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72)화 (72/1,004)

72화 육장봉의 목적

소 승상은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너무 화가 나서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육장봉, 이 소인배! 집까지 찾아왔으면 분명 나한테 바라는 게 있다는 뜻이렷다! 그런데 일각도 못 기다려? 게다가 추밀원에 가서 내 딸을 무고해? 이 뻔뻔한 놈!’

“어서 소 소저를 불러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실 거면 저희를 나무라지 마십시오.”

추밀원 관리들은 소 승상과 육장봉의 원한 관계를 신경 쓰지 않았다. 부사가 분부한 일을 반드시 실행해야만 했다.

추밀원에서 체포하려는 사람은 소 승상의 친딸이자, 소씨 가문의 큰아가씨였다. 소 승상은 당연히 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관리들도 소 승상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소 승상이 협조하지 않자, 가차 없이 말했다.

“소 승상, 이번에 소인들은 저녁에 인적이 없는 때를 골라 조용히 왔습니다. 만약 오늘 체포하지 못하면, 다음번에도 이처럼 조용히 온다고는 약속드릴 수 없습니다.”

“이놈들이…… 방자하다!”

소 승상은 화가 치밀어 몇 번이고 울화통이 터질 뻔했다.

‘고작 오품 관리 두 놈이 감히 승상을 위협해?’

두 관리도 어쩔 도리가 없는지, 서로 마주 보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소 승상, 이 사건은 육 대장군께서 직접 고발하시고, 부사께서 직접 처리하신 일입니다. 저희를 난처하게 하지 마시지요.”

두 관리는 소 승상에게 거의 대놓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있으면 육 대장군하고 추밀원 부사에게 호통치시지요. 저희 같은 아랫것들에게 분풀이하지 마시고요. 저희는 누구에게도 잘못한 게 없습니다만?’

소 승상도 하급 관리 둘을 괴롭히는 건 체면을 구기는 짓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고발한 육장봉이나, 사람 잡으러 온 두 관리나, 모두 승상의 체면을 짓밟고 있는 것은 똑같았다!

소 승상은 심호흡하면서 겨우 노기를 가라앉히고 말했다.

“알겠으니 자네들은 먼저 돌아가게. 내일 내가 직접 딸을 데리고 추밀원으로 가겠네.”

여하를 불문하고, 이까짓 하급 관리 둘이 함연이를 추밀원으로 끌고 가게 둘 수는 없었다.

추밀원이 어떤 곳인가? 양갓집 규수가 어찌 그런 곳에 갈 수 있겠는가? 무죄라 하더라도, 걸음 한 번 했다가는 명성이 땅에 떨어질 것이다.

‘내 딸은 월령안처럼 비천하고 하찮은 계집이 아니다!’

“이런…….”

두 관리는 난감해서 어쩔 줄 몰랐다.

“자네들을 난처하게 할 생각 없네. 내가 곧 육 대장군을 찾아가겠네.”

육장봉이 그의 체면을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 정말로 그의 사정을 봐주지 않을 작정이었다면, 오후에 먼저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추밀원의 두 관리도 소 승상의 노여움을 사는 게 싫었던 터라, 서로 시선을 주고받고 말했다.

“그럼 알겠습니다. 시간을 하루 드리겠습니다. 내일…… 만약 소 소저께서 추밀원에 오지 않으면, 저희가 다시 찾아올 겁니다.”

단, 다시 올 때는 이 둘만 오지는 않을 것이다.

“고맙네.”

소 승상은 두 사람에게 공수하고, 집사에게 배웅하라고 했다.

추밀원의 두 관리를 보내자마자, 소 승상은 굳은 얼굴로 하인에게 분부했다.

“가서, 큰아가씨를 모셔오거라!”

“네, 나리.”

하인은 명령을 받들고 물러갔다.

소 승상은 화청에 자리를 잡았다.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눌렀다.

육장봉이 왜 갑자기 자신의 딸을 겨냥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목표가 결코 자신의 딸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딸이 변방에서 사고를 쳤다면, 육장봉이 왜 이제야 손을 쓴다는 말인가?’

“육장봉의 목적은 무엇이지?”

소 승상은 얼굴을 굳히고서 최근 발생한 일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다. 그래도 짚이는 곳이 없었다. 유일한 가능성은 육비우가 소함연에게 장가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 승상이 알기로는, 육비우가 소함연이 아니면 혼인하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육장봉도 전혀 막지 못했다.

게다가 육장봉이 정말로 혼사를 막을 작정이었으면, 애초에 성지를 막으면 되었다.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기운을 뺄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함연이가 육비우에게 시집가는 걸 막으려는 게 아니면, 도대체 무슨 이유란 말인가?”

소 승상은 생각할수록 오리무중에 빠졌다. 그러나 육장봉이 원하는 게 있다는 것만은 확신했다.

이때, 하인이 보고했다.

“나리,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들라 해라!”

소 승상은 정신을 차렸다. 얼굴의 어두운 기색도 거두었다.

소함연은 아리따운 모습으로 사뿐사뿐 들어왔다. 예쁜 얼굴에 살짝 불쾌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아버지, 무슨 일로 절 찾으셨어요?”

“함연아, 너 변방에서…… 혹 북요인들과 접촉한 적이 있었느냐?”

소 승상은 딸이 왜 불쾌해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몇 마디 위로해 주었을 테지만, 오늘은 도무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북요인이요? 없어요!”

소함연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나 그녀는 재빨리 머리를 저어 부정했다.

“제가 어찌 북요인들과 접촉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소 승상이 어떤 사람인가? 소함연이 무언가를 숨긴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소 승상은 바로 얼굴빛을 흐리며 엄숙하게 말했다.

“육장봉이 네가 북요인과 밀접한 왕래가 있다고 고발했다. 이게 무슨 죄인 줄은 알고 있겠지?”

“대장군……. 그분께서 어찌?”

소함연은 눈이 휘둥그레져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 심한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듯, 커다란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가냘픈 몸을 흠칫 떨었다.

“아버지, 저한테 거짓말하시는 거죠? 대장군, 그분이 절 이렇게 대할 리가 없어요!”

“함연아, 앞으로는 육장봉을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된다. 육장봉은 너와 다른 부류의 사람이야. 명심해라. 네 약혼자는 육비우다!”

소 승상은 눈을 부라리며 소함연에게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소함연은 말을 듣지 않았다. 소 승상의 옷소매를 잡아끌며 애교를 부렸다.

“아버지, 육비우에게 시집가기 싫어요. 저는 육비우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요. 육비우 같은 바보에게 시집가기 싫어요. 저는 육 대장군께 시집가고 싶단 말이에요. 아버지께서 대장군을 좀 설득해 보세요, 네?”

“육장봉은 너를 맞아들이지 않을 거다. 넌 그놈의 말을 잊었느냐? 월령안을 내쳐도 자기 아내의 자리는 영원히 월령안을 위해 남겨 두겠다고 했지. 그런데도 육장봉에게 시집가겠다니, 첩실로 들어가겠다는 셈이냐?”

눈앞의 사랑스럽고 예쁜 딸을 보고 있으려니, 소 승상 마음속의 노기도 조금 누그러졌다.

‘내 딸이 어찌 북요인들과 왕래할 수 있단 말인가. 육장봉,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우다니!’

“아버지, 대장군과 잘 얘기해 보시면 안 돼요? 저는 원래 대장군과 약혼했었잖아요. 약혼한 대로 절 맞아들였어야지, 월령안을 맞아들인 건 잘못이었다고요. 보세요. 대장군께서는 돌아오시자마자 월령안을 내치셨잖아요. 월령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뭐겠어요.”

소함연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소 승상의 옷 소매에 매달려 연신 애교를 부렸다.

소 승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아비도 너를 육장봉에게 시집보내고 싶다만……. 육장봉은 널 맞아들이지 않을 거다.”

소 승상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육장봉의 눈에는 자신의 딸이 얼간이로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소 승상이 월령안을 아무리 싫어한다 해도,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자기 딸은 월령안보다 신분 빼고는 나은 게 하나도 없었다. 월령안도 눈에 차 하지 않는 육장봉이 어찌 자기 딸을 마음에 들어 하겠는가.

“그럼 저는 어떻게 해요? 저를 진짜 육비우 그 멍청이에게 시집보내시려고요? 육씨 넷째 집안은 거지가 되어 예물을 보낼 돈도 없을 거라고요. 절 그런 집안에 시집보내실 건 아니죠?”

소함연은 육비우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소 승상도 원래는 육비우가 눈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감히 싫다고 할 처지도 못 되었다.

소 승상은 얼굴을 구기고 말했다.

“함연아, 변방에서 북요인들과 왕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실하게 말해 다오.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절대 이 아비를 속여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 일이 터지는 경우, 아비도 널 감싸주지 못해.”

“제가 없다고 했잖아요. 왜 계속 물으세요! 저를 믿지 못하시는 거예요?”

소함연은 소 승상의 옷소매를 확 뿌리치고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크게 상처를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함연아, 너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단지 이 일이 아주 심각한 일이라 그런다. 반드시 사실을 확실히 파악하고 나야 육장봉을 찾아가 따질 수 있어.”

소 승상은 꾹 참고 소함연을 위로했다.

“저는…….”

소함연은 흠칫하더니, 순간 갈등에 빠졌다.

그녀가 망설이며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하나 궁리할 때였다. 갑자기 회색 옷차림의 하인이 문가에 나타나 다급히 말했다.

“나리, 소인이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아주 급한 일입니다!”

소 승상이 이를 보고는 불안감에 싸였다. 더는 소함연에게 따져 묻지 않고 일단 돌려보냈다.

“함연아, 아비가 처리할 일이 생겼구나. 먼저 물러가 있거라.”

“네, 아버지.”

소함연은 기쁜 나머지, 무릎을 살짝 굽혀 인사하고는 냉큼 나가 버렸다.

소함연이 떠나자 회색 옷차림의 하인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소 승상 앞에 털썩 무릎을 꿇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나리, 어젯밤에 도둑이 들어 유씨의 관을 훔쳐 갔습니다!”

“뭐라고? 유씨의 관을…….”

유씨는 월령안의 모친이었다. 소 승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탁자를 탁, 치며 벌떡 일어났다.

“너희는 멍청이냐? 도둑이 들 때까지 뭣들 한 게야? 내가 뭐라고 당부했는지 잊었느냐? 이놈들이…… 정말 죽여도 시원찮겠구나!”

“나리, 용서해 주세요. 그자는 고수여서 저희는 아예 상대도 되지 않았습니다.”

회색 옷차림의 하인은 고개를 더욱 떨구며 변명했다.

“고수? 월령안이 찾은 사람이냐? 아니지, 그 계집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손을 쓰려면 진작에 썼겠지.”

소 승상의 노여움은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육장봉! 맞아, 그놈이 맞을 거야! 왜 갑자기 함연이에게 손을 썼나 했지. 이제 보니 월령안 때문이었네. 월령안한테 아주 애정과 의리가 넘치는구먼.”

소 승상은 크게 화가 나, 이를 갈았다. 보통 화가 난 게 아닌 듯싶었다.

그의 발치에 꿇어앉아 있던 하인은 이 말을 듣자, 몰래 안도의 힌숨을 내쉬었다.

‘나리가 범인을 찾았으니 우리 목은 잠시나마 안전하겠구나…….’

소 승상은 깊이 한숨을 쉰 후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여봐라, 가마를 준비하거라. 육씨 저택으로 가야겠다!”

‘육장봉은 여기가 자기 멋대로 휘젓던 변방인 줄 아는 건가? 나 소희가 오늘 육장봉에게 사람 구실 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겠구나!’

소 승상은 날이 저문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인에게 가마를 내오라 해서 육씨 저택으로 찾아갔다.

육씨 저택에 도착한 소 승상은 하인들이 육장봉에게 말을 전하기도 전에 그들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소 승상이 여러 번 밀쳤는데도 그의 앞을 막아선 하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 승상은 무안해서 얼굴을 붉히고 큰소리로 욕을 해댔다.

“이놈이……! 이 빌어먹은 종놈이! 당장 물러서지 못할까!”

하인들도 감히 소 승상을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다만 공손하게 그의 앞을 막고 있을 뿐이었다.

“승상,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장군께서 곧 나오실 겁니다.”

소 승상의 얼굴은 뻘겋게 달아올라 금세 피라도 쏟을 것 같았다. 그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육장봉! 썩 나오지 못할까! 소 승상이 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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