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협력하는 게 어떨까요
월령안의 말을 듣자, 소육자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기 시작했다.
“월 누님, 정말이에요? 정말 우리가 무림대회를 열 수 있게 돈을 주실 건가요? 갚지 않아도 되나요?”
‘하느님, 이 세상에 어쩜 이렇게 선녀 같은 누님이 있을 수가 있죠?’
“물론이죠!”
고작 몇만 냥이면 충분했다. 기부했다 치고 좋은 인연을 맺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래 봬도 수횡천은 무림지존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무술 하나만은 정말로 뛰어날 것이다.
‘이 정도 친분이면, 앞으로 수횡천이 나를 위해 목숨을 던지지는 않더라도, 의리 정도는 지키겠지.’
“너무 잘됐어요. 월 누님, 누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소육자는 너무 기뻐 깡충깡충 뛸 뻔했다.
그들이 반년 이상 골머리를 앓던 일을, 월령안은 손만 들어 해결할 수 있었다. 역시 부자답게 통이 컸다.
월령안은 이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지만, 상상 속 협객과는 다른 모습에 내심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친절하게 물었다.
“수 맹주, 무림대회를 무사히 치르려면 돈이 얼마 정도 필요하신가요?”
소육자는 잠시 기다렸지만, 수횡천이 입을 열지 않자 자신이 말을 꺼냈다.
“누님, 그냥…….”
하지만 소육자가 입을 열자마자, 수횡천이 그의 말을 잘랐다.
“우리는 돈이 필요 없소!”
“맹주!”
수횡천의 말을 듣자, 소육자는 조급해졌다.
하지만 수횡천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벌떡 일어나 월령안에게 포권을 했다.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 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지요. 월 낭자께서 우리 무림맹에게 돈 버는 방법을 알려 주시기를 부탁드리오.”
“수 맹주, 결정하셨나요?”
월령안은 일어서지 않았다. 그대로 앉아서 수횡천의 인사를 받았다.
“기회는 한 번뿐이에요. 수 맹주께서 지금 거절하시면, 앞으로 제가 이렇게 큰돈을 내놓는 일은 없을 거예요.”
“맹주!”
소육자는 서둘러 수횡천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맹주, 월 누님의 말을 못 들으셨어요? 장사를 한다면 우리는 손해를 볼 게 뻔해요. 게다가 우리한테는 장사 밑천도 없고, 시간도 없잖아요. 일단 돈을 받아서 무림대회부터 열어요.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보자고요!”
“물고기를 받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우는 게 낫다. 무림맹의 위기가 이번 무림대회만 마친다고 끝날 일이더냐. 이번 기회에 월 낭자의 도움을 받아, 무림대회도 무사히 마치고 무림맹도 유지해 나가야지. 매번 구걸하느니 자력갱생을 하는 편이 백 배 낫다.”
‘구걸’이라고 두 글자를 말하는 순간, 수횡천의 표정에 난감함이 스쳤다.
그는 출신이 고귀하고, 자질이 뛰어났다. 어렸을 때 유명한 스승을 만나 소년 시절부터 강호에 이름을 떨쳤다. 인생의 전반부에는 삶을 마음껏 즐겼다. 돈을 물 쓰듯이 썼고, 수많은 사람을 도와주었다. 그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변경에 있는 동안은 고개를 숙인 적도 허리를 굽힌 적도 많았다. 하마터면 무릎까지 꿇을 뻔했다.
하지만 아무리 수없이 부탁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람에게 부탁하기란 참 힘든 일이었다. 이번 한 번은 고개를 숙였지만, 다시는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다.
월 낭자가 그들에게 돈벌이 수단을 알려준다면, 무림맹은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로서도 무림맹을 위해 유익한 일을 한 셈이니, 고개까지 숙이고 부탁한 보람이 있으리라.
소육자는 사실 수횡천을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자 자책감이 들었다. 결국, 수횡천의 뒤에 묵묵히 가서 섰다.
‘맹주의 말씀이 맞아! 남에게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야.’
“수 맹주, 별말씀을요. 저는 수 맹주 같은 분을 좋아합니다. 강호의 호걸들도 존경하고요. 단지 무림대회를 여는 데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인걸요. 맹주께서 싫으시다면 없던 일로 하시지요.”
월령안은 입에 발린 말로 수횡천의 체면을 지켜 주었다.
구걸이라는 단어는 수횡천의 입에서라면 몰라도, 월령안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었다.
월령안은 손을 들어 수횡천에게 앉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수 맹주, 우리 이제 거래에 관해 이야기를 해 볼까요?”
“월 낭자, 내 사실대로 이야기하겠소. 나는 무술에 약간의 재능이 있기는 하나,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소.”
방금 수횡천은 당당하게 말을 꺼냈지만, 막상 거래에 관해 이야기하자 기세가 죽었다.
그는 원래 재산깨나 있는 집안의 자식이었다.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적에는 재산을 잘 관리하여 해마다 적지 않은 이윤을 얻었다. 하지만 그가 물려받자 잇달아 손해를 보았다.
그리고 무림맹이 기존에 갖고 있던 부동산도 그랬다. 수익은 별로 높지 않았지만, 무림맹이 자급자족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하나하나 팔아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경영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다. 월령안이 돈 버는 방법을 알려 주더라도 해낼 수 없을까 봐 걱정되었다.
“마침 저도 장사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월령안은 웃으며 농담처럼 말을 받았다.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살짝 빛났다.
“저한테 돈벌이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제 방법이 수 맹주 마음에 들긴 할까요?”
“그 말씀이 무슨 뜻이오?”
수횡천은 월령안의 생각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러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월령안은 얼굴의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
“수 맹주께는 자원이 있고 제게는 장사하는 수완이 있지요. 수 맹주, 우리 협력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월령안보다 더 안정적인 돈줄이 있을까?’
“협력? 어떻게 협력하자는 거요?”
수횡천은 마음이 제법 동했다.
여기 오기 전에 월령안에 대해 조사도 해 보고, 며칠 동안 미행도 했었다.
그녀는 황실에서도 욕심내는 인재였다. 월령안과 협력한다면, 그녀가 사기를 치지 않는 한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수 맹주께서 무림맹이라는 간판과 제가 필요로 하는 일손들을 내놓는 거예요. 제가 무림맹의 모든 일을 경영하는 것이죠. 수 맹주께서는 무림맹의 모든 일을 전부 제 말에 따르셔야 해요.”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월령안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구색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수횡천의 물음에도 두려움 없이, 당당하고 차분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물론 무림맹, 무림맹주와 여러 강호 협객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게요. 저는 쌍방이 합의하는 상황에서, 강호 인사들을 돈을 주고 고용해 제 일을 돕게 할 거예요. 도리에 어긋나는 짓이나, 살인 방화 등 법률을 어기는 일은 절대 시키지 않을 겁니다.”
월령안은 너무 자세한 내용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윤을 언급했다.
“이 협력은 십 년 기한으로 하죠. 제가 손해를 보든 이득을 보든, 일 년째에는 만 냥을, 이 년째에는 해에는 이만 냥을, 삼 년째에는 삼만 냥…… 이런 식으로 해서 십 년이 되는 해에는 십만 냥을 지급하고 협력을 끝낼 거예요.”
월령안이 제시한 조건은 지금의 무림맹에게는 매우 유리했다. 요구 사항도 많지 않았다. 소육자는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월령안의 말대로라면 그들은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누워서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강호 협객들에게도 일거리를 줄 수 있었다.
‘아주 좋은데?’
그러나 수횡천은 결정을 서두르지 않고 물었다.
“다른 하나는 어떤 방법이오?”
“다른 하나는 당연히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수 맹주도 힘을 보태셔야 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돈을 내고, 수 맹주는 사람과 힘을 보태는 식이지요. 얻은 이윤은 이 대 팔의 비율로 나눕니다. 물론, 맹주께서 이, 제가 팔이지요.”
월령안은 상인으로서 후할 때는 아주 후했다. 그러나 이익 배당에 관해서는 사자가 먹이 앞에서 입을 벌릴 때처럼 굴었다. 몸을 사리는 법이 전혀 없었다.
후하게 베푸는 것도 한두 번이면 끝이다. 하지만 이익 배당은 해마다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돈을 화끈하게 쓴다고 해도, 이익을 나눌 때까지 화끈하게 굴 수는 없었다.
이윤을 나누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특별히 우세를 점하지 않은 한, 그녀가 애쓴 만큼 큰 몫을 차지해야 했다.
이윤을 이 대 팔로 나누자는 월령안의 말을 듣고도, 수횡천은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그럼 우리 무림맹으로 어떤 장사를 하려는지, 먼저 여쭤봐도 되겠소?”
“수 맹주께서 지금 하시려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을 겁니다.”
월령안은 수횡천에게 숨기지 않고 시원스럽게 말했다.
“첫 번째, 돈과 시간이 여유 있으며 무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들이 기꺼이 돈을 내놓게 해야지요. 하지만 전 한두 명만 찾는 게 아니라, 온갖 방법을 이용할 거예요. 그들이 각자 조금씩 돈을 내게 해서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건지 말해 줄 수 있겠소? 월 낭자가 말해 줄 수 없다고 해도 괜찮소.”
수횡천은 장사 비법을 알려 달라는 자신의 요구가 좀 무례하다고 느껴졌지만, 그래도 입을 열었다.
그가 아는 바에 의하면, 월령안은 뛰어난 상인이었다. 그리고 상인은 아주 간사하다.
월령안은 웃으면서 너그럽게 말했다.
“말 못 할 게 뭐가 있어요? 전 수 맹주를 믿습니다.”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가 믿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다. 본인의 능력에 대해서라면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수횡천에게 자신의 계획을 전부 털어놓더라도, 그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설령 그가 남의 손을 빌린다 해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월령안은 감추지 않고 시원하게 대답했다.
“수 맹주, 곧 열리는 무림대회에 각 무림 문파만 초대하고, 대외적으로 공개는 안 하시나요?”
“우리가 여는 무림대회에서는 관람을 제한하지는 않소.”
관심이 있는 사람은 모두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림인들을 제외하면, 굳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구경하러 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차피 강호 사람들끼리 단상 위에서 이런저런 몸짓을 하는 것일 뿐, 실제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도 아니었다. 별로 볼거리가 없었다.
“하지만 무림 인사들 말고는 보러 갈 만한 사람이 없다, 이거죠?”
월령안이 물었다.
“있기는 한데, 근처 동네 사람들이나 올 뿐이오.”
수횡천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수 맹주, 이번 무림대회를 제게 맡기신다면, 강호 인사가 아닌 이들의 시선도 사로잡을 자신이 있어요. 심지어 먼 길도 마다치 않고 돈을 내면서 구경하러 오게 할 수도 있어요!”
월령안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월 낭자, 도대체…… 무엇으로 보장한다는 말씀이시오?”
수횡천은 월령안의 능력을 믿었지만, 이 말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무림에 호기심이 많은 부잣집 도련님들을 많이 찾아다녔다. 그들은 돈과 여유가 있었지만, 무림대회에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월령안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 보장한다는 말인가.
“매번 화괴(花魁 – 꽃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절세 미녀, 유명한 기녀를 가리키는 말) 낭자 대회가 왜 온 변경을 뒤흔드는지 아세요? 그 풍류가들이 왜 명기들을 추앙하는지 아시나요?”
월령안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웃으면서 되물었다.
수횡천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미인이니까?”
“아니에요! 명예와 이익 때문이죠!”
월령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상에서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건 명예와 이익뿐이에요.”
“명예와 이익이라고?”
수횡천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수 맹주께서는 소년 시절에 벌써 이름을 날리셨고, 젊은 나이에 무림지존이라 불리니 당연히 명예나 이익에 큰 관심이 없으시겠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