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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4)화 (64/1,004)

64화 소녀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육이는 월령안이 태도를 바꾸자, 머리를 끄덕였다. 곧 몸을 돌리려다 무언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포권을 하며 말했다.

“월 낭자, 아까는 십이가 폐를 끼쳤습니다. 오늘 일은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매 원외에게 준 그 가게 값을 저희가 원가격대로 배상해 드리겠습니다. 절대 월 낭자께서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저와 매 원외는 정상적인 거래를 한 거예요. 매 원외가 돈이 없는 분도 아니고, 가게와 제조 비법은 제 가격을 주고 사실 거예요.”

월령안이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대상인이라면 뒷배가 있더라도, 아무리 인색하다고 해도 날강도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장사할 때 지켜야 하는 규칙은 모조리 지켰다.

삼류도 못 되는 어중이떠중이나 강제로 사고팔며, 뒷배만 믿고 날강도 같은 짓을 하는 법이다. 바로 소 승상에게 빌붙은 심씨 가문이 그런 놈들이었다.

육이는 침묵했다. 공당에서는 매 원외가 월령안에게 억지로 팔라며 강요하는 것처럼 들렸다. 지금 보니, 자신이 변경의 상인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육이는 이 일이 육십이 때문에 벌어졌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다시 말했다.

“월 낭자, 만약 팔기 싫으면…….”

“아뇨, 전 싫지 않은데요.”

월령안은 육이의 말허리를 끊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육이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육장봉이 내 속셈을 다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네?’

갑자기 육장봉이 자신을 찾아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졌다. 더는 거절하지 않고, 육장봉에게로 성큼 다가갔다.

“대장군!”

월령안은 마차 밖에 서서 육장봉에게 예를 올렸다.

허리를 굽히는 순간, 월령안의 머릿속에는 그날 자신이 육장봉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육 장군, 보라고요. 당신을 그렇게 증오하고 미워하는데도, 당신이 만나겠다면 감히 거절도 못 하잖아요.

나보고 요령만 많고, 남의 마음을 잘 이용한다고 했었죠.

그런데 내가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알아요?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거 다 티를 내도 되는 줄 아냐고요?

난 못 해요!

지금처럼, 당신을 만나기 싫지만, 와서 예를 올려야 하죠. 그리고 당신 앞에서는 감히 불쾌한 티도 못 내고, 오직 웃는 낯으로만 대해야 해요.’

“월령안, 뭘 잘못했는지 알겠소?”

육장봉은 마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심지어 차창도 열지 않았다. 마차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도, 그의 노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소녀가 우둔하여,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장군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육장봉이 몸을 일으키라는 소리를 하지 않자, 월령안은 허리를 굽힌 채로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지금 육장봉은 화가 나 있었다. 또 꼬투리를 잡혀서는 안 됐다. 그래서 고분고분 허리를 굽히고, 힘들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

육장봉이 싸늘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협박했다.

“내가 매 원외를 찾아가서 얘기해 볼까? 가게를 사지 말라고?”

역시 육장봉은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월령안은 뜻밖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전, 육이의 말만 듣고 육장봉의 심사를 넘겨짚었던 자신이 가소롭기만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육장봉이 오늘 공당에 나타난 것은 분명 그녀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인정하기 싫더라도, 그건 사실이었다.

만약 육장봉이 그녀의 속셈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공당에서 매 원외에게 가게를 넘기지 못하게 저지했으리라.

육장봉이 말리지 않은 이유는, 가게를 매 원외에 파는 게 그녀에게는 이익이 될 뿐,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역시, 이 인간하고 부딪히면 내가 우세를 점할 기회가 거의 없네.’

월령안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평온하게 말했다.

“대장군, 저와 매 원외의 거래는 정상적인 거래예요. 대장군께서 간섭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상적인 거래?”

육장봉이 비아냥거렸다.

“모두 당신이 억울함을 당하고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겠지. 내 친위대도 그 때문에 당신에게 죄책감을 갖게 되었소. 심지어 유 대인은 공당에서 빚을 졌다는 얘기까지 했소. 월령안, 본인이 말해 보시오. 이게 정상적인 거래요?”

원래 팔려고 했던 가게를 판 것뿐인데, 월령안은 수많은 이득을 얻게 되었다.

‘이 거래가 어디가 정상적이라는 거야? 분명 교활하기 짝이 없는 짓이고, 수많은 이득을 봤는데. 다들 이 여자가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잖아!’

‘이 거래가 정상적이냐고? 당연히 정상적이지! 양쪽 당사자가 동의한 거래잖아! 어디가 비정상적이란 거야? 이해가 안 되네!’

월령안은 기고만장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당장 마차를 뒤집어엎고, 그의 얼굴을 짓밟아 버리며 알려 주고 싶었다.

‘정상적이든 아니든 그게 댁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쌍방이 모두 원하는 거래라잖아! 당신, 오지랖이 너무 넓어!’

하지만 그녀는 마차를 한 번 훑어보고는 묵묵히 한숨을 쉬었다. 이 마차가 겉은 낡았으나 사실 튼튼해서 내구성도 강했다. 물이나 불뿐만 아니라 칼, 검까지도 막을 수 있는 마차였다.

‘내가 저 마차를 뒤엎을 수도 없고!’

다시 눈길을 돌려 양옆의 친위대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감추려 하고 있지만 순간순간 자신들도 모르게 날카롭게 벼려진 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한숨마저도 내뱉을 엄두가 안 났다.

설령 마차를 뒤엎을 힘이 있다 해도, 그럴 기회는 없을 것이다. 감히 손 하나라도 까딱했다가는 육장봉의 친위대가 당장 그녀를 찢어 죽일 테니까.

월령안은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머리를 더 푹 숙이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장군, 어쩌시려고요? 아니면, 제가 어떻게 잘못을 인정하면 되겠나요?”

“들어오시오. 제대로 얘기해 보게!”

육장봉이 대답했다.

“대장군, 소녀와 대장군의 신분은 천양지차가 아닙니까. 장군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장군과는 이야기할 만한 거리도 없는 듯합니다만.”

철광산은 없는 거다. 죽는다고 해도 절대 내놓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해도, 미남계까지 동원한다 해도 안 됐다.

‘철광산에 대해서만큼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거야.’

“만약 내가 지금 매 원외를 찾아가, 네 편을 들어주면 어떨까?”

육장봉이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월령안이 여전히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는 자세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눈에는 냉기만 가득했다.

자신을 눈앞에서 무시한 채 훌쩍 떠나버리고, 길거리에서 험담을 듣게 만들었다. 월령안이 그걸 모를 리 없으니 일부러 그랬던 게 분명했다.

육장봉이 마차에서 내리자, 월령안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웃으며 말했다.

“대장군, 농담도 잘하시네요. 대장군께서 어떤 분이신데, 가게 하나 때문에 매 원외를 직접 찾아가시겠어요. 남들이 알면 권세를 휘둘러 사람을 괴롭힌다고 할 텐데, 왜 쓸데없이 체면을 구기려 하세요?”

‘육장봉이 진짜로 그런 짓을 했다간, 매 원외가 날 죽이려 들걸!’

그녀는 공당에서, 수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가게를 팔겠다고 했다. 그런데 뒤돌아서 육장봉을 만났다.

이런 상황에서 육장봉이 매 원외를 찾아가 그녀를 편들었다고 해 보자. 남들은 그녀가 이랬다저랬다 한다며, 육장봉에게 부탁해 매 원외를 억압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고작 가게 하나가 아닌가. 만약 팔기 싫었다면, 그 자리에서 거절하면 그만이었다.

매 원외는 불쾌해할 뿐, 그것 때문에 그녀에게 원한을 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팔겠다고 승낙해 놓고, 돌아서서는 육장봉을 통해 매 원외가 먼저 손을 떼도록 강요한다면? 그건 매 원외의 체면을 깎는 짓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갖고 있던 사업은 원래부터 팔려고 했던 것이었다. 매 원외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라도 팔아야만 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 가게를 사게 되면, 매 원외가 월령안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정말 날 제대로 골탕 먹이겠다는 수작인데!’

월령안이 생각해낸 것은, 그녀의 속셈을 꿰뚫고 있는 육장봉 역시 전부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그녀가 물러서자, 육장봉은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차갑게 웃었다.

“나는 줄곧 권세를 휘둘러 남을 괴롭혀 왔는데, 월 낭자는 아직 모르셨나?”

아닌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육장봉은 권세를 휘둘러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월령안은 계속하여 뒷걸음질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가까스로 억지웃음을 지었다.

“농담하지 마세요. 대장군께서는 일 처리가 공정하시고, 줄곧 사리사욕을 챙기지 않으셨잖아요. 어찌 그러실 수 있겠어요?”

“그런데 오늘 내가 꼭 그렇게 하고 싶다면? 당신이 나를 어찌할 수 있겠소?”

월령안은 분명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하는데도, 어쩔 수 없이 웃는 낯으로 대한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육장봉 역시 한번 지켜볼 심산이었다. 그를 원망하고 증오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숙이고, 그를 집으로 모셔 차를 대접하는 그녀의 모습을 말이다.

육장봉이 일부러 자신을 괴롭힌다는 걸 알아차리자, 그녀는 곧 이를 악물고 무릎을 굽혔다.

“계속 제가 잘못했다고 하시는데, 그럼 지금…… 무릎을 꿇고 사죄하면 되겠습니까?”

월령안은 무릎을 굽혀 꿇으려고 했다. 무릎이 땅에 닿으려는 순간, 육장봉이 발을 들어 그녀의 무릎을 받치며 저지했다.

“내게 잘못했다면서, 무릎 꿇고 사죄만 하면 끝이오?”

“저더러 어쩌란 말씀이신가요?”

월령안이 고개를 들어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맑고 반짝이는 두 눈에는 평온함만 보일 뿐, 눈물도, 억울함도, 간청도 없었다.

‘내가 억울하지 않은 줄 알아? 아니! 억울해 죽겠어!’

한바탕 대성통곡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방법이 없었다.

육장봉이 그녀를 짓누르는 데는 말 한마디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러려는 의도만 보여도 충분했다. 반면 그녀는 지금처럼, 아무리 억울하고 불만스러워도 참아야만 했다.

“일어나시오!”

육장봉은 발을 거두었다. 월령안의 무릎이 땅에 닿게 내버려 두고, 그녀의 곁을 지나 월씨 저택에 들어섰다.

월령안은 땅에 꿇어앉아, 육장봉과 친위대가 모두 지나갈 때까지 꼼짝 않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하나 스쳐 간 다음에야, 눈을 감은 채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었다.

눈을 꼭 감고 입술을 바르르 떠는 얼굴에서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곧 다시 머리를 숙였다. 양손이 얼굴을 덮었다. 힘껏 문지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나서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녀가 돌아서는 순간, 얼굴에는 평소처럼 웃음이 걸려 있었다. 걸음걸이도 평소처럼 경쾌해 옷자락도 가볍게 휘날렸다. 아무도 별다른 점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처소에 들어선 그녀는 하인에게 차를 올리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곧장 화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육장봉은 상석에 앉아 있었다. 월령안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대장군, 소녀가 잘못했습니다. 벌을 주십시오.”

월령안이 바깥에서와는 달리, 고집을 부리지 않고 냉큼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육이 등은 그 모습을 보자 깜짝 놀랐다. 그녀처럼 이렇게 단숨에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잘못을 인정한다고? 무얼 잘못했다는 말이오?”

육장봉은 일어나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왼손이 불규칙하게 상판을 두드렸다.

“제멋대로 대장군의 뜻을 넘겨짚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대장군께서 소녀를 보기 싫어하는 줄 알고, 말씀하시기도 전에 먼저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대장군께 제 잘못을 덮어씌웠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대장군께서 소녀더러 대장군을 피해 다니라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소녀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대장군께서 벌하여 주십시오.”

말을 마친 월령안은 머리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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