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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91)화 (91/1,004)

91화 미인방의 입장료

“나는……!”

등요 공주는 혀끝까지 밀려왔던 말을 겨우 삼켰다.

월령안에게 행패를 부리려고 찾아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장봉 오라버니에게서 떨어지라고 경고할 수도 없었다.

‘월령안, 내가 모를 줄 알아. 이 음험하고 비열한 계집이 장봉 오라버니에게 버림받은 주제에 온갖 구실을 만들어 장봉 오라버니에게 매달리고 있잖아! 심지어 줄을 대어 예부에서 거둬간 고명 조서까지 도로 가져갔어. 이혼장을 받고 육씨 저택에서 쫓겨난 주제에, 암암리에 온갖 수를 써 장봉 오라버니와 엮이려 하다니. 정말 역겨워.’

등요 공주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사적으로 몰래 알아낸 것이라 입 밖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육장봉을 좋아한다는 사실조차도 말할 수 없었다. 육장봉이 알면, 더는 그녀를 만나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주 마마, 미인방에 무슨 일로 오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공주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보자, 월령안은 그녀가 찾아온 이유를 말하지 못할 것을 알아챘다.

귀족 출신 여인들은 일을 대놓고 하는 법이 없었다. 사람을 손보더라도 에둘러 할 뿐,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등요 공주는 한참을 궁리해도 합리적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월령안이 캐묻자 노기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내가 미인방에 와서 뭐 하든, 네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나를 봤으면 무릎을 꿇어야 할 게 아니냐?”

“공주 마마, 여긴 미인방입니다.”

월령안도 얼굴의 미소를 거두었다.

아직 출가하지 않은, 실권도 없는 공주까지 트집을 잡으러 찾아왔다.

‘등요 공주는 자기가 육장봉인 줄 아나. 변경에서 제멋대로 설치고 다니게.’

“그래서?”

등요 공주가 거만하게 되물었다.

“미인방은 장사하는 곳입니다. 공주 마마께서 물건을 사지 않으시면, 저희 미인방에서는 접대할 수 없습니다.”

‘장사하면서 수모를 당하는 건 예삿일이다. 하지만 나에게 모욕을 주려면, 돈부터 쓰셔야지?

한 푼도 쓰지 않고 나한테 모욕을 주려 하다니. 게다가 나더러 가만히 당하기만 하라고? 등요 공주의 낯가죽이 어지간히 두꺼운 게 아니로군!’

“네가 지금…… 날 쫓아내는 거냐?”

등요 공주는 기가 막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까지 황제를 제외하고, 자신에게 나가라고 말했던 사람은 없었다. 감히 쫓아냈던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월령안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가?’

“동생, 미쳤어? 네가 어떤 신분이고, 공주 마마가 또 어떤 분이신데. 감히 공주 마마께…….”

소함연은 말하려다 멈추었다. 몹시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웃음꽃이 만개했다.

소함연은 월령안이 자존심이 드세어 잘 굽히지 못한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온갖 수작을 부려 등요 공주에게 월령안을 혼내 주자며 바람을 넣었다.

과연 월령안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월령안은 여전히 소함연의 말에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발 물러서서 가게 안쪽을 가리켰다.

“미인방은 저의 사유 재산입니다. 이 가게는 물론…….”

그녀는 다시 바깥의 빈 땅을 가리켰다.

“바깥 저 땅까지 포함하여 모두 제가 산 겁니다. 땅문서도 있고, 관아에 등록도 했습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등요 공주가 월령안의 잘못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녀도 고분고분하게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트집을 잡는다면, 호락호락 당할 생각은 없었다.

“무슨 뜻이냐? 이렇게 문을 열어놓은 게 장사하겠다는 뜻이 아니더냐? 네 말대로라면 이곳은…… 내가 오지 못할 곳이구나!”

등요 공주는 황궁 밖에서는 체통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당장 월령안의 따귀를 쳤으리라.

‘이게 체면을 봐줬더니 기어오르네!’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리고 미인방의 규칙을 아직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만?”

월령안은 놀랍기도 하고 이해되지도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인방에 무슨 규칙이 있다고?”

등요 공주는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나 황궁 밖에 나오는 공주가 무엇을 알겠는가.

이게 바로 월령안이 등요 공주를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등요 공주는 실권이 없었다. 황궁 밖으로 외출하기도 힘들었다. 그녀의 위엄은 황궁 안에서만 떨칠 수 있었다. 게다가 공주의 외가도 아무 힘이 없었다.

궁에는 태후가 있다. 그러나 태후는 황제와 등요 공주의 생모가 아니었다.

태후가 있으니, 변경에서 가장 힘 있는 외척은 당연히 태후의 친정이었다. 게다가 황제는 효성스럽고 도리를 따지는 사람이었다. 등요 공주의 외가는 감히 나서지를 못했다.

“매달 초닷새는 미인방에서 신상품을 출시하는 날입니다. 이날은 천 냥 이상을 쓰는 귀빈만이 미인방에 들어올 자격이 있습니다. 만약 귀빈이 사람을 거느리고 오면, 하인이라 해도 비용을 받습니다. 한 사람당 오백 냥을 더 쓰셔야 사람을 데리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주 마마께서는…….”

월령안은 소함연과 공주가 데리고 온 궁녀 열여섯 명을 가리키며 친절하게 웃었다.

‘후후, 남에게 돈을 뜯어낼 때마다,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단 말이야. 이걸 어쩐담?’

“너……!”

등요 공주는 화가 나 말했다.

“날 협박하는 게냐! 그렇게 많은 돈을 써야 이 잘난 가게에 들어올 수 있다니, 그러면 누가 이따위 허름한 가게에서 옷을 사겠느냐?”

‘저 말을 어떻게 믿어! 분명 월령안이 나를 속이는 걸 거야!’

“믿지 못하시겠거든 뒤에 서 계신 아가씨들께 확인해 보십시오. 미인방은 변경에서 장사한 지 육 년이나 되었습니다. 이 규칙은 개업 첫날에 세워진 이래 바뀐 적이 없습니다.”

월령안은 성실하게 대답했다.

애초 개업했을 때, 이 규칙 때문에 비웃음을 적잖게 당했다. 그리고 거의 반년간 손해만 보았다. 그러나 반년을 버텼더니, 궁중 연회를 계기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변경 귀족 여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끌게 되었다.

미인방은 곧 아름다움, 대범함, 고품격의 대명사가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미인방에서 몇천 냥을 들여 옷이나 옷감을 사는 사람들이 절대 평범한 집안일 리 없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달 신품을 출시하는 날에 미인방에 오는 것 자체가 귀족 여성들끼리 비교하고 겨루는 행사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는 매달 초닷새에 미인방에 나타날 자격이 없는 사람은 사교계에 얼굴을 내밀지도 못했다.

“공주 마마……!”

소함연이 등요 공주의 옷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삼 년 동안 변경에 있지 않았지만, 미인방의 규칙은 알고 있었다. 다만 깜빡 잊었을 뿐이다. 그리고 월령안이 설마 등요 공주를 가게에 들이지 않을 배짱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 일찍 알려 주지 않았느냐?”

소함연의 반응을 본 등요 공주가 화를 참지 못했다.

‘일부러 나한테 망신 주려고 이런 거 아냐?’

“공주 마마, 저, 전 생각하지 못했어요…….”

소함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월령안을 힐끔거리고는 억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너……!”

등요 공주는 화가 났으나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소함연을 욕할 수도 없었다. 다만 눈을 부라리며 ‘두고 보자’라는 의미가 담긴 눈빛을 보냈을 뿐이다.

“월령안, 그러니까…… 나도 저들과 똑같이 해야 한다는 뜻이구나! 돈을 쓸 만큼 쓰지 않으면 미인방에 들어서지도 못한다?”

등요 공주는 뒤쪽 아가씨들을 가리키며 약이 바싹 올라 말했다.

“미인방에는 미인방만의 규칙이 있습니다. 다만 공주 마마는 신분이 남다른 만큼, 들어가시겠다고 하면, 제가 대신하여 돈을 내 드리겠습니다. 미인방에 오시는 분들은 모두 지체 높은 분들인데, 그깟 천 냥이 없겠습니까.”

월령안은 그까짓 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호기롭게 말했다.

등요 공주는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그까짓 천 냥 가지고! 누가 대신 내라더냐. 취류(翠柳), 돈을 주어라!”

“네, 공주 마마!”

등요 공주를 가까이서 시중드는 나이 많은 궁녀가 앞에 나서서 전대를 꺼내 풀려 했다. 이때 월령안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공주 마마와 소 낭자는 이천 냥, 그 외 궁녀 열여섯 분은 팔천 냥이로군요. 도합 만 냥입니다.”

“뭐라고? 만 냥? 차라리 강도질하지 그러느냐!”

등요 공주는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가 어디에서 만 냥이 나겠는가. 공주라도 황궁 안에서나 좋은 옷에, 좋은 음식을 누릴 뿐이다. 사실상 수중에는 돈이 없었다.

어머니도 없었고, 황제가 오라버니라고는 해도 의식주나 오락거리만 제공해 주었다. 분례(分例 – 월마다 지급되는 돈)를 제외하고는 단 한 푼도 준 적이 없었다. 게다가 황궁에서는 돈을 쓸 일도 없었다.

“공주 마마, 미인방이 변경에서 영업한 지 육 년이나 되었습니다. 귀빈도 적지 않습니다만. 나가서 물어보십시오. 미인방은 줄곧 상도덕을 지켜왔습니다. 강도질한 적도 없고, 강매하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가격대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사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손님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월령안은 등요 공주의 체면을 생각해서 ‘비싸다고 생각하시면’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월령안은 등요 공주 곁에 서 있는 소함연을 힐끔 보고 웃으며 말했다.

“물론, 공주 마마께서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하시면 소 낭자를 하인인 셈 쳐서 계산해도 됩니다. 들어가서 앉을 자리가 없을 뿐이니까요.

이렇게 되면 오백 냥이 줄어 모두 구천오백 냥입니다. 공주 마마시니까 우수리는 떼고, 구천 냥으로 하지요.”

그녀는 등요 공주가 한꺼번에 구천 냥짜리 은표를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월령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벼락부자 집안의 멍청한 아들도 아니고, 누가 쓸데없이 만 냥 은표를 들고 다니겠는가.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도 아니고, 누가 와서 빼앗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월령안이 ‘아쉬워하며’ 구천 냥을 부르자, 등요 공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두 눈으로 불을 뿜어낼 것처럼 월령안을 쏘아보기만 했다.

‘월령안, 이게 일부러 이러는 거지!’

궁녀도 전대를 풀려던 동작을 멈추었다. 그대로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등요 공주의 등 뒤에 서 있던 아가씨들은 공주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적막이 흐르는 분위기를 보니, 어떻게 된 영문인지 짐작이 갔다.

몇몇은 공주가 뒤돌아보지 못하는 틈을 타 눈을 찡긋거리며 고소해했다.

공주는 방금 미인방에서 파는 물건이 모두 싸구려라고 했다. 그런데 당당하신 공주 마마께서 그깟 싸구려도 못 사면서, 무슨 낯으로 그녀들에게 품위가 없다고 한단 말인가.

“동생, 천 냥은…… 내가 낼 수 있어. 우수리는 떼어 주지 않아도 돼.”

소함연은 월령안이 자신을 하인 취급하는 것을 듣자, 화가 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래서 등요 공주의 난감해하는 표정을 미처 보지 못했다.

‘월령안, 이게 누구를 우습게 보는 거야? 그깟 천 냥? 나도 얼마든지 낼 수 있어!’

“그럼 소 낭자, 천 냥 감사히 받을게요.”

월령안은 조금도 꺼리지 않고, 소함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돈만은 꺼려지지 않았다.

“마침 돈을 몸에 지니지 않았어. 나중에 하인을 통해 보낼게.”

소함연은 당장 천 냥을, 그것도 은 덩어리로 월령안의 기고만장한 얼굴에 모조리 뿌려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한 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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