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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1)화 (51/1,004)

51화 산 사람이 더 중요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월령안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마음속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평온하게 말했다.

“대인께서는 무엇을 원하시는지요?”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 조계안에게 끌려다니면 안 돼.’

“네 몸을 줄 수 없다면, 그럼…… 네 수중의 철광산과 바꾸자. 없다고 하지 마라. 너한테 철광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날 속일 수는 없어.”

조계안은 참지 못하고 자신의 사심을 드러냈다.

원래는 혼자서 남몰래 그녀 어머니의 시신을 가지고 와서 그녀를 기쁘게 해 줄 심산이었다. 하지만 황형에게 들통나고 말았다.

결국, 월령안 어머니의 시신은 황형에게 넘어갔다. 황형은 월령안이 어머니의 시신을 되찾고 싶으면 반드시 철광산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승낙하기 싫어 황형과 한바탕 싸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황형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들킬까봐 두려웠다. 황형이 월령안과의 만남마저 제지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월령안이 싫어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황형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시신이 황형의 손에 있으니 그도 별수 없었다.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답답하군…….’

월령안도 그가 작은 것을 원하지는 않으리라고 짐작은 했었다. 그렇다 해도 이런 말을 직접 들으니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티를 내지 않고 말했다.

“대인, 전 대인을 속일 이유가 전혀 없어요. 저한텐 철광산이 정말 없으니까요.”

‘역시 최종 목표는 철광산이었구나. 황제는 나한테 철광산이 있다고 굳게 믿는 건가?’

“월령안, 지금 철광산을 내놓는 게 좋을 거다. 나한테 넘겨주면 넌 살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조사해서 찾아내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잘 알겠지!”

조계안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월령안이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차가운 얼굴로 마주하는 것을 보자, 어조도 조금 더 차가워졌다.

‘난 너를 위해 네 어머니의 시신을 찾아왔는데. 정말 사람 마음을 몰라주는구나.’

월령안은 살짝 웃으면서 무기력하게 말했다.

“조 대인, 제게 철광산이 있었다면 진작에 대인께 드렸지요. 정말로 없어요.”

그녀는 때려죽여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육장봉이든, 조계안이든 누가 물어도 대답은 똑같았다. 남색에 미혹되지도, 권세와 이익의 유혹에 넘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나한텐 철광산이 없어. 없는 건 없는 거야.’

조계안은 그녀에게 철광산이 있는지, 없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단지 그의 손에 증거가 없을 뿐이다. 그녀에게는 철광산이 있는 건 확실했다. 너무 잘 숨겨 두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월령안은 거듭 그의 호의를 거절하고, 그가 준 기회도 저버렸다. 조계안도 슬슬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라 퉁명스럽게 말했다.

“월령안, 끝까지 해 보자는 건가?”

“조 대인, 철광산이 없는데 대체 뭘 내놓으라는 건가요?”

월령안도 재차 추궁을 당하자 기분이 나빠졌다.

‘이 인간들은 끝도 모르고 언제까지 이럴 셈이야? 하나같이 고아 하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데, 재밌나?’

조계안은 굳은 얼굴로 위협했다.

“월령안, 네 하인 둘의 목숨을 구하기는 싫은가?”

월령안이 지금 자진해서 철광산을 내놓으면, 그는 황제 앞에서 그녀의 편을 들 생각이었다. 삼 년간 월령안이 전선에 기여한 공로를 봐서라도, 황제는 그녀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때를 놓쳐 뒤늦게 철광산을 내놓거나, 또는 그가 조사해서 철광산의 위치를 알아낸다면 월령안은 죽게 될 게 뻔했다.

“조 대인은 제가 청주의 가주 쟁탈전에 참여하지 않아도 괜찮으신가요?”

‘협박? 그런 건 나도 할 수 있어. 조계안은 정말로 내가 성질부릴 줄 몰라서 양보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녀가 양보하는 이유는,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잔뜩 세웠다가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될까 두려워서였을 뿐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 법이다.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일이 생기는 걸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조계안이 싸우고 싶다고 싶다면 같이 어울려 싸우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사이가 틀어질 건 뻔했다.

그녀는 얼굴이 두꺼우니까 사이가 틀어지더라도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참여하지 않는다고?”

조계안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그는 갑자기 느릿한 어조로 음산하게 말했다.

“월령안, 다시 한번 말해두마. 날 협박하려 들지도, 나와 조건을 따지려 들지도 마라. 네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조금 전까지 고분고분하더니, 왜 갑자기 날카롭게 나오지? 여인들은 원래 이렇게 변덕이 심한 걸까?’

월령안은 말을 하는 대신 침묵으로 불만을 표했다.

조계안도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월령안은 그들의 담판이 불쾌하게 막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조계안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짓궂게 말했다.

“됐다! 너는 볼 장 다 보기 전까진 포기하지 않지. 널 죽이는 것보다 네 입으로 철광산이 있다고 인정하게 하는 게 더 어렵겠구나. 이렇게 하자, 월령안. 나한테 입을 맞춰 주면 내가 널 데리고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러 가도록 하마. 어떠냐?”

조계안 이 인간은 변덕스럽기 짝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진지하더니, 곧바로 제멋대로 군다. 대체 언제 진지할지, 언제 장난을 칠지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월령안은 조계안의 비위를 맞춰 줄 의향이 있었다. 그의 손에 어머니의 시신이 있었고, 그의 진정한 목적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어머니의 시신을 가져오려면 철광산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바로 포기했다.

‘어머니의 시신을 가져오는 것도 아주 중요하지만……. 나한텐 살아 있는 사람이 더욱 중요해.’

어머니의 시신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 것을 알자, 조계안의 비위를 맞추며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의 제안을 들은 순간, 월령안은 전처럼 협조적으로 나오기는커녕 굳은 얼굴로 그의 뒤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문을 나가 왼쪽으로 가시면 큰길이 나오는데, 북쪽으로 삼 리만 가시면 바로 춘회루(春淮樓)가 나옵니다. 조 대인, 배웅은 하지 않겠습니다.”

육장봉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월령안이라는 여인은 아주 현실적이었다. 이익을 얻으려 할 때는 비위를 맞춰 주려고 한없이 애를 썼다. 하지만 이익이 없으면 바로 돌아서지는 않아도, 잘 보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까까지는 조계안에게 잘 보이려 애를 썼다가, 지금은 차갑게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월령안, 나더러 가서 기녀나 부르라는 거냐?”

조계안은 대단히 화가 났다.

‘월령안은 날 뭐로 보는 거지? 또 자기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황형의 명도 어기고, 기회를 줬다는 걸 모르는 건가?

입 한번 맞춰 주는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 난 얼굴에 가면까지 썼는데, 입 좀 맞춘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건가?

아까까지는 나에게 맞춰 주지 않았나? 그런데 왜 다시 매몰차게 구는 거지?’

“그건 대인의 마음이죠. 저는 더 물을 권리가 없습니다.”

그녀는 단지 적당한 곳을 추천해 줬을 뿐이었다. 조계안이 가든 말든, 기녀를 부르든 말든, 그녀가 결정할 일은 아니었다.

월령안의 냉담한 모습에 조계안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너…… 그래, 좋다! 월령안, 평생 네 어미의 시신을 볼 생각은 하지도 마라.”

조계안은 벌떡 일어나 모진 말을 남긴 채 돌아서서 나갔다.

쿵!

서재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가 거세게 닫혔다.

월령안은 의자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머리를 떨구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눈을 감았다.

자신이 제대로 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더 나은 선택지가 없었을 뿐이었다.

조계안 이 인간은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절대 그의 앞에서 자신의 약점을 보일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약점을 눈치채는 날에는, 자신을 뼈까지 씹어 먹을까 두려웠다.

월령안은 홀로 서재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쉬러 들어갔다.

그때 조계안은 월령안의 서재 밖에서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녀가 사과하러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월령안이 스스로 나오기만 하면, 그를 ‘대인’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그녀의 막말을 용서하리라고 다짐했다. 그녀에게 어머니의 관 앞으로 갈 기회를 주겠다고 다짐했건만, 그가 떠날 때까지 월령안은 나오지 않았다.

조계안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한심하게도 눈까지 벌게졌다.

그는 월령안에게 묻고 싶었다.

“만약 육장봉이었다면 기녀를 부르라고 했을 건가?”

아쉽게도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기회가 있더라도 차마 묻지는 못할 것이다.

* * *

월령안은 서재에 오랫동안 혼자 머물다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실로 돌아갔다.

“시간이 늦었으니 물러가 쉬어라.”

하녀를 내보내고 혼자서 여유롭게 머리를 빗고 세수를 한 뒤,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눈을 뜬 채 한참이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상인 가문 출신답게, 어떻게 해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는 잘 알고 있었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훨씬 중요하다. 죽은 어머니의 시신과 살아 있는 월씨 가문의 하인들 중, 아무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했다.

제 선택이 옳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괴로웠다.

침대에 누웠는데도, 몸이 극도로 피곤하고 힘들었는데도 눈을 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어머니의 질책과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들릴까 두려웠다. 잠이 들면 어머니가 꿈속에 나타나 그녀의 불효를 원망할까 두려웠다.

“어머니, 정말 죄송해요!”

월령안은 눈을 크게 뜬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예전에 육장봉이 그녀를 버렸을 때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심장을 옥죄는 듯, 가슴이 욱신욱신 아파 와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또다시 똑같은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똑같은 결정을 할 것이다. 그래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어렴풋한 아침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방안으로 들어와 월령안의 몸에 쏟아졌다. 그녀는 덮고 있던 이불을 젖히고 천천히 일어났다.

밤새 잠을 못 자 얼굴색이 지나치게 창백했다. 눈망울이 유난히 어둡고 생기가 없었다. 눈 밑도 시커멓게 그늘져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몸놀림도 조금 굼떴다.

그녀는 무거운 머리를 꾹꾹 누르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늙긴 늙었네. 하룻밤 못 잔 거 가지고 몸이 무겁고 피곤해 죽겠으니.”

월령안의 시중을 드는 하녀가 방 안에서 기척이 들리자 문 입구에서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깬 것을 확인하자, 깨끗한 세숫물을 떠서 들고 왔다.

하녀는 세숫물을 내려놓고, 월령안의 시중을 들려고 다가왔다. 그러다 그녀의 수척한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가씨,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어요?”

“떠들지 말아라. 어르신이 듣겠어.”

월령안은 손을 내저으며 낮은 소리로 타박했다.

“예, 아가씨.”

월령안의 엄한 목소리에 하녀는 더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조심스럽게 다가가 월령안의 머리를 빗겨 주었다.

월령안은 거울에 비친 수척한 얼굴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인삼차 한잔 내오거라. 또 주방에 홍탕소미죽(紅糖小米粥 - 갈색 설탕, 좁쌀, 견과류 등을 넣고 끓인 음식)을 끓이라고 전해. 너는 나중에 연지와 분을 가져와서 화장을 해 주렴. 눈 밑의 그늘 좀 가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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