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우리 장군님의 새 부인은 누구야
월령안은 잠깐 숨을 고르며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기쁨, 슬픔, 아쉬움, 해탈 등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너무 복잡하여 아무도 그 감정을 온전히 읽어낼 수 없었다.
그녀는 분명 웃고 있었다. 눈에도 웃음기가 있었다. 그러나 온몸에서는 슬픔, 애통함, 기쁨, 소망 등 여러 감정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뭐요? 월령안!”
월령안이 드디어 육장봉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복잡한 눈빛을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그의 심장의 박동이 거세지고 있었다.
‘설마 월령안이 나를 봐 주기를 기대했던 건가?’
하지만 월령안은 그의 눈앞에서 유 대인에게 자신의 고명을 거두어 달라고 부탁했다.
‘저쪽은 나와의 관계를 말끔히 청산하겠다는데, 왜 나를 봐 주기를 바란단 말인가? 분명 내 착각이겠지.’
육장봉은 저도 모르게 한쪽 손을 꽉 쥐었다.
월령안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깜빡였다. 눈 속의 모든 감정을 감추더니, 다시 홀가분한 태도로 농담을 했다.
“그리고 제가 일품 장군 부인이라는 이름을 차지하고 있으면, 육 장군께서 새 장가를 드는 데도 곤란하시겠죠. 그렇죠?”
그녀의 미소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정말로 황제와 육장봉의 걱정을 덜어 주려는 듯싶었다.
유 대인도 저도 몰래 한숨 지었다.
‘월령안은 참 좋은 아가씨지. 출신이 좀 낮은 것 빼고는 나무랄 곳이 없잖아.’
그녀는 삼 년간의 시집살이 동안, 육 장군을 위해 안팎으로 바쁘게 뛰어다녔다. 장군부를 질서정연하게 관리하고, 그의 가족들을 돌보았다. 그 덕에 육 장군은 다른 걱정 없이 전선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육 장군에게 버림받은 지금까지도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고명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가는 그에게 폐를 끼칠까, 새로 장가드는 데에 영향이 가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여인을 어디 가서 또 찾을까! 육 장군도 정말 복이 터졌어.’
유 대인이 부러워하고 있을 때, 정작 육장봉은 분통이 터졌다.
그는 월령안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내가 재취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오?”
‘쓸데없는 것을 신경 쓰는군. 내가 분명 부인 자리를 영원히 월령안에게 남기겠다 말했건만,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이 육장봉이 내뱉은 말이, 일말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건가?’
“당연히 저와 관련이 있죠! 제가 육 장군 덕에 받은 고명을 차지하고 있으면, 새 부인의 심기를 건드리잖아요!”
월령안이 진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만, 육 장군께서 제게 감사하실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저는 원래 장군 아내의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없었어요. 그러니 이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에요. 육 장군께서 바쁘셔서 예부에 고명을 거두어들이라고 할 겨를조차 없으시니, 제가 대신 할게요. 그리고 고명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저도 재가하기 힘들지 않겠어요?”
유 대인이 그녀를 돕지 않더라도 문제없었다. 조그마한 빚이라도 지기가 꺼려져서 그렇지 그녀가 말을 꺼내기만 하면, 조계안 또는 황제가 신속히 그녀의 고명을 거두어 둘 사이를 깔끔하게 정리해 줄 테니까.
“당신 말이 맞소.”
육장봉은 낯선 사람을 보듯, 월령안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본인이 재가할 생각이라 이건가? 누구한테 시집가려는 거지?’
월령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범하게 그와 정면으로 시선을 맞추었다.
두 눈길이 서로 부딪치는 순간, 애틋함도, 미련도 없었다. 오직 일촉즉발의 불꽃만 튕기고 있었다.
“그럼 우리 장군님의 새 부인은 누구야?”
육십이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조금 전 월령안에게서 한 소리 들었던 육십이로서는 그녀에게 물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혹시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육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육이가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자, 기다림에 지친 육십이가 목소리를 높여 또다시 물었다.
“둘째 형, 우리 장군님의 새 부인이 누군데요? 난 왜 모르지?”
육이는 묵묵부답이었다.
육십이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월령안과 육장봉 두 사람이 듣기에는 충분했다.
불과 일 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지지 않으려고 눈싸움을 하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마음이 통했는지 거의 동시에 육십이에게 눈길을 옮겼다.
전자의 눈에는 칭찬의 미소가, 후자의 눈에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공당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묘해졌다.
유 대인은 위쪽에 서서, 두 사람의 순식간에 바뀌는 표정을 쳐다보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가 모르는 일이 일어났나? 나만 혹시 무언가 놓친 건가?’
유 대인은 월령안과 육장봉을 번갈아 보다가, 결국 두 사람과 더불어 육십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가 한마디만 좀 해 줄 수 없나?’
여럿이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자, 제아무리 무딘 육십이도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는 깜짝 놀라 두 손으로 가슴을 억누르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왜…… 왜 다 저를 보세요? 제가 잘못 말한 거 아니잖아요! 장군께 새 부인이 있다는 말은 분명 월 낭자가 했어요. 제가 몰라서 묻는 건데, 그것도 안 되나요?”
육이는 더는 볼 수가 없어 외면하고 말았다.
‘육십이, 저놈은 저 멍청함 때문에 죽게 될 거야!’
“잘생겨서 보는 거예요.”
월령안은 육십이의 어리숙한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았다. 본인이 복잡한 사람이다 보니, 육십이처럼 단순한 사람이 좋았다.
“진짜요? 제가 정말로 잘생겼어요?”
육십이는 기쁜 나머지, 풀쩍 뛰어 월령안의 곁으로 다가가 잘난 체하며 물었다.
“월 낭자, 진심이죠? 제가 잘생겼나요? 까맣지 않고요? 못생기지 않고요?”
육십이는 이목구비가 단정했고, 짙은 눈썹과 큰 눈, 검은 피부를 가졌다. 몸도 건장했다. 못생기지는 않았으나, 세상에서 말하는 미남자의 표준에는 들어맞지 않았다.
그러나 월령안에게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도 가냘프지도, 부드럽지도, 상냥하지도, 선량하지도 않았고, 무슨 재주 같은 것도 없다. 세간에서 말하는 미인의 표준에 들어맞는 점이라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그것도 아주 예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육십이가 묻자, 월령안은 건성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를 열심히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잘생겼어요. 특별히 눈이 예뻐요. 제 마음에 들어요.”
육십이의 서글서글한 눈에는 항상 순수하면서도 뜨거운 빛이 반짝였다. 또한 삶에 대한 열정이 넘쳐났다.
월령안은 잘 알고 있었다. 넓고 강한 마음의 소유자, 단순하면서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사는 사람만이 이처럼 순수하고 뜨거운 눈빛을 가질 수 있다. 그녀는 그의 눈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다.
육장봉의 눈길은 육십이에게서 월령안에게로 옮아갔다.
그녀가 육십이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을 보자, 육장봉은 왠지 마음이 아팠다. 그녀가 단순하면서도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육십이를 부러워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월 낭자, 마음에 드신다는데, 저, 제가…….”
육십이는 얼굴이 확 붉어지더니 머뭇머뭇하며 말했다.
“눈을 빼서 드릴 수는 없어요.”
“마음만 받을게요!”
월령안이 바로 대답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월 낭자, 별말씀을요. 눈을 빼서 줄 수는 없지만. 보고 싶으면 얘기하세요. 보여드릴게요.”
육십이는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월령안의 코앞으로 다가갔다.
“월 낭자,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세요.”
육십이가 갑자기 다가서자, 월령안은 놀라 뒷걸음질하며 가슴을 부여잡고 당황하여 말했다.
“됐어요, 알았어요. 많이 봤어요.”
‘깜짝 놀라 죽을 뻔했네!’
육장봉과 그녀는 상극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육장봉뿐만 아니라 그의 친위대까지도 그녀를 이렇게 놀라게 할 수는 없었다.
“월 낭자, 진짜 다 보셨어요? 더 보지 않으시고요?”
육십이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육이는 묵묵히 또다시 먼 산을 쳐다보고 말았다.
‘저 멍청한 똥강아지가!’
그런데 머리를 돌리자마자, 육 대장군의 냉소 어린 눈동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육이는 흠칫했다. 몸이 먼저 반응해 냉큼 뛰어가 육십이를 잡아 끌었다.
“월 낭자, 육십이가 성격이 유별나 폐를 끼쳤습니다.”
육십이 이놈은 언젠가 제 무덤을 파고 말 것이다.
월령안이 대수롭지 않게 손을 저었다.
“괜찮아요! 십이는 참 재미있네요.”
만약 그녀에게 남동생이 있었다면, 잘 보호해 주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차가움과 어두움 따위는 영영 모르고, 육십이처럼 행복하고 단순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었으리라.
문득 부모님과 오라버니가 무엇을 바랐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그녀를 보호하려 노력한 이유는, 그녀가 육십이처럼, 늘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서였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렇게 살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순간 기분이 가라앉았다. 더는 육장봉과 겨루고 싶은 마음도, 심지어 쳐다보고 싶은 마음마저 싹 사라졌다.
그녀는 가벼운 한숨으로 마음속의 억제할 수 없는 슬픔을 겨우 억눌렀다. 그리고 유 대인에게 웃으며 말했다.
“유 대인, 말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시간이 늦었으니, 제가 돌아가 예복과 조서를 정리하여 보내 드릴게요. 나머지 일은 유 대인께 부탁드려요.”
“월 낭자……!”
유 대인은 거의 울상이 되었다.
‘나는 승낙하지 않았단 말이오!’
월령안은 못 본 체하고 자기 할 말만 했다.
“대인, 다른 일이 없다면 이만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유 대인은 궁리를 거듭했다. 승낙하지는 않았지만, 거절할 이유도 찾을 수가 없었다.
월령안의 말이 맞았다. 규정대로라면 그녀의 고명 조서는 진작 거두어들였어야 했다. 지금 그녀는 규정대로 하는 것뿐이었다.
유 대인은 하는 수 없이 월령안을 놓아주었다.
“사건 재판은 끝났소. 월 낭자는 무고하니 그만 가셔도 좋소.”
“유 대인, 감사합니다.”
월령안은 감사 인사를 한 다음, 무릎을 꿇고 있는 사장을 불러 밖으로 나아갔다. 물론 육장봉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월령안이 몸을 돌리는 순간, 석륫빛 긴 치마가 뒤에서 아름다운 원을 그렸다. 질척거림 없이 시원하게 펄럭였다가 깔끔하게 떨어져 내리는 모습은, 마치 육장봉에 대한 그녀의 태도 같았다.
육장봉은 얼굴이 거의 흙빛이 되다시피 했다.
“월……!”
육십이가 떠나는 월령안을 부르려 하자, 육이가 막아 나섰다.
“입 다물어!”
지금 월 낭자를 부를 사람은 육십이가 아니었다.
‘십이 이 눈치도 없는 놈, 자기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할까?’
“유 대인, 나도 이만 가 보겠소.”
월령안이 문턱을 넘기도 전에, 육장봉도 자리에서 일어나 유 대인에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답도 듣기 전에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월 낭자, 훌륭하십니다!”
“월 낭자, 양심 있는 상인이셨군요.”
공당 밖, 구경꾼들은 월령안이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우르르 앞으로 모여들며 너도나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월령안이 얼굴에 미소를 띠고 감사하려 할 때였다. 구경꾼들이 갑자기 무엇에 놀랐는지 뿔뿔이 흩어졌다.
그녀가 멈칫하여 뒤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육장봉이 보였다. 그는 그녀의 존재를 무시하며, 그녀 곁을 성큼성큼 지나쳤다.
그의 뒤를 따르는 친위대 열두 명도 곁눈질 한 번 안 하고 지나갔다. 다만 육십이가 그녀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을 뿐이다.
월령안은 말없이 미소로 응답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육장봉과 그의 수하들이 지나가기를 잠시 기다렸다.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머리를 들었더니, 육장봉이 그녀의 마차를 세워 둔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어이없어하는 사이, 육장봉은 마차 앞에 서서 그녀의 마부마저 쫓아 버렸다.
‘저게 뭐 하자는 짓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