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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10)화 (110/1,004)

110화 무림의 정보를 사겠소?

만약 황제가 진심으로 월령안을 칭찬하고 싶었다면 정정당당하게 상을 내렸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천 쪼가리를 받더라도 이 십만 냥 은표보다는 가치가 있었으리라.

이 십만 냥 은표는 마치 거지를 쫓아내듯 먹고 떨어지라는 식이었다. 그녀도 그걸 아는지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육장봉이 그녀였더라도 이까짓 은표는 내던졌을 것이다.

“그래요, 성은이 망극하지요.”

월령안은 이내 불만 없이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육장봉은 그녀가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수횡천으로 화제를 옮겼다.

“무림맹의 정보를 사겠소? 내가 싸게 팔겠소.”

“대장군께서는 업종을 바꾸셨나요? 정보를 파시겠다니요?”

월령안은 좀 우스웠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녀가 아까 대답을 하지 않은 건 궁금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육장봉은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이거 강매 아냐?’

육장봉은 월령안이 간도 크게 자신을 상대로 빈정대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모든 일을 늘 똑 부러지고 시원스럽게 처리해 왔다. 꼭 필요한 말만 했고, 최대한 적게 말했다. 그러나 웬일로 흥이 올라 농담이라도 하듯 대답했다.

“먹여 살려야 할 입은 많은데, 월 낭자처럼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돌을 금으로 바꾸는 재주도 없소. 나라도 자력갱생하여 그들에게 살길을 마련해 줄 수밖에 없군.”

“황공하기까지 하네요. 대장군……. 진심이세요?”

월령안은 경악한 표정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순간 눈앞의 육장봉은 육십이가 분장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이렇게 파격적이고, 농담까지 할 줄 아는 육장봉은 그녀가 알던 대마왕 육장봉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흠!”

육장봉은 손으로 입을 막고 가볍게 기침을 했다. 몸을 살짝 뒤로 젖히면서 얼굴을 어둠 속에 숨겼다. 평소처럼 냉정함을 유지했다. 하마터면 추태를 부릴 뻔했다.

“정말로 무림의 정보가 필요 없소?”

육장봉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자, 월령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가격을 물어봐도 되나요?”

육장봉이 무려 세 번이나 물었다. 그녀가 어떻게 필요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마음대로.”

사실은 정보를 팔려고 온 것도 아니었다. 단지 월령안이 수횡천에게 당할까 걱정되었을 뿐이다.

무림맹은 거대한 구덩이나 마찬가지였다. 월령안이 수횡천과 깊이 협력하다 보면, 그 큰 구덩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무림의 여러 문파와 유명한 고수들의 정보를 전부 가지고 계시나요?”

월령안은 서두르지 않고 가격을 부르기 전에 자세히 물어보았다.

육장봉에게 비싼 가격을 내는 건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내놓는 정보가 그만한 값어치를 해야 했다.

“거의 다 있지. 그러나 숨겨진 문파나 은거하는 고수들에 관한 정보는 없소.”

강호의 인물에 대해서라면 그가 월령안보다 훨씬 잘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알아내지 못하지만, 그는 알아낼 수 있는 정보도 있었다.

그가 월령안에게 주려는 정보는 가장 완벽한 것이었다.

“천목신교의 남상권에 관한 정보들도 있나요?”

월령안이 또 물었다.

“남상권? 그자에게 관심이 있소?”

육장봉은 의외라는 듯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수 맹주께서 이 사람을 특별히 강조하시더군요. 말을 들어보니 그자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어요. 제가 수 맹주와 협력하게 되면, 그자가 걸림돌이 될 것 같아서요.”

육장봉은 강호에 몸담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강호의 일에 나서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알게 되더라도 두려워할 게 없었다.

“음. 남상권이라는 자는…….”

육장봉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 나갔다.

“사 년 전에 갑자기 나타났소. 정체는 비밀에 싸여 있고, 행적도 수수께끼요. 지금까지 강호에서 누구도 그자의 참모습을 본 사람이 없소. 나도 그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소.”

육장봉은 말을 하면서 몸을 조금 더 뒤로 기댔다. 자신을 어둠 속에 묻으려고 했다.

‘월령안, 역시 날카롭군…….’

육장봉에게서 간단한 소개를 듣자, 월령안은 바로 결정을 내렸다.

“오천 냥으로 대장군에게서 무림에 관한 정보들을 살게요. 어떠세요?”

“좋소.”

육장봉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승낙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상판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당신이 날 도와 일 하나를 해 주면, 철광산에 관한 정보를 하나 더 알려 주겠소. 어떻소?”

“대장군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월령안의 미소가 미세하게 굳어졌다. 몸도 잠깐 경직되었다.

하지만 한순간이었을 뿐이다. 월령안은 곧바로 평소대로 돌아와 웃으며 말했다.

“물론,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렇지. 육장봉이 이렇게 선심을 쓸 리가 없지. 야밤에 찾아와 광원사에 데려가겠다고 하지를 않나, 심씨 가문을 조심하라고 충고하지를 않나, 또 정보를 팔아넘긴답시고 농담하지를 않나…….

역시 육장봉이 이런 짓들을 한 건, 내 경계심을 느슨하게 만들어서 철광산의 일을 떠보려던 거였어.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셈이야?’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소. 난 단지 정보를 팔기 위해서 말한 것 뿐이니까.”

육장봉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월령안이라는 여인은 정말 냉정했다. 그가 보인 호의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감사합니다만, 그 정보는 제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가치가 없는 정보에 값을 치를 수는 없지요. 설령 그 대가라는 게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소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전 헛수고를 하지 않겠어요.”

월령안은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거절했다. 물론, 속으로는 대단히 궁금했지만, 꾹 참았다.

육장봉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지금 한 이 제안은 한 달 동안은 유효하오.”

‘철광산’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월령안은 이상할 정도로 경계했다.

‘월령안은 그러한 행동들이 오히려 수상하게 보이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러니 황제는 아무 증거가 없어도, 월령안을 쉽사리 놓아 주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월령안에게는 확실히 수상한 구석이 있었다.

“대장군의 호의는 감사합니다.”

월령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꼭 다문 채 미소를 지었다.

한 달은커녕, 일 년이라 해도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그녀도 자신의 이러한 행동이 육장봉의 의심을 없애기는커녕 더욱 부채질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육장봉도, 황제도 그녀를 의심했다. 그러면 모든 시선을 그녀 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않을 것이다.

월령안은 정말로 이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았다. 그녀를 조사하는 것은 더욱 두렵지 않았다.

육장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월령안, 어떤 일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아니오. 또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복잡하지도 않소. 홀로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도 좀 믿어 보시오.”

아무래도 그는 저택의 어지러운 장식품을 여전히 참고 지내야 할 모양이었다.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를 한 번 본 적도 없는 월령안은 장군부를 자신의 마음에 쏙 들게 꾸며 놓았다. 하지만 그의 하인들은 명세서대로 물건을 사 와서, 월령안이 했던 대로 진열해 놓는 것조차 똑바로 하지 못했다.

“충고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월령안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녀도 그렇게 믿었다. 소씨 가문에 복수한다거나, 청주에 가서 범씨 가문과 싸우는 일은 상상만큼 무시무시하지 않았다. 또 노인이나 수횡천 같은 사람들은 상상만큼 복잡하지 않았다.

하지만 철광산에 관련된 일이나, 육장봉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났던 육장봉은 떠날 때도 깔끔했다. 월령안은 예의를 갖춰 배웅했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서재에 한 시진 동안 멍하니 있었다.

서재를 나선 월령안은 노인이 묵는 뜰을 보면서 가볍게 한숨을 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영감님은 이미 걱정이 태산이실 거야. 철광산의 일은 얘기하지 말아야겠다.’

아무튼, 그들은 지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황제든, 육장봉이든, 증거를 찾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 * *

월령안은 단잠을 자고 일찍 일어났다. 문을 열고 무거운 구름이 낮게 끼어 어둠침침한 하늘이 보았다.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큰비가 올 것 같은데, 이래서야 집을 나설 수나 있을까?’

“아가씨, 앞뜰에서 말을 전해왔습니다. 수 맹주와 남 소협이 이미 일어나셨는데, 아가씨께서 함께 식사하실지 여쭈셨습니다.”

월령안이 입구에서 움직이지 않자, 그녀의 시중을 드는 하녀가 다가와 물었다.

월령안은 정신을 차렸다. 시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집사에게 준비하라고 해.”

수횡천과 소육자가 일어났다니, 월령안은 주인으로서 식사를 함께해야 했다.

아침 식사를 할 때, 월령안은 수횡천과 소육자에게 오늘은 일이 있어 밖으로 나가니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편히 보내라고 했다.

수횡천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육자는 친근하게 말했다.

“월 누님 걱정하지 마세요. 누님은 이미 제 누님인걸요. 저도 사양하지 않을게요.”

“좋아요!”

월령안은 눈을 휘며 가볍게 웃었다. 소육자의 이런 자세가 퍽 마음에 들었다.

식사를 마치자 집사가 찾아와 말을 전했다.

“아가씨, 사장들이 다 왔습니다. 서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월령안이 바빠 보이자, 수횡천은 먼저 말을 꺼냈다.

“월 낭자께서는 일을 보시오. 나와 소육자도 나가서 둘러보겠소.”

“변경에 볼거리가 많아요. 제가 집사더러 따라가라고 할게요.”

월령안은 집사에게 눈짓했다.

수횡천과 소육자가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협객이었다. 월령안이 제아무리 그들을 남처럼 생각하지 않고, 사소한 예절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직접 돈을 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호의를 베푼 게 아니라, 상대방의 체면을 깎는 꼴이었다.

그래서 월령안은 돈을 주지 않고 집사에게 따라가게 했다. 집사가 함께 간다면, 수횡천과 소육자가 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

“월 낭자, 고맙소.”

수횡천은 원래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밖에 나가 둘러볼 뿐이니 돈 쓸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변경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이곳을 잘 아는 사람이 안내하면 많이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횡천과 소육자는 집사와 함께 월씨 저택을 나섰다. 월령안은 오늘 찾아온 가게 사장들과 장부를 맞추러 서재로 갔다.

이 몇몇 가게들을 조계안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문제가 생기지 않게, 최근 몇 년간의 장부를 전부 대조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가게는 몇 개 안 됐지만, 대조해야 할 기한이 너무 길었다.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았다.

다행히 가게 사장들은 어제 집사를 통해 말을 듣고, 장부를 눈에 확 들어오게 잘 정리해 두었다. 게다가 월령안은 해마다 장부를 검사했다.

그래서 각 가게의 장부가 많기는 했지만, 월령안은 한 시진 남짓 걸려 확인을 전부 마쳤다.

장부 대조는 끝냈다. 하지만 조계안에게 이걸 한 권씩 줄 수는 없었다. 월령안은 이것들을 다시 한데 모으는 작업을 했다.

그러나 오늘 안에 다 완성할 수는 없었다.

월령안은 손에 든 장부를 덮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사장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수고 많았네. 문제가 있다면 다시 묻도록 하겠네.”

“예,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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