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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09)화 (109/1,004)

109화 돈이 많으니까 참 좋네요

월령안은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아직 배가 부르지 않았다고 짐작했다. 집사에게 슬그머니 눈짓했다.

곧 하인들이 원래의 접시들을 치우고 새로 간식을 내왔다. 모두 여덟 접시로, 대부분 수횡천과 소육자 앞에 놓였다.

그녀는 이미 배가 불러 더 먹고 싶지 않았다.

“수 맹주, 소육자. 드셔 보세요. 이 간식들은 저택의 주방장이 잘 만드는 것들이에요. 좋아하신다면 많이 드시고, 별로라면 적게 드셔도 괜찮아요.”

월령안은 이 두 사람이 너무 성실해서, 나온 대로 억지로 먹다가 탈이라도 날까 봐 걱정되었다. 일부러 한마디 덧붙였다.

월령안의 말을 듣고, 수횡천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월령안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말만 하더라니.’

월령안은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을 아주 세심하게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함께 식사하면 마음이 정말 편했다. 사람을 배려할 때도 늘 티를 내지 않았다. 그녀의 배려를 받는 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게 했다.

또한, 선을 아주 잘 지켰다. 일을 할 때나 말을 할 때는 열정적이지만, 도가 지나치지 않도록 적정선을 잘 유지했다.

‘이런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할 거야.’

월령안의 말을 듣자, 수횡천은 더는 억지로 먹지 않았다. 하나씩 맛을 보다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조금씩 더 먹었다.

소육자는 달랐다. 가득 차려진 간식들을 보자 신이 나서 절반 이상을 먹어 치웠다. 나중에는 부른 배를 쑥 내민 채 의자에 나른하게 앉았다.

“와, 너무 잘 먹었어요. 월 누님, 누님댁의 음식과 간식이 너무 맛있어요. 제가 여태까지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었어요. 월 누님, 돈이 많으니까 참 좋네요. 앞으로 저도 열심히 돈을 벌어서 이렇게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래요.”

“그럼요, 물론 가능하죠. 제가 집사더러 간식을 방으로 가져가라고 할게요. 밤에 출출하면 또 드세요.”

수횡천이 그녀와 협력만 한다면, 소육자가 먹고살 돈을 버는 것쯤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같은 편이 된다면, 월령안도 당연히 더 돌봐 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소육자가 간식값을 벌게 해 주는 것쯤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월 누님, 정말 최고예요!”

소육자는 동경의 눈빛으로 월령안을 쳐다보았다. 아예 월령안에게 착 달라붙어 절대 떨어지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쩐지 사람들이 다들 능력 있는 사람에게 빌붙고 싶어 하더라니. 빌붙을 사람이 생기니 정말 너무 좋았다.

월령안은 웃음을 터뜨렸다.

“시간이 늦었어요. 두 분도 피곤하실 텐데 일찍 쉬시는 게 어떨까요? 얘기는 내일 하도록 하죠.제가 내일 아침 식사는 함께 들지 않을 테니, 두 분도 일찍 일어나지 말고 푹 쉬세요. 식사는 일어나시면 하시고요. 자기 집처럼 여기시고 편히 지내세요.”

“알겠소.”

수횡천은 거절하지 않고 승낙했다.

강호 사람들은 사소한 예절에 얽매이지 않았다. 월령안의 이 처사는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사건건 월령안의 간섭을 받으면서 월씨 저택에 묵느니, 바깥의 낡은 사당에 묵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월령안은 두 사람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뒤, 또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을 배웅해 주고 나서야 각자 흩어졌다.

처소로 돌아가는 중에도 소육자는 월씨 저택의 하인이 듣건 말건, 수횡천의 귓가에 계속 재잘거렸다.

“맹주, 제 생각엔 월 누님은 정말 좋은 사람 같아요. 월 누님과 잘 얘기해 보세요. 누님은 여인이니까 맹주께서 좀 양보하셔야 해요.

맹주, 누님이 얘기하신 강호 삼대 미인, 사대 소협, 십대 고수를 뽑는 게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강호 사람들도 많이 참여할 거예요. 어차피 누구나 다 맹주처럼 젊은 나이에 무술로 강호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맹주, 누님이 무림대회를 주최해서, 삼대 미인, 사대 소협, 십대 고수 같은 것을 내세운다면, 큰 문파 사람들도 참여할까요? 그 사람들도 참여한다면, 우린 돈도 벌고, 이름도 날리게 될 거예요.

맹주, 맹주…….”

소육자는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말을 하면 할수록 흥이 올랐다. 반대로 수횡천은 굳게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그의 무거운 표정에서 소육자의 말을 전부 귀담아듣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 *

월령안은 수횡천과 소육자를 보내고 나서, 다시 서재로 돌아왔다.

서재 문을 연 그녀는 안에 누군가 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 깜짝 놀랐지만, 곧바로 침착함을 되찾았다. 평소와 같이 하인을 내보내고 서재로 들어섰다.

“육 대장군을 뵙습니다.”

육장봉은 주인석에 앉아, 책상 위에 놓인 장부를 보고 있었다.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공수를 했다.

‘이 인간들은 하나같이 자기를 손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내 서재로 바로 들어온 것은 물론이고, 내 책상 위의 장부를 마음대로 펼쳐 보다니. 육장봉 이 인간은 이게 얼마나 무례한 짓인지 알기나 할까?’

“수횡천과 이야기는 잘 됐소?”

월령안이 들어온 것을 보자, 육장봉은 바로 장부를 옆으로 던졌다.

“다리를 놔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 맹주는 아주 좋은 분이에요. 일도 잘 풀리고 있고요.”

월령안은 작은 탁자 위에 있던 차를 가져가 육장봉에게 따라 주었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육장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은 가난뱅이 무림맹을 아주 좋게 보는군? 수횡천과 그 무림 협객들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기나 하오? 섣불리 그들과 거래할 생각을 하다니. 정말 간도 크지.”

무림인들은 생계유지 수단을 사파에게 모조리 빼앗긴 상황이었다. 그는 월령안이 무슨 수로 그 와중에서 이익을 얻어낼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월령안이 답했다.

“지금 사람을 시켜 알아보는 중이에요.”

그녀는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든, 수횡천과의 협력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무림맹은 아주 좋은 간판이었다. 잘만 이용하면 무림인들에게서 돈을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서도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나한테 정보가 있지.”

육장봉은 찻잔을 들어 가볍게 입술을 가져다 댔다.

“이것은 무슨 차요?”

“육안과편입니다.”

월령안이 답했다.

“지난번에 준 차는 육안과편이 아니었소.”

매번 월씨 저택에서 마시는 차는 장군부에서 마시는 차와 똑같았다. 그래서 늘 집에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고는 했다.

다른 차를 마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장군, 대장군께서는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으셨잖아요. 이 야심한 시각에 어쩐 일로 찾으셨는지요?”

‘사전에 말도 없이 주인의 서재에 귀신처럼 몰래 나타난 주제에, 주인이 접대를 잘하지 못했다고 타박하다니. 육장봉 이 인간은 낯짝도 참 두껍다니까.’

“흠……. 나는 내일 광원사에 혜능(惠能) 대사를 만나러 갈 거요. 함께 가겠소?”

육장봉이 덤덤하게 물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월령안과 광원사에 가는 것은 아니었다. 마침 내일 시간이 나는데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느니 성 밖으로 나가 기분 전환이라도 하려는 것뿐이었다. 성 밖으로 나가면 광원사와 가까웠다. 단지 같은 방향이라서 한번 들르려고 했을 뿐이다.

월령안은 진작부터 광원사에 가고 싶었다.

육장봉이 혼자 가지 말라고 재차 경고하지 않았더라면, 소 승상이 이 일을 알까 걱정하지 않았더라면, 육장봉을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육장봉이 다시 광원사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며칠 뒤에 그를 찾아갈 심산이었다.

그런데 육장봉이 지금 말을 꺼내니, 그녀는 당연히 기뻤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내일은 제가 데리고 있는 가게 사장들이 장부를 맞추러 올 거예요.”

벌써 하루를 미루었다. 내일 또다시 미룰 수가 없었다.

“수 맹주께서도 앞뜰에 묵고 계세요. 손님이 들어온 지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주인이 외출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잖아요. 제가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고 여길지도 몰라요.”

그녀는 수횡천과 협력하고 싶었다. 협력도 하기 전에 그를 홀대하면, 수횡천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수횡천은 신경 쓰지 마시오. 이런 사소한 일은 마음에 두지 않을 테니까. 장부는 다 맞춰 보고 출발해도 좋소. 나도 광원사에 그렇게 일찍 가지는 않을 거요.”

육장봉은 몇 마디 말로 월령안의 내일 일정을 완벽하게 짜 주었다.

월령안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제가 내일 도저히 가지 못한다면, 대장군께서 광원사에 말씀 좀 넣어주세요. 저 혼자서도 갈 수 있게요.”

광원사의 사람들은 그녀의 신분을 확인해도 육장봉의 분부 없이는 어머니의 제사를 올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월령안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내일, 광원사에서 당신을 기다리겠소.”

육장봉은 거절할 수 없도록 말했다.

월령안은 육장봉을 흘깃 쳐다보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남자는 강압적이고, 지배욕도 강했다. 게다가 고집도 세고 한 입으로 두말하는 법이 없었다. 애초에 남의 기분을 눈곱만큼도 배려할 줄 몰랐다.

육장봉도 월령안의 대답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녀에게 통보하러 온 것이지, 상의하러 온 게 아니었으니까.

육장봉은 약속을 잡은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충고 한마디를 했다.

“며칠 안으로 심씨 가문의 사건을 재판할 예정이오. 당신도 조심하시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심씨 가문에서 사람을 시켜 당신에게 복수할지도 모르오.”

요즘 그는 변경의 보안을 강화하고, 잠복한 첩자를 조사하느라 바빴다. 한 달 뒤에 방문할 북요의 사신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도 심씨 가문의 일에 관해서는 명령만 했을 뿐이다. 구체적인 일 처리는 심민이 하고 있었다.

심민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젊어 경험도 적고, 식견이나 수완도 부족했다. 그러니 흔적을 남겨 심씨 가문에게 들킬 가능성도 있었다.

“대장군께서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육장봉의 말을 들은 월령안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순간은 기쁘기만 했다.

‘심씨 가문이 드디어 벌을 받게 되겠구나! 그러면 소 승상 쪽도 머지않았어.’

“아, 그러고 조계안이 아침부터 당신을 찾아왔는데, 무슨 일 때문이었소?”

육장봉은 무심결에 묻는 척하며 질문을 툭 던졌다.

“조 대인이요?”

월령안은 순간 멍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심씨 가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화제는 순식간에 조계안으로 넘어갔다.

‘육장봉은 말을 참 빨리 돌리네.’

집중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졌다면, 그의 생각을 따라갈 수 없을 뻔했다.

월령안은 속으로 욕을 했다.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내리신 상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생각한 끝에, 등요 공주의 사건은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육장봉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상을 내렸다고? 무슨 상 말이오?”

‘폐하께서 월령안에게 상을 내린 걸 왜 나는 몰랐지?’

조정에서는 아무 소식도 들은 게 없었다.

“제가 미인방을 은양당에 기부한 일로, 폐하께서 십만 냥을 상으로 내리셨습니다.”

말이 좋아 상이지,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의 의미로 주는 상보다는 주인이 심부름을 잘했다고 던져 주는 상에 더 가까웠다. 마치 그녀가 하인에게 주는 상 같은 것이었다.

월령안은 아까 조계안에게 시달리느라 얼떨결에 넘어갔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황제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육장봉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폐하께서…… 당신의 서러움을 알아주셨군.”

‘폐하의 이번 일 처리는 참……. 월령안한테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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