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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7)화 (67/1,004)

67화 황궁의 밀실

철광산 건은 미리 대책을 세워 잘 처리해 두기는 했다. 그러나 육장봉의 말대로, 그녀가 전선에 보낸 병기들을 실마리 삼아 하나하나 역으로 조사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육장봉이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철광산의 존재는 절대 들키면 안 되었다. 그러니 추수와 상천을 보냄으로써 육장봉, 황제, 조계안의 시선을 북요, 금나라 그리고 소 승상에게로 돌려놓아야만 했다.

황제나 육장봉이 어떻게 추측을 하든,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든 상관없었다. 다만 철광산과 그 증거를 찾지 못하기만 하면 됐다.

“모든 게 순조롭기를.”

철광산 건을 떠올리자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그 철광산은 그녀의 정수리에 드리워진 예리한 검 같았다. 하루빨리 황제와 육장봉이 의심을 접게 하지 않으면, 날마다 간담을 졸이며 살아야 했다.

후환을 뿌리 뽑으려면 아무리 위험해도 상천과 추수를 보내, 황제와 육장봉의 시선을 돌려 의심을 거두게 해야 했다. 그들이 더는 의심하지 않는 때가 오면, 철광산을 소유한 그녀로서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다.

* * *

황궁. 육장봉은 입궁하자마자 바로 난각으로 황제를 찾아갔다. 그리고 월령안이 들려준 이야기를 일일이 보고했다.

물론, 그가 월령안처럼 성실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보일 수는 없었다. 사실대로 이야기하면서도 줄곧 월령안을 편들었고, 그것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나자, 황제가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계안이 그놈도 참……. 어린 아가씨를 괴롭히고도 뭘 잘했다고!”

“조왕이 너무했습니다. 철광산을 내놓으라고 압박을 하더라도, 그렇게 월령안을 기녀 취급을 하며 수모를 주어서는 안 됐습니다.”

육장봉은 이를 악물고 거의 한 글자씩 뱉어내듯이 말했다. 황제가 끼어들 여지도 주지 않고, 얼굴을 굳힌 채 말을 이었다.

“폐하. 월령안이 잘못했다고 해도, 저에게 시집와서 삼 년 동안 저의 아내로 지냈습니다. 조왕이 이렇게 월령안을 모욕했는데, 이게 저를 모욕한 것과 뭐가 다릅니까?”

육장봉이 화를 내자, 황제는 난처해져서 육장봉을 달랬다.

“장봉아, 너도 알잖느냐. 계안이가 장난도 심하고, 그냥 생각한 대로 다 내뱉지 않느냐. 다른 뜻은 없었을 거다.”

황제도 정말 피곤했다. 아직 조계안을 달래지도 못했는데, 육장봉마저 성을 내고 있었다.

육장봉이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다른 뜻이 있는지 없는지는 폐하가 아니라, 조왕이 직접 말을 해야지요.”

조계안이 자신을 겨냥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무심코 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특히 지난 이 년 동안, 조계안의 행패는 점점 더 심해졌다.

황제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네가 계안이를 나오게만 하면, 어떻게 혼을 내도 상관없다.”

설령 육장봉이 주먹질을 한다 해도 봐줄 생각이었다.

그의 아우는 최근 들어 성격이 점점 더 괴팍해졌다. 무슨 일인지 날마다 언짢은 얼굴을 했고, 조금만 성에 차지 않아도 화를 냈다. 요즘은 황제조차도 조계안에게 언성을 높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명색이 황제인데,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얼마나 답답한지 모른다. 그래도 할 수 없었다.

황제는 조계안보다 일각 먼저 태어났다. 그 바람에 조계안은 어린 시절을 빛이 들지 않는 밀실에서 보내야 했다. 커서도 빛을 볼 수 없었다.

자신이 황위에 올라서야, 조계안을 왕으로 책봉했다. 조야에서도 조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조왕을 만나본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추밀원 부사라는 직무라도 없었다면, 조계안은 암흑 속에 갇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황제도 자신이 조계안에게 빚지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생이 늘 안쓰러웠다.

그래서 사직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조계안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눈감아 주었다. 좌우지간 자신이 황제이니, 그가 아무리 큰 사고를 쳐도 감싸 줄 수 있었다.

육장봉은 황제, 조계안과 함께 자랐다. 그러다 보니 황제의 속마음도 잘 알았다. 그래서 평소에는 조계안과 다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조계안의 어린 시절은 자신보다 나을 게 없었다. 둘은 오랜 세월을 동병상련하며 살았다. 그러나 결국 서로 다른 길을 택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평소와 달랐다. 조계안이 도를 넘었다. 육장봉도 더는 봐주지 않을 셈이었다.

마침 황제도 입을 연 참이었다. 육장봉은 더 사양하지 않고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폐하께서 그리 말씀하셨으니, 저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겠습니다. 지금 바로 조왕에게 따질 겁니다. 월령안을 모욕함으로써 저까지 모욕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물어야겠습니다.”

“네가 계안이를 나오게만 해 준다면, 그 녀석을 흠씬 두들겨 주더라도 찬성하마.”

황제도 뒤따라 일어섰다.

육장봉이 냉소를 지었다.

“조왕을 불러내는 건 아주 쉽습니다.”

황제가 다급히 물었다.

“어떻게 할 셈이냐?”

육장봉은 예전에 한동안 조계안과 함께 밀실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황제보다 밀실의 상황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황제는 그 밀실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다.

“신과 함께 가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육장봉은 몸을 한쪽으로 틀며, 황제에게 권유하는 몸짓을 해 보였다.

황제도 그 밀실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더는 생각하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황제가 어려서 머물던 궁전은 비교적 외진 곳에 있었다. 즉위한 뒤, 그 궁전은 비어 있었다. 평소에는 심복을 두어 청소하고 지키도록 했을 뿐이다.

황제와 육장봉이 다다랐을 때, 궁전에는 시위 두 명과 내관 한 명뿐이었다. 세 사람은 황제를 보자 서둘러 예를 올렸다. 황제는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손을 저으며 명령했다.

“모두 물러가거라. 아무도 접근해서는 안 된다!”

“네, 폐하.”

세 사람은 이미 이런 일이 익숙했다. 황제는 이곳에 오면, 모든 사람을 내보내고 아무도 접근하지 못 하게 했다.

그들은 허리를 굽힌 채 물러갔다. 황제와 육장봉 두 사람만 남았다.

육장봉은 익숙하게 정전(正殿)의 침실로 다가갔다. 여기는 황제의 모비(母妃)의 침실이었다. 침실 안쪽에는 조계안이 어린 시절을 보낸 밀실이 있었다.

황제의 모비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 후에도 침실 안은 모비가 살아 있을 적 이용하던 대로 유지되어 있었다. 실내 장식도 황제의 눈에 익은 모습 그대로였다.

침실에 들어선 황제는 낯익은 방을 둘러보고는 가볍게 탄식했다.

“예전에 짐과 모비, 계안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저녁에 아랫사람들을 모두 쫓아내고, 셋이서 침대에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하는 거였다. 그때가 되면 계안이도 아주 좋아했지. 하루 중 밀실에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으니까.”

황제는 지난 일을 추억하며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떨쳐버릴 수 없는 서글픔도 내보였다.

“짐은 그때 여러 번 생각했었다. 그 애가 나 대신 자유롭게 햇빛 아래서 생활하게, 하루만이라도 계안이와 바꾸면 어떨까. 하지만 그때의 짐은 용기도 없고 나약했었다. 단 하루만 바꿔도 그게 진짜로 바뀌어서, 내가 계안이처럼 영영 그 문 뒤에서 살게 될까 봐 두려웠어.”

이런 말은 육장봉 앞에서나 할 수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비열하고 나약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 앞에서도 인정할 수 없었다.

“폐하, 모두 지나간 일입니다.”

육장봉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모두 지나갔지. 그런데…… 짐은 여전히 계안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구나. 짐이 즉위하여 황제가 되어도, 짐이 온 세상을 다 가져도, 여전히 계안이를 태양 아래 드러내 놓고, 진정한 신분을 인정해 줄 수 없으니까 말이다.”

황제는 밀실 문 앞에 걸어가, 돌문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머금었다. 담이 작고 나약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하루라도 갇힐까 두려웠다. 그러니 계안이는 어떠했겠는가? 그 작은 밀실에서, 육 년 내내 갇혀 지내느라 얼마나 두려웠을까?’

육장봉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저었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이 적당히 하겠습니다.”

황제가 이런 말을 처음 하는 게 아니었다. 그의 뜻을 모를 리 없었다. 황제가 자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조계안의 편을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황제는 독단적인 패왕도, 냉혹하고 무정한 군왕도 아니었다.

유년기에 주목을 받지 못한 탓인지도 모른다. 즉위했을 때도 너무 어리다 보니, 태후가 줄곧 권력을 장악했다. 황제는 대신들 앞에서 강압적인 군왕이 아니었다.

나중에 태후가 조정에서 물러나기는 했으나, 대신들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은 황제가 집정하고, 발언권도 점차 강해졌다. 그러나 아직 독단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는 이르지 못했다. 무슨 일이든 대신들을 달래고, 서로 타협해야만 했다.

어떤 면으로는 월령안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필요에 따라 체면을 내세울 수도, 신분을 내려놓을 수도 있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려움도, 고통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황제가 만만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여러 가지 일이 은연중에 황제의 의지대로 진행되었다. 황제의 계략에 걸린 사람도 불쾌해하기는커녕, 오히려 황제가 자신을 존중한다고 여길 정도였다.

바로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다. 육장봉은 황제가 고의로 어려움을 토로하고 조계안을 위해 사정하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를 만족시키기 위해, 거절하지 못하고 한발 물러서야만 했다.

그래도 황제는 만족하지 못했다.

“안 때리면 안 되겠느냐?”

“폐하께서는 저의 체면이 아무렇게나 짓밟혀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육장봉이 되물었다.

“계안이가 얘기한 건 월령안이지, 네가 아니잖느냐. 너도 깊게 생각하지 마라! 장봉아, 우리는 형제가 아니더냐. 형제끼리 그렇게 선을 딱 긋지는 말자꾸나.”

황제는 무던한 성격의 소유자답게 그를 설득했다.

육장봉은 바로 얼굴빛을 굳혔다.

“폐하, 조왕을 불러 나오게 할까요, 말까요?”

육장봉은 ‘불러’라는 단어에 유난히 강세를 주었다. 강을 건너기도 전부터 다리를 부수지 말라며, 황제를 일깨웠다.

조계안은 아직도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육장봉이 없으면 황제가 목이 터져라 불러도, 조계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게 뻔했다.

황제는 눈을 질끈 감고,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알겠다. 그래도 살살 해라!”

‘차라리 보지를 말자! 안 보면 모르는 거고, 모르면 속상할 것도 없겠지.’

육장봉이 대답했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계안을 딱 반쯤만 죽여 놓고 황제에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

“짐은 밖에서 기다리마.”

황제는 생각 끝에 멀리 떨어져 있기로 했다. 가까이 있으면 속상해진 나머지 말리려 할 것이 뻔했다. 또 조계안이 밀실에서 나와 자신을 보고 언짢아할까 두려웠다.

밀실은 조계안의 영역이었다. 그 자신과 육장봉을 제외하면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 설령 그의 쌍둥이 형인 황제라고 해도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했다.

“네.”

육장봉이 대답했다. 그리고 황제가 나간 다음에야 밀실 문에 대고 말했다.

“조계안, 듣고 있는 거 다 안다. 향 한 대 탈 만큼의 시간을 주마. 그 뒤에도 나오지 않으면 날 원망하지 마라.”

육장봉은 어릴 적 조계안과 밀실에서 한동안 지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밀실 안에서는 바깥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지만, 바깥에서는 밀실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밀실의 문을 안에서 잠그면, 어떻게 열어야 할지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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