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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4)화 (54/1,004)

54화 진정한 공정함

그 사내는 욕설을 퍼부은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몸부림을 쳐도 월령안을 때릴 수 없자, 그녀가 앉은 방향으로 침을 뱉었다.

“이 악덕 상인! 죽어! 염치를 알면 스스로 죽었어야지! 우리 어머니 목숨 물어내!”

월령안은 의자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면서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가 분노로 몸부림을 치고 험악하게 욕설을 퍼붓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사내의 말처럼, 그 모습은 사람의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는 악덕 상인처럼 보였다.

윗자리에 앉은 유 대인은 월령안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역시, 독하지 않으면 상인이 못 된다더니. 이 여자 상인은 냉혹하고 매정하구나.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도 웃음이 나오다니, 정말 가증스럽군.’

월령안이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자, 농사꾼은 어디에 그런 힘이 났는지 관졸들을 뿌리치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이 악덕 상인! 죽어! 죽으란 말이야!”

“빨리! 저놈을 막아라!”

유 대인은 월령안의 냉담한 반응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공당에서 소란이 벌어지는 것도 원치 않았다. 사내가 그녀에게 덤벼들자 버럭 호통을 쳤지만, 한발 늦었다.

털썩!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사내가 월령안을 덮치려는 찰나, 갑자기 그의 다리가 풀렸다. 그는 바닥에 꿇어앉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내, 내가 어떻게 된 거지?”

사내는 바닥에 꿇어앉은 채 어리둥절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밖에서 구경하던 백성들도 깜짝 놀라 눈을 의심했다.

관졸들은 다행이라는 기색이었다. 이것저것 따질 새 없이 성큼 다가가 사내를 제압했다.

“너,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왜 일어나지 못하는 거지?”

사내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그는 당황한 눈빛으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하반신은 바닥에 딱 달라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월령안은 여전히 의자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밖에 있던 구경꾼들은 제대로 보지 못해 그녀가 놀란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유 대인은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월령안은 그 사내를 안중에 둔 적도 없었다.

지금처럼 사내가 월령안의 앞에 꿇어앉아 큰소리로 울부짖는 순간에도, 그녀는 그를 보는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윗자리에 앉은 유 대인에게 말했다.

“유 대인, 이 사람이 공당에서 소란을 피웠는데, 그 죄를 묻지 않으시나요?”

“그건…….”

유 대인은 월령안이 위협을 느꼈다는 이유로 그 사내를 처벌해 달라고 요구할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요청을 어떻게 거절할지 미리 생각해 둔 참이었다. 하지만 공당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처벌을 요구하자, 대답할 말이 없었다.

“왜죠? 공당에서 소란을 피웠는데도 벌을 받지 않나요? 조금 전에 저는 무릎을 꿇지 않았을 뿐인데도 끌어내려고 하셨잖아요. 지금…….”

월령안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졌다. 유 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날카로워졌다. 마치 소리 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유 대인, 공평하신 분이라면서요?’

“악덕 상인! 너처럼 사람 목숨을 해치는 악덕 상인은 죽어야 해! 널 때려죽여 우리 어머니의 복수를 할 거다!”

바닥에 꿇어앉은 사내는 월령안이 유 대인에게 그를 벌하라고 하자 욕을 퍼부었다.

제과점 사장은 바닥에 꿇어앉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고개를 들어 월령안을 흘끔 보니, 그녀가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꿇어앉아 있었다.

월령안도사내도 물러서지 않았다. 유 대인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내의 편을 들어주었다.

“부인, 저 곽삼석(郭三石)은 원고입니다. 저자를 끌어내면 이 사건은 재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악덕 상인……. 우리 어머니를 죽였어! 어머니를 살려내라!”

그 사내, 아니 곽삼석은 유 대인이 편을 들어주자, 배짱이 두둑해졌다. 더욱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관졸들이 그를 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진작 월령안을 덮쳤을 것이다.

월령안은 여전히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대인, 공당에서 소란을 피울 경우, 처벌은 끌어내는 방법밖에 없나요?”

“부인, 여긴 공당입니다. 생트집은 잡지 마시지요.”

유 대인은 불쾌했다.

월령안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생트집을 잡다니요? 대인, 지금 농담하시는 겁니까? 아까 제가 공당에서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는데, 대인께서는 공당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죄로 절 다스리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저자가 분명 공당에서 소란을 피웠는데도 벌을 주지 않으려 하십니다. 대인의 공정함이란, 저처럼 돈은 있어도 세력은 없는 약한 여인만 잡는 겁니까?”

“부인, 여긴 공당입니다! 어떻게 재판할지는 제가 결정합니다!”

유 대인은 얼굴에 살짝 짜증을 드러내며 허둥지둥 말했다.

이 악덕 상인은 정말이지 너무 얄미웠다. 언행에 빈틈 하나 없어 약점을 잡을 수도 없었다.

“오……. 알겠습니다!”

월령안은 그 ‘오’ 소리를 아주 길게 끌며, 웃는 듯 마는 듯 유 대인을 바라보았다.

“월령안!”

유 대인은 자신의 일 처리가 공평하고 잘못이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월령안의 눈길을 한 번 받자, 속에서 천불이 났다. 마치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당황하고 말았다.

“대인의 공정함과 엄격함은 정말 우습군요!”

월령안은 유 대인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굴은 서리가 내린 듯 차가웠다. 둥글고 예쁜 눈으로 상대를 살짝 노려봤다. 눈빛은 싸늘했다.

“대인, 대인께서는 저 곽삼석이 그저 일개 농사꾼이고, 어머니도 잃었다고 불쌍하게 여기시는군요. 그리고 정의를 바로잡겠다며 사사건건 배려해 주시네요. 저자가 잘못을 저질러도 못 본 척하시고 말이에요.

반대로, 저는 돈도 있고, 권세도 있어 보이니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나쁜 사람으로 취급하시네요. 돈벌이를 위해 온갖 나쁜 짓을 다 했다고, 남의 세력에 빌붙어 사람을 괴롭힌다고 확신하셨군요.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제게 죄명을 뒤집어씌우셨죠.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트집을 잡아 벌을 주려 하셨어요. 대인, 이런 행동이 정말 공정하다고 생각하세요? 진정 저를 공정하게 대해 주셨나요?”

유 대인은 확실히 원칙이 있는 사람이었다. 잘못을 시정할 줄도 알았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었다.

“월령안, 생트집을 잡지 마라! 나는 줄곧 공정했다. 절대 그 누구의 편도 든 적이 없다.”

유 대인은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월령안처럼 권세를 가진 사람을 억누르지 않는다면, 평범한 백성들은 어찌 살란 말인가?

이 곽삼석처럼 말이다.

만약 순천부윤이 공정하지 않다면,

천자가 계시는 수도가 아니라면,

어찌 이 평범한 백성이 월령안을 고발할 수 있었겠는가?

“대인! 그 누구의 역성도 들지 않았다고 확신하십니까?”

월령안은 화가 난 나머지 도리어 웃는 얼굴로 물었다.

“공정하다면 모든 이를 차별 없이 대해야 하지 않나요? 저는 부유하고 저자는 가난하지만, 저희는 모두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대인께서 정말로 공정하시다면 저희 둘을 차별 없이, 공평하게 대해 주셔야지요.

저희 둘 다 똑같이 공당에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왜 저는 끌려 나가야 하고 저자는 괜찮습니까? 게다가 여기서 저를 모욕해도 되나요? 대인, 이게 대인께서 말씀하신 공정함인지요? 이렇게 하시는 게 정말 저를 공정하게 대해 주시는 겁니까?”

‘공정하다느니, 사리사욕이 없다느니 이 무슨 개 같은 소리야! 부귀한 자를 짓밟아 자신의 고귀함을 드러내는 게 불공평한 처사가 아니라고?’

그렇다. 평범한 백성에게는 이러한 관원이 청렴결백한 재판관으로 보일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약자들 편에 서니 말이다.

‘하지만 조정 관원이라면,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해야 하지 않나? 왜 돈이 있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해? 나한테 돈이 많은 게 내 잘못이야? 내가 불쌍하지 않고, 연약하지 않은 게 내 잘못이야? 왜 돈이 있다고, 연약하지 않다고 업신여김을 당해야 하는 거지?’

“그 말이 맞군! 모두 똑같은 사람인데, 유 대인은 어째서 공당에 있는 이들을 차별 없이 대하지 못하는 것인가?”

사람들 뒤쪽에서 냉혹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공당 밖에서 구경하던 백성들은 순간 깜짝 놀랐다.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양옆으로 물러나 중간에 길을 만들어 주었다.

“육 장군이시다!”

“육 장군이 오셨어.”

“육 장군!”

구경하던 백성들이 하나같이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앞으로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는 없었다.

육장봉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군장을 한 열두 명의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사람들을 양쪽으로 막아서며 육장봉에게 길을 터주었다. 그와 동시에, 민간인들이 육장봉에게 접근할 기회도 차단했다.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났다지만, 태어난 뒤에는 평등할 수가 없다.

지금 이 상황만 해도 그렇다. 육장봉과 그의 양옆에 서 있는 백성들이 어디가 평등하단 말인가? 그런데 어떻게 모두를 차별 없이 대할 수 있겠는가?

친위대가 길을 만들고 나자, 육장봉이 사람들 속에서 걸어 나와 공당으로 들어왔다.

육장봉이 나타나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공당 밖에서 구경하던 백성들이나, 공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나 전부 육장봉을 쳐다보고 있었다. 관졸들에게 제압당해 꿇어앉아 있던 곽삼석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들 목을 길게 빼고 육 장군의 풍채를 보려고 애를 썼다.

유독 월령안만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으며,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서 있었다.

“육 장군이 어떻게 오신 거지?”

공당에 있던 유 대인은 깜짝 놀랐다. 육장봉이 왜 왔는지는 몰랐지만,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육장봉을 맞이했다.

월령안은 이를 보고 피식 웃었다.

‘공정하고 사리사욕이 없어? 차별 없이 대한다고?’

이 세상에서 모두를 공정하게, 차별 없이 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태어날 적부터 호오(好惡)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마음이 기울고, 싫어하는 것을 밀어내기 마련이다. 이게 바로 인간의 본능이다. 굳이 천성을 억누르고 공평함을 강조하는 게 정말 우스웠다.

부귀를 증오하는 유 대인같은 사람은 옳고 그름을 떠나 약해 보이는 사람부터 감싼다. 많은 사람의 눈에는 그가 공정한 인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월령안에게는 전혀 공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온갖 수단을 동원해 명예를 추구하는 모습으로만 보였다.

진정한 공정함이란 신분의 귀천, 빈부, 성별, 힘의 강약, 출신에 따른 차별 없이 대하는 것이다.

유 대인은 그렇게까지 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는 육장봉이 나타난 후 분명해졌다.

“육 장군!”

유 대인의 발걸음은 빨랐다. 하지만 육장봉의 걸음이 더 빨랐다. 유 대인이 공당에서 나와 그를 맞이할 기회를 주지도 않고 바로 공당에 들어섰다.

“유 대인, 실례했소. 나는 방청하러 왔을 뿐이오. 유 대인도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사건을 재판하시오.”

육장봉은 그를 멀리하며 차갑게 말했다. 유 대인의 신분 때문에 잘 대해 주려는 기색은 없었다.

월령안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 속의 웃음기를 지웠다.

그녀에게는 육장봉이야말로 진정으로 ‘공정하고’, ‘차별 없이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신분, 성별, 부귀로 인해 사람을 차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친척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그가 안중에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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