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99)화 (99/1,004)

99화 조계안의 교육

등요 공주는 황제가 조계안을 질책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황제가 자기편을 든다고 여겼다. 고개를 들어 벌겋게 부어오른 뺨을 드러내 보였다.

“오라버니, 제 얼굴 좀 보세요……. 황형이 생판 남인 월령안 때문에 절 때렸어요. 흑흑흑, 제 억울함 좀 풀어주세요. 복수 좀 해 주세요.”

“짐이 어떻게 해 주면 될까?”

황제는 등요 공주가 질질 짜며 하소연하는 소리를 듣기 귀찮았다. 하지만 지금은 등요를 달래서 그 입을 다물게 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일을 작게 만들어 태후 앞에까지 가지 못하게 했다.

“황형이 절 때린 건 월령안 때문이에요. 오라버니……. 오라버니가 성지를 내려 주세요. 월령안이 제게 사과하면 오늘 저녁 이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

등요 공주는 내심 조계안이 고개를 수그려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황제가 자신과 조계안 중 조계안을 편애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조계안을 괴롭히면, 황제는 절대로 그녀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반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월령안에게 벌을 내림으로써 그녀가 잠잠해진다면 황제는 기꺼이 동의하리라.

“알았다. 그럼…….”

황제가 입을 여는 순간, 조계안이 말을 끊었다.

“황형! 이건 저와 등요의 일입니다. 다른 사람은 끌어들이지 마시지요!”

조계안의 두 눈은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산산이 조각난 도침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

“오늘 밤, 등요를 때린 거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등요더러 무릎을 꿇고…… 바닥의 조각을 하나하나 다 줍게 할 겁니다!”

등요가 월령안을 모욕한 대로, 그가 월령안을 대신해 그대로 돌려줄 참이었다.

“오라버니, 보세요……. 오라버니 앞에서도 황형이 저를 괴롭히잖아요. 오라버니가 때마침 왔으니 망정이지, 한발이라도 늦었으면 저는 벌써 시체가 되었을 거예요.”

등요 공주는 조계안이 월령안의 복수를 하느라, 일부러 자기를 괴롭히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계안아, 그만해라!”

황제는 머리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조계안에게 먼저 자리를 뜨라고 슬그머니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조계안은 황제의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대신 경대(鏡臺) 앞의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황형, 미리 말해 두겠습니다. 만약 등요가 무릎을 꿇고 얌전하게 깨진 조각을 줍는다면, 모비(母妃)를 생각해서라도 이 정도로 물러나지요. 만약 날 밝기 전까지 깨진 조각을 줍지 않으면, 흥……. 적공주(嫡公主)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줄을 섰어요. 제게 여동생 하나가 모자라겠습니까.”

‘동복 누이동생은 무슨.’

그의 모비가 낳은 자식 중, 살아남은 건 자신과 황형 둘뿐이었다.

등요의 생모는 황제의 침대에 기어오른 궁녀에 불과했다. 그리고 등요를 낳으면서 난산으로 죽었다.

그의 모비와 그 궁녀는 거의 비슷할 때 해산했다. 다만 그의 어머니는 몸이 약해 죽은 아이를 낳고,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해 혼절하고 말았다.

그때, 누군가 손을 써 등요를 모비의 침전에 데려다 놓아, 그들의 친누이를 대체하도록 했다.

그와 황형이 돌아왔을 때, 출산 소식은 이미 공포되었다. 그들의 부황도 모비가 딸을 순산한 줄로만 알았다. 모비도 자신이 죽은 아이를 낳은 것을 잊기라도 한 듯, 등요를 자신의 친자식으로 여겼다.

모든 일이 끝난 뒤라, 그와 황형도 바꿀 힘이 없었다.

그리고 어쨌든 공주였으니 나이가 되면 혼수를 주어 시집보내면 될 일이었다. 두 사람도 그런 것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머니가 기뻐하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등요가 이렇게까지 자만해질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입을 열면 황제의 동복 누이동생이라고 으스댔다. 아마도 자신의 출신을 알고 켕긴 모양이었다.

지금도 조계안의 말을 듣자, 등요 공주는 제 발이 저린 모양이었다. 얼굴이 하얘지며 다시금 황제 품에 안겼다.

“오라버니, 보세요……. 황형이 저를 괴롭혀요!”

“계안아, 등요는 아직 어리잖니. 어린애와 다투지 마라. 짐이 등요한테 네게 사과하라고 하마. 그래도 안 되겠느냐?”

황제는 가능한 한 둘을 화해시켜 일을 무마하려 했다.

안타깝게도 조계안은 황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다리를 꼬고 앉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제가 한 말은 한마디도 바꾸지 않을 겁니다!”

“오라버니, 보세요. 황형이 이렇게 저를 모욕하잖아요. 앞으로 사람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어요.”

등요 공주는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뺨을 맞은 건 분명히 나잖아. 오라버니가 황형에게 질책 한마디 하지 않은 것까지도 그렇다 쳐. 그런데 왜 나더러 사과하라는 거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네게 그럴 낯이 없는 걸 너도 알고 있구나?”

조계안이 경멸하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자기가 신분을 등에 업고 월령안을 괴롭힐 때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만약 월령안이 수완이 부족하여, 그녀의 핍박에 못 이겨 많은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해 보자. 월령안이 무슨 낯으로 변경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있겠는가.

‘자신이 싫어하는 건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아야 하는 법. 등요가 이 도리를 모르니 내가 가르칠 수밖에!’

“오라버니, 보세요. 월령안 때문이잖아요. 황형이 절 때린 거로도 모자라서 이렇게까지 괴롭혀요.”

등요 공주는 이럴 때는 월령안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제가 월령안을 싫어하게 해야만 자신이 쏙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그녀는 체면 같은 건 던져버리고 황제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울었다.

“낮에 월령안에게 트집을 잡으려고 미인방에 찾아갔던 건 인정해요. 그건 제 잘못이에요. 하지만 저는 정말 월령안을 괴롭히지 않았어요. 그 가게에서 몇만 냥 어치나 되는 옷감을 샀는걸요. 분명 월령안의 물건을 팔아주러 갔다고요. 저는 돈을 써서 물건을 샀단 말이에요. 월령안은 가게를 열고 장사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녀를 달래야 하나요? 기분 좀 상하게 하는 것도 안 된다고요?”

‘월령안, 네까짓 게 뭔데! 내가 월령안 때문에 맞은 값은 백 배, 천 배로 되돌려 받을 거야. 월령안이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황제는 등요가 월령안을 거듭 입에 올리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등요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리고 침대에 앉히고 물었다.

“계안아,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아랫사람들이 ‘조왕이 크게 노하여 서전으로 등요 공주를 찾아갔다’라고 하는 말만 듣고, 서둘러 온 참이었다.

황제가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일촉즉발의 형국이었다. 아무도 사건의 자초지종을 말해 주지 않았다. 얼핏 듣기로는 월령안과 관계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다.

지금 등요의 말을 들어 보니, 이 사건은 순전히 월령안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아무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등요가 꼴도 보기 싫어 그랬습니다! 왜요? 제가 이깟 공주 하나를 때리는 데 이유가 필요합니까?”

조계안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싸늘하게 물었다.

“분명 월령안 때문이잖아요!”

등요 공주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입 다물어!”

조계안이 차갑게 쏘아보았다. 등요 공주는 깜짝 놀라 흠칫했다.

“오라버니, 보세요. 황형도 찔리는 게 있는 거죠! 분명 월령안 대신 앙갚음하느라 절 괴롭히는 거예요. 그러고는 제가 꼴도 보기 싫어서 그랬다고 하잖아요!”

“알았다! 등요야, 너도 그만해라.”

황제가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꾸짖었다. 시끄럽게 떠들어 대니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황제는 아랫사람에게 눈짓했다.

“의자를 가져오너라!”

“황제 오라버니……!”

등요 공주는 가엽게 황제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계안은 오만하게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변명할 생각조차 전혀 없어 보였다.

황제는 골치가 아파 이마를 감싸 쥐었다.

‘하나같이 애물단지들 같으니라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장봉이만 내 속을 썩이지 않네. 그 녀석이 내 친동생이 아니라 아쉽구나!’

황제의 측근 내관이 때맞춰 의자를 가져왔다.

“폐하!”

“됐다. 모두 물러가 침궁 밖을 지켜라.”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보는 눈이 하나라도 적어야 나중에 입단속이 쉬울 것이다.

“네, 폐하!”

내관은 나가기 전에 조계안을 몰래 살펴보았다. 조계안의 건방진 모습을 보자, 내관은 저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며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전하께서는 손해를 보지 않으시겠군!’

황제는 털썩 자리에 앉아, 조계안과 등요 공주를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계안아, 말해 보거라……. 왜 소란을 피우는 거냐? 도대체 뭘 어쩔 셈이냐?”

“등요에게 바닥에 꿇어앉아, 깨진 조각을 말끔히 주우라고 하세요. 제가 보고 기분이 풀리면 한 번 봐주지요.”

조계안은 자신의 요구를 재차 말했다. 그러고는 팔짱을 끼고서 거만하게 얼굴을 돌려 황제를 외면했다. 거절도, 협상도 거부한다는 분명한 표시였다.

황제도 조계안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등요 공주를 바라보았다.

“등요야, 넌?”

“오라버니, 제 얼굴을 좀 보세요……!”

등요 공주는 조계안에게 맞아서 붉게 부어오른 얼굴을 내보이며 억울해서 말했다.

“황형이 남에게 속아서 이러는 거 알아요. 그러니까 화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유도 없이 맞을 수는 없잖아요. 월령안더러 제게 사과하라고 해 주세요.”

“그래서, 이 사달이 난 이유가 월령안 때문이냐?”

황제가 다시 조계안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아닙니다!”

조계안이 이번에는 황제의 물음에 대답했다. 등요를 힐끗 보더니 악의에 가득 차서 말했다.

“황형, 잘못 짚었습니다. 이 사달이 난 건 월령안이 아니라, 육장봉 때문입니다.”

“어찌 또 장봉이까지 엮였단 말이냐?”

황제는 머리가 쪼개질 것만 같았다. 아직 무엇 하나 확인한 게 없는데 또 다른 인물이 튀어나왔다.

“장봉 오라버니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

등요 공주가 약이 올라 말했다.

“황형, 월령안을 감싸려고 장봉 오라버니를 끌어들이면 안 되죠. 장봉 오라버니와 월령안은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조계안은 등요 공주에게 경멸의 눈길을 보내고서야 입을 열었다.

“육장봉의 호위병 육이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만약 제가 등요를 제대로 타이르지 못하면, 다음번에는 장봉이가 제 체면을 보지 않고 직접 가르칠 거라고 전하라고 했답니다.”

“말도 안 돼!”

등요 공주는 미친 듯이 새된 소리를 질러 댔다.

“장봉 오라버니가 어떻게 그 비천한 계집 때문에……!”

철썩!

조계안이 벌떡 일어서더니 또다시 등요 공주의 따귀를 후려쳤다.

“한 번만 더 월령안을 욕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 그때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다.”

조계안은 뺨 두 대를 때리면서도 겨우 일 할 정도의 힘만 들였을 뿐이다. 등요 공주의 얼굴에 자국만을 남길 정도로, 통증은 느끼지만 정말로 다치지는 않을 정도였다.

“오라버니……!”

등요 공주는 얼굴을 감싸 쥐고 눈물을 비 오듯이 흘렸다.

얼굴의 통증보다도 체면을 구긴 게 훨씬 아팠다. 조계안이 뺨을 두 대나 때린 것은 그녀의 체면을 완전히 짓밟아 버린 것이었다.

‘얼굴에 손자국이 두 개나 남았는데, 며칠 동안 사람들을 어떻게 보라고? 후궁의 그 미천한 계집들이 알면 나를 얼마나 비웃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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