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79)화 (79/1,004)

79화 돈을 버는 목적

“알면 됐소. 소 승상은 폐하를 가까이서 모시는 신하이니, 폐하 앞에서 당신에 대해 조금만 안 좋게 얘기해도 큰일이오. 당신이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겠지. 지금은 소 승상을 밟을 때가 아니니, 당분간 참으시오.”

육장봉은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태도로 위로했다.

월령안은 고개를 들어 그를 힐끔 보았다. 다시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두 팔을 문질렀다.

‘와, 진짜 소름 끼쳐!’

육장봉에게 당신의 무뚝뚝한 얼굴엔 쌀쌀맞음 이외의 표정을 짓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육장봉은 월령안의 이 행동을 오해하고 말았다. 그녀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몰래 고개를 저었다.

‘월령안은 확실히 대담하고, 차분하고, 박력도 넘치지만, 어쨌든 아직 어린 아가씨로군. 폐하께서 화를 낸다는 말에 겁을 먹는 것도 당연하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오. 내가 있는 한 소 승상도 감히 당신을 괴롭히지 못할 거요. 광원사에 가도 좋지만, 혼자 가지는 마시오.

며칠 뒤, 내가 시간이 되는대로 당신을 데리고 먼저 주지 스님을 만나겠소. 주지 스님께 당신 어머니를 위해 법사를 해달라고 하지.”

“대장군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월령안은 계속해서 고개를 숙인 채 그의 훈계를 들었다. 속으로는 참지 못하고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육장봉이 나한테 훈수 두는 데 재미가 들렸나? 대청마루 앞에선 자식을 가르치고, 잠자리에선 아내를 가르친다더니. 지금 나를 딸처럼 생각하고 가르치려 드는 건가?’

월령안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육장봉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의 차가운 모습 뒤로, 아버지 같은 마음을 품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이 자신을 직시하지도 못하고 몰래 훔쳐만 보자, 더더욱 그녀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월령안도 날 너무 옹졸하게 보는군. 내가 그렇게 속 좁은 사람도 아닌데.’

월령안은 뒤에서 그의 욕을 몇 마디 했을 뿐이다. 그는 이까짓 일로 화를 낼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육장봉은 자신이 화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월령안이 몰랐으면 했다. 그녀가 또 기어올라, 더욱 방자하게 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에게 보상을 해 줄 방법을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육비우가 사람을 끌고 와 당신의 집을 부순 건 그놈의 잘못이 맞소. 나도 내 가족이라고 해서 잘못한 일을 봐주는 사람이 아니오. 배상은 배상이고, 예의도 차릴 건 차려야지. 내일은 외출하지 마시오. 내가 육비우를 데리고 사과하러 오겠소.”

“비우 도련님이…… 사과를 할까요?”

월령안은 정말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육장봉이 이렇게 사리에 밝은 사람이었다고? 내가 알던 육장봉이 맞나?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가짜는 아니겠지? 귀신이 변한 건 아니겠지?’

지금의 육장봉하고는 말이 너무 잘 통했다!

“그놈이 감히 안 오고는 못 배길 거요.”

육장봉은 차갑게 대꾸했다.

“내일 기다리기만 하면 되오.”

육장봉이 평소대로 돌아오자, 월령안은 몰래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내 눈앞의 육장봉은 원래의 육 장군이 맞네. 귀신이 변한 게 아니었어!’

월령안은 자신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육장봉은 그녀의 조그마한 동작까지 전부 눈여겨보았다. 굳이 힘들여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가식을 벗어 버린 진짜 월령안은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군.

어쩐지, 이러니까 조왕이 매번 월령안에게 호되게 당하고 화를 펄펄 내다가도, 자학하듯 또 찾아갔겠지…….’

이 육장봉은 월령안이 알던 대마왕 같은 육장봉이 맞았다. 그의 본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좋은 말을 늘어놓는 것을 보니, 분명 무슨 귀신이라도 씐 게 분명했다.

월령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오른손을 묵묵히 들어 올렸다. 육장봉이 나중에 그녀에게 따지지 못하도록 먼저 입을 열었다.

“대장군,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어요.”

육장봉이 먼저 육비우를 데리고 사과하러 오겠다고 했다. 그녀도 성의를 보여야 했다.

게다가 그 일을 은밀하게 처리한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일이 터지면 육장봉이 반드시 밝혀낼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 자수하고 용서를 받는 편이 나았다.

“무슨 일인가?”

‘월령안이 나 모르게 뒤에서 육비우에게 농간이라도 부린 걸까?’

하지만 전혀 놀랍지 않았다. 손해를 보고도 반격하지 않는다면 월령안이 아니었으니까.

“그게……. 비우 도련님의 외숙부인 주모가 도박을 좋아하잖아요? 며칠 전, 제가 길상 도박장의 집사를 매수하여 주모가 도박을 하도록 유도하라고 했어요.”

말을 마친 월령안은 육장봉이 입을 열기 전에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시인했다.

“대장군,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그렇게 옹졸하게 비우 도련님에게 보복하면 안 되는 건데. 지금 당장 길상 도박장 집사에게 그만두라고 말할게요. 대장군, 제가 잘못을 시인했으니 연약한 여인이랑 따지지 말고 너그럽게 넘어가 주세요.”

월령안은 아주 깨끗하게 잘못을 시인했다. 그리고 내놓은 대책도 아주 적절했다.

그러나 월령안의 예상과 달리, 육장봉은 화를 내지도 않고 가볍게 넘겼다.

“주모가 도박을 좋아한다고? 넷째 숙모가 이 일을 꽁꽁 잘 숨겼군. 숙모가 이 몇 년 동안, 당신에게서 돈을 빌려 주모의 노름빚을 갚은 거로군?”

“네.”

월령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부인은 주모가 도박을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세요. 주모는 아주 교활해요. 도박장에는 절대 가지 않고 사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 하고만 도박판을 벌이지요. 사부인은 줄곧 주모가 운이 나쁘고, 남들에게 속아서 장사하다 손해를 본 줄로만 알아요.”

예전에 사부인은 제일 잘되는 장사를 주모에게 넘겨주라고 압력을 넣은 적이 한 번 있었다. 월령안이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몰아붙이기도 하고, 구슬리기도 하더니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주모와 함께 장사를 하여, 그가 돈을 벌게 하라고 했다.

그동안 월령안은 정말 사부인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렸다. 그러나 육장봉의 넷째 숙모이니 심하게 대하지는 못했다. 언짢아도 꾹 참고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 삼 년 동안, 월령안은 육씨 가문 안에서 늘 자기 뜻을 꺾고 일을 좋게 좋게 해결했다. 큰돈을 뿌리며, 육씨 가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들은 말이라고는 장사꾼 출신이라 공개석상에 내놓기 부끄럽다고, 육씨 가문 부인이 되기에 부족하다는 소리뿐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자신의 멍청함과 아둔함에 그저 웃고만 싶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보물처럼 아꼈다. 욕 한마디 한 적도, 매 한 번 제대로 든 적도 없었다. 그분들은 그녀를 위해 목숨마저 아낌없이 내던졌다. 그런데 그녀는 한 남자에게 빠지는 바람에 자신을 끊임없이 비하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지난 삼 년 동안 무슨 마가 끼었던 모양이다.

육장봉을 위해 모든 걸 바쳤고, 모든 것을 감내했다. 이러한 행동에 육장봉과 육씨 가문이 감동할 줄 알았다.

그러나 희생과 서러움을 참으며 인내한 나날에 감동한 사람은 오로지 월령안, 자신뿐이었다.

‘내가 진짜, 멍청해도 정도가 있지!’

순간, 월령안은 육장봉을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자,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육장봉은 높은 지위와 막대한 권력을 가진 대장군이었다. 그녀가 육장봉을 좋아하든 말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소 승상과 척을 진 지금, 육장봉과의 관계마저 틀어질 수는 없없다.

심지어 소 승상을 제거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내키지 않더라도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육장봉에게 잘 보여야 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해서 적을 물리쳐야 했다. 아는 사람 중, 가장 높은 관직과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육장봉이었다. 그녀는 육장봉의 세력을 빌려 소 승상에게 대항해야 했다.

그리고 육장봉이 월령안을 좋아하지 않는 게 잘못은 아니었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먼저 베풀었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희생했다. 하지만 육장봉이 이를 원했는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녀가 정말 원망하고 싶다면, 자신을 먼저 원망해야 했다. 육장봉을 원망할 자격도 없었다.

월령안은 한숨을 내쉬면서 마음속에서 고개를 쳐든 자기혐오를 꾹 억눌렀다. 정신을 차리고 육장봉을 마주했다.

육장봉은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가, 슬퍼했다가, 또 지금은 활짝 웃는 것을 보자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사람의 표정이 어떻게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나?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기분이 여러 번 바뀔 수가 있나?’

월령안은 참 흥미로운 사람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월령안과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제대로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흠흠!’

육장봉은 자기 생각이 너무 멀리 간 것을 알아채고 정신을 다잡았다.

“이런 속임수를 써서 주모가 돈을 얼마 정도 잃게 할 생각이었소? 또 당신 돈은 얼마나 썼소?”

“십만 냥이에요! 제가 길상 도박장 집사한테 주모가 십만 냥을 잃게 해달라고 했어요. 전 집사에게 만 오천 냥을 주기로 했고요.”

육장봉이 조사라도 한다면 밝혀질 일이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조사해서 밝혀낼 수 있는 일에는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했다. 들통날 수 있는 거짓말도 최대한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화풀이를 하는데 만 오천 냥이나 쏟아붓다니. 상인답지 않군.”

육장봉은 월령안의 속셈을 알아낸 뒤, 그녀의 관점에서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입을 열자마자 또 오만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상인을 무시하는 발언은 아니었다 해도 경멸을 담은 말투였다.

다행히 월령안은 마음이 넓었다. 아니, 지금의 그녀는 육장봉이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를 예전만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겉으로나 속으로나 전혀 불만이 없었다.

육장봉의 질문을 들은 월령안은 한담하듯 말했다.

“누구나 자기 방식이라는 게 있는 법이죠. 일개 여자 상인인 저로서는 돈을 써서 화풀이하는 것 말고는 도저히 다른 수가 없었어요. 돈을 좀 써서 제 마음이 풀린다면 오히려 이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돈을 버는 목적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니까요.”

여기까지 말한 월령안은 싱긋 웃었다.

“만약 다른 이유가 있다면 억울해도 꾹 참겠지만요. 돈이 아깝다고 서러움을 참으라니, 그럼 그 많은 돈을 벌어다 어디 쓰라고요?

사람이 평생 먹고 쓰는 돈은 고작 이만큼인데, 그쯤은 제가 손만 까딱하면 벌 수 있는 돈이에요. 만약 생계만을 위해 돈을 버는 거였다면 전 진작에 장사를 그만뒀겠죠. 제가 이렇게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예요. 더 자유롭고, 더 마음껏 살 수 있도록요.”

‘재력이 어느 선까지 쌓여서 내가 부(富)의 정점에 서기만 하면, 나도 권세를 움직일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올해 열여덟 살이었다. 태어나서 팔 년 동안은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보호를 받으며 근심 걱정 없이 자라났다.

그 뒤의 십 년은 육장봉을 위해 살아왔다. 여기저기 부딪히며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닥치는 대로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 십팔 년, 이십팔 년, 심지어 삼십팔 년, 사십팔 년 뒤에도, 그녀는 부의 정점에 서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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