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손님이 배불리 먹지 못하다니
큰 거래일수록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쌍방 모두 원하는 것이 있고, 각자의 이익이 있다.
먼저 서로의 조건과 요구를 제시하고, 하나하나 잘 따져보아야 했다. 무턱대고 허락하고 나서 다투는 것보다 나았다.
양쪽 모두 협력할 뜻이 있었다. 그러니 월령안도 옹졸하게 굴지 않기로 했다.
“수 맹주, 남 소협, 괜찮으시다면 이 사흘 동안 저희 집에 머무르시는 게 어떠신지요? 앞뜰에 빈방이 있어요. 괜찮으시다면 거기를 정리하라고 해 둘 게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아하니, 변경에서 잘 지내는 것 같지가 않았다. 어쩌면 객잔에 묵을 돈조차 없을 수도 있었다.
직접 돈을 주자니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여기 붙잡아 두는 편이 서로 체면을 상할 일도 없고, 일 이야기를 하기에도 더 편할 것이다.
“월 낭자께 폐가 되지 않겠소?”
수횡천은 먹고 자는 데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월령안과 친해질 수 있다면 당연히 좋았다. 단지 이 저택에는 여인인 월령안 혼자밖에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커다란 사내 둘이 들어와 묵어도 괜찮으려나?’
“아니에요. 제 사부님도 앞뜰에 계시는걸요.”
수횡천은 별말이 없었다. 월령안은 집사를 불러 이 둘이 씻고 쉴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분부했다.
그녀는 외모나 차림새로 사람을 판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둘은 정말이지 너무나 초라했다!
* * *
월령안은 집사에게 수횡천과 소육자가 편히 묵게 돌봐달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노인의 뜰로 갔다.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 노인과 이야기를 해 볼 필요가 있었다.
월령안은 작은 의자를 옮겨와 노인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수횡천이 그녀를 찾아온 일과 둘 사이의 대화를 간단하게 얘기해 주었다.
말을 마친 월령안이 물었다.
“영감님, 육장봉이 수횡천을 왜 소개해 준 걸까요? 육장봉과 수횡천이 친구라면 제게 보내지 않고, 직접 도와줬을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단순한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육장봉과 마주칠 일이 많지 않아서 그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 하지만 몇 번 겪어 보면, 그놈이 친절한 놈이 아닌 건 딱 보이지 않느냐. 수횡천더러 널 찾아가라고 한 게, 널 위한 것도, 수횡천을 위한 것도 아닐 것 같구나.”
노인은 순식간에 일의 핵심을 짚어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육장봉의 의도를 모르겠어요. 제가 수횡천과 협력한다고 해서 육장봉한테 무슨 이득이 있겠어요? 아니면, 거기서 뭔가를 얻어내려는 걸까요?”
월령안은 두 손으로 턱을 받쳤다. 볼에 바람을 넣고 고개를 갸우뚱한 채 커다란 눈으로 노인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노인은 손바닥으로 월령안의 이마를 꾹 누르며 그녀의 얼굴을 치웠다.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마라. 난 절대 마음 약해지지 않을 테니.”
“전 강호의 일에 대해 잘 몰라요. 자꾸만 육장봉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노인이 그녀의 얼굴을 밀쳤지만, 월령안은 화내지 않고 그의 손을 끌어안으며 응석을 부렸다.
“영감님, 저 좀 도와주세요. 강호의 명문 문파들과 이 몇 년간 강호에서 새로 벌어진 일들을 좀 조사해 주세요. 참, 수횡천 말로는 사 년 전에 남상권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천목신교라는 걸 세웠대요. 그리고 사도의 사람들을 죄다 끌어모아 아주 고분고분하게 길들이고, 그들을 이용해서 큰돈도 벌었대요. 제 생각에는 남상권이라는 사람도 절대 만만치 않아요. 조사하실 때 중점적으로 알아봐 주실 거죠?”
월령안이 애교를 부리자, 노인이 말을 바꿨다.
“그것들을 알아봐 줄 수는 있어. 하지만 육장봉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아봐 줄 수 없단다. 육장봉 그놈은 생각이 너무 깊어. 게다가 난 그놈과 자주 마주쳐도 곤란하거든. 너도 괜히 육장봉에 대해 알아보려 하지도 마라. 자주 마주치지도 마. 알아보고 싶더라도, 절대 그놈이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된다. 들켜서 그놈이 불만이라도 품으면 척을 지게 될 거야. 그러면 너한테 아주 불리해.”
“청주에 가는 것만 아니었어도 척을 지는 것 따위는 두렵지 않았을 텐데. 하필……. 정말 성가시네요!”
월령안은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청주에서 벌어질 십 년 동안의 가주 쟁탈전은 그녀의 머리 위에 걸린 날카로운 검이자, 그녀의 두 손, 두 발을 묶은 밧줄이었다.
가주 쟁탈전이 끝나지 않는 한, 하루라도 자유롭고 편안한 일상을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십 년쯤은 금방 지나간다.”
노인은 월령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 눈앞의 것만 보지 말고 멀리 내다 보자꾸나.”
“십 년이요!”
월령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노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살며시 눈을 감았다.
말로는 쉽지만 정작 하려면 어려운 일이 있다. 모두가 다 아는 이치라도 막상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절대 많지 않았다.
* * *
월령안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노인과 함께 햇볕을 쬔 뒤, 장부를 정리하러 서재로 돌아갔다.
가게들을 조계안에게 넘기기로 했으니, 장부들을 잘 정리해 두어 약점을 잡히지 않게 해야 했다.
바쁘게 일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하인이 저녁 식사를 하라고 재촉하러 왔다.
월령안은 기지개를 켜다가 저택에 손님 두 명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더는 지체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식당으로 걸어갔다.
월씨 저택의 하인들도 눈치가 있었다. 월령안이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에야 수횡천과 소육자에게 식사하라고 전했다.
월령안은 수횡천과 소육자보다 먼저 식당에 도착했다. 그러나 바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검은 옷차림의 수횡천과 푸른 옷차림의 소육자가 앞뒤로 걸어왔다.
비단옷으로 갈아입고, 얼굴의 먼지를 씻어낸 두 사람은 마치 사람이 바뀐 듯했다. 분위기마저 달라 보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수횡천은 수염투성이여서 이목구비가 잘생겼다는 건 짐작만 했을 뿐이다. 얼굴에는 땟물이 잔뜩 묻어 출중한 외모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말끔하게 단장한 둘을 보자, 월령안의 눈앞이 훤해졌다.
수횡천은 오관이 준수하고, 늠름한 풍채를 자랑했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허리가 늘씬해,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걸음걸이에 당당하고 자유분방한 기운이 넘쳤다. 온몸에서는 편하고 믿음직한 분위기를 풍겼다.
소육자는 말간 얼굴에 눈은 샛별처럼 반짝였다. 빛나는 눈망울에서는 영특한 분위기를 풍겨 호감을 샀다.
두 사람이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정말 몰라볼 정도로 변했다.
‘이런 용모에 이런 기질이라면 정말…….’
수많은 강호 인사 중 수횡천 정도의 용모와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 일 할만 되더라도, 수횡천과의 협력이 아주 잘 풀릴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옛날 선황께서 소 승상을 마음에 들어 한 이유가 그의 늠름한 풍채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여기에서 외모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월 누님…….”
소육자는 월령안을 보자 빠른 걸음으로 뛰어갔다. 호감 가는 얼굴을 들이밀고 즐겁게 말했다.
“월 누님, 정말 감사해요. 저희를 여기에 묵게 해 주시고, 이렇게 많은 옷도 주셨네요. 제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멋진 새 옷은 처음 봐요.”
“별일 아니에요. 여기 묵는 게 불편하지는 않죠? 필요한 게 있으면 사양하지 말고 바로 말씀하세요. 설령 협력 관계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우린 친구이니까요. 친구를 접대하는 건데, 당연히 두 분이 편안한 게 중요하죠.”
월령안이 웃으며 대답했다. 수횡천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자, 그를 향해서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월 낭자, 고맙소.”
불빛 아래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는 월령안을 보자, 수횡천은 부자연스럽게 팔을 움직였다.
그가 입은 이 옷은 너무 꼭 맞았다. 조금만 크게 움직여도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수 맹주, 별말씀을요. 두 분, 자…….”
월령안은 예의 바르게 안내하는 손짓을 하며, 두 사람을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셋은 식탁 앞으로 가서 각각 주인석과 객석에 앉았다. 월령안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수 맹주, 제 사부님께선 연세가 있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신지라 두 분을 접대하실 수가 없으세요. 양해를 바랍니다.”
“괜찮소. 월 낭자께서 이렇게 예의를 차리지 않으셔도 되오.”
수횡천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두 분이 뭘 좋아하실지 몰라 제 마음대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수 맹주, 남 소협. 오늘은 대충 요기만 한다고 생각하세요. 내일 드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집사에게 알려주시면 됩니다. 집사가 준비해 드릴 겁니다.”
월령안의 식성은 담백한 쪽이었다. 오늘의 식단은 반은 채소 요리였고, 반은 푸짐한 고기 요리였다. 수횡천과 소육자의 입맛을 신경 쓴 듯한 상차림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오.”
며칠 동안 매일 찐빵과 육포 따위로 허기를 달랜 것과 너무 비교되었다. 수횡천은 월령안의 성의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차려낸 고기와 채소를 보고 대충 요기나 하라니. 그럼 우리가 평소에 먹은 건 대충보다 못하다는 건가?’
“월 누님, 너무 푸짐하게 준비하셨는데요. 맛있는 게 너무 많아서 보기만 해도 침이 고여요. 입에 막 쓸어 넣고 싶어요.”
소육자는 수횡천보다도 더 솔직했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린 진수성찬을 보자, 눈을 반짝이며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참, 누님, 절 소육자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남 소협이니 뭐니 하시면, 제가 영 적응이 안 되네요.”
“좋아요! 수 맹주, 소육자. 사양하지 마시고 얼른 드세요.”
월령안이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수횡천과 소육자도 먹기 시작했다.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은 월령안 앞의 담백한 요리 두 접시 말고는 전부 깨끗하게 비워졌다.
월령안은 식탁 위의 빈 접시들을 보았다. 처음으로 자신의 식사량과 남자의 식사량에 대해 선명하게 인식했다. 정말 어마어마한 차이였다.
이 두 사람은 그녀의 몇 배를 먹었지만, 그녀와 거의 동시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게다가 여전히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고, 배도 나오지 않았다. 식사 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월령안은 준비한 음식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이 배불리 먹지 못하다니, 이는 주인으로서 실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음식을 더 내올 수는 없었다. 그들이 너무 많이 먹는다고 눈치를 주는 것처럼 비칠지도 몰랐다.
월령안은 잠시 생각하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었다.
“아직 간식이 안 나왔어요. 수 맹주, 남…… 소육자.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러죠.”
수횡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월 낭자는 너무 과하게 접대하는군. 이렇게 많은 음식을 준비해서 겨우 다 먹었는데, 간식이 또 남아 있다니. 이러다가 체하겠는데.’
하지만 시도는 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들이니, 많이 먹어도 주먹을 조금 휘두르다 보면 배가 금방 꺼지겠지.’
수횡천은 이렇게 생각하자 표정이 점점 침착해졌다. 하지만 소육자의 기대에 부푼 표정을 보니, 이쪽은 아직 배가 덜 부른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