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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63)화 (63/1,004)

63화 반드시 피해 다니도록 하겠습니다

월령안은 기가 막혀서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마차는 그녀의 것이었다. 하지만 육장봉이 마차 앞을 막아서고 있으면, 당연히 올라탈 수 없었다.

‘육 장군이 나에게 시비를 거는 건가?’

구경꾼들도 이 광경을 보았다. 육 대장군의 위엄 때문에 감히 나서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월령안만 바라보며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월령안은 한 번도 구경거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가 적당한 거리에서 육장봉에게 예를 올렸다.

“육 대장군, 걱정하지 마세요. 장군을 마주치면 피해 다니겠다고 약속했으니, 반드시 피해 다니도록 하겠습니다. 절대 장군께 폐를 끼치지 않을 거예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월령안은 아무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마차 옆에 서 있던 육장봉은 월령안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아연하게 바라봤다.

“아가씨……!”

월령안보다 한발 늦게 나온 제과점 사장이, 때마침 그녀의 말을 듣자 빠른 걸음으로 뒤따랐다.

친위대도 마차 옆에 서서, 미련 없이 떠나는 월령안과 안색이 안 좋아진 육 대장군을 번갈아 보았다. 모두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려 애썼다.

‘월 낭자의 말이 무슨 뜻일까?’

‘그냥 한 소리인가? 아니면 일부러 장군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건가?’

구경꾼들도 어안이 벙벙해 서로 마주 보았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이지?’

한참 지나, 누군가 정신을 차리고 낮게 소리쳤다.

“이제 보니까……. 육 장군이 마차 옆에 서 있는 게, 월 낭자를 기다린 게 아니고, 마차에 못 타게 괴롭힌 거였구나!”

“육 장군도 참……!”

“됐어, 됐어! 재판도 다 끝났잖아. 돌아가, 어서들 돌아가지 못할까…….”

마침 관졸이 나왔다가, 육 대장군을 흉보는 구경꾼들을 보자 언짢은 기색으로 쫓아 버렸다.

“가세! 얼른 가자고……!”

구경꾼들도 그제야 자신들이 육 장군 본인 앞에서 험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들짝 놀라 눈 깜짝할 사이 모두 달아나 버렸다.

친위대 열두 명은 묵묵히 있었다. 고개를 들다가 관졸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마주치자, 눈웃음을 지어 우호적인 기색을 보이려 했다. 하지만 순천부의 관졸들은 매우 놀란 듯 어색하게 웃으며 뿔뿔이 달아났다.

순천부 관아 앞의 거리는 삽시간에 휑해졌다. 이제는 육장봉 일행만 남아 있었다.

육장봉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차 옆에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친위대 중 누구 하나 나서 말을 붙이는 사람이 없었다. 신경이 무딘 육십이만 눈을 깜빡이며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상황 판단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육장봉이 행동을 개시했다. 자신의 말 대신, 그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작고 허름한 마차에 올라타더니 명령을 내렸다.

“월씨 저택으로 가자.”

“네, 장군!”

육이는 재빨리 대답했다. 신속하게 마부석에 앉자마자 채찍을 휘둘러 길을 재촉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었다가는 장군이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뿐 아니라 월 낭자에게 무시당하고, 한 방 먹기까지 한 장군이 자신들에게 화풀이할지도 몰랐다.

“십이, 넌 남아서 우리 말을 챙겨라!”

친위대의 서열 일위인 육일은 평소에는 과묵하여 존재감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친위대에서 그의 무게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사실상 육일은 친위대의 일인자였다. 일단 그가 입을 열면, 다른 이들은 군소리 없이 명령을 수행해야만 했다.

육십이는 성격이 활달한 데다가, 육장봉이 줄곧 방임한 덕분에 장군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육일이 명을 내리자, 육십이는 바로 겁을 먹었다.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힘없이 대답하고 남아서 말들을 챙길 수밖에 없었다.

월령안의 마차는 사용한 지 몇 년이나 되었다. 겉보기에도 낡았지만 속도도 느렸다. 육일이 나머지 친위대 아홉 명을 거느리고 뛰어서 뒤따라가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월씨 가문의 마차는 평범하게 푸른 유포를 씌운 것이었다. 거리에서 행인이든, 화려한 마차든 마주치기만 하면 이쪽에서 길을 양보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행인들도, 귀인이 탄 마차도 멀리서 이 낡은 마차를 보면 서둘러 한쪽으로 비켜 길을 내주었다.

다름 아니라, 마차를 뒤따르는 친위대 열 명 때문이었다. 너무 눈에 띄어 도저히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육장봉의 친위대 열두 명은 변경에서도 꽤 알아주는 편이었다. 만약 한두 명쯤이 같이 나타나면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중 열한 명이 동시에 나타났고, 육씨 가병(家兵)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눈이 달린 자는 모두 알아보았다.

“저건……. 육씨 가문 친위대잖아?”

“세상에, 저 낡아빠진 마차에 도대체 누가 탄 거야? 육 장군의 친위대가 호위를 하네?”

변경의 백성들은 길을 지나가는 낡은 마차를 보면서, 희한한 장면을 보았다는 듯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쪽에 비켜선 화려한 마차들도 작고 낡은 마차가 지나가자 역시 놀라워했다.

‘육 대장군의 친위대가 호위하다니? 마차에 탄 사람은 도대체 어떤 신분일까?’

마차 안에 육장봉이 앉아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육장봉은 줄곧 말을 타고 다녔다. 변경의 백성들은 그가 마차에 탄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무렵, 마차 안의 육장봉은 내부의 정교한 장식을 보고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허름해? 작아? 낡아?’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 마차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마차 내부는 왕족이나 귀족들이 타고 다니는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하다못해 탁자 위 백자 다구 몇 점만 해도 궁에서 쓰는 것 못지않았다.

그리고 차창에 붙인 운금(雲錦 – 구름무늬가 든 고급 비단)은 또 어떠한가.

운금은 일 년 생산량이 열 필이 안 되어, 황궁의 비빈들도 귀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월령안은 마차 창에 그것을 붙였다.

다만 눈에 띄지 않게 단색 운금을 사용한 터라, 얼핏 보면 거친 사창포(紗窓布 – 창에 붙이는 철사 등으로 엮은 천)와 다를 바 없었다. 보통 사람은 물론, 전문가들도 알아보기 힘들 것이다.

단색 운금은 시장에도 나오지 않아, 보더라도 못 알아볼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육장봉이 알고 있는 이유는, 일찍이 어머니가 단색 운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그 말을 듣고 그는 갖은 애를 써서 겨우 한 필을 구했었다. 그런데 월령안은 사치스럽게도 그것을 차창에 붙였다.

“과연 재신(財神)이 안아 키운 월령안이구나. 황제와 조왕이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군.”

육장봉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다, 순백색 찻잔 가장자리에 묻어 있는 붉은 연지 자국을 발견했다. 손가락으로 슬며시 그 자국을 쓰다듬는 남자의 눈에는 담담한 미소가 어렸다.

‘나를 보면 피해 다니시겠다?’

잠시 후, 월령안이 자신을 또 어떻게 피해 갈지 한번 두고 볼 심산이었다.

* * *

월령안은 육장봉에게 마차를 빼앗겼다. 그녀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싫어 자리를 피해 버렸다. 그리고 마차 가게에 들러 마차를 빌렸다.

빌린 마차는 그녀의 것보다 불편했다. 하지만 그녀도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누릴 줄도 알지만, 그와 더불어 모든 고통도 감내할 수 있었다.

월령안은 빌린 마차를 타고, 여유만만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마차에서 내리자, 자신의 마차가 대문 밖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마차 양옆으로는 친위대 열 명이 늘어서 있었다.

세 발짝 앞으로 나가자 마부석에 앉아 있는 육이가 보였다. 순간 어찌 된 영문인지 깨달았다.

‘육장봉이 집까지 쫓아왔다고? 도대체 뭐 하려는 걸까? 나보고 집에서까지 계속 피해 다니라는 거야?’

월령안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근처에 서 있는 마차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는 정체불명의 짜증이 밀려왔다. 거기에 억울함과 쓰라림까지 곁들어졌다.

분명 그를 내려놓겠다고 결심했다. 더는 육장봉을 뒤쫓지 않고, 될수록 멀리 피하려 했다. 그런데 육장봉은 왜 자꾸 그녀의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한 걸까.

‘철광산 때문인가?’

조계안이 철광산을 알아내려고 어머니의 시신으로 자신을 협박하던 일이 떠올랐다. 월령안은 당장 뛰쳐나가 육장봉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깟 철광산 따위, 다 줄 테니까 다들 저 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돼요?’

그러나 이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전혀 실행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첫째, 그녀는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철광산을 내놓는다고 해도, 육장봉이든, 조계안이든 누구도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내놓은 것 외에도, 그들이 모르는 철광산이 또 있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육장봉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공당에서 부린 꼼수를 훤히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육장봉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그녀에게는 나쁜 사람이었다. 그녀는 육장봉과의 접전에서 우세를 점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가 자신을 협박할까 두려웠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월령안은 바로 도망치려 했다. 안타깝게도 육장봉은 그녀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막 뒤돌아서는데, 육이가 불러 세웠다.

“월 낭자, 잠시만요. 장군께서 보자고 하십니다.”

“육 대장군께서 저를 왜 찾으시죠?”

월령안은 할 수 없이 걸음을 멈추었다.

“월 낭자께서 이쪽으로 오시면 알게 될 겁니다.”

육이는 공수를 하더니 엄숙하게 말했다.

“서둘러 주십시오. 장군께서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장군께서 기다리실 것까지 있나요.”

월령안이 억지웃음을 지었다.

“월 낭자?”

육이는 흠칫 놀랐다.

그녀는 사람을 보면 사람의 말을 하고, 귀신을 보면 귀신의 말을 했다. 일 처리가 원만하고, 누구를 만나든 웃음부터 보이며 밉보이지 않으려 했다.

‘지금 이 사람이 대상인, 월령안이 맞나?’

“제 뜻은요, 육 대장군께서 기다리실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대장군께서 절 만나고 싶으시면 아랫사람에게 한마디만 하면 될 게 아녜요. 제 쪽에서 대장군을 뵈러 당장 달려갈 텐데.”

월령안의 말은 예의에 어긋남이 없었다. 어떻게 들어도 육장봉에 대한 존경심이 배어 있었다.

그런데 육이의 귀에는 그녀의 말이 어딘가 석연치 않게 들렸다.

그렇지만 그녀의 말에는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다. 육이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딱히 집어낼 수가 없어 침묵을 택했다.

월령안도 친위대를 괴롭힐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럴 자격도 없었다.

육장봉의 친위대는 제일 낮은 사람도 오품 무관이었다. 일개 여자 상인쯤은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었다.

월령안은 마음속의 불만을 거두었다. 자세를 낮춰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육 대장군을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은 제 불찰이에요. 육이 장군, 지금 가서 뵙도록 할게요.”

“월 낭자,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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