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87)화 (87/1,004)

87화 교훈의 가격

순간, 조계안의 기분이 크게 좋아졌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흥분하며 말했다.

“하지만 육 대장군이 언짢았다면 내 집을 부숴도 좋네. 마음껏 부수게. 내 집 지붕을 뜯어가더라도 화내지 않을 거라고 보장하지.”

육장봉은 멍청이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말없이 바라보았다. 조계안은 전혀 개의치 않고 육장봉의 앞으로 걸어가 호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육 대장군, 내가 도와줄까? 이 난각의 지붕부터 뜯어내면 어떨까? 내 자랑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집을 망가뜨리는 재주라면 이 몸이 천하제일일세!”

“좋습니다.”

조계안의 말도 안 되는 미치광이 같은 소리에도 육장봉은 화내지 않고 대꾸했다. 조계안이 원래부터 이런 놈인 걸 몰랐던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황제는 도저히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이 둘은 그의 앞에서 그의 난각을 뜯느니 마느니, 황궁을 뜯느니 마느니 하며 노닥거리고 있었다. 황제인 자신은 숫제 죽은 사람 취급이었다.

“너희 둘 다 썩 그만두지 못할까! 모두 앉거라!”

황제가 화를 내는 일은 극히 드물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났다. 매섭게 조계안을 노려보고, 또 육장봉에게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장봉아, 이 돈은 짐이 배상하겠다! 됐느냐?”

이 둘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육장봉과 조계안이라면 정말로 황궁을 뜯고도 남을 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둘이 황궁을 부수면, 결국 손해 보는 사람은 황제인 자신이었다.

‘이 둘은 정녕 짐의 체면을 좀 생각해 줄 수 없단 말인가?’

황제인 그로서는 체면이 아주 중요했다.

조계안이 장군부에서 행패를 부린 통에 망가진 물건값이 무려 십이만 냥에 달했다. 그에 비하면 사람에게 드는 치료비는 새 발의 피였다.

그래도 육장봉은 월령안이 예전에 작성했던 명세서를 참고해, 집사더러 다친 사람의 평생 의식주 비용과 부모, 처자식, 손자의 부양비까지 모조리 계산하게 했다.

대략 계산해 보니, 이것도 삼만여 냥에 달했다. 총 배상액은 십오만삼천사백여 냥이나 되었다.

황제가 배상하겠다는 소리에 육장봉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폐하께서 조왕 대신 배상하신다니, 우수리는 떼어 드리지요. 십오만 냥만 주십시오.”

황제는 깜짝 놀랐다.

“십오만 냥? 그렇게나 많이?”

천하를 가진 남자에게 십오만 냥이 아주 많은 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적은 돈도 아니었다. 이 돈을 백성들의 삶을 위해 쓴다면, 눈도 깜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육장봉은 자신의 아우 조왕이 몽둥이 두어 번 휘두른 값이 십오만 냥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건 좀 많았다.

설령 천하에서 제일가는 부자라 해도, 물어내려면 속 쓰린 금액이었다.

“폐하, 신이 장부를 첨부했습니다. 모두 당시의 매입가로 계산한 것입니다. 그중 몇 가지는 세상에 단 한 점밖에 없는 것이라, 가격도 곱절 이상 뛰었습니다. 사실 돈이 있어도 못 사는 물건들입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난 육장봉은 불현듯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내가 손해 본 거 아닐까?’

만약 월령안이 배상을 요구했다면, 기필코 십오만 냥 이상을 불렀으리라.

황제가 얼마를 배상하는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자발적으로 나서서 손해를 본 기분이었다. 제 발로 찾아가 남의 잇속을 챙겨 준 것 같은 느낌이라 찝찝하기만 했다.

‘폐하께서 금액이 많다고 언짢아하시는군, 그럼 현재 시세로 다시 계산해 드려야겠다.’

육장봉이 미간을 펴며 기분 좋게 말했다.

“폐하……!”

“십오만 냥, 확실하지?”

육장봉의 얼굴빛이 변했다. 황제는 그의 속셈을 알아채고서 말허리를 잘라 버렸다.

“문제없다. 짐의 개인 금고에서 꺼내 주마. 장봉아, 걱정하지 마라. 짐이 네 돈을 떼먹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육장봉이 다시금 미간을 찌푸렸다. 황제는 그가 가격을 올릴까 두려워 재빨리 말했다.

“장봉아, 절대 걱정하지 마라. 네가 달라는 대로 주어야지. 절대 한 푼도 떼먹지 않을 것이다. 네가 손해 보면 안 되지. 거기 누구 없느냐? 어서 가서 십오만 냥을 꺼내 오거라…….”

황제는 잠깐 생각하다가 이어 말했다.

“직접 장군부로 가져다주거라. 그리고 대장군의 휴식에 지장을 주지 않게 서둘러 장군부를 정리하라고 해라.”

육장봉은 십오만 냥이 적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만약 그 돈을 육장봉의 손에 건네주면 절대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육씨 저택으로 보내 아랫사람들이 받으면, 이번 배상 건은 확실히 끝을 맺는 셈이다.

육장봉이 번복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폐하, 급하지 않습니다.”

황제는 역시 교활했다. 물러섬으로써 이익을 얻는 수법을 그에게도 사용했다.

“급하지 않기는, 빨리 해결해야지……. 조왕은 아직도 철이 덜 들었어. 장군부를 부수다니. 잠자리도 불편할 거 아니냐?”

황제는 육장봉이 번복할까 두려웠다. 아예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서둘러 말을 이었다.

“장봉아, 짐은 처리할 정무가 있으니 먼저 가 보마. 넌 계안이와 잘 얘기해서 풀어라. 형제간 싸움은 다음 날까지 넘기면 못 쓴다.”

말이 끝나자마자 황제는 내관을 불렀다.

“가마를 준비해라.”

황제는 육장봉이 올린 명세서와 장부도 잊지 않고 챙겨 갔다. 번복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육장봉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건 그의 체면이 깎이고, 손해를 봤다는 증거였다.

‘폐하도 정말 너무하시는군.’

육장봉은 어두운 얼굴로 멀어져 가는 황제를 지켜보았다.

물론 황제를 막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막아도 소용없었다.

가격은 자신이 정했고, 배상 금액도 자신이 말한 대로였다. 황제는 한 푼도 떼먹지 않고 그 금액대로 배상하겠다고 시원스레 대답했다.

육장봉은 조계안 같은 막무가내가 아니었다. 자기가 손해를 보는 거라며 염치 불고하고 생떼를 쓸 수도 없었다.

‘그래. 체면은 유지해야지. 장사라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니로군.’

그는 반드시 월령안을 찾아가 이야기도 나누고 장사 비결도 좀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이처럼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육장봉이 손해를 보았다. 조계안은 기분이 좋아서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왜? 언짢아?”

“장군부를 다 부숴 놓으니 재밌던가?”

육장봉은 조계안을 흘겨보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황제는 한 나라의 군주였다. 뻔뻔하게 억지를 부려도, 결정적인 시점에 쏙 빠져나가더라도 어쩔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황제면 몰라도, 조계안까지 어쩌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너도 내 처소를 부쉈잖아! 내 침대도 부쉈고! 그리고 황형이 배상해 준댔잖아. 또 뭐가 불만인데?”

조계안은 두 손을 벌려 보이며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육장봉에게 배상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육장봉 같은 놈에 비하면 내가 훨씬 더 착한 놈이지!’

“배상해 주지.”

그 잘난 침대 하나는 몇 푼어치도 되지 않았다.

“필요 없어! 난 너처럼 속이 좁지 않거든.”

조계안은 단박에 거절했다. 육장봉에게 배상하라는 소리는 평생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의 낡아빠진 침대는 시가로 따지면 두 냥도 안 되었다. 육장봉이 그 가격대로 배상해 준다면, 조계안 쪽이 더 억울할 것이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떠난 황제를 생각하자, 조계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배상을 받고도 언짢아하는 사람은 처음 보겠군. 물론 큰돈을 배상하고도 저렇게 기뻐하는 사람도 처음 봤네. 덕분에 일 년은 심심하지 않겠어. 이 일을 일 년간 웃음거리로 삼을 테니까!”

육장봉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 * *

황제는 어서방(御書房 – 황제의 서재)으로 내무부(內務府)의 관리를 불러들였다. 육장봉이 올린 명세서에 쓰인 모든 물건의 현재 시세를 확인하고 계산해 보라고 명령했다.

“네, 폐하!”

내무부 관리들은 황제가 무엇에 쓰려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가격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못했다. 황제가 사전에 가격을 알고서 자신들을 시험하는 것인지 두려웠고, 명세서에 물건을 사 오라고 할까 두려웠다.

가격을 높였다가는 그들이 돈을 꿀꺽했다고 여길지도 몰랐다. 가격을 낮췄다가는 그 물건들을 사들이라면서 돈을 적게 주면 더욱 곤란했다.

관리들은 조용히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고는 현재 시세대로 명세서에 가격을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폐하, 몇 점은 세상에 둘도 없는 것들입니다. 가격을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마답비연(馬踏飛燕) 같은 것은 작년에 삼만 냥을 내고도 살 수 없었으나, 사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옥검의 장식품은 종(宗) 대가의 유작입니다. 그의 제자가 만금을 내고 도로 사 가려 했습니다. 이, 이런 건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물건들입니다.”

관리는 이 두 물건을 사내라고 할까 두려워 사전에 시세를 알려주었다.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곳이 없고, 백성 중 왕의 신하가 없다. 명세서의 물건들이 존재한다면, 황실에서는 물론 사들일 수 있다. 다만 이 물건들이 지금도 존재한다고는 아무도 단언할 수가 없었다.

만약 이 물건이 없다면, 그들이 종 대가를 도로 살려내서 황제께 새로 만들어 드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괜찮다. 시세대로 적기만 하면 된다.”

두 관리의 말을 들은 황제는 쾌재를 불렀다.

육장봉에게 큰돈을 배상해 주었다. 하지만 왠지 그 돈이 그만한 값어치를 한 듯싶었다. 자기가 큰 이득을 보고, 육장봉이 손해를 본 것 같았다.

* * *

육장봉은 자신의 불찰로 말 못 할 큰 손해를 입고서는 가슴만 앓았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우선 집사에게 명세서를 한 부 더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다음에는 육이에게 그 명세서를 들고 월령안을 찾아가게 했다.

“월령안에게 거기에 적힌 물건들을 지금 모두 사들이려면 얼마나 드는지 계산해 달라고 해라!”

‘손해를 보더라도 얼마나 손해인지는 똑바로 알아야지. 돈을 주고 교훈을 산 셈이니, 도대체 얼마짜리 교훈인지는 알아야겠다.’

“네, 장군.”

육이는 장군이 황제에게 얼마나 밑졌는지는 정확히 몰랐다. 다만 육장봉이 명세서를 나열하는 것을 보자, 왠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장군이 월 낭자에게 물건값을 계산해서 돌려주고,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자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월 낭자가 얼마나 속상할까!’

육이는 몰래 탄식했다. 마음이 울적해졌다. 어두운 낯빛을 한 육 대장군을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감히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장군의 마음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육이는 지체하지 않고 재빨리 말을 몰았다. 이각이 채 걸리지 않아 월씨 저택에 도착했다. 그리고 화청에 앉아 월령안이 오기를 기다렸다.

월령안은 육이가 찾아왔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육장봉 일행은 오전에 다녀간 참이었다. 이 시간에 육이가 또 찾아왔다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육이와 따로 교분이 없는데, 이렇게 찾아온 걸 보니 사적인 일은 아니겠군.’

그러고 보니 하인이 육씨 저택에 일이 생겼다고 알렸던 장면이 생각났다. 지금 이 시간에 육이가 찾아온 걸 보니, 절대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월령안은 미간을 살짝 구겼다. 그러나 화청에 들어서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이상한 점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녀는 화사하게 웃으며 육이에게 예를 올렸다.

“육이 장군을 뵙습니다. 장군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월 낭자, 천만의 말씀입니다.”

육이도 자리에서 일어나 답례했다.

관직으로 볼 때, 육이는 월령안의 예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그러나 장군이 월 낭자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감히 앉아서 예를 받을 수는 없었다.

그는 육비우의 끔찍한 말로를 눈앞에서 목격했었다. 절대 제2의 육비우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월 낭자의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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