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101)화 (101/1,004)

101화 제게 어떤 상을 내리셨나요?

이른 아침,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가면을 쓴 남자가 내 자리에 앉아 나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월령안은 서재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문틀을 잡고 한숨 돌리고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먼저 돌아가세요. 오늘 다른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깜빡했네요.”

월령안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문 입구를 막아서서 그녀의 등 뒤에 있는 가게 사장들이 서재 안을 보지 못하게 했다.

‘조계안, 이 미친놈! 미리 언질도 없이 아침부터 제 발로 찾아오다니.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예, 아가씨.”

월령안의 부름을 받고 장부를 맞추러 온 몇몇 사장은 그 말을 듣자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누구도 더 토를 달지 않고 순순히 물러났다.

그들의 주인은 나이가 어린 여인이었지만, 수완은 아주 매서웠다.

몇 년 전, 몇몇 사람은 어린 계집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그들은 옛 주인과의 친분과 자신의 업계 명성을 앞세워, 대중 앞에서 월령안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하나같이 잘못을 저지르고 업계에서 사라졌다. 그 어느 가게의 주인들도 그들을 쓰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말에 다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감히 더 묻지 못하고 순순히 물러났다.

월령안은 서재에 서둘러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문가에 서서 그들이 멀리 가기를 기다렸다. 그들이 몸을 돌리더라도 서재 안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게 확실해진 다음에야 안으로 들어섰다.

“왜 그러느냐? 나는 남들 앞에 나서면 안 되느냐?”

조계안은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으로는 붓을 휘두르며 놀고 있었다. 온몸에서는 귀한 집 도련님 특유의 짓궂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조 대인, 농담도 참……. 대인처럼 고귀하시고, 문무에 출중하신 분이 남들 앞에 나서지 못한다니요. 그럼 저 같은 사람들은 무슨 낯짝으로 살라는 말씀이세요?”

월령안은 조계안에게 예를 올렸다. 그에게 트집을 잡을 기회를 주지 않고 먼저 말을 걸었다.

“조 대인께서는 아침부터 어쩐 일로 방문하셨는지요?”

월령안은 예의 바르게 대꾸했다. 속으로는 이러는 조계안이 아주 귀찮았다.

‘조계안은 추밀원수의 지위를 가졌는데, 그 큰 추밀원을 장관하는 사람답게 정문으로 정정당당하게 들어오면 어디 덧나나?’

매번 이렇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제멋대로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간다.

‘월씨 가문에 사람이 없다고 괴롭히는 건가? 아니면 자기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건가?’

월령안으로서는 그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용건이 없다면 널 찾아올 수 없단 말이냐?”

조계안 손에서 황모필이 빙글빙글 돌았다. 붓끝에 달린 구슬 장식품이 서로 부딪쳐 맑은 소리를 냈다.

‘이 인간, 참 한가하네!’

월령안은 그를 묵묵히 힐끔 보았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

“조 대인, 별말씀을요. 대인처럼 바쁘신 분이 용건도 없이 어찌 절 찾아오셨겠어요?”

‘왜 하나같이 주인석을 차지하고 앉는지 알 수가 없군. 다들 자기가 이 집 손님이라는 자각이 없네.’

육장봉도 그러더니, 조계안도 그랬다.

‘내가 이 사람들하고 친하지도 않은데.’

“용건이 있어 너를 찾아온 것은 맞다.”

조계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붓을 돌리는 속도가 느릿해졌다. 그는 무심하게 말했다.

“네가 은양당에 미인방을 기부한 일을 황제 폐하께서 아셨다.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더구나. 나는 성지를 받고 폐하를 대신해 상을 내리려고 왔다.”

‘상’이라는 말을 하는 조계안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황형은 그를 대단히 화나게 했다.

어젯밤, 쇠뿔도 단김에 빼려고 황형에게 말을 넣었다. 미인방을 기부한 공로가 있으니 월령안의 신분을 올려달라고 했다.

군주(郡主), 현주(縣主)처럼 높은 신분은 아니어도 고명 정도는 줄 수 있을 것이다. 일품 고명이 아니더라도 삼품, 사품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황형은 딱 잘라 거절했다. 바로 월령안의 지금 신분 때문이었다.

“월령안은 이미 일품 고명을 갖고 있다. 월령안이 예부에 반납한 고명 조서를 장봉이가 다시 가져가지 않았느냐. 그 일을 네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월령안의 일품 고명을 아직 거두지 않았는데, 짐이 또다시 고명을 내리는 건 부질없지 않으냐?”

“육장봉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겁니다. 그놈이 예부에서 고명 조서를 도로 가지고 가서 월령안의 고명을 회수하지 못하게 했지요. 월령안이 여전히 일품 장군 부인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황형, 월령안과 육장봉이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건 우리 둘 다 뻔히 알고 있잖습니까. 월령안도 이제는 일품 장군 부인이 아닙니다.”

조계안이 ‘일품 장군 부인’ 몇 자를 특별히 강조하듯 말했다. 황제는 그 말에 주목했다.

그렇게 부탁하던 조계안은 황제의 관찰하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서둘러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황형, 이러는 게 어떨까요? 먼저 월령안의 일품 장군 부인이라는 고명을 회수하고, 다시 삼품 숙인(淑人) 같은 고명을 내리는 겁니다. 월령안이 곧 청주에 가지 않습니까. 그래도 제 사람인데 밖에서 괴롭힘이라도 당하면 제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월령안에게 봉호(封號)를 내리면, 나중에 춘일연에 참가하더라도 귀족 여인들 앞에서 기죽을 필요도, 손해를 볼 리도 없겠죠.”

조계안은 월령안을 위해 계속해서 상을 내려야 하는 이유를 늘어 놓았다. 그러나 황제는 등요 공주가 미인방에서 월령안에게 망신을 주려다가 되레 망신을 당한 일 때문에, 월령안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가 뭐라고 하던 황제는 월령안에게 봉호를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조계안의 등쌀에 못 이겨, 십만 냥짜리 은표를 던져 주었다.

“월령안은 고작 가게 하나를 기부했을 뿐이다. 그까짓 가게 하나 가지고 짐이 봉호까지 내리라고? 짐의 성지가 거리에 널린 종잇장으로 보이느냐? 네 멋대로 낙서해도 되는 종이 쪼가리인 줄 아느냐?”

“황형…….”

조계안은 낮은 목소리로 부탁했다.

황제는 몸서리를 쳤다. 조계안의 말을 다급히 잘라버렸다.

“됐다. 짐도 월령안이 손해를 보지 않게 해 주마. 여기 십만 냥을 월령안에게 가져다주거라. 은양당에 가게를 기부했다는 미명도 여전히 누릴 수 있겠지. 짐도 월령안에게 상금을 주었다는 말을 외부에 흘리지 않을 거다.”

조계안은 대단히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황제가 이렇게까지 말을 하니, 뾰족한 수가 없었다.

월령안이 남들 앞에서 등요의 체면을 깎은 것은 황실의 체면을 깎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황제는 월령안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게다가 사적으로 상금까지 주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자비로운 처사였다.

조계안도 그의 황형이 현재 황제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했다.

그래서 조계안은 내키지 않더라도 돈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더 떠들다가는 이 돈마저 없어질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월령안에 대한 황제의 불만만 더 커질 것 같았다. 결국, 일을 더 끌어 봤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적당한 선에서 끝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조계안은 아침부터 돈을 들고 월령안을 찾아왔다.

‘어찌 되었건, 십만 냥의 상금은 없는 것보다 나으니까.’

그리고 미인방을 은양당에 넘겨준 뒤, 월령안은 명예를 누리고 있었다.

모양새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계안 딴에는 월령안에게 약간의 이득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월령안이 그의 말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상을 내려요?”

조계안을 바라보는 월령안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조 대인, 제가 은양당에 가게를 기부했다고 황제 폐하께서 상을 내리시는 게 확실한가요?”

‘내가 은양당에 가게를 기부한 일로 상을 내린다면, 태후께서 내리시는 게 맞을 것 같은데?

됐다. 폐하께서 할 일이 없어서 태후마마를 건너뛰고 은양당 일에 손을 대셨나 보군. 하지만 폐하께서 상을 내리신다면 예부에서 사람을 파견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

예부에서 사람이 오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황제가 기부 공로가 있는 백성에게 상을 내린다면 떠들썩하게 알려야 했다. 그녀가 가게를 은양당에 기부함으로써 황제에게 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려, 더 많은 사람이 은양당에 돈과 물건을 기부하도록 자극해야 했다.

그런 목적이 아니라면, 황제가 상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조계안은 홀로 이른 아침에, 몰래 그녀의 서재에 앉아서 황제를 대신해 상을 내리러 왔다고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그녀가 상인 집안 출신이고, 학식이 짧아 황실의 일 처리 과정을 모른다고 무시하는 것인가. 그래 봬도 삼 년이나 장군 부인의 자리를 차지했던 그녀였다.

‘나를 놀리더라도 좀 더 머리를 쓰고, 정성을 쏟을 순 없었을까?’

허점투성이에다, 이치에 맞지도 않는 소리를 지껄인다. 월령안은 자신의 수준을 낮추면서까지 기뻐하는 척 연기할 수가 없었다.

조계안이 말하는 대로 ‘상을 내리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이렇게 ‘슬금슬금’ 나타났을 리가 없으니까.

“왜? 믿어지지가 않느냐?”

조계안은 월령안이 전혀 기뻐하는 기색이 없자, 순간 눈빛이 음울해졌다.

황형의 이번 일 처리는 엉망이었다. 월령안도 그렇겠지만, 그가 봐도 이렇게 ‘상을 내리는’ 것은 장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사실상 이 십만 냥은 황제가 월령안에게 내린 상이 맞았다. 황제도 그렇게 말을 했다.

“조 대인, 별말씀을요. 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어요. 황제 폐하께서 제게 상을 내리셨다니 너무 기뻐 순간 넋을 잃었네요. 조 대인, 양해해 주세요.”

월령안은 일어서서 공수했다. 아주 기쁘다는 자세를 보이려 노력하며 생기발랄하게 물었다.

“폐하께서 저한테 어떤 상을 내리셨나요?”

그녀의 노력은 하늘만 알리라. 바보처럼 상을 바라는 모습을 연기하려니, 정말 힘들었다.

조계안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아주 기대되나 보군?”

‘월령안도 참, 연기할 거면 좀 그럴듯하게 하면 안 되나?’

이 바보처럼 좋아하는 꼴이라니. 어디를 봐도 영특하고 침착하던 월령안 같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가식이 티가 나서, 조계안으로서도 장단을 맞추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장님도 아니고…….’

월령안은 애써 웃음을 지었다.

“폐하께서 상을 내리셨다는데, 당연히 기대가 되죠.”

‘힘들다. 언제까지 연기해야 하는 걸까?’

아주 기쁜 척을 하려니 체력 소모가 대단했다. 더는 웃는 표정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조 대인도 장단을 좀 맞춰 줘야지. 이 허술하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연기를 빨리 끝내게 해 줘야 할 거 아냐?’

“넌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것 같군!”

월령안이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니 정말 못생겨 보였다. 침이 흘러내릴까 걱정도 안 되는 모양이었다.

‘월령안 이 바보는 이렇게 억지로 웃는 게 얼마나 못나 보이는지 알기는 할까?’

월령안이 이렇게 멍청하게 굴 줄 알았으면 거울이라도 가져올 걸 했다. 억지로 웃는 모습이 얼마나 못생겼는지 보여주게 말이다.

“전 정말 너무 기대되고, 너무 기쁘고, 너무 감동했어요! 조 대인, 폐하께서 제게 어떤 상을 내리셨나요?”

월령안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선물을 가져왔을 때의 기분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그때는 너무 기뻐 폴짝폴짝 뛰었다. 모두에게 아버지가 선물을 가져왔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월령안은 자신의 늙어 빠진 팔다리를 보며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뛰어오를 수가 없었다. 그러니 흥분하고 기쁜 모습을 애써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조계안은 월령안을 힐끔 보고 손을 내밀어 눈을 가렸다.

“됐다, 웃지 마라. 내 눈이 못 봐주겠다고 하는구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