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59)화 (59/1,004)

59화 은양당에서 온 증인

유 대인은 월령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해도 사건은 원칙대로 재판해야 한다. 그는 월령안을 절대 감싸지 않기로 했다. 물론 그녀에게는 그의 비호가 필요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월령안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게 분명했다. 이 사건은 그가 재판관으로서 앉아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그녀에게 코가 꿰여 끌려다니는 셈이었다.

백성을 위한 관리로서, 유 대인은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나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음 증인을 불렀다.

두 번째 증인은 변경에서 이름난 미곡상 ‘진기(陳記)’의 주인이었다.

진기의 주인도 변경에 발을 붙였으니 당연히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뒷줄도 있었다.

그러나 진기의 주인은 매 원외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영리하고 내성적인 인물이었다. 불려 들어와서는 몇 마디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도로 나갔다. 월령안과는 따로 얘기하지 않았고, 그녀도 감사의 인사만 건넸다.

이를 본 육십이는 무안해하며 한쪽에 묵묵히 서 있었다. 그저 미안하다는 눈길로 월령안을 애처롭게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의 눈빛에 월령안은 하는 수 없이 위로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시에 고개를 저으며 눈으로 말했다.

‘괜찮아!’

그러나 십이는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 두 손으로 옷자락을 쥐어뜯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를 본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탄식하고 말았다.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네려 했으나, 장소가 적절하지 않아 잠시 뒤로 미루었다.

진기의 주인이 증언을 마친 뒤, 유 대인은 남은 몇몇 증인을 하나하나 불러들였다.

이들 중에는 상인도 있고, 원외도 있었다. 대부분 월령안에게 원재료를 공급하는 상인이거나 제과점의 단골손님이었다.

유 대인은 그들을 불러들여, 일일이 질문하고 서명을 받은 다음 돌려보냈다.

맨 마지막으로 불려온 사람은 은양당의 집사였다.

집사는 중년의 부녀자였다. 강파른 몸매에 이목구비가 날카로웠으며 표정 또한 엄숙했다. 얼핏 보아도 규칙에 엄격해 보이고 쉽게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은 인물이었다.

그녀는 풀을 먹여 깔끔하게 손질한 낡은 남색 무명옷을 입고 있었다. 예의 바르게 앞으로 나아가, 유 대인에게 대범하게 예를 올렸다.

“유 대인을 뵙습니다.”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자긍심이 배어 있었다. 유 대인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을 뿐,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그대는…… 장(張) 상궁 마마님이 아니십니까?”

유 대인이 그녀를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대인께서 소인을 기억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장 상궁은 소인이라 자칭했지만, 노복으로서의 겸손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엄숙한 표정에는 자긍심과 단정함이 서려 있었다.

유 대인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흥분하여 말했다.

“제가 어찌 잊겠습니까. 마마님께서는 태후마마 곁에 오래 계신 분이 아닙니까. 제가 처음으로 황제 폐하를 알현하면서 긴장한 나머지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습니다. 바로 그때, 마마님께서 더위 먹었을 때 유용한 약을 가져다주셨지요. 그래서 제가 폐하 앞에서 추태를 보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 줄곧 어르신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은양당에서 집사 일을 하고 계셨군요.”

유 대인의 말을 듣고 난 월령안은 멍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의혹에 찬 눈길로 장 상궁을 바라보았다.

장 낭자(娘子 – 젊은 여성, 또는 중년의 부녀자를 지칭하는 호칭)를 오 년 동안 알고 지냈다. 그전에는 기질이 출중하고 사람됨이 근엄하며, 일 처리에도 법도가 있어 보여 비범한 출신일 거라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태후를 모시던 사람이라니, 내가 귀인을 만난 셈이잖아?’

그러나 월령안은 이 터무니없는 생각을 곧 날려 보냈다.

귀인이고 아니고를 떠나, 그녀는 장 낭자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오 년 전, 단 한 번 대화를 나눈 게 전부였다. 훗날 명절마다 짬을 내어 은양당 노인들에게 물건을 가져가는 것을 빼면, 둘 사이에는 접점이 없었다.

은양당의 집사, 장 낭자가 태후를 모시는 사람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나 뜻밖이었다.

육장봉이 의미심장하게 월령안을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얼굴도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운이 좋은 걸까, 아니면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세운 걸까.’

장 상궁과 이 정도의 친분이 있고, 오 년 내내 은양당에 음식을 보낸 선행이 있었다. 그렇다면 월령안은 분명 태후에게 눈도장을 찍었을 것이다. 이것은 하늘이 준 기회였다.

“태후마마께서는 자비로운 분이시지요. 칠 년 전, 은양당에서 노인을 학대하는 사건이 일어난 뒤로 줄곧 불안해하셨습니다. 소인이 자청하여 은양당에 간 건, 태후마마의 근심을 나누려했던 것뿐입니다.”

장 상궁은 비록 고개를 숙였으나, 말투에는 그 누구도 두렵지 않다는 듯한 자랑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이는 당연했다. 태후마마를 모시는 궁녀에, 품급을 받은 여관(女官)이었으니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충분했다.

“태후마마께서는 참 자비로우십니다.”

유 대인이 이를 듣고 급히 몸을 일으키더니, 황궁 방향으로 읍을 하였다. 예를 올리고 나서야 질문을 계속했다.

“공당으로 모신 건 사실 확인을 위해서입니다. 월씨가 가게에서 남은 간식을 매일 은양당으로 보낸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장 상궁은 월령안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담담한 표정을 보건대, 월령안과 친밀한 사이도 아니었다.

사실상 두 사람은 아무런 교제가 없는 게 확실했다.

장 상궁은 태후를 가까이 모시는 사람인 만큼, 다른 사람과 쉽게 교제하지 않았다. 설령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겉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그 사람이 기회를 틈타 기어오르다가 태후마마께 누를 끼칠지도 몰라서였다.

“월씨가 지난 이레 동안 보낸 과자의 수량, 종류 등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유 대인이 계속하여 질문했다.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곧이어 유 대인이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장 상궁은 지난 이레 동안 받았던 간식의 수량과 이름을 일일이 말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대인, 제과점에서 이레 동안 보낸 빈 과자 상자가 아직 은양당에 있습니다. 모든 상자 위에는 날짜와 이름, 수량이 적혀 있습니다. 언제든지 사람을 보내셔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제가 사람을 보내 사실인지 확인할 겁니다. 다른 의문이 없으시면 증언 기록에 서명해 주십시오.”

유 대인은 다시 한번 자세히 확인했다. 장 상궁이 말한 내용과 월령안이 제출한 증거를 하나하나 대조한 결과, 어긋나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 상인들은 이익을 바라고 월령안을 위해 증언 내지는 위증까지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 상궁은 그럴 가능성이 없었다. 장 상궁에게 위증을 교사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이로 보건대, 월령안이 제출한 증거에는 아무 문제점이 없었다.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서명을 마친 장 상궁은 유 대인에게 예를 올렸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도로 나갔다.

장 상궁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월령안은 인생은 참 묘하다고 생각했다.

은양당을 관리하는 장 낭자에게 이렇게 큰 배경이 있을 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존재감이 없던 사람이 신분을 숨긴 거물일 줄 누가 알았을까.

이번 사건을 통해, 은양당에 얼마나 많은 상인의 후원을 받게 될지는 안 봐도 훤했다. 게다가 귀인들의 시선도 끌게 되리라. 다들 은양당의 존재를 주목할 것이다.

태후마마의 호감을 얻으려는 자들이 은양당에 줄을 지어 드나들고, 우선 장 낭자의 호감부터 사려 할 것이다.

월령안은 장 낭자가 증인으로 나서면서 자기 신분을 드러냈다는 점이 의심스럽게 여겨졌다. 어쩌면 은양당으로 시선을 집중해, 후원을 받으려는 목적일 수도 있었다.

그녀가 속이 좁은 것도, 자기 기준으로만 남을 재는 것도 아니었다. 눈앞에 뻔히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 흘려 버릴 수 없을 뿐이었다.

장 낭자는 월령안이 요청한 마지막 증인이었다. 장 낭자가 증언에 서명하자, 월령안이 제출한 증거는 유효한 증거로서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만약 유 대인에게 아직 의문이 남아 있다면, 잠시 재판을 중지하고 증거를 사실과 대조하고 난 뒤, 다시 날을 잡아 재판할 수 있었다.

또는 곽삼석이 새로운 증거와 의문점을 제출할 수 있다면, 역시 다시 날을 잡아 재판하자고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 대인은 고집불통 개처럼 여전히 땅에 엎드려 발악하고 있는 곽삼석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혐오감이 스쳤다.

가련해 보이기는 하지만, 공당에서 제멋대로 지껄이고, 남을 모함한 자에게는 호감이 생기지 않았다.

유 대인은 곽삼석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대신 육장봉에게 사죄하더니 말했다.

“육 장군, 원고 곽삼석의 턱을 맞춰 주십시오. 제가 질문할 것이 있습니다.”

유 대인은 육장봉이 자신의 재판에 참견하는 게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의 일 처리가 소홀했던 게 먼저였다. 게다가 육장봉하고 기 싸움을 할 기력도 없어, 참을 수밖에 없었다.

“육이!”

육장봉도 얼굴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육이가 대답을 하고 곽삼석의 턱을 툭 쳤다. 우둑, 하는 소리와 함께 곽삼석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악……! 사람 잡네! 사람 죽는다! 군인이 사람을 죽이네!”

“정숙!”

유 대인은 불만스럽게 경당목을 내리쳤다.

“원고 곽삼석. 또다시 공당의 질서를 무시하고 소리를 질렀다가는, 공당에서 소란을 피운 죄로 곤장 열 대를 칠 것이다.”

“대인, 소인은 억울합니다!”

곽삼석은 후회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황급히 기어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월령안을 가리키며 억울한 듯 말했다.

“대인, 이 악덕 상인이 소인을 모함한 겁니다. 소인이 아까까지만 해도 정말로 일어서지를 못했습니다. 소인이 저 여인을 모함한 게 아닙니다.”

유 대인의 신임을 얻기 위해 곽삼석은 말을 이었다.

“대인도 보셨을 겁니다. 소인이 저 여인을 때리려고 하긴 했지만, 갑자기 무릎이 꿇리며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저 악덕 상인이 무슨 악랄한 수를 쓴 겁니다. 소인을 위해 말씀 좀 해 주십시오!”

“곽삼석, 이곳은 공당이다! 네가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라. 또 소란을 피웠다가는 가만두지 않겠다!”

유 대인은 곽삼석이 툭하면 울부짖고 통곡하는 모습에 염증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가 엄살을 피워 월령안을 모함하려 한다고 여겼다.

그가 이렇게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곽삼석은 월령안을 모함한 전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 대인뿐만 아니라 공당 밖의 구경꾼들도 곽삼석을 보고는 머리를 저으며 탄식했다.

“인간이 덜됐네. 아까 그 얼굴이 까만 젊은이가 한 말이 맞아. 저 인간은 양심이 없는 거야. 내가 봤을 땐, 어머니가 죽은 이유도 다른 숨겨진 사연이 있을 거야. 간식을 먹고 독살당한 건 확실히 아니야.”

“들었지, 그 간식의 원재료들? 새벽이슬을 머금은 꽃에, 북쪽에서 나는 최상품 밀가루, 초원에 놓아 기르는 양에게서 조금 짜낸 젖, 수유(酥油 - 우유, 양젖에서 추출한 유지방)도 변방의 귀족들이 쓰는 거라잖아. 그리고 살구씨, 땅콩 등등 말로는 진상품에 버금간다고 하잖아. 모두 최상급 원재료로 만들어서 일반인들은 돈이 있어도 못 산다며. 게다가 모든 간식은 만든 당일에만 판대. 이렇게 좋은 간식을 먹고 죽는다는 게 말이 돼!”

“아니야, 그렇게 좋은 간식이면, 먹고 죽는다고 해도 먹어보고 싶은걸.”

“못 들었어? 저 가게 간식은 가장 저렴한 게, 한 상자에 다섯 냥이라잖아. 먹고 싶어도 못 먹어요.”

“한 상자에 다섯 냥이 어때서? 그만한 가치가 있잖아. 그 재료를 봐서는 돈만 있으면 열 냥이라도 사 먹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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