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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80)화 (80/1,004)

80화 네가 바로 남상권이구나

육장봉은 월령안이 신이 나서 자신감 넘쳐 하는 모습을 보았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얼굴이 아니라 두 눈이 빛나고 있었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빛은 사람의 혼을 쏙 빼놓기 충분했다. 그 빛은 주변을 밝게 비췄다.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까지도 환하게 비춰 주었다.

문득 월령안 특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가 좋아하는 아름다움이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육장봉은 깜짝 놀라 몸을 흠칫 떨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머릿속의 잡생각을 떨쳐내려는 듯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육장봉의 두 눈은 평온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월령안의 얼굴 절반은 불빛 아래에, 절반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시선은 평온했다. 눈매도 온화했다.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다.

육장봉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가 잘못 본 것이었다.

‘월령안이 신선도 아니고, 사람의 얼굴이나 눈이 어떻게 갑자기 빛이 난단 말인가.’

방금 찬바람을 맞아 현기증이 나서 눈이 흐려진 모양이었다.

“흠흠…….”

육장봉은 손으로 입을 막아 자신의 난처함을 감추려고 했다.

“당신 방금…….”

‘월령안이 방금 뭐라고 했더라? ……됐다. 어차피 궁금한 것도 아니고.’

육장봉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방금 이야기는 훌륭했소.”

“대장군께서 우습다 여기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월령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적절한 시점에 조심스러운 미소를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 월령안이 아까 주모에 관해서 이야기했지.’

육장봉은 퍼뜩 떠오른 생각에 바로 말을 꺼냈다.

“주모에 관한 일은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 그자는 나와는 관련이 없으니 내 눈치 볼 것 없소.”

‘마침 육비우에게 교훈도 줄 수 있겠군. 계속 자기 어머니를 감싸고 돈다면 어떻게 될지 깨닫게 되겠지.’

“그렇다면…… 그만두지 말라는 말씀인가요? 계속해서 주모를 유인해도 되는 거죠?”

월령안은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육장봉도 그녀가 주모를 유인하는 게 육비우를 겨냥한 행동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말리지 않았다.

‘이건 정말…… 친척에게까지 너무 냉정한데!’

“음.”

육장봉은 월령안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다.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머뭇거림도 사라졌다.

‘고작 주모 따위. 월령안이 기쁘면 그만이지.’

육장봉이 말했다.

“비우 놈도 정신이 번쩍 들겠지. 그래야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당하지 않을 거요.”

사람 사이의 감정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사부인은 늘 육비우에게 폐를 끼쳐 자식을 힘들게 해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느 날, 아무리 아들이라도 어머니와의 정을 저버리게 만들고 말 것이다.

“대장군, 감사합니다.”

육장봉이 이렇게 ‘사리에 밝다’니. 월령안은 활짝 웃었다. 이참에 좋은 사람 노릇도 한 번쯤 하기로 했다.

“대장군,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정도를 안답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일을 크게 만들지는 않을 거예요.”

물론, 그 ‘정도’가 과연 어느 만큼일지는 완전히 그녀에게 달렸다.

어쨌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녀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게 바로 그녀의 ‘정도’였다.

“나도 당신이 정도를 벗어나지 않을 거라 믿소.”

육장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월령안에게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됐소.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가보겠소.”

하지만 월령안이 겁을 먹었다거나, 다른 일로 그와 상의할 것이 있다면, 그도 굳이, 꼭, 반드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살펴 가세요.”

육장봉이 간다는 말을 듣자, 월령안은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대마왕이 드디어 가는구나!’

계속 겁먹은 척 연기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정말이지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도중에 잊어버리고 평소처럼 행동했다가 육장봉에게 들통나기라도 하면 더욱 곤란해질 테니까.

육장봉처럼 교만한 사내가 눈앞에서 자신을 속이는 행위를 절대로 눈감아 줄 리가 없었다.

“음.”

육장봉은 차갑게 대꾸하고 월령안을 훑어보았다.

월령안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나 싶어 몸을 흠칫했다.

“됐소. 이만 가겠소.”

월령안이 자신의 눈빛에 겁을 먹은 것을 보자, 육장봉은 더 남아 있으려던 생각을 버렸다. 더 있었다가는 그녀를 울릴까 걱정이 되었다.

“대장군, 살, 살펴 가세요.”

월령안은 이번에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육장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서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월령안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으며 문밖을 바라보았다. 향 한 대 탈 시간이 지난 뒤에도 문밖에서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육장봉이 또 돌아올까 정말로 걱정되었다. 그랬다가는 정말 목숨이 간당간당할 지경이었다.

육장봉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나자, 월령안도 서재에 더는 머물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문 어귀에서 좌우를 살핀 후, 이상한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시름 놓았다.

“드디어 안전해졌네.”

월령안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재의 문을 닫았다. 또 좌우 양쪽을 살펴보았다. 다시 한번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제야 회랑을 지나 안뜰로 들어갔다.

어두운 구석에 서 있던 육장봉은 월령안의 이 행동을 보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월령안이 진짜로 겁을 먹었군. 이번엔 날 속이지 않았어.’

하지만 침실로 들어온 월령안의 얼굴에 두려움도, 놀란 뒤의 불안감도 없다는 것을 육장봉은 알지 못했다.

월령안은 침실에 들어서자마자, 서둘러 소 승상이 친필로 작성한 절연장을 꺼내 반복해서 읽었다. 그리고 기뻐서 폴짝폴짝 뛰었다.

“이렇게 쉽게 소 승상이 쓴 절연장을 손에 넣게 된다니. 육장봉이 전쟁은 잘하는데, 거래는 정말 못하는구나. 이번 거래는 육장봉이 크게 손해 봤네. 오추마 삼십여 필에 몽골말 백 필이라니. 오추마 백 필에 몽골말 수천 필을 달라고 했어도, 이 절연장만 가질 수 있다면 어떻게든 구해 줬을 텐데.

하하하……. 육장봉을 등쳐 먹다니. 정말 천운이 내렸구나! 이 일 하나만으로도 난 일 년이나 행복할 수 있다고. 올해는 이걸 낙으로 삼아야지. 내일 바로 영감님께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할 거야. 고작 몽골말 백 필에, 오추마 서른한 필로 소 승상이 쓴 절연장을 받아냈다고. 세상에 이보다 더 수지맞는 거래는 없을 거야.”

월령안은 너무 기분이 좋아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육장봉이 제법 능력이 있네. 소 승상을 압박해 절연장을 받아낼 수 있다니. 난 줄곧 어려울 줄로만 알았지. 소 승상은 권력이 강해서 황제의 말밖에 듣지 않으니까. 하지만 황제의 성격상 절대 신하의 체면을 구기지도 않을 거고. 나는 이 절연장을 받아내려면 적어도 십 년은 걸릴 줄 알았지. 청주 범씨 가문과의 싸움이 끝나고 나서야 소 승상에게서 받아낼 줄 알았어. 육장봉이 이렇게 쉽게 얻어내다니. 정말 대단해.”

월령안은 절연장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볼수록 즐거웠고 볼수록 흥분되었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눈물을 떨구며 낮은 소리로 흐느꼈다.

“어머니, 이젠 자유예요!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셨어요!”

‘어머니, 제가 집으로 모시고 갈게요. 정정당당하게 집으로 모셔 갈게요. 앞으로 우리 네 식구가 영원히 함께할 거예요!’

* * *

육장봉은 월씨 저택에서 나오자마자 암위를 불렀다.

“폐하께 일을 해결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하거라.”

“예, 장군.”

암위는 명령을 받고 바로 물러났다.

육장봉은 계단 아래에 서서 고개를 돌려 월씨 저택을 바라보았다. 그다음 골목을 여유롭게 걸어서 길거리로 나왔다.

그때, 텅 빈 길거리에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사람은 검을 든 채 길 가운데에 서 있었다. 옷자락이 바람에 날려 펄럭이는 소리를 냈다. 뒤로 묶은 긴 머리도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마주 걸어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소나무처럼 꼿꼿하면서도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세가 고수다운 기품을 풍기고 있었다.

“내 앞길을 막고 있소만.”

육장봉은 멀리서 그를 보았다. 그러나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와 딱 세 걸음 거리를 남겨 두고 멈춰 섰다.

“너와 남상권은 무슨 사이냐?”

그 사람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그대와 무슨 상관인가?”

육장봉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자 그가 정의롭게 외쳤다.

“사파의 간악한 무리는 누구에게나 처단할 의무가 있는 법. 네가 그 마교의 우두머리라면, 내가 봐주지 않는다고 탓하지 마라!”

“수 맹주, 여긴 변경이네.”

육장봉은 한 손으로 뒷짐을 진 채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 말만 가지고도, 나는 그대를 십 년은 가둬 둘 수 있다.”

“육 대장군, 난 합법적으로 변경에 왔다. 너는 간섭할 권리가 없어!”

무림지존 수횡천은 육장봉에게 신분이 들통났는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위엄 있게 말했다.

육장봉은 순간 얼굴을 굳혔다.

“합법적인 게 뭐 어떻다는 말이지? 수횡천,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 감히 내 앞길을 막았는가?”

“무림의 일은 내 관할이다. 육장봉, 너와 남상권은 대체 무슨 사이냐?”

수횡천은 육장봉의 이름을 대놓고 불렀다. 그는 두 팔로 안고 있던 검을 한 손으로 바꿔 쥐었다. 엄지손가락을 검 자루에 가져다 대며, 언제든 검을 뽑을 준비를 했다.

“그럼 정말 미안하게 됐군. 변경의 일이라면 내 관할이기도 하니까. 수 맹주, 내가 사람 구실을 하는 법에 대해 가르쳐야 할까?”

육장봉 주변의 기운이 갑자기 변했다. 그가 수횡천의 눈앞에 불쑥 나타났다. 원래대로라면 바람의 흐름에 따라 옷이라도 나풀거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바람은 그의 주변에서 멈춘 듯했다. 수횡천의 앞에 서 있는 육장봉은 옷자락도, 머리카락 한 올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수횡천은 그의 사악하고 오만한 말투에서 익숙하고도 낯선 느낌을 받았다. 육장봉을 바라보며 놀라서 부르짖었다.

“네가 바로 남상권이구나!”

이 사람의 말투와 자태는 남상권과 똑 닮았다. 게다가 이 시각에 길거리에 나타났다.

“그게 그대와 무슨 상관인가?”

아까와 똑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육장봉이 이 시점에 다시 말하자 오만함이 한층 짙어졌다.

“만약 네가 남상권이라면, 절대 이대로 떠나게 둘 수는 없다!”

수횡천의 살기가 확 뿜어져 나왔다. 그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 검을 뽑아 들었다.

바로 이때, 육장봉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수 맹주가 변경에 온 것은 사 년에 한 번 열리는 무림 대회 때문인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수횡천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뽑았던 검이 다시 들어갔다.

“남상권, 미리 말해두마. 네가 만약 무림대회를 망친다면 절대 용서치 않겠다.”

“수 맹주는 나이도 젊은데, 벌써 머리가 망가졌나? 무림지존이라는 명호가 정말 아깝게 되었군.”

육장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네가 바로 남상권이구나! 나는 속지 않는다!”

수횡천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만약 이 자가 남상권이라면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남상권은 한 사람의 힘으로 무림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무림의 명문 정파와 많은 사람이 그 때문에 큰 손해를 보았다. 그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 성은 육, 이름은 장봉이다. 여기는 변경이고, 그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림이 아니다. 날 대장군이라고 불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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