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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21)화 (121/1,004)

121화 이제는 행복하세요

「영자월유씨지위(令慈月柳氏之位)」

이 위패는 삼 년 전 그녀가 직접 새긴 것이었다. 육장봉에게 가져다 놓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어머니는 이제 월씨 가문 가주 부인 월유씨(月柳氏 – 중국 고대에서 기혼녀는 원래의 성씨 앞에 남편의 성씨를 붙여서 부르기도 했다)로 되돌아왔다.

월령안은 위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얼굴에는 기쁨도, 슬픔도, 눈물도 없었다. 오른팔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무릅쓰고 어머니의 위패에 정중하게 아홉 번 절을 했다.

절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앞의 위패를 멍하니 보고 있으려니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한참이나 지나, 그녀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알고 계시죠? 이제 어머니는 소희 그 도적놈이랑은 완전히 인연이 끊겼어요. 이제 어머니는 월유씨예요. 아버지의 유일한 아내이자, 월씨 가문 가주의 부인이에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 위패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물었다.

“어머니, 이제는 행복하세요?”

월령안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임종 전에 보여 줬던 미소는 아주 아름답고, 만족스러웠다.

소씨 가문에 있는 칠 년 동안, 어머니는 거의 웃지 않았다. 그녀가 시집가던 날도 입술을 꾹 다물며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직 그날, 어머니는 웃었다. 만족스럽다는 듯이 마음을 드러내며,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웃었다.

그 미소는 아름답고 담담했다. 행복하고 순수했다.

그녀가 십팔 년을 살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미소는 본 적이 없었다. 바로 그 미소 덕분에 그녀도 어머니를 놓아 드릴 수 있었다. 더는 어머니가 그녀를 버렸다고 원망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기쁘고 행복하면 되었다.

삼 년 전, 어머니의 위패 앞에서 그녀는 묻고 싶었다.

“어머니, 이제는 행복하세요?”

그러나 그때, 어머니의 위패는 소씨 저택에 모셔져 있었다. 게다가 그 위에는 ‘소유씨(蘇柳氏)’라고 쓰여 있었다.

그녀는 차마 물을 수 없었다. 그때는 자괴감, 죄책감, 무력감뿐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평생 유일한 소원이 월씨 가문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아내로서 남편, 아들과 합장되는 것뿐임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것은 그녀가 난처하지 않기를, 소씨 가문과 맞서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어머니는 그녀를 홀로 남겨두기는 했지만,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를 위해 어머니는 모든 것을 희생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괴로움을 안고 갔다.

임종 전, 어머니는 만족스러워하고 행복해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한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어머니를 소씨 가문에서 완전히 데려왔다. 삼 년 전에 묻고 싶었던 그 말을 드디어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 이제는 행복하세요?”

딸랑딸랑…….

바람이 불어왔다. 서탑에 매달린 복을 기원하는 방울이 맑고도 경쾌한 소리를 울렸다.

월령안은 우연인 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의 대답이라고 굳게 믿고 싶었다.

‘어머니는 분명히 행복하실 거야!’

월령안은 다시 한번 위패를 바라보며 방그레 웃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묵묵히 말했다.

‘어머니, 전 벌써 어른이 됐어요. 이젠 저 때문에 걱정하지 마세요. 저 잘 지낼 수 있어요…….’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또다시 낭랑하게 들려왔다.

지금 월령안의 마음속에서 이 방울 소리는 여태껏 그녀가 들었던 소리 중 가장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였다.

관을 지키고 있던 시위가 매일 오전이면 계속 울리는 방울 소리 때문에 짜증이 난다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여전히 기뻤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그 두 번의 방울 소리는 어머니가 그녀에게 보낸 대답이었다.

* * *

반 시진 뒤에 법사가 끝났다. 월령안도 편전에 오래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승려들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문을 나서기 전, 그녀는 다시 한번 뒤돌아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 곧 집으로 모셔 갈게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육장봉이 요구한 대로 군마를 준비해야 했다.

적어도 처음 주기로 했던 분량을 육장봉에게 보내 주어야 했다. 그래야만 어머니의 관을 청주로 모시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서탑에서 나오니 이미 오시(午時 – 오전 11시~오후 1시)였다. 사미승이 식사하라고 그녀를 불렀다.

월령안도 시장하던 차였다. 감사 인사를 하고, 사미승을 따라 작은 뜰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오른손이 전혀 힘을 쓸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통증도 함께 밀려왔다.

“근골을 다친 게 분명해.”

월령안은 부어오른 오른쪽 팔을 만져 보았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젠 거의 한계야.’

그녀는 아파서 헐떡이며 의자에 기대어 한참 숨을 골랐다. 그제야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듯한 통증을 견딜 수 있었다.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길게 숨을 내쉬고,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시 단정히 앉아 왼손으로 숟가락을 쥐고 조금씩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일부러 왼편에 놓인 숟가락을 보자, 월령안은 혜능 대사가 자신을 가엽게 여겨 편의를 봐주었음을 재차 확인했다.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 입맛은 전혀 없었지만, 그릇은 깨끗이 비웠다. 혜능 대사의 선의를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점심 식사가 끝났다. 월령안은 방 안에서 잠시 쉬고 난 뒤, 수횡천을 찾아갔다.

“오리버니, 육장봉이 어제 언제쯤 여기서 떠났는지 알아보셨어요?”

“미시(未時 – 오후 1시~3시) 이각(二刻 – 30분) 정도다.”

수횡천은 이 사실을 아주 쉽게 알아냈다.

어제는 천둥, 번개에 폭우까지 내려 사찰에 온 사람이 몇 안 됐다. 설령 왔다 해도, 빗길을 무릅쓰고 하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제 비를 무릅쓰고 하산한 사람은 육장봉뿐이었다.

“그럼 지금이네요?”

월령안이 물었다.

“맞아.”

수횡천이 대답했다.

“우리도 떠날 거야?”

월령안이 머리를 저었다.

“반 시진만 더 기다려요.”

“반 시진을 더 기다려야 해?”

‘어제는 분명 육장봉이 기다린 만큼 똑같이 기다리겠다고 하지 않았나?’

월령안이 말했다.

“육 대장군이 어떤 사람인데요. 제가 그분과 똑같이 할 수 있나요? 귀하신 그분보다 반 시진은 더 기다려야 마땅하죠.”

이렇게 해야만 육장봉도 더는 꼬투리를 잡지 못할 것이다.

“너무 조심하는 거 아니야. 육장봉이 이런 사소한 것까지 따지지는 않을 거야.”

수횡천이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어쩌면 제가 걱정이 많은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육장봉에게 꼬투리를 잡혀서는 안 돼요. 물론 우리도 꼭 반 시진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육장봉이 어제 떠난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떠나면, 그 인간은 제가 무슨 불만이 있어서 자기를 도발한다고 생각할걸요.”

월령안은 반박하지 않고 웃으면서 설명했다.

남자와 여자는 체력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수횡천이 말한 대로, 육장봉은 남자로서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는 데 습관이 되어 있었다. 세세한 부분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함으로써 남들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이미 오랫동안 기다렸다. 반 시진을 더 기다려도 큰 문제는 없었다.

만약 육장봉이 어제 떠난 시간에 딱 맞춰서 떠난다면, 너무 작위적이었다.

반 시진 정도 늦게 출발하면 성문이 닫히는 시간에 맞춰 갈 수 있다. 육장봉이 불만을 품는다고 해도, 그녀도 나름의 이유가 충분했다.

그녀는 논리적으로 따져야 할 때 감정에 호소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논리적으로 따지려면, 우선 자신이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했다.

그리고 패배감이 싫었다. 그녀는 육장봉을 제외한 누구에게 져 본 적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육장봉을 상대할 때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더 자세하고 빈틈없이 처리하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소홀히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네 말이 맞아. 너무 작위적으로 해서 꼬투리를 잡힐 필요는 없지.”

수횡천은 그녀의 설명을 듣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여자애들은 세심하단 말이야.’

그의 사매도 참 세심했다. 그런데 어찌나 세심한지, 그녀에게 자칫 오해를 살까 봐 그는 말 한마디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오라버니,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혜능 대사께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올게요.”

이번 일은 혜능 대사께 감사해야 했다. 그가 암암리에 도와주지 않았다면, 염원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난 말에게 여물을 좀 먹여야겠다. 가는 도중에 배고프지 않게.”

수횡천은 혜능 대사를 만나러 가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몸에서 피 냄새가 난다고 싫어했던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똑같이 사람을 죽였는데, 혜능 대사는 왜 나만 싫어하지? 혹시 내가 월령안보다 못생겨서 그런가? 출가인도 외모를 따지나?’

월령안은 혜능 대사께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사조께서는 행각을 떠나셨습니다.”

지명 스님이 혜능 대사의 작은 처소 밖에 서 있었다. 월령안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말해 주었다.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혜능 대사는 그녀가 찾아오리라고 짐작했으리라.

“행각을 떠나셨다고요?”

월령안은 어안이벙벙했다.

‘이렇게 갑자기 행각을 떠나셨다고? 어쩐지 혜능 대사가 무언가를 피하려는 느낌이 드네?’

“네, 사조께서는 한 시진 전에 떠나셨습니다.”

지명 스님은 평온한 얼굴로 예삿일처럼 말했다.

그의 평온한 모습과 비교하자, 월령안은 자신이 지나치게 놀란 것 같았다. 마음속의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언제쯤 돌아오신다고 말씀하셨나요?”

그녀는 혜능 대사가 이렇게 갑작스레 떠난 것은 누군가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확신했다. 자신은 목적을 달성했으니 혜능 대사를 만나지 못해도 괜찮았다.

“사조께서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지명 스님은 합장하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월 시주, 시간이 늦었습니다. 소승도 더는 잡지 않겠습니다.”

월령안을 더 머물게 했다가는 또 무슨 번거로운 일이 있을지도 몰랐다.

“아…… 네.”

어제의 완곡한 거절에 이어, 이번에는 완곡하게 쫓겨났다. 지명 스님의 ‘완곡함’은 찬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월령안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는 말하지 않고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월령안이 수횡천을 찾았을 때, 그는 아직도 말에게 꼴을 먹이고 있었다. 말이 먹이를 먹는 사이, 그는 물 한 통까지 떠와 마차도 깨끗이 닦아 놓았다.

월령안은 종려털(종려의 갈색 섬유질로 된 털)로 마차 바퀴를 닦고 있는 수횡천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수횡천은 맹주랍시고 거드름을 피우는 법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수횡천처럼 직접 마차를 몰고, 마차를 닦기까지 하는 맹주는 본 적이 없었다.

전혀 맹주 같지가 않았다. 무림맹주로서의 위엄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수횡천과 협력을 하게 되면, 반드시 무림맹주로서의 위엄부터 갖추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지금은, 오라버니가 고생 좀 해주셔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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