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58)화 (58/1,004)

58화 매 원외와의 거래

“곽삼석의 일은 내가 조사할 것이다.”

거짓말이 들통났는데도 곽삼석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자, 유 대인은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는 곽삼석을 줄곧 동정했다. 그의 편이 되어 주는 게 정의라고 생각했건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자신이 정의라고 여겼던 게, 곽삼석의 모함이 아니었나 의심하기 시작했다.

순간, 유 대인은 피로가 확 몰려와 더는 재판을 계속할 기운이 없었다. 그래서 월령안을 위로하며 말했다.

“월씨, 오늘 일은 내가 실수한 것 같네. 이 사건은 다시 재판하겠으니 걱정하지 말게. 나는 절대로 악한 사람을 풀어 주지도, 선한 사람을 억울하게 벌하지도 않겠네.”

“대인, 대인께서 원하시는 증인들이 밖에 있습니다. 다시 재판하실 것 없이, 증인들을 불러 물으시면 됩니다.”

월령안이 유 대인을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이 공손했지만, 적당히 거리를 두었다. 그의 인정을 받았다고 감동하지도, 편견 때문에 화를 내지도 않았다. 더구나 그가 죄책감을 느낀다 해서 의기양양하지도 않았다.

남들 눈에는 월령안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으리라. 그러나 육장봉은 그녀가 유 대인에게 애초에 그 어떤 기대도 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대가 없었으니 실망도 없었고, 자연스레 마음을 다칠 일도 없었다.

“증인들이 밖에 있다고? 이 증거와 관련된 증인들이 전부 밖에 있다는 말인가?”

유 대인은 월령안의 말에 깜짝 놀랐다.

월령안이 제출한 증거에 따르면, 관련 증인만 수십 명이었다. 더군다나 그중 대부분은 거상이었다.

이들의 지위는 월령안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지 않았다. 그런데 월령안이 대체 무슨 수로 그들 전부를 증인으로 불렀단 말인가?

또 명심해야 할 점이 있었다. 거상이라면 누구나 믿을 만한 뒷배를 가지고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월령안의 증거에 제일 먼저 이름을 올린 매기(梅記)의 주인만 해도, 궁중의 귀인과 연줄이 닿아 있었다. 순천부윤인 자신도 그들을 불러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증언을 들으려면 반드시 직접 만나서 부탁해야 하는 상대였다.

“네.”

월령안은 유 대인에게 확답을 주었다. 유 대인은 깜짝 놀랐다.

“그들이 어떻게…….”

말을 하던 중, 유 대인은 호들갑을 떠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느껴 천천히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밖에서 기다리는 증인들을 한 명씩 들여보내라고 관졸에게 명령했다.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월령안에게 생화를 제공하는 매기의 주인이었다. 약 마흔 살 정도로 보였는데, 매우 부티가 났다. 비단옷을 차려입고 있어서 걸을 때마다 방귀를 뀌는 것처럼 ‘픽픽’ 하는 소리가 계속 났다.

청중들 대부분은 이 소리가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분위기를 깨트릴 수 없어 웃음을 참았다.

“푸흡!”

그러나 육십이는 거리낌 없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것뿐이면 모를까, 하필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서둘러 입을 틀어막고 손을 연신 저으며 변명했다.

“저, 저기…… 일부러 웃은 것이 아니에요. 정말로, 비웃은 게 아니에요…….”

월령안과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월령안은 육십이처럼 경솔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아까 그가 그녀의 든든한 편이 되어, 하고 싶지만 못했던 말들을 전부 대신해 준 것을 떠올렸다.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몰래 육십이에게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바로 웃는 얼굴로 매기의 살집 있는 주인한테 다가가 예를 올렸다.

“매 원외(員外 – 옛날 지주, 부호 등을 부르는 호칭), 저희 집안 아이가 철이 없어 실례를 범했습니다. 매 원외께서는 어린아이의 실례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자네 집안의 아이인가?”

월령안의 말을 듣자, 굳어졌던 매 원외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월…….”

월령안이 자기 때문에 남에게 억지웃음을 짓는 것을 보자, 육십이는 감동과 자책감을 동시에 느꼈다. 직접 나서서 그녀를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그녀의 눈빛을 받고 입을 꾹 다물었다.

월령안은 여전히 억지웃음을 지은 채 매 원외의 비위를 맞췄다.

“어린애라 오냐오냐하다 보니 철이 없어요. 매 원외 댁의 훌륭한 공자님과 어디 비교나 하겠어요. 매 공자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공자님에겐 정말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죠.”

“하하하……. 우리 집 그 녀석이 사실 별거 없어. 글 좀 읽었다 뿐이지. 돌덩이를 금으로 만드는 월 낭자의 재주에 비하면, 그 녀석의 재주는 없는 거나 다름없어. 그놈이 월 낭자만큼 능력이 있었다면 걱정이 없었을 텐데, 내 가업을 물려줄 사람이 없구먼.”

월령안의 말을 듣자, 매 원외는 기뻐서 껄껄 웃었다.

“매 원외, 절 놀리시는 거죠? 저야 고생해서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는 수준인데요. 어떻게 매 공자님과 비교하겠어요. 내년 대비(大比 – 삼 년에 한 번 치르는 과거 시험의 총칭)에는 꼭 급제하실 겁니다. 그때가 되면 매 원외께서도 저한테 축하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

월령안은 듣기 좋은 말만 한 게 아니었다. 매 원외에게 사죄의 의미로 큰 선물을 주겠다고 넌지시 암시하고 있었다.

“그럼, 물론이지!”

매 원외가 껄껄 웃자, 살찐 얼굴이 한 덩어리로 뭉쳐졌다. 녹두알만 한 두 눈이 데굴데굴 굴렸다.

“월 낭자, 오늘 이 일은……. 내가 자네 체면을 세워 준 셈이지. 나중에 재산을 처리할 것이 있거든 날 잊지 마시게.”

예전에 월령안이 수중의 사업을 처분할 때, 그는 전혀 이득을 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크게 손해를 본 것 같았다.

“매 원외께서 제 조그만 사업 가지고는 눈에 차지 않을까 봐서 걱정인걸요. 마음에 드시는 게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만 하세요.”

매 원외는 이 틈에 이득을 보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월령안의 눈에는 속셈이 뻔히 보였지만, 선뜻 승낙했다.

지금의 그녀로서는 별수가 없었다. 그녀는 육장봉도 아니고, 일품 장군 부인도 아니었다.

“자네의 그 제과점이 정말 괜찮더군, 우리 딸이 날 닮아서 어찌나 먹는 것을 좋아하는지, 하루만 못 먹으면 난리가 난다니까. 자네 가게 문을 닫았던 며칠 동안 우리 딸이 아주 반쪽이 되었다네.”

매 원외는 전혀 거리낌 없이 입을 열었다.

“월 낭자…….”

그 말을 들은 육십이는 안절부절못했다.

“조용히 해!”

월령안은 차가운 얼굴로 호통을 치더니, 돌아서서 매 원외에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매 원외께서 싫지 않으시다면 제가 계약서와 제조법, 주방 어멈까지 다 보내 드릴게요.”

두 사람의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공당 안에서는 들을 수 있었지만, 공당 밖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공당 안에서는 사리사욕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유 대인마저 침묵을 지켰다. 공당 밖에 있느라 대화 내용을 듣지 못한 백성들은 궁금했지만, 더는 묻는 사람이 없었다.

“좋고말고! 싫어할 리가 있나! 이번 일을 겪고 자네 가게가 더 잘 될 게 뻔한데. 앞으로 변경에서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나 귀족 아가씨들이 간식을 산다면 분명히 자네 가게를 제일 먼저 선택하겠지.”

매 원외는 만족스러워서, 녹두알만 하던 눈이 실눈이 되었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매 원외는 월령안에게 더는 치근거리지 않았다. 두 걸음 성큼 나아가 윗자리에 앉은 유 대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유 대인, 저는 월 낭자의 증인이 되어 주러 왔습니다. 월 낭자의 가게에서 쓰는 생화는 전부 우리 매기에서 납품한 겁니다. 매일 날이 밝기 전 어린 소녀들이 따 온 것이고, 절대 다른 사람의 손을 타지 않습니다. 그 생화들을 이슬을 머금은 채로 월 낭자의 가게로 배달합니다.”

이 제과점은 곧 매 원외의 손에 들어올 터였다. 절로 좋은 말이 술술 나왔다.

“제가 가슴에 손을 얹고 보장할 수 있습니다. 월 낭자 가게에서 쓰는 재료는 모두 최고급 재료입니다. 여기서 만들어낸 간식을 먹고 죽을 리가 없습니다. 유 대인, 믿지 못하시겠거든 사람을 시켜 저희 매원(梅園)에 가 보십시오. 저희 꽃밭의 꽃은 하나하나 전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합니다.”

여기까지 말하자, 매 원외는 우쭐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들 가문의 꽃밭은 황제도 칭찬한 적이 있었다. 감히 누가 트집을 잡을 수 있겠는가.

유 대인의 얼굴이 부자연스럽게 떨렸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진 거래가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겉으로는 점잖게 말했다.

“매 원외, 증언은 다 기록했으니 서명하시오.”

“서명! 물론이죠. 하고말고요. 서명하지요!”

매 원외는 건네받은 문서에 기록된 증언들을 읽지도 않고 대충 서명하고 호언장담했다.

“서명했습니다. 월 낭자의 가게와 관련된 일이라면, 언제든 절 찾아오시지요.”

“협조해 줘서 고맙소.”

유 대인은 역겨웠지만, 끝까지 예의 바르게 사람을 내보냈다.

월령안도 매 원외에게 감사를 표했다.

“매 원외께 감사드립니다. 매 원외께서 좋은 분이셔서 망정이지, 이번 일로 폐를 끼쳐드렸네요.”

“확실히 성가시기는 했네! 월 낭자, 자네라서 온 거야. 딴 사람이었으면 아무리 부탁을 해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걸세.”

매 원외는 조금도 예의 차리는 기색 없이 교만하게 말했다.

“매 원외께서 항상 저를 많이 배려해 주시는 거야 잘 알고 있지요.”

월령안은 지극히 겸손한 태도로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제야 매 원외가 자리를 떴다.

매 원외가 떠나자 공당 안은 순간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월령안을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오직 육장봉만 달랐다. 월령안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너무 담담해서 무서울 정도였다.

월령안은 육장봉을 훑어보고 곧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왜 저를 쳐다보세요? 매 원외께서 이미 증언을 하셨으니, 다음은 미곡상 진기(陳記)의 주인장께서 증언하실 차례죠?”

“월씨, 나는…….”

유 대인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는 분명 백성의 편이 되어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겠다고 했다. 정작 불공평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인, 그저 정상적인 거래일 뿐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매 원외를 매수해서 증언해 달라고 한 게 아닙니다.”

“알고 있네!”

유 대인은 월령안이 이렇게 큰 손해를 보고도 자신이 오해할까 걱정하는 것을 보자, 더욱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월 낭자, 어째서…….”

육십이는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분명 이렇게 큰 손해를 봤는데, 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사람들에게 억지웃음을 짓고 계시는 거지?’

육십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자마자 월령안이 무섭게 한마디 했다.

“입 다물어요!”

“저, 저…….”

육십이는 깜짝 놀라 딸꾹질을 했다. 월령안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분명 아까까지는 방긋 웃으시더니? 왜 갑자기 화를 내시지?

육십이는 순간 억울해졌다.

월령안은 그런 그를 흘겨보고 육이에게 물었다.

“저분은 평소에도 저래요?”

육이는 침묵을 지켰다. 여기는 공당이라, 말을 나누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었다. 사건이 끝나고 나면 그들은 월령안에게 사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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