면에서 맞닥뜨렸지만, 놓치고 말았다.
‘말 그대로 치욕이로군!’
그나마 야율제도 부상을 입어 다행이었다. 몸에 중상을 몇 군데 입었다. 빠른 시일 안에 나을 만한 상처는 아니었다.
“찾아낸 것이라도 있나?”
육장봉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조계안은 분명 야율제를 일부러 쫓아가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쫓아갔다가는 이쪽도 크게 다칠 게 뻔했다.
조계안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없어!”
그가 야율제를 만난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놈은 성 밖에 있으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조만간 찾아낼 거야.”
육장봉도 더 묻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각에 야율제를 직접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조계안도 웬일로 육장봉에게 툴툴대지 않고 말했다.
“네 부하에게 깨끗한 옷을 좀 가지고 오라고 해. 나도 같이 광원사에 갈 테니까.”
육장봉이 머리를 끄덕이고는 육이에게 눈짓을 했다.
조계안이 혼자 돌아온 것을 보니, 그의 부하들이 야율제를 쫓고 있을 것이다. 조계안의 부하가 쫓고 있으니 자신이 인원을 더 배치할 필요는 없었다.
이처럼 외진 곳에서 조계안의 눈에 찰 만한 옷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육이가 한 번 다녀오는 데는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릴 게 뻔했다.
육장봉은 이곳에서 조계안과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대답은 했지만, 바로 말머리를 돌려 광원사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가려는 순간, 조계안이 가로막았다.
“육 대장군, 나처럼 옷을 갈아입어야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꼴이 되기 싫으면 먼저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말했었지. 누가 날 앞질러 가는 게 싫다고. 너도 예외가 아니야.”
그는 오늘 육장봉을 방해할 셈으로 온 것이었다.
‘육장봉, 어딜 가겠다고? 꿈도 꾸지 마!’
“조왕, 지금 날 위협하시는 겁니까?”
육장봉의 표정이 금세 싸늘해졌다.
‘조계안 이놈 꼴이 요즘 들어 점점 더 말이 아니로군. 아무래도 저번에 너무 좋게 타일렀던 모양이다. 나중에 시간 나는 대로 사람 구실을 하는 법을 똑똑히 가르쳐 줘야겠어.’
“내가 종묘사직에 공로를 세운 육 대장군을 어떻게 위협할 수 있겠어. 다만 알려 주는 것뿐이야.”
조계안은 흐트러진 모습으로 말을 타고 있었다. 그 나른해 보이는 모습은 마치 응석받이 도련님 같아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런 위협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신경 무딘 육십이까지 포함해서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조계안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산만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음험하고 독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노여움을 사느니, 그들의 장군에게 노여움을 사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렇다면 조왕께서 원하시는 대로 한번 싸워 봅시다!”
육장봉도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바로 검을 뽑아 조계안을 겨누었다.
‘조계안 이 자식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 형님처럼 제 응석을 받아줄 줄 아는 건가?’
육장봉이 검을 뽑아 들자, 조계안은 삽시간에 분통을 터뜨렸다. 바로 어두운 얼굴을 하고서 질문했다.
“육장봉, 진짜로 해 보자는 거냐? 여인 하나 때문에 나하고 정말 싸우겠다는 거냐?”
“여인 때문에 진짜로 칼을 들고 설친 건 그쪽이 아니었나?”
조계안의 질책에도 육장봉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는 조계안의 형님이 아니었다. 그에게 빚진 것도 없었다. 그러니 자책감 때문에 그가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둘 이유가 없었다.
조계안이 시비를 걸지 않았으면 모른다. 하지만 시비를 건 이상, 육장봉이 숙이고 들어가면 그가 지는 셈이었다.
“먼저 시비를 건 사람은 분명히 너였어!”
조계안이 독기를 품은 눈으로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육장봉, 월령안은 이제 너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왜 월령안을 감시하면서 가만 내버려 두지를 않는 거냐? 그리고 월령안 어머니의 시신은 내가 가져왔다! 내가 너보다, 월령안을 데리고 어머니를 만날 자격이 있다고!”
이 일을 떠올리자, 조계안의 눈에 난폭한 기운이 감돌았다.
‘정말이지 열 받아 죽겠군!’
분명 공을 들인 건 조계안이었다. 소 승상에게 미움을 산 것도 그였다. 그가 아무 이익을 얻지 못한 것까지도 그렇다 치자. 공로까지 육장봉이 모두 가로채 버렸다.
‘육장봉, 이 낯짝 두꺼운 소인배가!’
육장봉은 싸늘하게 웃더니, 하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능해서 금방 빼앗길 예정이었던 것 아니었나? 내가 아니었다면 소 승상이 월령안의 어머니를 포기하지 않았을 텐데. 본인은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입만 살았군.”
“이 자식이!”
조계안은 한참 동안 육장봉을 삿대질했다. 또 씩씩거리며 손가락을 거두었다.
“너 같은 무식한 무인하고 따지려 했던 내가 잘못이지. 정말 시시하기는.”
조계안은 무시하듯 손을 휘휘 젓더니 또 건들거리며 말했다.
“육장봉, 말해 봐. 월령안한테 왜 꼭 너와 함께 광원사에 가자고 했나? 어머니의 시신이 광원사에 놓여 있는데, 월령안이 제사를 지내고 싶어 하면 지내게 해 주면 그만이잖아. 왜 꼭 너를 기다리게 했지? 네 입으로 말해 봐. 무슨 꿍꿍이였지?”
“소 승상이 어떤 인물인 줄 모르나? 네 생각에 소 승상이 그렇게 큰 손해를 보고 가만있을 것 같나? 월령안을 쉽게 놔 줄 거 같아?”
육장봉은 챙,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조계안에게 사람 노릇을 하는 법을 가르치려 했지만, 오늘은 안되겠군.’
조계안이 그를 잡아 두는 건, 누가 잘했는지 따지자는 것도, 그와 싸우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순전히 육이가 옷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광원사에 함께 가려는 수작이었을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네가 직접 갈 필요가 없잖아. 친위대 아무나 보내면 될 거 아니야. 내가 볼 때는 육일이 가면 괜찮겠는데. 육일한테 갔다 오라고 해.”
육장봉의 짐작대로, 조계안은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었다.
월령안이 충격을 받았을 게 뻔한데, 육장봉이 먼저 가서 좋은 인상을 남기게 할 수는 없었다.
‘꿈 깨시지.’
육장봉보다 한발 앞서 광원사에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동시에 도착해야 했다.
“소 승상에 대해서는 너도 잘 알 텐데. 늘 사람을 봐 가면서 손을 쓰지. 내가 직접 가야 섣불리 행동하지 않을 거다.”
육장봉도 조계안이 자신을 잡아 두려는 것을 알았다. 더는 그와 실랑이하기도 귀찮았다. 조계안이 또 어리석은 질문을 하기 전에 선수를 쳤다.
“육이가 옷을 가지고 광원사 산자락으로 가지고 올 거다. 갈 건가, 말 건가?”
조계안은 늘 집요했다. 그가 물러서지 않으면 날이 저물 때까지 물고 늘어질 게 뻔했다.
“너희 집 육이는 정말 유능하군!”
육장봉이 양보하자, 조계안은 웃음을 띠었다.
“좋아. 내가 오늘은 이대로 보내 주지. 날이 저물면 광원사에 가지도 못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조계안은 말머리를 돌려, 육장봉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나아갔다.
육장봉은 조계안을 흘겨보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난 삼 년간, 폐하께서 도대체 어느 정도로 조계안을 오냐오냐하셨길래,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막무가내가 됐지? 이 성질머리는 정말……. 폐하만 감당하실 수 있겠군.’
육장봉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는 조계안을 거들떠보지 않고, 채찍질하여 서둘러 내달렸다.
그가 속도를 내자마자, 조계안도 당장 따라서 속도를 올렸다. 육일 등은 재빨리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늦었다. 육장봉 일행이 이 갈림길에 접어들었을 때 월령안과 수횡천은 이미 그곳을 지나쳐 관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 시진 뒤, 일행은 산자락에 닿았다. 육이도 때마침 옷을 가지고 도착했다.
조계안은 아주 뻔뻔했다. 육장봉과 친위대의 앞에서 옷을 벗어 던지고 바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체면은 어디 가서 버렸나!’
육장봉도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짜증스럽기는 했지만, 그가 옷을 갈아입기를 기다려 함께 산에 올라가기로 했다.
조계안이 이렇게까지 염치없이 굴자 그도 할 말을 잃었다.
육장봉이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자, 조계안은 활짝 웃었다. 옷을 갈아입고 앞으로 다가와 긴 팔을 뻗더니, 육장봉과 어깨동무를 했다.
“이래야 내 형제지.”
육장봉은 가차 없이 조계안의 손을 밀쳐 버렸다.
“형제는 수족과 같다 했지. 내게는 손발이 있으니, 더는 필요가 없다.”
조계안은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여인은 옷과 같다고 했지. 너한텐 이미 옷이 있잖아. 그러면…… 다른 여인도 필요 없겠지?”
“맞아. 내겐 이미 옷이 있지.”
육장봉도 질세라 똑같은 방식으로 받아쳤다.
조계안의 눈에 순간 음울한 기운이 스쳤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장봉, 형제니까 말해 주는 거야. 어떤 옷은 제아무리 몸에 맞고 화려해도, 네 것이 될 수가 없어.”
“조왕, 저도 형제로서 말씀드리지요! 자신의 신분을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