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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02)화 (102/1,004)

102화 우리 먹으면서 얘기할까요

“흠흠…….”

월령안은 애써 감정을 끌어내던 중이었다. 그러나 조계안의 말을 듣자,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그녀는 당황했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았다. 책상 위에 엎드린 채 웃으며 물었다.

“조 대인, 폐하께서 무슨 상을 내리셨나요?”

그녀의 기억 속, 아버지는 그녀를 놀리기를 좋아하셨다. 매번 선물을 높게 들어 올리고 쉽게 주지 않았다.

조계안의 지금 행동은 아버지가 어린 그녀를 놀렸을 때와 똑같았다. 그녀가 기뻐하고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황제가 상을 내렸다는 핑계로 놀리는 것일 뿐이다. 또 겸사겸사 아부 떠는 소리도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조계안에게 눈을 흘기고 싶었다. 그러나 이 변덕쟁이의 평소 모습을 떠올리자,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달랠 수 있으면 달래야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그리고 황제가 주는 상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황제가 이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조계안의 말에 따르면 황제는 그녀가 미인방을 기부한 사실을 알고 있다.

황제가 이 일을 알고 있고 그래서 상을 주는 것이라면, 조계안이 황제 앞에서 그녀의 칭찬을 적잖게 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녀는 선량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은혜를 갚을 줄은 알았다.

각설하고, 그녀는 어제 등요 공주에게 크게 밉보였다. 그런 와중에 조계안의 성미를 조금이라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황실 소속인 두 사람과 동시에 척을 지는 건 그녀의 가냘픈 어깨로는 감당할 수 없는 죄였다.

그래서 조계안의 성미가 악랄하고, 그녀를 일부러 놀리는 걸 뻔히 알았지만, 최대한 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했다.

‘어쨌든 바보인 척만 하는 건데, 까짓거 하지 뭐!’

반면, 조계안은 월령안이 자신을 가식적으로 대하자, 화가 치밀었다. 누구를 때려주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책상 위에 엎드려, 반짝이는 두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달콤하게 웃는 얼굴로 묻고 있었다.

화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이렇게 수줍어하고, 달콤하고, 맹랑한 월령안을 보고 누가 화를 낼 수 있을까?

아무튼, 그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화를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흠흠…….”

월령안이 기대와 동경에 찬 눈빛으로 조계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계안은 불현듯 자신이 대단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주머니에 있는 십만 냥 은표를 떠올렸다. 또다시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황형도 정말 쪼잔하다니까!’

만약 황형이 월령안에게 고명을 준다고만 했어도, 그는 떳떳하게 월령안을 놀릴 수 있었을 것이다.

‘상을 내리는’ 일이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말을 꺼냈지만, 주는 것이라고는 고작 십만 냥이었다. 그것도 비밀리에 몰래 주는 돈이었다. 월령안더러 소문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기에도 부끄러운 금액이었다.

황형은 십만 냥으로 입막음을 하고 있었다. 월령안에게 은양당 일을 구실로 일을 벌이지 말라고 경고하는 게 분명했다.

‘이건 너무하잖아!’

조계안의 좋던 기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온몸에서 싸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눈빛도 음울하고 차가워졌다.

서재 내의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진 것만 같았다.

월령안은 책상에 엎드린 채였다. 조계안을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순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녀는 자신도 표정을 바꾸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 사람과 비교하니 자신의 표정 변화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이 인간은 천극(川劇 – 사천 지방의 연극. 등장인물의 얼굴을 재빠른 속도로 바꾸는 변검이 특히 유명하다)에서 변검(變臉) 기술이라도 배웠나?’

가면을 사이에 두고 있어, 조계안의 표정이 얼마나 어두운지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두 눈은 정말로 무서웠다.

월령안은 자신이 참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또 누구의 비위를 건드렸나?’

이 변덕쟁이 상전이 화를 내지 않게 하려고, 바보짓도 서슴없이 했다. 그러나 이 상전은 결국 화를 내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조계안 같은 변덕스러운 미치광이에게 시달리다니. 이로 보건대 오늘 하루는 일진이 사나울 모양이었다.

월령안은 얼굴의 웃음기를 거두고 조계안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는 침울하게 앉아서, 책상의 한 모서리에 시선을 고정하며 한참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꼴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월령안은 몸을 돌려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조계안을 화나게 해서 보낸 뒤, 육장봉이 찾아와 질책한 일이 떠올랐다. 불만을 꾹 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어나더니 웃는 얼굴로 물었다.

“조 대인, 이른 아침 서둘러 오셨지요. 아침 식사는 하셨나요? 음식이라도 좀 내올까요? 식사하면서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요?”

밥 한 끼로 해결 못 할 일은 없다. 그런 일이 있다면, 밥이 맛이 없거나,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못생기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그녀는 자신이 예쁘다고 자부했다. 또 큰돈을 들여 초빙해 온 주방장도 조계안을 실망하게 하지 않을 거라 자신했다.

“뭐라고?”

월령안의 말을 듣자, 조계안은 순간 멍해졌다.

‘월령안이 지금 뭐라고 했지? 지금 황제가 내린 상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었는데? 화제가 왜 갑자기 아침 식사로 넘어갔지? 월령안이 아침을 못 먹었나?’

월령안은 조계안의 신경이 다른 데로 쏠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침울한 시선이 호기심으로 바뀌자, 더 밝게 웃어 보였다.

“조 대인, 이렇게 일찍 오셨으니 아직 식사를 안 하셨겠죠. 요기할 것을 좀 가져다드릴게요. 우리 먹으면서 얘기할까요?”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함께하는 것은 원래 호감을 표하는 행위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었다.

사람은 배가 부를 때 신경이 느슨해진다. 그러면 상대하기도 쉬워진다.

그녀가 일전에 심민과 이야기할 때도 그랬다. 밥 한 끼로 두 사람의 관계를 한층 더 가까워지게 했다.

조계안이 식사하겠다고 하면, 월령안은 그의 변덕을 잠재울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황제가 내린 상에 대해서는 쉽게 넘어갈 수 있으리라.

사실 조계안이 말하는 ‘상’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생기지도, 기대되지도 않았다.

‘아무튼, 절대로 좋은 일은 아닐 거야.’

조계안은 먹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홀쭉한 배가 만져졌다. 또 월령안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보였다. 그는 코웃음을 치더니 오만하게 말했다.

“나는 서재에서는 식사하지 않는다!”

지난번 월령안의 서재에서 밥을 먹고 그녀와 사이가 틀어졌었다.

‘이번에는! 아니, 다음번에도 절대로 서재에서 식사하지 않을 거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서재에서는 절대로 식사하지 않겠다.’

서재에서는 식사하지 않는다. 이는 조계안의 타협 불가능한 원칙 중 하나였다.

“어찌 서재에서 식사를 하시게 하겠어요. 대인께서 괜찮으시다면 화청으로 갈까요?”

조계안이 입을 여는 것을 보자, 월령안은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나마 입을 열어 말을 하니 다행이었다. 아까처럼 침울하게 앉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조계안은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애써 진정시켰다. 책상 위에 올라가 있던 두 다리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막 발을 떼려고 할 때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너무 급한 티를 냈나?’

조계안은 발을 다시 거두어들이고, 월령안을 흘겨보았다.

“네가 이렇게 진심을 담아 얘기를 하니 네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구나.”

“감사합니다.”

월령안은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어제 등요 공주한테 밉보인 것을 떠올렸다. 억지로 얼굴의 미소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당분간은 조계안에게 밉보일 수 없었다.

월령안은 앞으로 나아가 조계안에게 길을 안내했다.

“조 대인, 이쪽으로 가시죠.”

“음.”

조계안은 여유롭게 월령안을 따라나섰다. 매우 오만한 모습이었다.

월령안은 아무것도 못 본 척, 앞서 걸어갔다. 서재에서 나와 하녀를 불렀다.

하녀는 갑자기 나타난 조계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개를 들어 힐끔 보았다가, 그의 차가운 시선과 마주쳤다. 놀라서 몸서리를 치더니 다급히 고개를 떨궜다.

월령안은 살그머니 앞으로 나아가 하녀와 조계안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하녀에게 분부했다.

“식사를 준비해라. 조 대인과 함께 식사할 거야.”

“예, 아가씨!”

시녀는 분부에 대답했다. 허리를 푹 숙이고, 두 손은 머리 위로 올린 채 몸을 숙여 뒷걸음질 쳐서 물러갔다. 대단히 공손한 자세였다.

조계안은 불쾌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 저택의 하녀는 참 간이 작구나. 내가 똘똘한 애들로 두어 명 보내 주마.”

‘내 집에 자기 사람을 심겠다는 뜻인가?’

월령안은 살짝 고개를 기울여 곁눈질로 조계안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가면으로 가린 조계안의 얼굴에서는 아무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월령안은 시선을 떨구고, 눈 속의 예리함을 감추었다.

“대인께 감사드립니다.”

‘사람을 심을 테면 심으라지. 어쨌든, 칠월에 청주로 갈 거잖아. 그때 누구를 데려갈지는 내 마음이지.’

조계안이 억지로 자신의 사람을 데리고 가게 해도 상관없었다. 가는 도중 무슨 일이 벌어져 하인 몇몇 죽을 수도 있다. 그것까지 그가 통제할 수는 없다.

“음, 내일…… 내가 사람을 보내겠다.”

‘월령안의 집에는 무술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군. 매번 여기 와서 서재에 반나절을 앉아 있어도 들킨 적이 없었지. 침입한 사람이 나였기에 망정이지. 나쁜 마음을 먹은 자가 들어왔으면 월령안도 크게 낭패를 봤을걸.’

그는 무술을 잘하는 하인 몇 명을 골라서 보내기로 했다. 그들이 육장봉을 막아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육장봉은 월령안에 대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편 조계안의 말에 월령안의 웃는 얼굴이 싸늘해졌다.

‘아니, 뭐가 그렇게 급해?’

그래도 고개를 숙이며 가볍게 말했다.

“그럼 대인께 감사드립니다.”

“큰일도 아닌데 뭘!”

월령안이 아무런 불평 없이 기꺼이 받아들이자, 조계안은 기분이 확 좋아졌다. 주머니의 십만 냥을 더듬어 보았다. 예전만큼 화가 나지는 않았다.

잠시 후, 조식을 들 때 분위기를 보고 월령안과 잘 말해 볼 예정이었다. 월령안이 이렇게 똑똑하니, 절대 허튼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 * *

월씨 저택은 그리 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화청에 도착했다.

하인들은 몸놀림이 아주 재빨랐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기 바쁘게 음식을 내왔다.

접시는 전부 열여덟 개였다. 간식이 여섯 가지, 반찬이 여섯 가지, 주식이 여섯 가지였다.

아침상이 다 차려졌다. 월령안은 하인들에게 물러가라고 한 뒤, 조계안에게 말했다.

“조 대인, 대인께서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조금씩 준비해 보았습니다. 차린 건 많지 않지만, 많이 드세요.”

“너는 뭘 먹고 싶으냐?”

조계안은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그는 줄곧 그 밀실에 갇혀 있었다. 음식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하루 세끼 제대로 밥을 먹을 수만 있어도 감지덕지했다.

대부분은 찐빵 한 소쿠리를 말랑할 때부터 딱딱해질 때까지 먹었다. 더운 날이면 그 찐빵에는 곰팡이가 피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 테니까.

“저는 연두부를 먹으려고요.”

월령안은 이미 아침 식사를 한 뒤였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음식을 보더니, 볼록해진 배를 만져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말을 마친 월령안이 연두부를 뜨려고 할 때였다. 조계안이 한발 빨랐다. 작은 그릇에 연두부를 떠서 그녀의 앞에 놓아주었다.

“자, 네 거다. 먹어라.”

월령안은 얼떨떨했다. 곧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조 대인.”

이번에 월령안의 미소는 한결 더 진실했다. 변덕쟁이 조 대인이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는 게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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