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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14)화 (114/1,004)

114화 내 목숨값이 얼마냐

마차를 끄는 말이라서 안장과 등자가 없었다. 이대로 타기에는 매우 불편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위기가 닥친 게 분명했다. 저 앞에는 십중팔구 매복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두 다리로는 얼마 가지 못해 잡힐 게 뻔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말을 타고 왔던 길을 따라 빨리 도망치는 것이다. 멀리 갈수록 안전했다.

다행히 마차를 끄는 말은 월씨 저택에서 오랫동안 기른 말이었다. 발도 빠르고 힘도 셌으며, 매우 온순했다.

월령안은 힘겹게 말에 기어올라 말 등에 엎드렸다. 두 손으로 말의 목을 가볍게 끌어안고, 다리로 말의 복부를 가볍게 조였다. 다친 늙은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부가 매수당한 게 분명해. 마차를 이 길로 몰고 왔으니 앞에 매복이 있을 거야. 반드시 빠르게 이곳을 떠나야 해!’

월령안은 말을 타고 왔던 길을 거슬러 관도(官道)로 돌아가려 했다. 얼마 가지도 못했는데, 앞쪽에서 큰 칼을 든 검은 옷차림의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

하늘이 너무 어두웠고 빗소리는 너무 컸다. 그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그 둘이 칼을 들고 그녀를 향해 뛰어오고 있는 것만 보였다.

이 둘은 그녀를 노리는 적이 분명했다.

저 둘을 피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물론 말을 돌려 가까이에 있는 작은 길로 도망가는 것이다. 그러나 월령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은 앞에 이 둘밖에 없지만 다른 길로 가면 두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이 닥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상인답게 요행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마부가 충동적으로 나쁜 마음을 품고 이 길로 데려온 거라면, 매복이 없었을 것이다.

매복이 있다는 것은 이 일이 미리 계획되었다는 의미다. 그녀의 행동을 예상하고 미리 판을 짜놨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그녀의 앞을 막고 있는 이 두 사람을 대적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월령안은 뒷걸음질 치지도, 말을 돌리지도 않았다. 머리에서 비녀를 뽑아 들고 힘껏 말의 복부를 찌른 뒤, 말의 목을 꽉 껴안았다. 말이 나는 듯한 속도로 두 사람에게로 뛰어갔다.

“저년이!”

빗속에서 칼을 들고 월령안에게 달려들던 두 사람은 당황했다. 놀라서 작은 길로 도망칠 줄 알았던 그녀가 오히려 그들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곧 고용주가 내건 높은 상금을 떠올리고는 정신 차렸다. 둘은 이를 악물고칼을 겨누며 달려들었다.

그들은 이 여인을 묶어 두기만 하면 됐다. 다른 사람들이 오기만 하면 이 여인은 죽은 목숨이었다.

“역시 내 목숨을 노리는 것이었군!”

빗줄기가 너무 거세서 월령안의 시선이 흐려졌다. 하지만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충분히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이 곤경에서 빠져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쾅!

미친 듯이 날뛰던 말이 그 둘과 부딪치려는 찰나였다. 그들은 칼을 들어 월령안이 탄 늙은 말을 베려고 했다.

그와 동시에 월령안도 공격했다. 그녀는 가까이 있던 남자를 향해 은색 구슬을 튕겼다.

탁!

그자가 칼을 들어 말을 베려던 그 순간,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콰직!

말발굽이 인정사정없이 그의 등을 밟고 지나갔다.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그자는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폭우를 뚫고 크게 울려 퍼졌다.

상황은 이제 월령안에게 조금 더 유리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혼자였고, 은구슬은 한 번에 하나밖에 쓸 수가 없었다.

그녀가 두 번째 은구슬을 튕길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다른 한 사람이 월령안의 말에게 칼을 휘둘렀다.

푸슉!

칼이 휘둘러지며 말의 목을 베었다. 월령안은 몸을 힘껏 옆으로 젖혔다. 칼날이 그녀의 얼굴을 스쳐 지나며 머리카락을 베었다.

동시에 월령안의 손안에 있던 은구슬이 그자를 향해 날아갔다.

털썩!

털썩!

거의 동시에 월령안이 탄 말과 그 사람이 바닥에 넘어졌다.

푸슉!

피가 사방에 튀었다. 말 등에 앉아 있던 월령안은 진흙탕에 내팽개쳐졌다.

털썩, 소리와 함께 월령안이 떨어져 내리며 물방울이 튀었다. 이번에는 심하게 넘어졌다. 한참 지나서야 겨우 흙탕물에서 기어 나올 수 있었다.

“윽…….”

내팽개쳐질 때 오른쪽 팔이 먼저 땅에 닿았다. 다친 게 분명했다.

월령안은 팔을 감싸 안았다. 통증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얼굴을 대충 훔쳤다. 땅에 쓰러져 눈을 뜬 채 죽어간 말의 모습이 빗속에서 겨우 보였다.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와 십 년간 함께 한 오랜 벗이 죽어버렸다. 말은 죽기 직전에도 그녀를 구해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얼굴의 빗물을 훔치고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둘이 떨어트린 칼을 주워서 질질 끌며, 한 걸음 한 걸음 흙탕물 속을 헤쳐나갔다.

이런 궂은 날씨에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반드시 큰길까지 나가서 관도로 가야 했다. 아니면 여기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될 것이다.

‘서둘러야 해!’

쏴아아…….

빗물이 그녀의 시선을 흐리고, 청각을 혼란하게 했다. 몸에 걸친 옷들은 빗물을 먹어 질척거리며 무거워졌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더없이 힘들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멈췄다가는 도망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다.

월령안은 목숨을 걸고 앞으로 뛰어갔다. 얼마나 멀리 왔는지는 몰랐다. 눈앞이 캄캄해서 끝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계속 가다 보면 살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었다. 일단 멈춰 서면 죽을 게 뻔했다.

“빨리, 그 여자가 앞에 있다. 절대 도망치지 못하게 해라!”

“그 계집이 저기 있다! 바로 앞에 있어!”

“형제들, 서둘러라……. 저 계집을 놓치지 마!”

뒤에서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월령안은 무언가를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 검은 옷차림에, 가면을 쓴 사내 한 무리가 보였다. 그들은 칼을 들고 그녀와 열 장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망할!”

월령안은 화가 나고 절망감이 들어서 욕을 내뱉었다.

저렇게 많은 놈에게 추격당했다가는 죽을 게 뻔했다.

‘뛰자! 빨리 뛰어야 해!’

월령안은 팔의 통증도, 지친 몸도 돌볼 새 없이 기를 쓰고 앞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다친 데다가 여자의 몸을 가진 그녀는 단련된 남자들의 체력을 이기기 힘들었다. 얼마 안 가 월령안은 단단히 포위되고 말았다.

“이 여자를 죽여라!”

검은 옷차림의 복면을 한 남자는 월령안을 힐끔 보았다. 그녀의 외모를 확인한 뒤, 다른 말 없이 바로 그녀에게 칼을 휘둘렀다.

월령안도 칼을 들고 반격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손에 든 칼은 천근만근이라도 되는 듯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자의 칼끝이 떨어지려는 찰나, 월령안은 눈을 감고 온몸의 힘을 짜내 소리를 질렀다.

“내 목숨값이 얼마냐! 내가 열 배를 내겠다!”

“셋째야, 잠깐만!”

우두머리가 칼을 든 남자를 막았다.

칼은 월령안의 얼굴과 손가락 반 개만큼 떨어져 있었다. 조금만 손을 움직여도 그녀를 두 동강 낼 수 있었다.

“헉! 헉!”

월령안은 눈을 뜨고 눈앞에 있는 칼날을 보았다. 두렵기도 했지만, 다행이기도 했다.

그녀는 크게 헐떡이더니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처럼 말했다.

“나를 죽여서 받는 돈은 날 납치해서 받는 돈보다 많지 않을 거야. 날 죽이고 월씨 가문의 하인들에게 쫓기느니, 날 납치해서 몸값으로 받는 게 더 나을 거다. 너희가 받을 몸값이 날 죽이고 받는 목숨값보다 더 많다고 보장하겠다.”

“우리가 널 죽이고 얼마를 버는지 알기는 하느냐?”

우두머리가 그의 부하를 물리치더니, 월령안 앞으로 다가갔다.

월령안은 다시 손을 들었다. 얼굴의 눈물을 닦고 웃으며 말했다.

“방금 내 재산을 처분했다. 우리 월씨 가문에 지금 현금이 얼마나 있는지 아느냐?”

“얼마지?”

우두머리는 마음이 흔들렸다.

애초에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려 들었으니, 도의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다. 월령안을 납치해서 받는 돈이 더 많다면, 이걸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못해도 백만 냥이다.”

월령안은 평온하게 말했다.

“백만 냥?”

우두머리는 믿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월령안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거짓말의 흔적을 찾으려는 듯했다.

“이게 많아? 날 죽이라는 명을 받았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보기는 했느냐?”

상대의 마음이 동한 것을 보자, 월령안은 더욱 침착해졌다. 입을 열 기회만 준다면, 이들을 설득해 잠깐 그녀를 살려 두게 할 자신이 있었다.

그다음에는?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앞으로도 살 수 있을 것이다.

‘내 목숨을 가져가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돌도 금으로 만든다는 월령안, 월씨 가문의 주인이지!”

그들은 확실히 그녀를 조사해 보았다.

여인 하나를 죽이는데 십만 냥이라는 거금을 냈다. 그러니 죽여야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는 게 당연했다.

돈은 벌고 싶었지만, 죽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만약 건드릴 수 없거나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을 죽인다면, 그 돈을 벌더라도 쓰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월령안의 신분을 파악하자, 이 거래를 아무 부담 없이 받아들였다.

부모도 없고, 친척의 비호도 받지 못하는 여자 상인이었다. 그들이 죽이면 그만일 뿐. 일이 끝나면 그들은 돈을 받고 도망갈 것이다. 그러면 누구도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내가 누군지 알았으면 내 몸값도 잘 알 것이다. 날 죽이라고 시킨 자가 아무리 통이 커도, 목숨값으로 백만 냥은 차마 내놓지 못할 거다. 하지만 내 몸값으로 백만 냥은 거뜬히 받을 수 있다. 내 물건을 가지고 월씨 저택에 가면, 반드시 몸값을 받을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말하면서 월령안은 허리춤에서 인감을 풀어 상대방에게 던져 주었다.

“이건 내 개인 인감이다. 월씨 저택 사람들은 다 알아볼 수 있어.”

“이 인감을 가지고 가면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우두머리는 인감을 받아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점을 찾지 못했다.

“이 인감은 대가의 작품이다. 이 인감만 천 냥이 나가는데, 어떠냐?”

월령안은 온몸이 푹 젖어 있었다. 빗물이 몸에 떨어질 때마다 춥고 아팠다. 하지만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와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그녀는 흙탕물에 젖어 초라하지도, 쫓겨 궁지에 빠진 것 같지도 않았다. 화려하게 차려입고, 호화로운 전당에서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 속에는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전혀 없었다. 분명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인데도 그 기세는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우두머리는 빗속을 뚫고 월령안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네 말이 사실이어야 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걱정하지 마라. 내 목숨은 아주 비싸! 믿지 못하겠으면, 이 인감을 들고 아무 전당포나 가서 물어봐도 좋다. 천 냥 밑으로는 잡히지 마라.”

월령안은 그가 들고 있는 인감을 가리키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렇게 작은 물건이 천 냥이나 한다고?”

그는 말을 하는 한편 칼날처럼 날카롭게 월령안을 훑어보았다. 그녀의 몸에서 또 돈이 될 만한 것들이 있나 찾아보는 듯했다.

월령안은 눈치채지 못한 척, 짐짓 거만하게 말했다.

“물론이지. 지금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제일 비싼 거니까.”

월령안의 말을 듣고, 그는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인감을 품에 쑤셔 넣었다.

“월씨 가문의 주인은 상업계에서도 신용이 있기로 소문이 났더군. 이번에 한 번 믿어보도록 하지! 그럼 미안하지만…….”

우두머리가 뒤에 서 있던 부하에게 손짓했다.

“셋째야, 월 사장을 묶어라. 단단히 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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