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86)화 (86/1,004)

86화 육장봉의 복수법

장군부가 부서졌다는 데도 육장봉은 서두르지 않았다. 평소처럼 느긋하게 돌아갔다.

육장봉이 입구에 도착했다. 하인이 나와서 그를 맞이하더니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장군, 누군가 장군부를 부쉈습니다!”

육장봉은 아무 말도 없이 채찍을 곁에 있던 육일에게 건네준 뒤 성큼성큼 들어섰다.

바깥뜰의 꽃이나 나무, 돌은 망가진 흔적도, 어지럽혀진 흔적도 없었다.

“장군!”

“장군!”

“저희가 무능하니 벌을 주십시오.”

그러나 호원들은 양쪽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육장봉에게 용서를 빌고 있었다. 하나같이 피투성이가 되어 붕대를 감은 모습이었다. 조계안이 얼마나 험하게 다루었는지 분명히 드러났다.

“됐다, 모두 일어나거라!”

육장봉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상을 내렸다.

“부상당한 사람들은 모두 물러가서 쉬어라. 각자 열 냥씩 상을 받아 가거라.”

육장봉은 줄곧 상벌 기준이 엄격하고 분명했다. 이들은 조계안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몸의 상처를 보니 얼마나 최선을 다해 대항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전사에게는 적수를 이기지 못하는 것보다 싸울 용기조차 없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다.

그의 저택에 있는 이 호원들은 전장에서 물러난 노병들이었다. 개인의 실력이 썩 강하지 않아, 조계안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조계안과 맞서 싸울 용기가 있었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이는 상을 받아 마땅했다.

물론, 이 돈은 조가 놈이 내도록 할 거라는 게 가장 중요했다.

육장봉이 호원들을 다독인 뒤 안뜰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온통 엉망진창이 된 모습이 보였다.

집사의 말대로 장식품뿐만 아니라 창문도 전부 부서져 있었다.

“흥!”

육장봉은 콧방귀를 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처소가 가장 손실이 컸다. 모든 장식품은 산산이 조각났고, 책걸상마저도 부서져 있었다.

“장군, 조왕께서 너무하셨습니다!”

육장봉을 따라 들어온 육이 등은 이를 보자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오히려 육장봉은 화를 내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집사더러 모든 손실을 명세서에 기록하라고 해라. 가격을 표기하는 걸 잊지 말고. 증거로 내놓아야 하니 증빙 자료도 첨부하도록 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수법인데?’

“장군, 혹시?”

육이는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어색하게 물었다.

육장봉은 냉소를 짓고 답했다.

“물건을 부쉈으면 배상을 해야지!”

그는 월령안의 방법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네가 내 체면을 구겼으니, 난 네 돈주머니를 털어 주마.’

조계안이 그의 장군부를 부쉈다. 하지만 똑같이 조계안의 침궁을 부수는 방식은 수준이 떨어졌다. 차라리 조계안에게 돈으로 배상하라고 하는 쪽이 더 화가 풀릴 것 같았다.

“예, 장군.”

육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장군이 월령안과 닮아간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월 낭자는 정말 무시무시하군!’

‘생각해 보니까 이 방법도 참 좋은 것 같아!’

* * *

장군부의 하인들은 행동이 아주 빨랐다. 반 시진 뒤, 망가진 물품들을 정리한 명세서가 나왔다. 가격을 표기하고, 장부도 첨부했다.

육장봉은 명세서를 넘겨보았다. 부서진 장식품 대부분은 이 삼 년간 연달아 사들인 것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월령안이 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월령안이군.”

그의 일상에 월령안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또다시 깨달았다. 그의 곁의 모든 물건이 월령안과 관련이 있었다.

이번에 조계안이 장군부에서 행패를 부린 바람에, 월령안이 남겨둔 흔적이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과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녀가 준비해 둔 모든 것이 그의 마음에 꼭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돌아오자, 장군부가 예전보다 더 편하게 느꼈다. 처음으로 이 장군부가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이 아닌, 자신의 집이라고 느껴졌다.

육장봉은 또 장부를 펼쳐보았다. 망가진 장식품 하나하나가 값비싼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장인의 유작이라 세상에 단 한 점만 남아 있어, 돈이 있어도 사지 못하는 것들도 꽤 있었다.

육장봉은 원래 물질적인 데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이 순간만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아깝게 됐군.”

망가진 물건이 아까웠는지, 사라져 버린 월령안의 성의가 아쉬웠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 * *

육장봉은 명세서와 장부를 들고 황궁으로 갔다. 그 무렵 황제는 난각에서 간식을 들던 중이었다.

육장봉이 왔다는 말을 듣자, 황제는 먹던 간식도 내려놓고 내관에게 육장봉을 들이라고 했다.

“장봉아, 웬일로 이 시간에 짐을 보러 왔느냐?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황제가 이렇게 물을 만도 했다. 육장봉은 이유 없이 입궁하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궁에 왔다는 것은 반드시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육장봉은 차가운 얼굴로 다가가더니, 손에 든 명세서와 장부를 황제에게 건네주었다.

“폐하, 조왕이 오늘 신의 장군부를 부쉈습니다. 명세서와 장부가 여기 있습니다. 폐하께서 확인하시고, 문제가 없다면 조왕에게 배상해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

“아니……. 뭐라고? 계안이가 네 장군부를 부쉈다고? 그, 그럴 리가 있느냐?”

황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명세서를 받아 들었다. 육장봉의 시선을 받자, 펼쳐서 살펴보았다. 곧 말없이 장부를 덮더니 힘없이 말했다.

“사람을 다치게 한 것도 모자라, 물건을 이렇게까지 부쉈다고? 계안이가 어쩌다 그랬단 말이냐?”

“폐하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사람을 보내 확인하시면 됩니다.”

황제가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짓자, 육장봉은 기분이 퍽 묘해졌다. 그도 예전에 월씨 가문 집사가 명세서를 들고 찾아왔을 때, 지금 황제의 심정과 비슷했었으니까.

황제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짐이 너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다만…… 조금 예상 밖이라 그렇구나.”

예상 밖이다 못해 어찌할 바를 몰라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이게 내 친아우가 한 짓이라고?’

그보다 일각 정도 늦게 태어난 쌍둥이 동생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도 의외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조왕 전하께서 하신 일입니다. 폐하께서 못 믿으시겠다면, 조왕을 불러 물으셔도 됩니다.”

“계안이 녀석은 어제 궁을 나가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제가 어젯밤에 궁을 나갔다고 누가 그럽니까? 황형, 저는 줄곧 궁에 있었습니다. 아무 데도 가지 않았지요.”

화려한 차림을 한 조계안이 난각에 들어서며 황제의 말을 끊었다.

“황형, 전 궁에 있었습니다. 아우에게 누명을 씌우시면 안 됩니다.”

조계안은 들어온 뒤, 황제에게 예를 올렸다. 또 육장봉에게도 고개를 끄덕이며 친절하게 말했다.

“장봉이 입궁했군? 무슨 일이지?”

육장봉이 차갑게 대꾸했다.

“전하께 배상을 받으러 왔습니다.”

조계안이 기분이 이렇게 좋은 걸 보니, 육씨 저택에서 한껏 즐겁게 논 모양이었다.

“배상을 받으러 왔다고? 뭘 배상하는데? 육 장군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겠군?”

조계안은 오만방자한 자세로 한쪽에 앉았다. 말투가 매우 강경했다.

“전하, 오늘 신나게 부수셨습니까?”

육장봉은 조계안이 모르쇠로 일관하자 어이가 없어 냉소를 지었다.

“장봉, 나이도 젊은데 기억력이 이렇게 안 좋으면 어떡하나? 방금 말했잖나. 난 오늘 내내 궁에 있었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조계안은 간식을 집더니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눈을 가늘게 뜨며 육장봉을 도발적으로 바라보았다.

‘장군부는 내가 부쉈다. 육장봉이 배상을 원한다고? 좋아, 그러면 증거를 내놓으시지!

물론, 육장봉도 조계안의 침궁을 똑같이 부술 수 있다. 단, 감히 황궁을 부술 수 있다면 말이다.

“조왕께서는 저질러 놓고 책임을 지지 않으실 모양이군요.”

육장봉은 화를 내지 않고 조계안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에게 화를 내 봤자 의미가 없었다.

“내가 한 짓은 당연히 인정하지. 하지만 내가 하지 않은 일은 절대 인정하지 않아.”

조계안은 손가락을 내밀어 육장봉 앞에서 흔들었다.

“육 대장군, 자네가 전공을 많이 세운 걸 잘 아네. 또한, 황형의 오른팔 같은 신하지. 조정의 각 관리도 자네의 체면을 세워 주고, 소 승상마저도 자네 앞에서는 적지 않게 양보한다는 것도 아네.

하지만 아쉽게도…… 난 그들이 아니야. 난 추밀원을 장관하고 있는 몸이거든. 자네처럼 큰 권력을 가진 대신들을 주목하는 게 내 일이지. 난 자네가 두렵지 않아!”

조계안의 말이 점점 못 들어줄 수준으로 변했다. 황제는 다급히 호통쳤다.

“계안, 그만해라!”

이대로 가다가는 황제와 육장봉의 군신 관계마저 틀어질 것 같았다.

“황형, 전 억울합니다. 그런데 제 편도 안 들어주시고요. 지금 사실을 말하는데도 소란을 피운다고 하시는군요. 황형, 황형께서 현명한 군주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명한 군주라면 이치를 따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계안은 가면을 쓰고 있어, 그의 얼굴에 떠오른 비웃음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다만 눈빛에서 오만과 방자함은 읽어낼 수 있었다.

“계안, 정말 네가 장군부를 부순 게 아니란 말이냐?”

황제는 줄곧 관대했고, 평소에도 늘 조계안을 방임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로 화가 났다. 조계안이 너무 지나쳤다.

“증거는요?”

조계안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증거가 육장봉의 말뿐입니까? 육씨 가문 하인이 절 봤다고요? 황형, 한쪽 말만 듣고 단죄하지 않는다는 이치를 아시겠지요?”

“난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온 것도 아니니 증거도 필요 없다. 너인지 아닌지,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조계안이 이 정도로 뻔뻔하게 나올 줄은 육장봉도 예상하지 못했다.

“난 정말 모르겠군.”

조계안은 또 간식을 집어 들고 입에 넣었다.

“아니면, 육 장군이 말해 보시든가?”

육장봉이 말했다.

“조왕,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법입니다.”

‘체면이나 좀 차리지 그래.’

“얼굴?”

조계안이 웃음을 터뜨리며 황제의 얼굴을 가리켰다.

“봤지? 저게 바로 내 얼굴이야. 맘에 안 들면 맘껏 때려.”

‘저 얼굴이나 내 얼굴이나, 어차피 똑같이 생겼잖아.’

황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육장봉은 미치광이에게 더는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왕께서는 배상을 안 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래서 육 대장군은 장군부를 부순 사람이 나라고 확신하나?”

조계안이 반문했다.

“확신합니다.”

다들 뻔히 아는 사실에 증거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배상하지 않겠네.”

그가 부순 것은 월령안이 사들인 물건들이었다. 물어주더라도 육장봉에게 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육씨 가문 사람은 월령안의 저택을 부숴도 되고, 조씨 가문 사람이 육씨 저택을 부숴서는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육씨 가문은 월령안보다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월씨 저택을 마음껏 부숴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면, 그 논리를 조계안에게도 대입해 보자.

공교롭게도 조계안은 조씨였다. 조씨 가문은 육씨 가문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육씨 가문의 그 논리대로면 그도 육씨 저택을 마음껏 부숴도 된다.

조계안은 앞으로 육장봉이 거슬리는 짓을 하면, 그와 싸우는 대신 육씨 저택을 바로 부수리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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