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53)화 (53/1,004)

53화 의자를 내주셔야 합니다

“네?”

정작 월령안은 깜짝 놀라 유 대인을 바라보았다. 그가 왜 갑자기 적의를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의아해서 물었다.

“유 대인,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여긴 공당이다! 얼른 무릎을 꿇지 않고 무엇하느냐!”

월령안이 모른 척하자, 유 대인은 다시 한번 반복했다.

그도 이 월령안이라는 여인의 명성을 들은 적이 있었다. 수완이 뛰어나서, 여인의 몸으로도 각 부문의 관원들과도 친분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것들을 극도로 싫어했다.

일개 여자 상인이, 돈 몇 푼 가지고 각 부문의 관원들에게 줄을 대다니. 그 의도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이런 사람이 그의 손아귀에 떨어졌으니 반드시 똑바로 재판해야 했다.

그녀가 저지른 잘못들을 하나하나 밝혀내어 제대로 처벌하리라. 그깟 더러운 돈이 좀 있다고 해서,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르고 모든 일을 덮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 못하도록 해 주리라.

“유 대인, 혹시…… 사람을 잘못 보신 게 아닌지요?”

월령안은 유 대인이 자기에게 불만을 품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 원인이 소 승상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좌우지간 공개 재판인 만큼, 유력한 증거를 내놓으면 유 대인이 아무리 불만이 있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어쩌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 알았단 말이냐? 월씨, 어서 무릎을 꿇지 못할까! 아니면 공당을 어지럽힌 죄로 다스리겠다.”

순천부윤인 그를 보고도 월령안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심지어 여러 번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그 모습에 유 대인은 화가 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믿는 구석이 있다며 안하무인으로 건방지게 굴고, 법도를 무시하며 공당을 어지럽히는 자를 제일 싫어했다.

‘이 월령안은 내가 자기를 다스리지 못할 줄 아는 건가?’

유 대인은 월령안에 대한 불만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공당에 있는 사람들도 전부 눈치챌 수 있었다.

“아가씨!”

바닥에 꿇어앉아 있던 사장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저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월령안을 불렀다.

그는 이 며칠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별다른 고생은 하지 않았다. 간수들은 그를 퍽 잘 대해 주었다. 간수들의 입에서 그의 주인 아가씨가 뇌물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주인 아가씨의 뇌물이 순천부에까지 먹힌 걸 보니, 이번 사건은 생각만큼 심각하지는 않은 듯했다. 그리고 재판이 시작하기 전, 월령안이 온 것을 보자 큰 걱정을 덜었다.

아가씨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니 분명 이길 게 확실했다. 그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아가씨가 순천부윤에게 밉보였다.

‘이러다 목이 달아나는 건 아닐까?’

제과점 사장의 걱정과는 반대로, 제과점을 고발한 그 집 사람들은 이 상황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들은 내심 월령안이 더 방자하게 나오길 바라고 있었다.

이 변경에서 순천부윤 유칙이 공정하고 엄격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척이니 지인이니 해도 봐주는 법 없이, 청렴하고 공정했다. 특히 규칙을 가장 중요시했다. 월령안이 이토록 공당에서 제멋대로 굴었으니, 유 대인의 불만을 산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월령안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고개를 돌려 사장에게 위로의 눈빛을 건넸다.

“괜찮다.”

월령안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순간, 공당은 쥐 죽은 듯 조용해서 이 한마디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탕!

유 대인도 더는 봐주지 않고 경당목을 내리쳤다.

“여봐라, 공당을 어지럽히는 저 월씨를 당장 끌어내라!”

관졸들은 감히 토를 달지 못하고 서둘러 다가갔다. 그들이 막 손을 대려는 순간, 월령안이 오른손을 척 들어 올리더니 차갑게 말했다.

“유 대인, 저는 공당을 어지럽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인께서는 제게 무릎을 꿇으라고 할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의자를 내주셔야 합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는 것은, 당연히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주제도 모르는 멍청이로 아는 걸까?’

“뭐라 했느냐? 내가 공당에서 네게 의자를 줘야 한다고? 네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유 대인은 화가 난 나머지 웃으면서 빈정거렸다.

하지만 월령안도 여전히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일품 장군 부인이라면! 자격이 되나요?”

“뭐라 했느냐?”

유 대인의 안색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손에 쥔 경당목도 살짝 떨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유 대인, 제게는 일품 장군 부인의 고명(誥命 - 황제가 임명한 조정의 관리나, 관리의 가족에게 주는 명예 증서)이 있습니다. 이래도 제가 무릎을 꿇어야 할까요?”

세상 사람들은 늘 선입견을 품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옳다고 여긴다. 그녀는 이 공정하다고 소문난 유 대인은 다를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별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녀가 일개 여자 상인이라는 것만을 보고, 신분이 미천하다는 선입견을 품은 채 묻지도 않고 덮어놓고 질책이라니.

공당에서 민간인은 관원을 보면 무릎을 꿇는 게 법도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인인 데다가 피고 측의 주인이었다. 만약 조금이나마 너그러운 관원이라면 그녀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하지는 않고, 서서 방청하라고 했을 것이다.

그녀는 이 공정하고, 악한 세력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고 소문난 유 대인도 너그러운 관원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억울함을 겪을 이유가 없었다. 무릎을 꿇기는커녕 유 대인에게 받아야 할 대우를 규칙대로 받아낼 것이다.

“너의 고명을 아직 회수하지 않았느냐?”

유 대인은 이 말을 듣고 퍽 놀랐다.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육 장군이 저 여인을 내쫓은 뒤, 예부(禮部)에 고명을 회수하라는 청을 넣지 않았나? 설마 육 장군이 잊어버렸나?’

“참으로 송구합니다, 유 대인. 제게 고명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가져와서 보여드릴까요?”

월령안의 태도는 여전했지만, 이로 인해 으스대는 기색은 없었다. 그녀는 예를 올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유 대인, 제게 의자를 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월령안은 기고만장하지도, 교만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유 대인은 마치 파리를 삼킨 것처럼 괴로워졌다. 월령안의 눈빛은 맑고 또렷해서 비꼬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지만, 여전히 난처하고 불편했다.

하지만 유 대인은 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월령안의 어떠한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부러 그녀를 난처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만약 그녀의 수완이 뛰어나지 않아서 그녀의 편이 많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보다 정중하게 월령안을 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 대인은 썩 내키진 않았으나 규칙대로 사람을 시켜 월령안에게 의자를 가져다주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고치고 바로잡아야 한다.

유 대인은 여전히 월령안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자신의 잘못을 인지한 뒤 바로 그녀에게 사과했다.

“제가 몰라뵈었습니다. 부인께서 양해해 주십시오.”

“대인, 별말씀을요. 대인께서도 모르고 그러신 건데요.”

유 대인이 사람들 앞에서 그녀에게 사과하자, 월령안은 순식간에 그를 다르게 평가했다.

그녀가 틀렸다. 유 대인이 선입견을 품고 그녀를 나쁘게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 원칙을 지키는 좋은 관원이었다.

이 세상에 여인에게 사과하는 남자는 많지 않다.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더라도 사과는 사적인 자리에서나 할 뿐이었다.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여인에게 사과하는 남자는 극히 드물었다.

유 대인은 실권을 쥔 당당한 삼품 관원이었다. 그런 그가 이 공당에서 허울뿐인 일품 장군 부인에게 사과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 대인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월령안의 일품 장군 부인이라는 고명은 사실상 아무 쓸모도 없었다. 예부에서 곧 회수할 것이다. 회수하지 않는다고 해도 남편이 없는 고명 부인은 아무 가치가 없었다.

여인의 고명은 남편의 관직에 따라 받는 것이었다. 일품 장군인 남편이 편을 들어주지 않는데, 일품 장군 부인이라는 신분이 무슨 소용일까?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겁니다. 알고 모르고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유 대인은 공정하게 한마디하고, 월령안이 앉기를 기다렸다. 그녀에게 다른 요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경당목을 두드리고 개정을 선포했다.

그동안 아래에 서 있던 제과점을 고발한 농사꾼도, 바닥에 꿇어앉은 채 벌벌 떨며 불안해하던 사장도 심장이 몇 번이나 덜컹거렸는지 몰랐다. 모두 월령안의 이 수에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밖에서 구경하던 백성들도 월령안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하나같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월씨는 육 장군에게 쫓겨난 게 아니었나? 왜 아직도 장군 부인이지? 육 장군의 이혼장이 소용없는 거 아닌가?”

평범한 백성들은 고명이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했다. 단지 여인이 시집가면 남편의 관직을 따라간다는 것이라 여겼다. 또 시가에 몸담고 있어야만 그 집안의 부인으로서 대접받는다고만 알았다.

설령 대갓집에 시집가더라도, 시가에서 고명을 청해 주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었다. 그러면 영원히 누구의 부인으로만 불릴 뿐이었다. 조정의 고명이 없으니 품급(品級 – 벼슬의 등급)도 없었다.

물론, 일품 대장군에게 시집간 뒤, 청하기만 해서는 일품 장군 부인의 고명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육장봉이 했듯이, 월령안을 책봉해 달라고 청한 다음에야 비로소 고명을 받을 수 있었다. 만약 육장봉이 후처를 얻는다면, 후처의 품급은 규정대로 한 등급 낮춰진다.

그러나 육장봉이 새 부인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한다고 해 보자. 그녀를 일품 장군 부인으로 책봉해 달라고 고집을 부린다면, 황제도 굳이 말리지 않을 것이다.

결국, 고명 부인은 실권이 없었다. 일품과 이품의 차이는 단지 해마다 봉급을 조금 더 많이 받는 것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월령안은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눈에 스쳐 지나간 쓸쓸함을 애써 감추었다.

* * *

제과점에서 판 간식을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사건은 복잡하지 않았다. 농사꾼이 들고 온 증거도 간단했다. 하나는 이미 곰팡이가 핀 과자였다. 다른 하나는 그의 어머니 시신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이 제과점의 간식을 먹고 독이 퍼져 죽음에 이르렀다고 했다. 시신은 의장(義莊 – 타지 출신 사람들이 자금을 모아 세운 관을 안치하는 장소)에 두었다. 순천부의 오작(仵作 - 관청에서 검시를 담당하는 관리)이 검시한 결과, 사인은 중독이 확실했다. 그리고 그 곰팡이가 핀 간식도 역시 문제가 있었다.

순천부윤 유칙은 경당목을 내리치고 재판을 시작했다. 가게를 고발한 농사꾼이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리고 조리 있게 그의 어머니가 죽기 전 상황을 소상히 서술했다.

그 농사꾼은 아주 막무가내였다. 가게의 간식에 문제가 있다고 우겨댔다. 그의 어머니는 이 가게의 간식을 먹었을 뿐인데, 멀쩡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죽었다고 주장했다.

사내는 말하다 흥분했는지 월령안에게 다가가 때리려고까지 했다. 다행히 관졸들이 미리 대비하고 있어, 그를 제압해서 끌어냈다.

“정숙! 정숙!”

유 대인도 깜짝 놀라 경당목을 연신 두드리며 그 사내에게 경고했다.

그 사내는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지 몸부림을 쳤다. 두 손이 시위에게 제압당하자 힘껏 발로 걷어차려 했다. 그러나 월령안에게 닿지 않자 큰소리로 욕을 했다.

“대인, 저 악덕 상인은 양심도 없이 가게에서 독이 든 간식을 팔았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사람 목숨까지 해친 겁니다. 대인, 저 악덕 상인은 죽어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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