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66)화 (66/1,004)

66화 육장봉의 약점

월령안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 갔다. 자신의 얘기가 아닌, 방관자의 태도로 어떠한 감정도 싣지 않았다.

“그래서 조 대인께 춘회루에 가시라고 권했어요. 조 대인은 불쾌해하면서 다시는 어머니의 시신을 볼 생각도 하지 말라 하시더니, 문을 쾅 닫고 나갔어요.”

월령안은 사실을 과대 포장하지도, 축소하거나 생략하지도 않았다.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술했다.

어제저녁에 벌어진 사건의 다른 한 당사자는 조계안이었다. 사실을 과대 포장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터였다. 이럴 때는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것뿐이오?”

육장봉은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말투도 차갑기 그지없었다. 당장이라도 사람을 죽일 기세였다.

월령안은 여전히 원래의 모습을 유지했다. 안색도 변하지 않았다. 신분의 차이를 유념하며, 겸손하게 고개를 반쯤 숙이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소녀는 토씨 하나 빠뜨리거나 더함 없이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믿기 어려우시면 조 대인께 확인하셔도 됩니다.”

“당신을 믿소!”

육장봉이 살기등등해서 대답했다. 대단히 화가 난 상태였다.

단, 이번에는 월령안이 아니라 조계안 때문이었다.

‘조계안, 이 미친놈!’

밤중에 뛰어들어 월령안을 위협한 것도 모자라, 황제의 궁전을 부수고, 밀실에 틀어박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월령안이 아직 황제에게 쓸모가 있어 다행이었다. 황제는 조계안이 월령안을 만난 직후 보인 행동을 보고 놀랐었고, 그녀를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만으로 월령안의 목숨을 거둘 수도 있었다.

황제는 잔혹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계안이 관련된 일에는 언제나 시야가 좁아졌다. 심지어 조계안을 자극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골백번은 더 죽일 수 있었다.

‘조계안 이놈은 자기 이기심 때문에 하마터면 월령안이 죽을 뻔했단 걸 알기가 할까?’

월령안은 눈을 내리깔고, 목각 인형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이 조용히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육장봉은 조금 가라앉은 노기가 다시 치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제저녁 월령안이 조계안에게 그렇게 수모를 당하고도, 그를 자극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게 된 것을 생각하자 심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얼마나 억울할까?’

궁에서 아직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황제가 떠올랐다. 육장봉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월령안에게 한마디 건넸다.

“심씨 가문의 일은 내가 이미 처리했소. 이변이 없으면, 이달 말 전에는 결과가 나올 거요.”

“감사합니다. 대장군.”

월령안도 몸을 일으켜 육장봉에게 읍을 했다.

“대장군의 말 두 필은 어디로 보내 드릴까요?”

일을 해 주었으니,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일단은 기르고 있으시오.”

말 얘기가 나오자, 육장봉은 그녀가 육십이에게 선물한다고 약속한 오추마가 떠올랐다. 육십이, 이 눈치라고는 약에 쓰려 해도 없는 놈이 그 오추마의 이름을 오운답월(烏雲踏月)이라고 지었다.

‘그놈이 ‘답월’이라는 이름을 짓는 게 가당키나 한가?’

육장봉은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말의 이름은 내가 이미 지었소. 하나는 오운(烏雲)이고, 다른 하나는 답월(踏月)이요!”

“네, 대장군.”

월령안은 고개도 들지 않고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 두 이름을 들으면 월령안이 반응을 좀 해 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전히 목각 인형처럼 생기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차올라, 육장봉은 옷소매를 떨치며 자리를 떴다.

“대장군, 안녕히 가십시오.”

육장봉이 문턱을 넘어섰는데도 월령안은 예를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더는 꼬투리를 잡히지 않을 생각이었다.

월령안은 줄곧 허리 굽힌 자세를 유지했다. 육장봉이 멀어지고 나서야 천천히 허리를 폈다. 표정도 서서히 드러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반짝이는 검은 눈망울에는 뼛속까지 파고들 듯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육장봉!”

그녀는 붉은 입술을 달싹이며 육장봉의 이름을 되뇌었다. 이제 더는 애틋함, 미련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냉정함과 분노뿐이었다. 그녀가 홱 돌아서자 치맛자락이 펄럭이며 내려앉았다.

탕!

월령안은 윗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탁자를 세차게 내리치고, 목소리 높여 불렀다.

“집사!” 

월령안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마치 출정하는 장사처럼 기세가 드높고, 살 떨리는 살기까지 뿜어져 나왔다.

집사는 놀라 흠칫했다. 재빨리 달려가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아가씨!”

“육비우의 외숙부인 주모(朱冒)라는 사람, 노름꾼이 맞지?”

드디어 월령안이 웃었다. 이 순간의 웃음에는 사악함마저 띠고 있었다.

월령안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웃음의 의미를 알 것이다. 지금 그녀는 함정을 파고 있었다. 다시 말해, 누군가는 봉변을 당하리라는 의미였다.

“네, 맞습니다!”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주모는 평소 노름을 좋아하기는 해도, 도박장을 찾은 적은 없었다. 사사로이 도박판을 벌여 비밀리에 노름하는 쪽을 선호했다. 그들은 판이 컸으며, 돈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걸고 도박했다.

“길상(吉祥) 도박장의 진짜 주인은 장군왕(莊郡王)이 확실한가?”

월령안은 한 손을 탁자 위에 얹어 두었다. 그 모습에서는 단정함보다는 오히려 안하무인의 패기가 엿보였다. 눈빛에도 고요한 웃음기 대신 살기가 가득 어려 있었다.

지금의 그녀야말로 상업계의 승부사, 대적할 사람이 거의 없는 월령안이었다.

“아가씨의 기억이 맞습니다. 길상 도박장의 진짜 주인은 장군왕입니다.”

집사가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아가씨는 상업계에서라면 모르는 게 없었다. 변경 상업계의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녀의 예리한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월령안이 냉소하며 분부했다.

“길상 도박장의 집사에게 우선 은자 오천 냥을 주게. 주모를 남몰래 유인하여 길상 도박장에서 노름하게 만들라고 해. 만약 주모가 만 냥을 잃으면 집사에게 천 냥을 주고, 십만 냥을 잃게 하면 만 냥을 준다고 해. 물론, 한계는 있어. 주모가 십만 냥 이상 잃어도, 내가 주는 돈은 만 냥까지야!”

육장봉은 부모도, 형제자매도 없었다. 본인 또한 전장에 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었다. 확실한 약점이 없다 보니, 공격할 데라고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육장봉이 돌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부모나 형제자매가 없다 해도, 친척은 있었다.

‘그렇다면 육장봉의 친척이 내가 노릴 수 있는 약점이야!’

육씨 가문의 넷째 집안이 바로 그 약점이었다. 육장봉이 속한 첫째 집안을 제외하면, 둘째, 셋째 집안에는 모두 어린아이와 과부가 된 숙모만 있었다. 게다가 이부인과 삼부인은 그녀를 잘 대해 주었다. 그 두 집안에는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육씨 가문의 넷째 집안과 육비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봐줄 생각이었다.

‘육장봉한테는 권세가 있댔지? 나 월령안한테 권세는 없어도, 돈은 많거든!’

권세가 있다는 육 대장군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액의 빚을 어떻게 갚는지 두고 볼 심산이었다.

‘그 잘난 육 대장군이 돈 때문에 머리를 숙일 수 있는지 어디 두고 보자!’

“네, 아가씨!”

월령안의 말을 듣고 난 집사는 육씨 가문과 척을 지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설득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살기등등한 눈을 마주한 순간, 기가 죽었다.

아가씨가 결정을 내린 일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었다.

“나중에 육씨 저택에 가서 빚 독촉을 하는 것을 명심하게. 육 대장군이 동생을 대신해서 빚을 갚겠다고 약속했잖아? 육씨 저택의 집사와 한번 확인해 보게. 만약 육 대장군이 한꺼번에 갚지 못한다면, 집사에게 차용증을 써 달라고 해. 우리는 시중에서 가장 낮은 이자율로 계산하면 된다. 육 대장군이 안 갚겠다고 잡아떼더라도 괜찮아. 그냥 돌아오게.”

육장봉에게 권세가 있다지만, 세상의 이치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빚을 졌으면 갚는 게 인지상정인 법. 육장봉이 갚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육비우를 찾아가면 그만이다.

‘내가 육장봉이야 어쩌지 못하더라도, 육비우 하나 처리하지 못하겠어?

육장봉은 지위가 높고 권세가 막강했다.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그녀를 협박할 수 있는 빌미가 없어지면, 그로서도 끽해야 그녀의 무릎을 꿇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리라.

“알겠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난 집사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가 육 대장군에게서 끝까지 빚을 받아내려 할까 걱정했었다.

육 대장군에게서 빚을 받아내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기에 한 번 다녀오게. 매 원외를 뵙고, 오늘 내로 제과점의 관련 문서와 제조 비법을 넘겨. 그리고 내 명의의 연지 가게 하나를 더 사지 않겠냐고 여쭤봐. 가게와 거기에 딸린 장인들은 모두 넘길 수 있지만, 제조 비법은 안 넘기겠다고 하게.”

시간을 끌다가 일이 틀어질까 걱정이었다. 월령안은 최대한 빨리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다.

그녀가 일단 매 원외에게 가게를 넘기고 나면, 육장봉도 매 원외를 찾아가 ‘권세를 휘둘러’ 가게를 물러 달라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 정말로 그런다고 해도, 가게는 그녀가 아닌 육장봉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녀도 죄를 뒤집어쓸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육장봉이 그녀를 협박할 거리도 많지 않았다.

‘매 원외의 일만 처리만 하고 나면, 다른 건…….’

이 세상에는 엄연히 법이 있다. 육장봉이라 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는 못할 것이다.

“소인이 지금 당장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집사는 아직 일의 심각성을 몰랐다. 하지만 조금 전 화청의 긴장된 분위기는 하인들도 모두 느꼈다. 그래서 잠시도 꾸물대지 않았다.

“음, 빨리 움직이거라.”

월령안은 머리를 끄덕이고, 집사에게 손을 저었다.

집사가 나가고 나서야, 갑자기 다른 가게들도 같이 처리하라고 분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가 벌써 나가버려서 다시 불러오기도 번거로웠다. 게다가 집사도 바깥일까지 전부 잘 처리할 능력은 없었다.

“휴, 상천이 언제쯤 돌아올까. 걔가 없으니까 안 되겠어.”

상천이 떠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벌써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가 있었다면, 그녀가 일일이 말을 할 필요 없었다. 알아서 일을 처리해 놓고, 구매자들도 찾아 놓았을 것이다.

집사도 일은 잘했다. 그러나 융통성이 없어 하나를 말하면 그것만 하고, 둘 이상은 하지 못했다.

상천은 달랐다. 하나를 말하면 두셋 정도의 정보를 더 수집했다. 또한, 사전 준비가 항상 철저했다.

또 추수는 어떤가. 맹한 구석이 있어서 일 처리가 야무지지는 못해도, 충성스럽고 무예가 뛰어났다.

만약 추수가 있었다면, 어제저녁 조계안이 소리 없이 그녀의 서재에 나타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사건만 아니었으면, 육장봉도 그녀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에게 사람이 없어 불편해도 철광산 건은 반드시 해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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