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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6)화 (56/1,004)

56화 재고의 행방

유 대인은 매일 팔고 남은 재고의 행방을 한참이나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여기 적힌 게 전부 사실이냐?”

“대인께서 조사하셔도 됩니다. 만약 단 하나라도 거짓이 섞였다면, 저는 바로 가게 문을 닫고 다시는 변경에서 과자를 팔지 않을 것입니다.”

제출한 증거는 전부 사실이었다. 월령안은 자신이 있었다. 단지 누군가 손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있었다. 그래서 말을 극단적으로 하지 않고, 충분한 여지를 남겨 두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육장봉은 월령안의 잔머리를 알고 있었다.

정말이지 월령안은 잔머리가 보통 잘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일반인들은 그녀의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싫지는 않았다.

육장봉은 고개를 젓더니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월령안이 그녀가 파 놓은 구덩이로 유 대인을 끌고 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을 뿐이다.

이 사건이 끝난 뒤, 유칙이 월령안을 다른 눈으로 보리라고 확신했다. 훗날에는 그녀를 조금이나마 편들어 줄 가능성도 있었다.

월령안이라는 여인에게는 그런 재주가 있었다. 그녀를 만나 본 사람들은 남녀 구분 없이 모두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네, 네 가게의 과자는 다음날까지 둔 적이 한 번도 없단 말이냐?”

유 대인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또다시 물었다.

월령안 명의의 그 제과점은 변경에서 아주 유명했다. 듣기로는 그 가게의 과자는 아주 훌륭해서, 한 번 먹어 보기만 하면 그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듣기로는’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유 대인 본인이 살 엄두도 못 냈기 때문이다. 제일 싼 과자도 한 상자에 다섯 냥이나 했다!

일전에 그의 딸이 먹고 싶다고 해서 사다 주겠노라 약속했던 적이 있었다. 정작 가게에 가 보니 제일 싼 것도 다섯 냥이나 하는 바람에 쌈지를 움켜쥐고 묵묵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의 한 달 봉급이 열 냥 남짓이었다. 과자 한 상자를 사면 보름치 봉급을 써버리는 셈이었다. 도저히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유 대인은 월령안이 악덕 상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월령안이 정리해 둔 원료와 가격을 자세히 보고 나자, 한 상자에 다섯 냥이나 하는 계화고(桂花糕 - 찹쌀과 설탕, 금목서를 재운 꿀로 만든 간식)가 그리 비싸지 않게 느껴졌다. 그 값어치를 제대로 하는 것 같았다.

월령안은 그가 상상한 악덕 상인과는 다른 것 같았다.

“대인, 저희 가게는 입소문에 의지해 장사하는 곳입니다. 제가 그 가게를 변경에서 오 년간 운영했습니다. 사람을 시켜 알아보세요. 제 가게에서는 하루가 지난 음식은 절대 팔지 않습니다.”

월령안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 담백하게 말했다.

“남은 음식은 전부 교외의 은양당(恩養堂)으로 보냈다는 것도 사실이냐?”

유 대인이 제일 놀란 부분이 여기였다.

월령안 가게의 과자가 얼마나 비싼가. 하지만 그녀는 통도 크게, 매일 은양당으로 대여섯 상자씩 간식을 보냈다. 제일 많을 때는 열 상자도 되었다.

매일 음식이 이렇게 많이 남으면 적게 만들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가게의 음식은 매일 적어도 다섯 상자는 남았다.

월령안이 말했다.

“대인, 이에 대해서도 은양당에 가서 조사하시면 됩니다. 저도 증거를 조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에게는 왕래한 증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증인도 한둘이 아니었다.

유 대인이 조사하더라도 걱정이 없었다. 오히려 조사도 제대로 안 하고 그녀의 죄라고 단정 지을까 걱정이었다.

“내가 듣기로, 네 가게의 간식은 매우 잘 팔리고, 늦게 가면 살 수가 없다고 하였다. 어찌 매일 대여섯 상자씩 남은 것이냐?”

이 일은 조작한 것 같지 않았다. 유 대인도 월령안이 거짓을 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가 걸렸다.

‘그렇게 잘 팔린다면서 어떻게 매일 남는 게 있다는 말인가? 이건 앞뒤가 안 맞는데?’

“왜냐면…….”

월령안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속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팔리지 않아서 버리는 것이라고 해야 은양당에서 받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을 위해 특별히 남겨 두었다고 하면, 그분들이 받으시겠습니까?”

“왜 그렇게 하느냐?”

유 대인은 아까 오 년 전의 장부를 넘겨보았다가, 월령안이 가게를 연 날부터 매일 은양당에 음식을 보낸 사실을 발견했다. 오 년 동안 하루도 빠진 날이 없었다.

“왜냐면…….”

월령안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게는 모실 부모도, 돌볼 아이도 없기 때문입니다.”

“미안하오. 내가 실례했소.”

유 대인은 멍해졌다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두 손으로 읍을 하며 월령안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월령안의 눈에는 옅은 슬픔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유 대인, 천만의 말씀입니다.”

역시 오 년 동안의 베풂이 헛되지 않았다.

그녀가 은양당에 간식을 보낸 데에 다른 뜻은 없었다. 정말로 정붙일 데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다만 적절하게 써먹을 데가 있고, 그녀에게 좋은 명성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이 일을 한 번쯤 내세우는 것도 상관없었다.

육장봉의 말이 맞았다. 그녀의 마음은 순수하지 않았다. 그녀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굳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은 너무 높아서, 그녀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저 은양당 노인들에게 음식을 보내는 지금처럼,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돕고 싶은 사람을 마음 가는 대로 돕고 싶을 뿐이었다.

유 대인은 여기서 그만두지 않고 또 읍을 하고 말했다.

“부인의 고결한 뜻도 모르고, 소관이 실례가 많았습니다.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유 대인,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소한 일인데, 유 대인의 칭찬을 받을 정도는 아닙니다.”

월령안은 한 걸음 피해 유 대인의 절을 받지 않았다. 표정도 담담했다. 이 일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이 행동으로 인해, 유 대인은 월령안에 대한 인상이 더욱 좋아졌다.

‘월씨는 마음속에 따뜻함을 가지고, 묵묵히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 이는 분명히 상인의 모범이 될 만한 모습인데, 내가 어찌 이런 월씨를 악덕 상인으로 여겼단 말인가? 확실히 내 마음속에 편견이 있었구나!’

월령안에 대한 유 대인의 인상이 크게 바뀌자, 공당 안에서도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부드러워졌다.

공당 밖에서 구경하던 백성들이 하나같이 어리둥절했다. 의아하다는 듯 옆 사람을 쳐다보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재판하는 게 아니었나? 유 대인은 왜 갑자기 월씨에게 읍을 하신 거지?”

“유 대인이 왜 저런 거야?”

“저기, 조금 전에 은양당이라고 하지 않았어? 혹시 저 여자 상인이 은양당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걸까?”

“유 대인이 아까 읍을 두 번이나 했다고. 유 대인은 줄곧 강직하셨고, 권세에 머리를 숙이는 법이 없으셨는데, 일개 여인에게 읍을 하다니. 이건…… 난 이해가 안 되는데?”

“유 대인이 뭐라 하시는지 들어 보자고. 난 유 대인이 권세에 휘둘리지 않으셨다고 믿어.”

“맞아, 맞아. 우리 유 대인을 믿어 보자고. 유 대인이 어떻게 사건을 판결하실지 지켜보세.”

유 대인이 재차 월령안에게 읍을 하자, 공당 밖의 백성들도 그녀에 대한 적의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앞으로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 잔뜩 기대를 품은 채 지켜보고 있었다.

유 대인도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월령안을 믿었다.

제과점의 오 년간의 장부는 가짜가 아닐 것이다. 월령안이 이렇게 내놓는 걸 보니, 가짜일 리가 없었다.

어차피 장부에 기록된 모든 것에 관해서는 증인을 찾을 수 있었다. 월령안이 가게의 하인들을 매수할 수는 있어도, 장부에 기록된 손님들까지 매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건을 판결하려면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야 했다. 유 대인의 믿는다는 말 한마디로, 월령안이 바친 증거가 증거로 채택될 수는 없었다.

증거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월령안이 기록한 내용 중, 사람과 관련된 내용은 증인을 불러서 물어봐야 했다. 증인을 모두 불러오지는 못하더라도, 사람을 시켜 사실 확인은 해야 했다.

유 대인은 월령안이 제출한 증거를 전부 대조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이 사건을 다시 재판하기로 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곽삼석과 월령안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곽삼석의 이유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대인, 그 가게에서 무슨 재료를 썼던, 하룻밤 지난 과자를 팔지 않았던, 은양당에 과자를 보내든 말든 소인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소인의 어머니가 저 가게 음식을 먹고 죽었으니 저들이 제 어머니 목숨값을 물어내야지요!”

곽삼석은 다급하고 빠르게 말했다.

그는 월령안의 술수에 당하는 바람에 자신이 무릎을 꿇은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머리를 굴리더니 갑자기 크게 울부짖었다.

“대인, 저 악덕 상인이 저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제가 아직도 일어서지 못하겠습니다. 절대로 저 악덕 상인의 말을 믿으시면 안 됩니다. 저년이 미리 준비해 두고 증인을 매수한 게 틀림없습니다. 절대 믿으시면 안 됩니다!”

곽삼석은 호소하는 한편 유 대인 앞에서 바닥에 머리를 짓찧다시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이 온통 피로 물들었다.

“대인, 저 악덕 상인은 돈도 있고 권세도 있습니다. 대인마저 제 편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저희 일가족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인…….”

“얼른…… 저자를 막거라! 다시 절을 하지 못 하게 해라.”

유 대인은 조금 전까지 월령안의 정의로운 행동에 호감이 생겼었다. 하지만 곽삼석의 비참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관졸이 앞으로 나와 곽삼석을 제압했다. 곽삼석은 힘껏 몸부림치며 억지로 머리를 조아리려 했다.

“대인, 부디 소인의 편을 들어주십시오. 소인의 어머니는 너무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소인의 어머니는 평생 고생만 하다 자식들에게 효도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렇게 잔인하게 독살당했습니다! 소인의 어머니도 멀쩡한 사람이었습니다!

저 악덕 상인이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알고, 독이 든 음식을 팔아 사람이 죽었는데 죄를 인정하기는커녕 잘난 척을 하고 있습니다. 대인, 대인! 제발 저 간악한 상인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세요! 대인, 보십시오……. 저 악덕 상인이 제 어머니를 죽인 것도 모자라 저마저 해치려고 합니다.”

곽삼석이 울부짖는 모습은 아주 처량했다.

그의 말을 듣자, 공당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곽삼석 말이 맞네. 은양당에 음식을 보내는 거랑 사람이 저 가게 음식을 먹고 죽은 거랑 무슨 상관이야? 어쩌면 저 가게 음식이 맛있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아서 은양당의 그 보살펴 줄 사람 없는 노인들에게나 주는 건지도 모르지.”

“은양당에서도 저 집 음식을 먹고 죽은 노인이 있을지도 몰라.”

“이 사건을 잘 조사해야 해. 저 악덕 상인이 법망을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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