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55)화 (55/1,004)

55화 증거 제출

“육 장군, 저…….”

유 대인은 육장봉의 말을 듣자 난처해졌다.

“왜 그러시오? 공개로 재판하는 사건인데, 나는 방청을 할 수 없소이까?”

육장봉은 발걸음을 멈추고 유 대인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유 대인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아닙니다. 육 장군. 들으셔도 됩니다!”

“유 대인, 재판을 시작하시오. 나는 밖의 백성들과 똑같이 재판을 방청하려는 것뿐이오. 그러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오.”

육장봉은 자신을 제삼자라고 여기지 않았다. 당당하게 공당에 들어서더니, 월령안이 원래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았다.

월령안은 고개를 돌려 육장봉이 자기 자리를 차지한 모습을 보았다. 그는 위풍당당하게 앉더니, 그녀의 시선을 느끼자 ‘위엄을 드러내는’ 눈길을 주었다.

월령안은 숨을 참았지만,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곧 육장봉에게 예를 올렸다.

“육 장군을 뵙습니다.”

육장봉의 이 ‘위엄을 드러내는’ 눈빛이 사실 얼마나 멋있는지 알게 되는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일품 장군 부인?”

분명 육장봉은 그 전부터 와 있었던 듯했다. 심지어 이 과정을 모조리 지켜보았을 가능성도 아주 컸다. 지금 월령안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냉담했고,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월령안은 그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일품 장군이 육 장군 한 분은 아니죠.”

말을 마친 월령안은 육장봉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허리를 곧게 펴고 다른 쪽으로 걸어가 그와 거리를 두었다.

여기는 공당이었다. 육장봉을 피해 다른 길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좀 떨어져 있으면 되지 않을까? 월령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마님!”

육장봉의 친위대도 따라서 들어와 육장봉의 뒤로 줄을 섰다. 육십이는 맨 마지막에 들어왔는데 월령안을 보자 반갑게 불렀다.

“와, 마님. 오늘 너무 아름다우십니다. 치마도 아름답고, 마님도 아름다우십니다.”

“칭찬 고마워요. 하지만…….”

월령안은 발걸음을 멈춘 채 고개를 저으며 살며시 웃었다.

“전 월씨예요.”

육십이는 뭔가 반짝 떠오른 듯 말했다.

“월 마님!”

“장군은 정말로…… 재치가 있네요.”

월령안은 육십이의 통통 튀는 성격을 묘사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이 사람과 육장봉이 함께 있는 그림은 참 어울리지 않았다. 육장봉의 다른 호위병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너무 발랄했다.

“헤헤, 저기, 저…… 월 낭자, 화내지 마세요. 제가 벌써 습관이 되어서 그래요. 걱정 마세요, 다음부터는 잘못 부르지 않을게요.”

육십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하지만 오늘 정말 너무 아름다우십니다. 그날 장군을 막아설 때보다 더 아름다우십니다. 기운도 있어 보이시고요.”

‘정말 어린애구나…….’

월령안은 자신이 조금만 더 옹졸했더라면 참지 못하고 칼을 꺼내 육십이를 찔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의 눈에서 순수한 호의를 본 순간, 차마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어른인 내가 어린애하고 따져서 뭘 어쩌겠어?’

월령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먼젓번에 육십이에게 약속했던 일이 떠올라 머뭇거리다가 먼저 물었다.

“육십이, 다음에 날 만났을 때 절 틀리게 부르지 않는다면 원하는 말 한 필을 주겠어요.”

“아! 안 됩니다. 그 조야옥사자는, 그건…….”

육십이는 말하면서 자꾸 육장봉을 쳐다보았다. 겁을 먹은 듯했다.

육장봉은 온몸에서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풀풀 내뿜고 있었다. 그 어두운 얼굴은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칠 정도였다.

그러나 월령안이나 육십이나 육장봉을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가 화났다는 사실을 아예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했다.

월령안은 더 심했다. 육장봉에게 눈길 한 번 주지도 않고 육십이하고만 말을 했다.

“조야옥사자는 아니고 오추마(烏騅馬)인데, 괜찮을까요?”

조야옥사자는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어디 가서 세 번째 조야옥사자를 구하란 말인가? 구할 수 있다 해도 그럴 마음이 없었다. 조야옥사자는 마치 몸에 두른 석류군처럼 들추기 싫은 상처였다.

처음에 어떤 기대와 희망을 품고 조야옥사자를 구하러 다녔고, 이 석류군을 지었던가. 이제는 이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오추마요? 하곡(河曲)에서 나는 그 말이요?”

육십이의 눈이 반짝거렸다.

하곡에서 나는 말은 전부 훌륭한 군마였다. 그중 오추마가 제일 훌륭했지만, 가격도 비싸서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육십이를 갖다 팔아도 살 수 없는 말이었다.

“네, 하곡의 오추마요.”

육십이도 좋아하고 유 대인도 말을 자르지 않자, 월령안은 한마디 덧붙였다.

“제가 구해다 드리려는 오추마는 서초(西楚) 패왕 항우(項羽)가 타던 오운답설(烏雲踏雪)과 같은 품종입니다. 절대 조야옥사자에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육십이는 너무 기뻤다.

“세상에, 오운답설과 같은 품종이에요? 그럼 제가 그 말한테 오운답월(烏雲踏月 - 오운답설이라는 이름은 말발굽이 모두 흰 데서 비롯되었으며, 오운은 검은 구름, 답설은 흰 눈을 밟는다는 뜻. 답월은 달빛 아래를 거닌다는 뜻이다) 이라고 이름 지어줘도 되나요?”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당신 말이니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고작 말 한 필이지만, 사전에 약속했으니 반드시 육십이에게 구해다 주어야 했다. 게다가 그는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좋은 말을 구해 주는 게 전혀 귀찮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에게는 지금 돈을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쓸 곳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배운 게 돈 버는 법이라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몇 년간 육장봉에게 쓴 것을 제외하면, 크게 돈을 써 본 적이 없었다. 청주로 가기 전에 돈을 모조리 쓰는 것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마님, 정말 최고예요, 너무너무 기쁩니다. 너무너무 감사해요.”

육십이는 월령안의 손을 덥석 잡고 흥분되어 큰 소리로 말했다.

옆에 앉아 있던 육장봉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흠!”

육장봉은 가볍게 기침을 하고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 대인, 재판을 시작하지 않을 거요?”

“시작해야지요! 시작합니다! 지금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유 대인은 육 장군의 호위병과 월령안이 왜 이렇게 사이가 좋은지 의아하던 중이었다. 그 영문을 알아내지도 못했는데, 육장봉의 재촉에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유 대인은 정신을 가다듬고 빠른 걸음으로 윗자리로 돌아갔다. 옷매무시를 가다듬더니 자세를 바로잡고 자리에 앉았다.

탕!

경당목을 내려치고 유 대인은 위엄 있게 말했다.

“월씨, 원고 곽삼석은 네가 판 과자를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데 할 말이 있느냐?”

유 대인은 일부러 곽삼석이 월령안을 공격할 뻔했던 사건은 언급하지 않았다. 곽삼석을 보호해 주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월령안도 사실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유 대인이 이처럼 약자를 아낀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도 나름대로 손을 써서 곽삼석을 혼내 주었다. 그 덕분에 곽삼석은 아직도 꿇어앉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 대인은 입을 열자마자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다. 월령안도 반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 대인, 곽삼석이 고발한 것이 저인지, 아니면 저희 가게인지 고소장을 확인해 보시겠어요?”

유 대인은 정말이지 너무했다. 설령 월령안이 돈을 위해 온갖 나쁜 짓을 서슴없이 했다고 여겨지더라도, 이렇게까지 대놓고 함정에 빠트려서는 안 됐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었기에 망정이었다. 조금만 판단력이 흐려졌으면, 죄를 인정하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흠흠…….”

유 대인의 얼굴에 어색함이 스쳐 지나갔다. 고소장을 훑어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다시 물었다.

“월씨, 곽삼석이 네 명의의 가게에서 판 과자를 먹고 사람이 죽었다고 고발했다. 이에 대해 할 말이 있느냐?”

“당연히 있습니다!”

월령안은 서두르지 않았다. 미리 준비해 둔 증거를 꺼내 들고 물었다.

“대인, 곽삼석 손에 있던 과자를 조사해 보셨습니까? 저의 가게의 과자가 확실한가요? 그 과자에 정말 독이 있었습니까?”

“조사해 보았다!”

유 대인은 드디어 월령안이 ‘생트집을 잡지’ 않고 재판에 협력하자, 왠지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또 이상한 짓을 할까 봐 다급히 말했다.

“그 간식은 너의 가게에서 나온 게 확실하다. 가게의 사장도 인정한 사실이다. 간식 자체에는 독이 없으나, 음식 재료에 곰팡이가 피는 바람에 사망했다고 한다.”

유 대인의 목소리는 매우 컸다. 말투도 사뭇 심각했다.

공당 밖에 서 있던 구경꾼들은 유 대인의 말을 듣고 분분히 화를 내기 시작했다.

“저 여자가 악덕 상인이 맞았네! 곰팡이가 핀 재료로 음식을 만들다니, 먹고 죽지는 않더라도 병이 들 게 뻔하잖아?”

“저 여자는 죽어도 싸. 아까 때려죽였어야 했는데! 저런 상인들은 양심이 너무 없다니까. 난 앞으로 저 가게에서 다시는 물건을 사지 않을 거야.”

“월씨잖아! 저 여자가 월씨라고! 저 여자네 가게에는 모두 반달 모양의 표식이 있었어. 다들 잘 알아 두시오. 절대 저 여자네 가게에서 물건을 사지 맙시다. 양심 없는 상인 물건은 팔아 주지를 말아야지.”

“정말 양심도 없지.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어떻게 곰팡이 핀 재료로 만들었나! 이런 사람은…… 십팔 층 지옥에나 떨어져야 해!”

밖에서 구경하던 백성들의 목소리는 작지 않아, 공당의 질서를 심각하게 어지럽혔다. 유 대인은 공정하게도 경당목을 두드리며 두 번 연속으로 ‘정숙’을 외쳤다. 그제야 백성들의 목소리가 수그러들어, 유 대인이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월씨, 할 말이 있는가?”

“있습니다!”

월령안도 백성들의 쑥덕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그녀였더라도 단골 가게에서 곰팡이가 핀 재료로 음식을 만들었다면 화가 났을 것이다. 밖에 있는 저 백성들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곰팡이 핀 재료로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만든 것은 확실히 양심 없는 짓이었다. 욕을 먹어도 쌌다.

“대인, 이것은 저희 제과점의 장부입니다. 개업해서 지금까지 한 모든 거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펴보시기 편하도록 우리 월씨 제과점의 연속 석 달 동안의 원재료 구매 수량과 그 명세표를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 석 달 동안 여러 대형 공급상에서 들인 원재료의 양과, 매일 사용한 원재료의 양이 똑똑히 적혀 있습니다.”

월령안은 그제야 사전에 준비해 둔 증거를 꺼내 유 대인 앞에 제출했다. 그리고 증거를 내려놓으며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대인께서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저희 월씨 제과점에서는 매일 신선한 원재료를 구매하고, 모든 제품은 당일에 제조하여 당일에 판매합니다. 절대로 다음날까지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품을 만드는 원재료도 절대 저장해 두지 않습니다. 겨울에는 이틀 이상 두지 않고, 여름에는 그날 쓸 분량만 그날 들일 뿐, 절대 다음날까지 두지 않습니다.”

월령안은 말을 마치고 또 다른 표를 제출했다.

“대인, 이것은 최근 이레(약 7일) 동안, 저희 제과점에서 판매한 제품의 행방입니다. 위에 제품을 사 간 사람과 구매한 시간을 자세히 기록해 두었습니다. 또 구매자들의 서명도 받아 두었습니다. 대인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구매자들을 불러 증언을 요구하셔도 됩니다.”

월령안의 준비는 매우 철저했다. 유 대인은 한 장 한 장 살펴본 뒤,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특히 매일 팔고 남은 재고의 행방을 기록한 맨 마지막 장을 보았을 때는 더욱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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