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82)화 (82/1,004)

82화 조계안의 분풀이

황궁.

조계안은 황제에게 여전히 화가 난 상태였다. 하지만 육장봉이 일을 잘 처리했는지는 알고 싶었다.

그래서 여전히 언짢은 얼굴이기는 했지만, 황제의 난각에 버티고 앉았다. 육장봉이 소식을 전하기를 기다렸다.

해 질 무렵부터 한밤까지 기다린 끝에, 육장봉의 사람이 황궁으로 소식을 전했다.

‘일이 잘 해결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조계안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짢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월령안을 생각하면 기뻤다. 하지만 이 일을 해낸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생각하니 화가 났다.

‘제일 힘을 쓴 사람은 나이고, 월령안의 고민을 덜어줄 방법을 생각해 낸 사람도 나이다. 그런데 어째서 모든 공로가 육장봉에게 넘어갔지? 열 받아 죽겠네!’

조계안의 눈에 기쁨이 스쳤지만, 바로 침울함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기쁘지 않았다. 또 육장봉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속 터져 죽겠네!’

이 소식을 들은 조계안은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았다. 바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계안아, 장봉이가 소 승상을 어떻게 설득했을 것 같으냐?”

황제는 그가 얼굴을 굳힌 채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기분이 상한 조계안이 육장봉에게 찾아가 행패라도 부릴까 걱정되었다. 대충 이유를 갖다 붙여 그를 붙잡았다.

조계안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더니 비꼬았다.

“황형께서는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굳이 물으시다니, 우습지 않습니까?”

“계안아…….”

황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이름을 불렀다. 얼굴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계안이 상태가 많이 안 좋군.’

“그 당시 소함연이 왜 파혼하고 도망쳤는지, 또 어떻게 변경을 빠져나갔는지, 설마 황형께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황형의 묵인이 없었다면, 소함연이 어떻게 외국인과 편지를 주고받았을까? 연약한 소녀가 어떻게 변경 밖으로 도망쳤을까? 소 승상네 하인들이 멍청이도 아니고.’

황제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계안아, 짐은 황제이지 신이 아니란다. 그건 소함연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황제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나서서 간섭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서서 간섭할 이유도 없었다. 소함연이 죽든, 살든 그와는 상관이 없으니까.

“흥!”

조계안은 경멸하듯 콧방귀를 끼고 고개를 돌리고 뒷모습만 남겼다.

황제는 저도 모르게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애가 크니, 점점 말썽이군.”

조계안이 왜 비뚤어졌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천자로서, 황제로서, 관리자로서 존재해야 했다. 그러고 난 다음에야 한 사람으로서, 조계안의 형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조계안이 떠난 뒤, 황제는 해가 뜰 때까지 홀로 난각의 책상 앞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 * *

조계안은 난각에서 나와 바로 황궁을 나갔다. 하지만 궁문 밖으로 나와 텅 빈 길거리를 보는 순간 막막해졌다.

그제야 황궁이 아니면 갈 데도 없음을 느꼈다.

조계안은 소리 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황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길거리를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목표도, 방향도 없이 걸었다. 날이 밝을 무렵이 되어서야 월씨 저택 앞에 멈춰 섰다.

그제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월씨 저택 대문까지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넌 날 반기지 않겠지.”

조계안은 월씨 저택 앞에 서서 대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눈에는 슬픔과 외로움이 가득했다.

‘월령안은 왜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나는 월령안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렇게 잘 해줬는데.’

“너는 언제쯤이면 육장봉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조계안은 조각상처럼 월씨 저택 입구에 서서 중얼거렸다. 날이 밝고 나서야 돌아서서 가려고 몸을 돌렸다. 갑자기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이 대문의 색깔이 왜 다르지?”

조계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떠나려던 것을 멈추고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냈다.

그러자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이 소리 없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포권을 하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주인님!”

“월씨 저택의 대문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

조계안은 완전히 새것이나 다름없지만, 또 확연하게 달라 보이는 문짝 두 개를 가리켰다.

“주인님, 며칠 전 육비우가 사람을 데리고 와 월씨 저택 대문 한 짝을 부쉈습니다.”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이 말했다.

“육비우?”

순간 조계안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육장봉은 뭐 하는 놈이냐? 바로 옆집에 사는 사촌 동생도 제대로 잡지 못해? 육씨 가문에서는 대장군이 하나 나왔다고, 다른 가족들까지 개나 소나 덩달아 하늘에 오를 줄 아는 모양이지? 다들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말을 마친 조계안은 성큼성큼 길거리로 걸어갔다.

육장봉을 찾아갈 핑계를 찾고 있었는데, 때마침 그 이유가 생겼다. 이 기회를 잘 잡지 않는다면, 육비우가 멍청한 짓을 저지른 보람이 없을 것이다.

조계안은 밤을 꼬박 새웠지만, 육장봉 앞에서는 피곤한 기색을 보이기 싫었다. 그래서 육장봉을 만나기 전에 특별히 한 집에 들어가 깔끔하게 치장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나서야 여유롭게 육장봉의 장군부로 갔다.

예상과는 달리 낯선 하인들만 있을 뿐, 얼굴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육장봉이야 없다 쳐도, 친위대까지 없다고?’

“너희 대장군은 어디 계시냐?”

원래는 몰래 와서 육장봉을 흠씬 두들겨주고 몰래 떠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몸을 드러내어 육씨 가문 하인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육씨 가문 하인은 제법 대담한 편이기는 했다. 하지만 가면을 쓴 남자가 불쑥 나타나자 깜짝 놀라 혼절할 뻔했다.

조계안에게 붙잡힌 하인은 그의 말을 듣지 못한 채 소리를 질렀다.

“도…… 도둑이야! 도둑이야!”

“도둑이 어디 있다고?”

육씨 저택의 호원들은 전부 전쟁에 나갔던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경계심도 강했다.

하인이 소리를 지르자 호원들이 병기를 가지고 뛰어 들어왔다. 가면을 쓴 조계안이 한 하인을 ‘추궁’하는 모습이 보였다. 호원들은 말없이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도둑이 여기 있다. 잡아라!”

조계안은 육장봉의 집에서 도둑으로 몰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육씨 가문 하인들은 눈이 어떻게 된 건가? 내가 대체 어디를 봐서 도둑 같다는 말인가?’

안 그래도 조계안은 울화를 풀 데가 없어 짜증이 나 있는 상황이었다. 육씨 가문의 호원들이 달려드는 것을 보고 피식 비웃었다. 눈앞에 있는 하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감히 나를 도둑으로 몰아? 재미있군! 육장봉이 거느린 놈답게 간이 크구나!”

“이 도둑놈이……! 감히 장군부의 하인을 건드렸겠다! 살기 싫은 모양이구나?!”

조계안의 오만한 모습을 보자, 호원은 화가 나 안색이 변했다. 쇠몽둥이를 들어 조계안의 머리를 내리쳤다.

조계안은 안색이 변하더니 그를 발로 걷어찼다.

“네 장군부 사람을 건드리는 게 뭐가 어떻단 말이냐? 육장봉이 여기 있더라도 똑같이 때려줄 것이다.”

“이놈이……. 간덩이가 부었구나!”

호원은 전장에서는 다섯 명을 한꺼번에 상대할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조계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간덩이가 부었다고?”

조계안이 냉소를 짓고 앞으로 나아갔다. 덤벼드는 호원들을 한 걸음에 한 명씩 모조리 쓰러트렸다. 나중에는 상대방의 손에서 쇠몽둥이를 빼앗았다.

“내가 이 나이 먹을 때까지, 누구도 감히 나한테 간덩이가 부었다고 한 적이 없었다. 오늘 간덩이가 부었다는 게 뭔지 보여주마!”

말을 마치자마자 조계안은 손에 쥔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으악!”

쇠몽둥이가 날아가며 덤벼들던 호원들을 전부 때려눕혔다. 그리고 나서도 위력이 줄지 않아, 근처에 있던 다보격(多寶格 – 골동품 등을 진열하는 진열대)으로 날아갔다.

쨍그랑!

다보격 위에 놓인 골동품들과 도자기, 병기들이 떨어져 부서졌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조계안은 사신처럼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땅에 떨어진 쇠몽둥이를 집어 들고 육씨 저택 안뜰로 들어갔다.

“도둑이라고 했지? 그럼 내가 오늘 육씨 저택을 제대로 털어 주마!”

육장봉은 집을 꾸밀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육씨 저택 안을 가득 채운 장식품들은 전부 월령안이 정성껏 고른 것이었다.

육장봉이 없으니 그에게 화풀이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이 물건들로 분을 풀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육장봉이 운이 좋았군!’

쾅! 쾅!

기분이 언짢은 조계안은 육씨 저택의 구석구석 모든 것이 다 꼴 보기 싫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육씨 저택의 호원들은 조계안이 닥치는 대로 부수고, 창문까지 손대는 모습을 보았다. 아픈 몸을 무릅쓰고 억지로 일어나 말리려고 다가갔다.

“얼른, 저자를 막아! 더 부수지 못하게 해!”

“얼, 얼른 장군을 모셔와!”

“관아! 관아에 고발해! 반드시 고발해야 해!”

안타깝게도 그들은 어떻게 해도 조계안을 막을 수 없었다. 앞으로 달려들었다가 흠씬 두들겨 맞기만 할 뿐이었다.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으니 너희 목숨은 살려 주마.”

조계안은 또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치명적인 머리는 빼고, 등과 다리를 내리쳤다.

“윽……. 감히!”

육씨 가문의 호원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조계안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들의 몸을 짓밟으며 저택 안으로 돌진했다.

와장창!

이때의 조계안은 난폭한 폭도가 따로 없었다. 쇠몽둥이를 든 채 육씨 저택의 안뜰, 뛰뜰 할 것 없이 모조리 박살 냈다. 육씨 저택 대부분을 망가뜨리고 나서야 화가 식었는지 만족스럽게 손을 거뒀다.

“간덩이가 부은 미친놈! 넌 곧 죽을 거다! 우리 장군께서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육씨 저택의 호원들과 하인들은 모조리 조계안에게 두들겨 맞았다. 하나같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꼼짝도 못 하고 엎드려 있었다.

“육장봉에게 올 테면 오라고 해라. 내가 겁먹으면 육 씨로 성을 갈겠다.”

조계안은 산산조각이 난 육씨 저택을 보자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손에 들고 있던 쇠몽둥이를 던져 버렸다. 호원들의 원한 어린 시선을 받으며 오만 방자하게 대문으로 나갔다.

조계안은 사고를 칠 용기도 있었고, 자기 소행임을 인정할 용기도 있었다.

‘인제 와서 두려워하면 그게 바로 겁쟁이지.’

“너무하잖아! 지독하구먼!”

육씨 가문의 하인들은 화가 나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부상이 덜한 몇몇 하인이 겨우 일어났다. 관아에 서둘러 신고하는 한편 육장봉에게도 알리러 달려갔다.

* * *

육장봉은 행동력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어젯밤에는 돌아오자마자 친위대에게 선물을 준비하라고 했다. 오늘은 육비우를 데리고 월씨 저택에 사과하러 떠났다.

아침 일찍, 육장봉은 육비우가 일어났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물건을 준비했다. 그다음에는 육비우를 들것에 실어 오라고 했다.

“형님, 무슨 일 있나요?”

며칠 동안 육비우는 월령안이 배상하라고 찾아올까 봐 저택에 숨어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지난번의 그 망나니들이 또 찾아와 빚을 독촉할까 두려웠다.

그는 정말로 돈이 없었다.

“나 좀 따라와라.”

육비우가 이젠 일어설 수 있게 된 것을 본 순간, 육장봉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형을 집행하는 놈이 뇌물을 받고 사정을 봐줬나? 변경에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것들이 벌써 군기가 빠졌나? 다음 달 북요 사자 앞에서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성 밖에 주둔하고 있는 놈들을 엄하게 다스려야겠군.’

아무것도 모르는 육비우는 절뚝거리면서 다가와 물었다.

“형님, 어디 가는데요?”

“가 보면 알 거다.”

육장봉은 육비우를 흘겨보며 물었다.

“말은 탈 수 있겠느냐?”

“당연히 문제없……!”

육비우는 가슴을 탕탕 치며 말하려다가, 순간 아니다 싶어 서둘러 말을 끊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더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다.

“좋아. 우리 육씨 가문의 남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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