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부처님을 서럽게 할 수는 없지요
이날 밤 월령안은 편안히 잠들 수 없었다.
어깨 통증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낮에 겪은 불행한 일에, 심신이 피로했다.
하룻밤 내내 제대로 자지 못했다. 계속 비몽사몽한 상태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는 낮의 광경이 끊임없이 스쳐 지나갔다. 다만 꿈속에서 그녀가 겪은 일은 낮에 겪은 일과는 달랐다.
꿈속에서는 수횡천이 제때 오지 않았다. 그녀는 능욕당하고 죽은 개처럼 끌려다녔다.
그녀는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을 죽였다. 특히 자신을 능욕한 그놈을 토막 냈다.
그녀의 두 손은 피에 물들었다. 아무리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았다.
육장봉은 그녀의 앞에 서서 거만하게 내려보았다. 그녀를 살인범이라고 질책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그녀가 자초한 것이니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그녀가 외출하지 않았다면, 여자가 아니었다면, 못생겼다면, 이 모든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 모든 게 그녀의 잘못이었다.
바로 월령안, 그녀의 잘못이었다.
꿈속의 모든 게 너무나 생생했다. 실질적인 아픔, 능욕, 피 냄새까지. 꿈인지 생시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하룻밤 내내 악몽에 시달리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날이 밝아서야 겨우 악몽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잠에서 깼을 때는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앉아 한참이나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웅크리며 이불로 몸을 돌돌 감쌌다.
그렇게라도 해야 더는 막막하지도, 춥지도 않을 것 같았다.
꿈속의 모든 것이 너무나 생생해서 무서웠다. 다시 떠올릴 엄두도 나지 않았다.
‘어제 오라버니가 제때 오지 않았다면, 내 처지가 꿈에서처럼 비참했을까? 아니, 꿈에서보다 더 끔찍했을 수도 있어!’
문밖에서는 수탉이 우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월령안은 잠깐 숨을 골랐다.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심호흡을 했다. 안간힘을 다해 마음속 불안과 두려움, 고난에서 살아남은 기쁨 등을 모조리 억눌렀다. 그러고 나서야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지 않고, 먼저 창문으로 다가가 가림막을 젖혔다.
창밖으로 비가 내린 뒤 맑게 갠 하늘이 보였다. 먹구름이 잔뜩 끼었던 어제와는 전혀 달랐다.
멀리서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이 한 자루의 검처럼 어제의 어둠을 찢어 버렸다.
월령안은 창밖의 햇빛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떠올렸다.
구름이 걷힐 때까지 기다리는 자만이 밝은 달을 볼 수 있다.
모든 게 다 지나가리라. 모든 재난과 불공평 또한 다 지나가리라.
월령안은 지그시 눈을 감고, 마음속 파문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눈망울에는 밝은 빛이 서렸을 뿐 조금의 어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오른쪽 어깨의 상처가 점점 심해졌다. 중독된 것처럼 검게 부어오르고 핏물이 흘러나왔다. 팔 전체를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월령안은 아픔을 참으며 한참 애를 써서야 겨우 겉옷을 입을 수 있었다. 고작 그만큼 움직였을 뿐인데 온몸에 식은땀이 흠뻑 났다.
겨우 옷을 다 챙겨 입었다. 월령안은 까다롭게 굴지 않고, 어제저녁 남은 물로 간단하게 얼굴을 씻고 뜰을 나섰다.
문을 나서자마자, 근처에 서 있는 수횡천이 눈에 띄었다.
수횡천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게 분명했다. 그녀가 나오자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오른손을 가리키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손은 괜찮아?”
“안 좋아요. 될수록 빨리 의원에게 보여야 할 거 같아요.”
월령안은 사실대로 말했다.
어제까지는 그다지 아프지 않았는데, 오늘은 지독하게 아팠다. 특히 지금은 조금만 빨리 걸어도 못 견디게 아팠다.
수횡천은 그녀의 오른쪽 어깨가 옷으로 가리지 못할 정도 부어오른 것을 보자 말했다.
“육장봉은 오늘 성에서 나오지 못할 거다. 일단 돌아갈까?”
“오라버니, 육장봉 같은 사람은…… 자신이 천하를 저버려도, 천하가 자신을 저버리면 가만있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에요. 오늘 제가 이렇게 돌아가 버리면, 다음에 어머니께 언제 제사를 지낼 수 있을지 몰라요.”
육장봉은 이치로 설득할 수도 없고, 남을 이해해 주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걸 잘 알기에 어제 혜능 대사에게 어머니의 제사를 지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갖가지 방법으로 부탁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러면 네 상처는 어떡해?”
수횡천이 걱정되어 물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요. 적어도 육장봉이 저를 기다린 시간보다는 좀 더 기다려야 해요. 더는 기다릴 수 없을 때 떠나야 해요.”
남들 눈에는 육장봉이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아는 육장봉은 안하무인의 오만함이 뼛속까지 배어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도, 싫다는 소리를 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육장봉 앞에서는 될수록 자신을 낮추어야 했다. 그 휘하의 병사처럼 고분고분해야만 조그마한 이익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네 팔을 어서 치료해야 할 텐데. 아파서 못 견디겠으면 꼭 나한테 말해. 억지로 참지 마.”
수횡천도 더는 설득하지 않았다. 단 한 번 만났을 뿐이지만, 육장봉이 가까이하기 어려운 사람임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제 서둘러 떠나면서도 기어코 월령안에게 광원사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게다가 자신이 오지 않으면 제사도 못 지내게 했다. 이것만 보아도 육장봉은 뼛속까지 강도 같은 놈이 틀림없었다.
월령안이 육장봉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괴롭힘을 당할 게 뻔했다. 그로서는 월령안을 도울 수도 없었다. 그저 함께 산에서 기다리면서 지켜줄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은 머리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오라버니, 짬이 있으면 사찰 구경이라도 함께할까요?”
그녀는 육장봉이 오늘 광원사에 올 수 없다는 수횡천의 판단을 믿었다. 산에서 기다리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의 팔이 문제였다.
자신이 육장봉이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다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허탕을 치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에 육장봉을 기다리지 못하면, 언제쯤 어머니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녀가 어머니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혜능 대사를 설득해야 했다.
수횡천은 월령안의 초췌한 얼굴과 눈가의 그늘을 보았다. 그녀는 어젯밤 잠을 설쳤을 것이다.
방에 돌아가서 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 혼자 방에 있으면 또 어제 겪은 일을 떠올릴까 걱정이 되었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묵묵히 뒤를 따랐다.
다행히 그녀도 자신의 정신력이 완벽한 상태가 아님을 알았다. 산은 구경하지 않고, 사찰만 한 바퀴 돌았다.
그녀는 천천히 걸으며 전각마다 들어갔고, 불상을 볼 때마다 꼭 절을 했다.
한 바퀴를 걷고 나니, 월령안의 얼굴은 피로로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수횡천은 그녀를 뒤따라갔다. 앞으로 다가가 부축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월령안이 버티는 모습을 보자, 묵묵히 손을 거두었다.
마지막 전각에 들어가서 절을 하고 난 월령안은 한참 동안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제야 수횡천은 앞으로 다가가 부축해 주었다.
“조심해.”
“고마워요, 오라버니.”
그녀는 확실히 힘이 없었다. 그래서 더는 사양하지 않고, 수횡천의 어깨를 잡고 일어서며 말했다.
“오라버니. 저와 함께 혜능 대사를 만나러 가 줄 수 있나요?”
“방법을 생각해 냈어?”
수횡천은 그녀가 이유 없이 돌아다닌 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네, 생각해 냈어요.”
월령안은 고개를 들어 불상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불상은 위엄 있고 자애롭지만, 얼룩덜룩 낡아 있었다.
‘이 세상에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많아. 하지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다 할 수 있어!’
* * *
혜능 대사를 만나기 전, 월령안은 살짝 단장을 했다. 그나마 조금 더 생기가 있어 보였다.
“혜능 대사, 실례합니다.”
“월 시주, 엊저녁에는 잘 쉬었습니까?”
혜능 대사는 월령안을 흘끔 바라보고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서 눈길을 잠깐 멈추었다.
‘육 시주가 정말 벌 받을 짓을 하는구나.’
그는 의술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월령안 본인이 말하지 않으니, 섣불리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사람마다 인연은 따로 있다. 그가 억지로 월령안을 치료해 주었다가, 괜히 그녀를 곤란하게 할 수도 있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때로는 상처를 입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도 일종의 계략일 수도 있다.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혜능 대사께서 신경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월령안의 표정은 평온했고, 눈매도 평화로웠다. 어머니의 제사를 못 지낸 데 대한 불만이나, 헛되이 기다린 데 대한 초조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월 시주께서는 무슨 일로 소승을 보러 오셨습니까?”
혜능 대사가 물었다.
“혜능 대사, 아침에 사찰을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찰의 담벼락이 얼룩지고 낡았더군요. 상인방과 문설주의 색도 바래서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뒤뜰의 곁채도 오래되었고, 심지어 몇 곳은 허물어졌어요. 그리고 몇몇 대사께서 입고 계신 승복도 낡아서, 원래의 색깔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월령안은 아침에 관찰한 모습을 혜능 대사에게 소상하게 들려주었다 개인감정은 전혀 곁들이지 않았다. 오로지 본 대로, 사실대로 말했다.
혜능 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광원사가 세워진 지 백 년이 다 되었습니다. 모두가 심혈을 기울여 사찰을 지키려고 해도, 부족한 곳이 있지요. 승복이 낡은 것은 사소한 일입니다. 저희는 출가인이라 그런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혜능 대사의 눈에는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평온하고 인자한 눈에서 지혜와 너그러움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월령안의 뜻을 알아챘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는 시장이 아니라 절이었다. 그도 상인이 아닌 승려였다.
월령안은 혜능 대사가 거절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래도 신경 쓰지 않고,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대사께서는 재물에 관심이 없으시죠. 저처럼 돈 냄새나 풍기는 상인의 생각 따위에 개의치 않으시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대사께서 고생하시는 건 괜찮다지만, 부처님을 서럽게 할 수는 없지요. 제가 보았더니 전각에 모신 불상도 녹슬고 색이 바랜 것도 모자라 칠도 여러 군데 벗겨져 있었습니다. 특히 후전(後殿)의 불상에는 보수한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더군요. 그 솜씨가 뛰어나지 않아, 울퉁불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나니 제가 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월령안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듯했다.
“월 시주, 그 마음은 고맙습니다.”
혜능 대사는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육 시주의 예리한 눈에 든 걸 보니, 과연 보통 인물은 아니구나. 인제 보니 이 시주가 대단하기는 해.’
혜능 대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월령안은 먼저 말을 꺼냈다.
“혜능 대사, 제 어머니의 관을 광원사에서 지켜주시고, 또 고승께서 매일 경을 읽으며 제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절의 스님들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불상을 다시 도금하고 싶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월 시주, 그건 주지와 논의해 보십시오.”
광원사의 주지는 혜능 대사의 사제(師弟)였다. 혜능 대사는 사방으로 행각하다 보니, 광원사에 자주 머무르지 않았다. 그러나 변경에 머무를 때면 늘 광원사에만 있었다.
“광원사에는 제가 아는 분은 혜능 대사뿐입니다. 만약 대사께서 타당치 않다고 여기시면, 상국사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