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장사의 비결
사장들은 빠른 속도로 일어났다. 얼굴에는 홀가분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젯밤 집사의 신신당부를 듣고, 그들이 얼마나 걱정했는지는 하늘만 알 것이다.
오늘 감사가 정말 엄격하게 진행될 줄 알고 긴장을 잔뜩 했었다. 물론 월령안은 자세히 대조해 보고 또 물어보았다. 하지만 정당한 거래에 대해서는 그들을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이 몇 년간 장부를 자세히, 확실하게 쓰는 데 적응했기에 망정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무사히 넘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월령안은 가게 사장들을 떠나보냈다. 이제 겨우 진시(辰時 – 오전 7시~9시) 삼각(三刻 – 45분)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지금 문을 나서면 점심 전에는 성 밖의 광원사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점점 더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았다. 오늘은 분명히 큰비가 내릴 것 같았다.
하지만 육장봉은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광원사에 대한 일을 언급했다. 오늘 가지 않으면 육장봉의 기분을 언짢게 할 것이다. 그랬다가는 다음에 어느 세월에 가게 될지, 무슨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제아무리 나쁜 날씨도, 광원사로 가려는 그녀의 결심을 막지는 못했다.
“가서 마차를 준비해라. 성 밖으로 나가야겠다.”
월령안은 하녀에게 분부했다. 자신은 방으로 돌아가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녀가 막 옷을 갈아입은 참이었다. 아직 건물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는데 하녀가 헐레벌떡 뛰어와 말했다.
“아가씨, 밖에, 밖에…… 추밀원의 대인들이 아가씨를 뵙겠답니다.”
“추밀원의 대인들?”
월령안은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몇 분이나 오셨지? 무슨 일인지 말씀은 하시더냐?”
“두 분입니다. 무슨 일인지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
하녀는 계속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단지 아가씨를 만나겠다고만 하셨습니다.”
“그러면 화청에서 잠시만 기다리시라고 해라. 내가 바로 가마.”
월령안은 지체하지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화청으로 걸어갔다.
추밀원에서 왔다는 두 대인은 아주 예의를 차렸다. 월령안이 화청에 들어서서 예를 올리려 하자, 두 대인이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더욱 열정적으로 말했다.
“월 낭자, 저는 부립엽(傅立葉)이라 합니다. 조 대인의 명령을 받아, 월 낭자의 가게를 구매하는 일을 상의하러 왔습니다.”
“조 대인이 보내셨다고요?”
‘조계안이 이 일을 추밀원에게 넘겼다고?’
그녀가 추밀원에게 가게를 파는 일은 별일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추밀원이 따로 재산을 가질 수 있었던가?
“예.”
부립엽은 사십 대로 보였다. 중후하고 듬직한 느낌을 주는 모습이 믿음직해 보였다.
월령안은 화청으로 들어갔다. 그 둘에게 앉으라고 권하고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대인들은 추밀원을 대표해서 오신 건가요, 아니면 조 대인의 대리인으로 오신 건가요?”
“추밀원을 대표해서 왔습니다.”
부립엽이 대답했다.
“추밀원이 따로 재산을 가져도 되나요?”
월령안은 끝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가능합니다. 황제 폐하께서 윤허하셨습니다.”
예전에는 불가능했지만, 오늘부터는 가능했다.
꼭두새벽부터 상관에게 받은 명령이 월령안을 찾아가 가게를 구매하는 일을 상의하라는 것이었다. 그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우리 추밀원이 언제부터 장사를 시작했지?’
확답을 들은 월령안은 더 군말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게 가게 다섯 개가 있는데, 아직 장부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어요. 사흘만 시간을 주세요. 사흘 뒤에 다시 가게 매매에 관해 상의하도록 하죠. 어떠세요?”
이는 물론 시간을 끌려는 속셈이었다.
만약 가게를 조계안이 아니라 추밀원에 팔 거라면, 언제든지 상의할 수 있었다. 어쨌든 가격만 먼저 합의하면, 나머지 일 처리는 좀 늦어져도 괜찮았다.
단지 월령안은 서둘러 집을 나서려고 했을 뿐이다. 추밀원의 사람들과 거래에 대해 상의할 시간과 정력이 없었다. 일단 사람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월 낭자……. 저희도 명령을 받은 몸이라, 오늘 반드시 그 가게 다섯 군데의 경영 상황과 견적도 알아야 합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보고 보고를 드려야, 상관께서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
부립엽은 말로는 죄송하다고 했지만, 자세는 퍽 강경했다.
추밀원은 그럴 만한 배짱이 있었다.
월령안은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오늘 제가 선약이 있어서 나가 봐야…….”
월령안이 말을 채 마치지 못했는데 천둥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천둥소리와 함께 쏴아, 하는 거센 빗소리가 들렸다.
“월 낭자, 날씨가 이런데……. 외출은 어려우실 겁니다. 차라리 저희와 가게에 대해 상의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날씨가 갑자기 변하자, 부립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오기 전, 상관은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월령안이 외출하지 못하게 막으라고 암시를 했다.
그로서는 영문을 몰랐지만, 상관의 명령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부 대인, 제가 이 가게들의 경영 상황과 견적을 말씀드릴게요. 적당한지 한번 보세요.”
상대방이 물러서지 않는 것을 보자, 월령안은 그의 곤란함을 짐작했다. 상관의 명령을 받고 온 사람이었다. 일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면 크게 혼이 날 게 뻔했다.
시간을 낭비하면서 옥신각신하느니, 차라리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하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밖에서도 봄날의 우레가 울고, 거센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 길을 나서더라도 빨리 가지는 못할 터였다. 차라리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월 낭자, 감사합니다.”
부립엽은 그녀가 협조적으로 나오자,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 명의로 된 가게가 다섯 곳이 있습니다. 미곡상, 식료품상, 포목상, 향료상, 그리고 화장품 가게가 있습니다.
미곡상에서는 평범한 오곡을 파는데, 대부분 강남에서 운송해 옵니다. 저는 조운(漕運 – 수로 운송의 옛말)하는 사람들과 관계가 좋은 편이라서요. 제가 원하는 양도 많지 않아, 매번 편리한 배편으로 운송해서 운임도 아주 저렴합니다. 그래서 제 가게에서 파는 곡식이 상등품이라고는 못 하지만, 가격은 온 변경에서 가장 저렴해서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 부립엽을 힐끔 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 적었다고 한 뒤에야 말을 이었다.
“식료품상은 좀 특별합니다. 가게에서 파는 모든 고기와 채소는 제가 성 밖의 장원에서 재배한 것입니다. 주로 양고기와 소고기를 취급합니다. 돼지고기는 어린 돼지의 고기만 팔고 있어요. 이 가게에서 파는 고기와 채소는 전부 품질이 뛰어나 부잣집에 납품하고 있어요. 수익 대부분은 단골손님들이 주문하는 데서 나오고, 평소 가게에서의 판매량은 많지 않습니다. 그 단골손님들이 줄곧 저희 가게의 고기와 채소만 사들이는 이유는, 저희 가게의 것이 시중의 다른 고기나 채소보다 훨씬 맛이 좋기 때문이죠. 만약 이 가게를 사신다면, 성 밖의 장원도 함께 사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월 낭자의 의견, 감사합니다. 잘 적어 두었습니다.”
부립엽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몰래 생각했다.
‘월 낭자의 가게들은 하나같이 돈을 적잖게 벌어들이던데,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군.’
월 낭자가 하는 장사는 모두 독특한 장점이 있었다. 남들이 쉽사리 따라 할 수 없는 부분이 꼭 있었다.
“포목상이나 향료상, 화장품 가게에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어요. 천은 제일 좋은 것으로 납품받고 있고, 향료와 화장품들도 마찬가지예요. 강남의 납품상과 잘 알거든요. 천은 대부분 강남에서 들이고, 향료와 화장품 중 몇 가지는 제가 길러낸 장인들이 제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상품 대부분은 바닷길을 통해 운송해 온 것들입니다.”
월령안은 이 세 가게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또 그럴 수도 없었다.
포목상, 향료상, 화장품 가게는 앞의 두 가게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다. 대부분 물건은 바닷길을 통해 운송해 왔다. 하지만 진짜로 돈이 되는 것은 그녀가 길러낸 장인들이 제작해 낸 시중에는 없는 색깔과 향료, 연지와 분이었다.
남에게는 없는 것이 내게는 있어야 한다. 남에게 있는 것이라면 내게는 더 좋은 것이 있어야 한다.
돈을 벌려면 다른 가게들과는 확연히 달라야 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강점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게가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는 그녀의 장인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강점을 절대 넘기지 않을 것이다.
가게를 팔고, 납품처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정성을 들여 길러낸 장인들은 절대 내놓을 수가 없었다. 이 장인들의 가치는 제과점의 몇몇 제과 장인들과 비교할 수 없었다.
간식을 만드는 장인은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양이 한정적이었다. 그에 비해 향료와 화장품은 비법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월령안이 보기에는 가게를 추밀원에 파나, 조계안에게 파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월령안은 그녀가 거느린 장인들 말고는 전혀 숨기는 것이 없었다. 가게 다섯 군데의 현황을 한 번 소개했다. 그다음 저택의 하인에게 서재로 가서 장부들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하인이 장부를 가져올 때까지 월령안은 부지런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부 대인에게 가게의 위치와 가격을 소개했다.
“미곡상 말고 나머지 네 가게는 모두 상국사(相國寺) 근처에 있어요. 그 지역의 점포 매매가는 이천 냥에서 삼천 냥 사이입니다. 저도 많이는 필요 없으니, 가게 네 곳을 팔천팔백 냥으로 할인해서 팔게요.”
말을 마친 월령안은 부 대인과 그의 동료를 힐끔 보았다. 두 사람이 이의가 없는 것을 보고, 말을 이었다.
“미곡상은 동순문(東順門) 거리에 있는데, 그곳 점포는 비싸지 않아요. 대부분 오륙백 냥 사이인데, 제 가게는 두 점포를 터서 만든 것이니 천이백 냥을 받겠습니다. 팔천팔백 냥과 천이백 냥을 합쳐 점포 다섯 곳의 가격은 총 만 냥이 되겠습니다. 대인들께서 보시기에는 어떤지요?”
“월 낭자의 견적을 잘 들었습니다. 단지 이 일은 저희가 결정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저희가 대인께 사실대로 보고를 올려서, 월 낭자께서 좋은 가격을 받으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부 대인은 공수하며 좋게 얘기했다.
“그럼 부 대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월령안도 인사를 올렸다. 문밖에서 장부를 들고 오는 하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부 대인, 이 거래가 성사되든 안 되든, 이 장부는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저와 조 대인은 친분이 두텁고, 이 가게도 추밀원에 파는 것이니까요. 저도 숨길 것이 없지요. 이 장부들은 부 대인께서 여기서 보셔도 되고, 추밀원에 가지고 가셔서 보셔도 됩니다. 다만 두 분께서 보시고 난 뒤, 부디 밖에 소문내지만 말아 주세요.”
이 두 사람이 장부를 보더라도, 월령안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녀의 모든 가게에는 장부가 두 권이 있었다. 한 권은 외부인과 관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장부이고, 다른 한 권은 개인 장부였다.
외부인과 관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장부에는 장인들이 연구 개발한 신제품의 판매액과 이윤을 대폭 줄였다. 그리고 개인 장부에는 사실대로 적어 두었다.
그녀가 달마다 검사하는 장부는 개인 장부였다. 하지만 이번에 가게 주인들이 와서 대조한 장부는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장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