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
일순간, 공당 안팎이 전부 소란스러워졌다. 유 대인은 머리가 아팠다. 손에 든 경당목을 탁탁 두드리고 연속 두 번 ‘정숙’을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도 화가 났다.
“누구든 더 떠들면, 모조리 잡아서 감옥에 처넣을 것이다!”
이 말 한마디는 경당목을 백 번 두드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었다. 유 대인이 말을 마치자누구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곽삼석도 입을 다물고 더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는 피에 물든 시커먼 얼굴을 치켜든 채 유 대인을 처량하게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절박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유 대인은 그런 그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권세도 힘도 없는 백성의 삶은 정말 고달프구나! 나마저도 그들의 편을 들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의 편이 되어줄까?’
유 대인은 마음속으로 결단을 내렸다. 곧 엄숙한 얼굴로 물었다.
“월씨, 너는 곽삼석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곽삼석이 왜 바닥에 꿇어앉은 채 일어서지 못하는 것이냐?”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월령안은 줄곧 조용했다.
구경하던 백성들이 욕을 해도 변명하지 않았고, 편을 들어줘도 우쭐대지 않았다. 심지어 유 대인의 태도가 바뀌어도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그녀는 줄곧 평온했다.
육장봉은 그녀를 흘긋 바라보았다. 바로 시선을 거두더니 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곽삼석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에 잠시 웃음기가 서렸다.
‘못됐군. 분명 자기가 곽삼석을 골탕 먹였으면서 누구보다 억울한 척하기는.’
“그럼 곽삼석이 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이냐?”
유 대인이 질문했다.
월령안은 곽삼석을 훑어보고 나서 말했다.
“그건 저자에게 직접 물으시지요.”
“대인, 이 악덕 상인을 좀 보세요. 저년이 사람을 때렸습니다. 대인도 직접 보셨지요. 저년이 소인을 갑자기 무릎 꿇린 뒤로는 다시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대인, 보세요…….”
곽삼석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관리의 힘을 빌려 일어서려고 했다.
그 결과, 그는 일어설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곽삼석은 얼굴색이 변했다. 순간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안 돼! 절대 안 돼! 내가 일어설 수 있다는 걸 유 대인이 알게 해서는 안 돼!’
다급한 나머지 일어나려던 순간, 별수 없이 다시 꿇어앉았다. 안간힘을 다 쓴 척하며 말했다.
“대인, 이것 좀 보십시오…….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곽삼석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땀에 흠뻑 젖은 모습도 애를 잔뜩 쓰는 것처럼 보였다.
관졸들도 그의 팔을 힘껏 잡아당겨 보았지만, 그의 팔은 축 늘어져 자꾸만 아래로 떨어졌다. 관졸이 의아함을 느끼고 유 대인에게 말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유 대인이 입을 열었다.
“월씨, 또 할 말이 있느냐?”
“전 할 말이 없습니다. 저자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면 평생 여기에 꿇어앉으라죠. 여기에 다리가 뿌리를 내리는지 좀 보게요.”
월령안은 도도하게 고개를 돌리며 더는 상대하기 싫다는 듯 말했다.
“대인, 보세요, 좀 보세요……. 저년이 당황했어요.”
정작 당황한 쪽은 곽삼석이었다. 그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자신의 이러한 행동이 관졸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몰랐다.
관졸은 곽삼석을 제압하던 손을 풀고 유 대인에게 다가가 공수를 하고 말했다.
“대인, 이 곽삼석이…….”
“육이, 저놈의 두 다리를 분질러라!”
옆에 앉아서 방청하던 육장봉이 갑자기 입을 열어 관졸의 말을 막았다.
“육 장군!”
유 대인은 멍해졌다.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예, 장군.”
육이는 명령을 받자마자 바로 나섰다. 얼굴을 굳힌 채 곽삼석에게 걸어갔다.
곽삼석은 당황했다.
“아니, 아니, 안 됩……. 대인, 저들이 소인을 해치려고 합니다, 대인, 살려주세요.”
곽삼석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일어서면 안 된다고, 움직이면 안 된다고 되뇌었다. 이들은 분명 자신에게 겁을 주려는 것뿐이라고, 움직였다가는 모조리 들킬 것이라고.
하지만 육이가 살기를 뿜으며 칼을 든 채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 공포심을 억제하지 못했다. 육이가 칼을 들어 올린 찰나, 곽삼석은 벌떡 기어 일어나 밖으로 냅다 줄행랑을 치려 했다.
“살려 주세요! 사람 살려요! 살인이야……!”
그의 행동은 매우 빨랐지만 육이가 더 빨랐다.
곽삼석이 몸을 일으켜 겨우 한 걸음 뛰자마자, 육이가 바로 제압했다.
퍽!
육이는 곽삼석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의 양손을 뒤로 잡아당겼다. 등을 한쪽 무릎으로 꽉 눌러 꼼짝달싹 못 하게 했다.
“조용히 해. 움직이지 마!”
“대인, 대인……! 살려 주세요! “
곽삼석은 바닥에 거칠게 나뒹굴었다. 뺨마저 바닥에 짓눌렸다.
그의 얼굴은 온통 피로 물들어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는 아파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안타깝게도 동정하는 이는 없었다.
‘저놈, 정말 악질이구먼!’
공당 밖에서 구경하던 백성들의 입이 하나같이 떡 벌어졌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악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감히 유 대인 앞에서 사람을 모함하려 들다니?’
‘이 세상에 어쩜 이렇게 악랄한 사람이 있을꼬?’
구경꾼들은 이 사실을 차마 믿을 수 없었다.
육십이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잔뜩 화가 난 나머지 펄쩍 뛰어나와 말했다.
“이 인간 아주 못 됐네! 일부러 일어나지 못하는 척하면서 월 낭자를 모함하다니! 이 세상에 월 낭자처럼 아름다운 분을 모함하려는 나쁜 사람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어요!”
얼굴을 굳히고 있던 월령안은 육십이의 말을 듣자,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육십이는 정말 익살꾸러기네! 육장봉은 이런 사람을 어디서 찾아냈을까?’
육장봉처럼 엄격한 사람이 이렇게 활발하고 통통 튀는 사람을 친위대로 삼다니.
그도 보기와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월령안은 너무 크게 웃었다가는 사람들에게 밉보일까 봐 웃음을 꾹 참느라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이 모습을 본 순간, 육장봉은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원래 육이에게 명령한 사람은 나인데, 결국 육십이 녀석이 공을 다 가로챘잖아?’
육장봉은 육십이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정작 육십이는 둔감해서 이상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월령안의 목소리를 들은 육십이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가 화가 나서 우는 줄 알고는 분노가 더욱 치솟았다.
육십이는 앞뒤 가리지 않고 소매를 걷어붙이더니 곽삼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유 대인, 월 낭자가 화나서 울고 있지 않습니까! 이 나쁜 놈을 반드시 엄벌해 주세요. 절대 쉽게 풀어 주면 안 됩니다!”
‘내가 화가 나서 울었다고?’
월령안은 입을 딱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육십이의 새빨간 거짓말에 그녀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소인은 아닙니다! 대인, 잘 살펴 주십시오! 소인은 억울합니다!”
곽삼석은 육이에게 제압당해 바닥에 짓눌려 있었다. 옴짝달싹 못 하자 무섭고 두려워졌다. 게다가 유 대인이 정말로 조사할까 봐 두려워, 얼굴의 통증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청을 높여 울부짖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의 안중에 육십이만 있는 모습을 보자,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자의 턱을 빼라.”
“예, 장군.”
육이가 손목을 움직이자 곽삼석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다시는 소리를 내지 못했다.
공당 밖에서 육이의 솜씨를 본 백성들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같이 반짝이는 동경의 눈빛으로 육이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저게 전장에서 돌아온 용사구나. 저 살기 좀 봐. 소름이 쫙 끼치네!”
월령안도 육이를 흘깃 보았다.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육이를 감탄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육장봉은 갑자기 짜증이 났다. 하지만 더욱 짜증 나는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육십이는 전혀 남의 눈치를 볼 줄 몰랐다. 월령안이 이렇게 큰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항변 한마디 하지 않는 모습을 보자, 정의를 위해서라는 듯 그녀의 편에 서서 말을 했다.
육십이는 곽삼석을 가리키며 화가 나서 말했다.
“유 대인, 이 곽삼석이라는 인간을 잘 조사해 보셔야 합니다. 이렇게 나쁜 사람인 걸 보니, 어머니의 죽음에도 다른 내막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놈이 월 낭자를 모함한 게 분명합니다. 월 낭자처럼 좋은 분이 어떻게 곰팡이가 핀 간식을 팔겠어요?”
월령안이 정말로 좋은 사람임을 증명하려고, 육십이는 생각을 하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월 낭자는 돈이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유 대인, 들어보세요. 저와 월 낭자는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제가 아름답다고 칭찬했더니 만금이나 되는 명마를 선물로 주신대요. 월 낭자처럼 이렇게 통이 큰 분이,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사람 목숨을 해치겠어요?”
여기까지 말한 육십이는 은근히 뿌듯함을 느꼈다. 말투가 갑자기 경쾌해졌다.
“월 낭자처럼 아름답고 통이 큰 분이 어떻게 저놈의 어머니를 해쳤겠어요. 이 양심 없는 자식이 월 낭자를 모함한 걸 거예요. 저놈이 유 대인 앞에서 월 낭자도 모함하는데, 뒤에서 무슨 일을 벌일지 누가 알아요? 유 대인, 월 낭자가 공연히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판결해 주세요!”
육십이는 여전히 소년의 목청을 가지고 있어 목소리가 맑고 듣기 좋았다. 서둘러 빠르게 쏟아내는 말도 전혀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적어도 유 대인은 그의 말을 끊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육십이의 말을 듣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이 젊은이의 말이 아주 타당하다고 여겼다. 게다가 그는 육 장군의 사람이니, 분명 좋은 사람일 것이다.
유독 곽삼석만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턱이 빠진 채 움직이지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육십이의 말을 들은 그는 엉망으로 꿈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육십이가 또 그를 가리키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보세요! 저놈이 켕기는 게 있나 봐요!”
한쪽에 서 있던 월령안은 육십이의 이러한 행동들에 놀라 입도 다물지 못했다.
이 육십이는 정말이지 인재였다. 오추마를 선물로 주더라도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아직 공당에 있다 보니, 월령안은 사람들 앞에서 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저 육십이에게 몰래 엄지를 척 내밀어서 소리 없이 칭찬했다.
‘잘했어!’
육십이는 그 모습을 보았다. 만약 그에게 꼬리가 있었더라면, 그 꼬리는 분명 높이 치솟았을 것이다.
그는 월령안에게 눈을 깜박이고,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손짓까지 했다. 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유 대인을 독촉해 곽삼석을 잘 조사해 보라고 했다.
한쪽에 앉아 있던 육장봉은 월령안과 육십이가 서로 ‘눈으로 말하는’ 모습에 형언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재주는 누가 넘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더니. 월령안이 감사 인사를 할 대상을 착각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