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61)화 (61/1,004)

61화 좀 힘든 일 같소만

“송 오작은 연세가 있어서, 더는 부검하지 않는 거로 아오만, 그…… 그분이 동의하겠소?”

유 대인이 반신반의했다.

월령안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 대인, 송 오작은 원인 모르는 죽음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만약 이 사건을 알게 된다면, 손 놓고 가만 계시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송 오작과 조금은 친분이 있는 편입니다. 유 대인께서 불편하시다면, 제가 대신 부탁드리겠습니다.”

상인은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과 접촉할 수 있었다. 그녀는 실제로 송 오작과 친분이 있었다.

평소였다면 이 친분을 낭비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월령안은 서슬 퍼런 눈길로 곽삼석을 노려보았다.

월령안이 직접 송 오작에게 도움을 청하겠다는데, 유 대인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곽삼석이 서둘러 소리쳤다.

“대인, 대인, 전 고발하지 않겠습니다. 고발을 취소하겠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중독으로 돌아가신 게 아니고, 병으로 돌아가신 겁니다! 네, 저의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신 겁니다. 대인…… 전 고발하지 않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고발하지 않겠습니다. 고발하지 않을게요…….”

곽삼석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난 듯, 벌떡 일어서더니 밖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어서, 잡아라!”

유 대인은 낯빛이 변해서 곽삼석을 손가락질했다.

“저놈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라!”

“육이!”

육장봉이 침착하게 육이를 호명했다.

유 대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육이는 앞으로 뛰어올라 곽삼석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곽삼석은 앞으로 고꾸라져 문턱에 턱을 박고 말았다.

“으악……!”

곽삼석은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턱을 감싸 쥐고는, 상처받은 짐승처럼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그제야 관졸들이 달려들어, 곽삼석의 양손을 뒤로 비틀어 제압해 유 대인 앞으로 끌고 갔다.

“대인……. 사, 살려 주십시오!”

곽삼석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원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입을 벌리자 피와 함께 허연 이가 같이 떨어져 나왔다. 통증으로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몸을 옹송그리고 떠는 꼴이 겁에 질린 게 분명했다.

“저놈을 가둬라!”

곽삼석의 켕긴 듯한 반응으로 보아, 유 대인이 이놈을 가둘 이유는 충분했다.

“대인……. 소, 소인은……!”

곽삼석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안타깝게도 유 대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손을 저어 가두라고 명령했다.

“할 말 있으면, 송 오작이 부검한 뒤에 말하거라.”

“대…… 인……!”

곽삼석은 포기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버둥거렸다. 그러나 육이의 발길질에 정강이가 부러지고 관졸들에게 양손이 붙들린 상태였다. 꼼짝 못 하고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곽삼석이 끌려가자, 공당 안은 곧 조용해졌다.

반면 바깥은 한창 야단법석이었다. 구경꾼들은 이 반전을 보자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저놈이 어머니를 죽인 거 아닐까?”

“저놈의 반응을 보니 자기가 직접 손을 쓴 건 아니라도, 분명 뭔가 켕기는 짓을 한 거야.”

“내가 볼 땐 바로 저놈이야. 조금 전에도 월 낭자를 모함했잖아. 월 낭자가 자기를 일어서지 못하게 했다며. 그런데 사실은? 그것도 모함이었잖아.”

“곽삼석 저놈은 정말 사람도 아니구먼! 아까 그 젊은이 말이 맞아. 저놈은 생긴 것도 못나고, 양심도 없어.”

“월 낭자도 진짜 운수가 사납네. 멀쩡히 장사 잘하다가 웬 봉변이래. 음식이 좀 비싸지만, 재료들이 좋아 그만한 값어치를 했다잖아. 날마다 신선한 것만 팔고, 하룻밤 지난 건 팔지도 않았다며. 그런 데도 해코지당했네.”

“그러게 말이야. 월 낭자는 마음 씀씀이도 참 곱지. 못 들었어? 오 년 동안이나 매일 은양당에 간식을 보냈다잖아!”

“오 년이나! 닷새도 아니고, 다섯 달도 아니고! 그게 돈이면 다 얼만데! 게다가 좋은 일을 하고도 말 한마디 없었잖아. 곽삼석이 모함하지 않았으면, 월 낭자는 지금까지도 아무 말 안 했을걸.”

“월 낭자처럼 좋은 사람이 곽삼석에게 모함을 당하다니. 가게도 부서지고, 하마터면 살인 사건에 휘말릴 뻔했잖아.”

바깥 백성들이 월령안을 안타까워할 때, 유 대인도 그녀에게 동정을 느꼈다. 월령안이 이 사건 때문에 가게까지 넘겨주게 되었다고 생각하자, 자책감도 들었다.

유 대인은 몸을 일으켜, 다시 한번 월령안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월 낭자, 이 사건은 내 실책이오. 월 낭자께 누를 많이 끼쳤소.”

“대인께서는 다만 공무를 집행했을 따름입니다. 누를 끼쳤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월령안은 이전처럼 피하며, 유 대인의 예를 받지 않았다.

유 대인도 그만하면 공정한 편이었다. 그가 이 사건을 만들어 낸 것도, 가게를 팔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유 대인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모두 그의 잘못이라 몰아세우며 화풀이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에게도 그 정도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능력은 있었다.

“어찌 되었건 내가 소홀했소. 곽삼석의 수상한 점을 사전에 발견하지 못한 탓에, 월 낭자에게 그만…….”

유 대인은 한숨을 내쉬고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말씀이에요. 유 대인께서 저에게 결백을 증명할 기회를 주신 걸 감사히 생각합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월령안은 유 대인이 왜 자책감을 느끼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대놓고 말하지도, 그에게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유 대인의 자책감을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제과점 하나보다 더욱 값어치 있는 패가 될 것이다. 나중에 이용할 기회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마음의 빚을 지워두는 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유 대인이 쓴웃음을 짓고는 월령안에게 읍을 하였다.

“아무튼, 낭자에게 누를 끼쳤소. 그리고 송 오작의 일도 감사드리오. 이번 일은 내가 월 낭자에게 빚을 진 거요. 나중에라도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꼭 이야기하시오.”

월령안이 서둘러 대답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말 제게 사례를 하고 싶으시다면, 혹시 지금 도와주실 수 있으신지요?”

유 대인의 자책감은 잠시 보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세를 진 것은 그럴 수 없었다. 유 대인은 높은 자리에 있는 관리였다. 당장은 자책감 때문에 빚을 졌다고 했지만, 돌아서는 순간 후회할지도 몰랐다.

나중에 그녀가 다시 유 대인에게 빚진 것을 빌미로 부탁을 했다고 해 보자. 유 대인은 싫어할 뿐만 아니라, 그녀가 뻔뻔하게 기회를 틈타 기어오른다고 여길 것이다.

그녀가 이 빚을 계속 묵혀 두면, 유 대인도 이 빚을 계속 진 채 나중에 더 큰 요구를 할까 봐 두려워할 것이다. 그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유 대인도 결국엔 그녀가 싫어지리라. 쥐꼬리만 한 자책감도 결국 마모될지 모른다.

“월 낭자, 무슨 도움이 필요하시오?”

유 대인은 월령안의 말을 듣고 한시름 놓았다.

사실, 월령안에게 빚을 졌다고 말하고 나자 바로 후회했다.

월령안이 그것을 빌미로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요구할까 두려웠다. 나중에 둘이 정경유착을 했다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까 걱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내뱉은 말을 도로 담을 수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대답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월령안이 공당에서 말을 꺼냈다. 누구도 꼬투리 잡기 힘든 정정당당한 요구를 해야 할 것이다.

월령안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육 장군께 버림받았잖아요…….”

월령안이 입을 여는 순간, 육장봉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그 눈빛을 전혀 느끼지 못한 듯, 여전히 웃음을 띤 채 말을 이었다.

“유 대인, 저와 육 장군은 이제 더는 부부 관계가 아니에요. 그래서 육 장군 덕에 받은 봉호를 더는 누릴 수 없습니다. 규정대로라면 일품 장군 부인의 고명을 진작 거두어들였어야 했어요.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예부(禮部)에서 아직도 거두러 나오지를 않네요. 유 대인께서 대신 예부에 독촉 좀 해 주세요. 어서 빨리 절차를 밟아 고명을 거두어 달라고요.”

“이건……!”

유 대인은 저도 몰래 육장봉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육장봉의 얼굴빛은 음침했다.

유 대인은 가슴이 철렁해, 조금 부담스러워하며 말했다.

“월 낭자, 이 일은…….”

‘좀 힘든 일 같소만!’

월령안은 유 대인의 난처한 얼굴빛을 보지 못한 듯했다. 기대감에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

“유 대인, 번거롭진 않으시죠?”

그녀는 유 대인에게 거절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상냥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번거로우시다면, 제가 고명 부인으로 책봉한 조서와 예복을 유 대인께 보내 드릴게요. 예부의 관원분들께 폐를 끼치게 않게, 유 대인께서 저 대신 예부에 보내주세요. 부탁 좀 드릴게요.”

“월 낭자, 한 번 더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겠소?”

‘예부 관원들에게 폐를 끼치는 문제가 아니오. 월 낭자, 진짜 모르시오?’

유 대인은 울고 싶었다. 육장봉이 있는 쪽의 몸뚱이가 얼음 구덩이에라도 빠진 듯, 소름 끼치는 냉기가 느껴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육장봉에게 호소하고 싶었다.

‘육 장군, 오늘 그렇게 더운 날도 아닌데, 저 좀 놀라게 하지 마시지요! 일개 문관이라 전장에 나간 적이 없어서 장군의 살기가 감당이 안 됩니다!’

그러나 감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유 대인은 빚을 졌다는 한마디를 한 게 정말 후회되었다.

‘저 월령안은 이름난 대상인인데, 손해를 볼 리가 없지.’

유 대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월령안에게 눈짓했다.

‘다른 거로 바꾸면 안 되겠소?’

차라리 사적으로 이익을 주는 게, 그녀를 대신해 고명 조서를 반환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육 장군도 참…… 도대체 무슨 생각일꼬? 부인은 자기가 내쳤잖아. 육 장군이 말하기 전에, 지금 월령안 쪽에서 스스로 고명 조서를 내놓아서 관계를 청산하겠다는데. 육 대장군은 도대체 무엇이 불만이지?’

유 대인은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대놓고 말할 수가 없으니, 월령안에게 눈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정작 그녀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기대감에 찬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긍정적인 대답만 기다렸다.

육장봉은 유 대인이 월령안의 요구를 승낙하지 않자, 무척 만족스러웠다. 다시 눈길을 돌려 월령안을 바라보며, 그녀가 그 부탁을 취소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월령안은 생각할 틈도 없이 대답했다.

“심사숙고한 결과예요.”

육장봉은 얼굴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눈빛도 더욱 깊어졌다.

공당 안의 분위기도 싸늘해졌다. 유 대인뿐만 아니라 육십이처럼 무딘 사람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마님……!”

“조용히 하세요!”

월령안이 그에게 눈을 부릅떴다. 육십이는 흠칫 떨고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월령안은 고개를 돌려 달콤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었다. 유 대인이 한창 속을 끓이고 있을 때, 그녀가 깔끔하게 결론을 내려 주었다.

“제가 심사숙고를 거쳐 내린 결정이에요. 다른 문제가 없다면, 이렇게 하죠. 제가 돌아가서 고명을 대인께 보내 드릴게요. 부탁 좀 드려요.”

말을 마친 월령안은 유 대인에게 읍을 하였다.

“시간도 늦었는데,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유 대인은 정말 울고 싶어졌다.

“월 낭자, 이 일은…….”

‘서두를 필요 없잖소!’

“저도 알고 있답니다. 이 일은 하루빨리 해결해야 하죠. 제가 이혼을 당하고도, 밖에서 계속 일품 장군 부인이라는 이름을 내거는 걸 폐하께서 아시면, 육 장군의 명성을 더럽혔다고 제게 죄를 물으시겠죠. 어쩌면 육 장군께 누를 끼칠지도 몰라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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