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골칫덩어리 처분하기
남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는 항상 월령안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챙겨 주었다. 누구도 그녀를 챙겨 준 적은 없었다.
하는 수 없었다. 그녀는 상인이었으니까.
그녀에게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는 배를 불리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이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주고, 감정을 돈독히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조계안은 월씨 저택의 주방장이 준비한 맛있는 조식을 들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한창 연두부를 먹고 있는 월령안을 보았다. 조계안의 시선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긴장이 풀렸다.
얼마간 배를 채운 조계안은 한담하듯 말했다.
“미인방에서 일어난 일은 내가 황제 폐하께 말씀드렸다. 어젯밤 나도 등요를 혼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 애가 다시 널 찾아와 괴롭히는 일은 없을 거다.
물론, 걔가 철없이 또다시 찾아와 괴롭힌다면, 너도 공주라고 봐줄 것 없다. 함께 맞서거라.”
“대인, 별말씀을요. 등요 공주님께서는 단지 물건을 사러 오셨을 뿐이에요. 저를 괴롭히지 않으셨어요.”
월령안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등요 공주가 자신을 괴롭힌 일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태후의 힘을 빌려 등요 공주에게 한 방 먹인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와 등요 공주는 평범한 주인과 손님의 관계였다. 등요 공주는 기껏해야 성가신 손님일 뿐이다.
“내 앞에서 그렇게 신중하게 굴 필요 없다.”
조계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도 등요를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그 애가 공주라고는 해도, 너도 내 사람이다. 네가 어중이떠중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한다면, 내 체면은 뭐가 되겠느냐?”
“대인께 감사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변경의 사업만 정리하면 바로 청주로 떠날거예요. 대인께서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월령안은 조계안에게 공수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나 조계안의 말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등요 공주가 아무리 말썽꾸러기라도 황실의 공주였다. 등요 공주가 시비를 걸면 반격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 선을 넘어서는 안 됐다. 그 선을 넘었다가는 황실의 체면을 무시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계안이 정말 그녀를 도와줄 수 있을까.
월령안을 계속 써야 하니, 어느 정도 봐주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용 가치가 사라진다면, 이제까지 눈감아 주었던 일들이 바로 죽을죄로 둔갑할 것이다.
“지금 처분하지 못한 사업들이 얼마나 되느냐?”
‘월령안이 이렇게 서둘러 재산을 처분하는데, 혹시 헐값에 넘기는 건 아닐까?’
일전의 제과점도 높은 가격에 팔지 못한 모양이었다. 매씨 가문만 이득을 본 셈이었다.
“가게 몇 곳만 남았어요. 곧 처분할 거예요.”
월령안은 웃으면서 얼버무렸다.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조계안이 이런 잡다한 일까지 알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음.”
조계안도 더는 묻지 않고 말했다.
“변경에서 널 괴롭히는 자가 있다면 내 이름을 대라. 육장봉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그놈을 봐줄 필요 없다.”
“네, 대인.
월령안은 적당히 대답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조계안은 선량한 사람이 아니었다. 조계안이 그녀를 위해 나서 준다면,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설령 대가를 감당할 수 있다 해도, 조계안은 그녀와 별 사이가 아니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그녀를 위해 발 벗고 나설 리는 없었다.
게다가 무슨 성가신 일이라도 생겨 조계안을 찾아가고, 의지한다고 해 보자. 그러면 조계안과 황제가 그녀를 어떻게 보겠는가.
사소한 일도 혼자 해결 못 한다면, 청주에 가서 범씨 가문과 대적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황제가 그녀를 중용할 가치가 있을지 의심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계안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겠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조계안이라는 뒷배는 아주 튼튼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만 쓸 수 있었다.
평소에는 자신만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뭐냐……. 네가 미인방을 은양당에 기부한 일 말이다. 폐하께서 아주 기뻐하시더군. 은양당은 태후마마께서 명령하여 세운 것이니, 폐하께서도 크게 개입하실 수는 없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네가 손해 보지 않도록 하라더구나. 내게 십만 냥을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 뭐, 이것도 너한테 상을 내린 셈이지.”
지금은 분위기가 적당히 좋아 보였다. 조계안은 자연스럽게 십만 냥짜리 은표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 월령안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폐하께서 제게 십만 냥을 상으로 내리셨다고요?”
월령안은 탁자 위의 작은 나무함을 보았다.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도대체 상을 내리는 거야, 아니면 돈을 내고 내 가게를 사겠다는 거야? 이건 가게를 기부했다는 공로를 내세워서 건방지게 굴지 말라고 경고하는 거겠지?’
“왜? 적어서 싫으냐?”
조계안은 탁, 소리가 나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럴 리가요! 미인방은 기껏해야 십만 냥 정도인데요. 예상 밖이라서 그랬죠.”
점포와 물건의 가격만 따지면 십만 냥은 넉넉히 잡은 셈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면 다 알았다. 미인방의 가치는 단지 점포와 물건에만 달린 게 아니었다.
미인방에서 가장 값나가는 것은 그녀가 변경에서 날린 명성과 차곡차곡 쌓아온 인맥이었다.
미인방은 고급스러움, 정교함을 고집했다. 미인방의 손님 모두 귀족이거나 부자였다. 그녀가 태후의 친정과 줄이 닿은 것도 미인방을 통해서였다.
그녀가 수중의 재산을 처리한다는 소식을 뿌리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인방을 팔지 않겠냐며 찾아왔다.
심지어 백만 냥이라는 거금을 내놓으며 미인방을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뭐가 예상 밖이란 말이냐! 너만 잘한다면 폐하께서도 널 섭섭지 않게 대하실 것이다.”
십만 냥도 내놓았고, 그럴싸한 이유도 찾아냈다. 순간 조계안은 자신감이 두둑하게 생겼다. 그러자 자세도 조금 더 거만해졌다.
‘월령안도 이제는 누구에게 기대야 할지 알았겠지? 자기에게 진짜로 잘해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겠지?’
조계안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월령안이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황궁의 방향을 향해 예를 올렸다.
“폐하, 성은이 망극합니다.”
그다음 조계안에게 질문을 던졌다.
“조 대인, 지금 제 손에 수익이 괜찮은 가게가 대여섯 곳 있습니다. 전부 은양당에 기부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따로 처분할까요?”
그녀는 황제를 본 적이 없었다. 황제의 품성도, 성격도 알지 못했다. 황제의 뜻을 도저히 알 길이 없으니, 조계안을 떠볼 수밖에 없었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미인방 때문에 나머지 가게들까지 기부할 필요는 없다.”
조계안은 황제가 월령안 수중의 가게에는 관심이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이 상금 십만 냥도 그가 들볶아서 겨우 받아낸 것이었다.
“나머지 가게들도 가격이 만만치가 않아요. 이걸 전부 은양당에 기부하면, 남들의 불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가게의 계약서를 대인께 드리겠습니다. 대인께서 처분하시는 게 어떨까요?”
가게를 기부하는 건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은 불가능했다. 장 상궁과 그 뒤에 버티고 있는 태후가 월령안을 욕심이 많고, 줄을 잡고 놓지 않는 철면피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조계안은 잠시 중얼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고작해야 가게 몇 군데니까. 정 안 되겠으면 황형에게 사라고 하면 되지.’
월령안 수중의 가게들은 전부 흑자를 내고 있었다. 사들이더라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어쩌면 황제가 기뻐할지도 몰랐다.
조계안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네가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다. 원래 가격대로 금액을 내마.”
어차피 비싸게 사더라도, 손해를 보더라도 괜찮았다. 황형의 개인 금고가 축날 뿐이니까. 당연히 그가 그러더라도 간섭할 사람도 없었다.
“대인께 감사드립니다.”
월령안은 돈을 받을 것이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 가게들은 갖고 있어 봤자 골칫거리였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손을 뗄 수 있게 되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딱히 요구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무언가를 요구해 본 적도 없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조계안은 매우 흡족해하며 자리를 떴다.
물론, 월령안도 기분이 아주 좋았다.
황제가 내린 상이 좀 의외이기는 했다. 어떤 의도에서 주었는지 확실하게 짚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월령안은 원래 크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가게를 기부하고 받은 십만 냥은 의외의 횡재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늘 돈을 좋아했다.
물론, 월령안을 가장 기쁘게 한 일은 골칫덩어리들을 처리한 일이었다. 더는 여러 세력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위무의왕 왕부(王府)에 가서 소식을 전하게. 조 대인께서 내 가게들을 마음에 들어 하셔서 모조리 원하셨다고. 그래서 팔지 못한다고 하게.”
월령안은 기분이 퍽 좋아져서 집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게를 파는 데도 요령이 필요했다. 그녀의 수중에는 가게가 제법 많았지만, 가장 가치가 나가는 곳이 바로 그 몇 군데였다.
상인이라면 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물건만 좋다면, 아무리 비싼 가격이라도 사려는 사람은 넘쳐난다.
우연히도 지금 수중에 남아 있는 몇몇 가게는 전부 사람들이 앞다투어 사려는 곳이었다.
변경에는 돈 많은 사람이 넘쳐났다. 돈과 세력을 모두 가진 사람은 더욱 넘쳐났다.
일전에 상천에게 여러 곳의 사업을 재빨리 처분하게 한 것도 소문이 날까 두려워서였다. 누구에게는 팔고, 누구에게는 팔지 않았다고 밉보일 수도 있었다.
지금은 갖고 있던 부동산을 거의 다 처분했다. 결혼 전에 산 몇몇 점포만 남아 있었다.
그 가게들은 그녀의 노후 대비를 위한 것이라 딱히 팔 계획은 없었다. 그러나 조계안이 갑자기 나타나 청주로 가라고 협박했다. 원래의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이 가게들을 대체 누구에게 팔아야 할지, 그동안 한창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참이었다.
사고 싶다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누구에게 팔든 나머지 사람들에게 밉보일 판이었다.
하지만 지금 조계안이 이 골칫덩어리들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이제는 난감해할 필요도, 미움을 받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황(黃) 사장에게도 내일 와서 장부를 대조해 보라고 전해 주게. 내 눈에 문제점이 보이지 않게, 장부를 제대로 쓰라고 다시 한번 주의를 시키게. 그렇지 않으면 체면을 생각해 주리란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해.”
이제 가게를 조계안에게 넘기게 되었다. 반드시 장부를 확실하게 정리하고 인수인계를 해야 했다.
이번 기회에 조계안에게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황제와 조계안은 그녀의 명성이 헛소문이라고 여길 것이 분명했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가게 사장들께 이해관계를 잘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아가씨의 발목을 잡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집사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자네가 처리하면 안심일세.”
월령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