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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50)화 (50/1,004)

50화 먹고 싶은 빨간 입술

“아무것도 아니에요! 육장봉의 사촌 동생이 우리 집을 부쉈어요.”

조계안이 더는 따지지 않자 월령안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와 너무 가까이 있고 싶지는 않았다.

이 사내는 공격성이 너무 강했다. 그가 나타나면 저도 모르게 경계하다 보니 가까이 다가가기조차 싫었다.

“육비우? 그놈이 네 집을 부쉈다고?”

조계안은 예의를 잘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몸을 돌려 책상에 앉았다가 옆으로 누워 손으로 머리를 받쳤다. 그리고 가면을 사이 두고 월령안과 얼굴을 맞댔다. 이 거리는 월령안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제멋대로인 자세는 월령안을 화나게 했다. 이 남자는 미치광이라 항상 예측불허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시신을 가지고 있으니, 그에게 밉보일 수는 없었다.

월령안은 조계안의 존재를 무시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육 도련님이 크게 망신을 당했으니, 딴 사람을 어쩌지는 못하고 저한테 화풀이한 거죠. 당연한 거예요.”

만만한 상대가 괴롭힘을 당하는 법이다. 불행히도 그녀는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만만한 상대였다.

“아니면 내가 그놈을 혼내 줄까?”

조계안은 월령안을 바라보며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뜻밖에도 그녀는 못 들은 척하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조 대인, 시장하다 하셨잖아요? 식사하시겠어요?”

“너…….”

월령안의 화제를 전환하는 솜씨에 조계안은 화가 치밀었다. 그녀의 똑똑한 머리로는 더욱 요령 있게 그의 주의력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방식을 썼는지 알 수가 없었다.

‘티가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군.’

“드시겠어요?”

월령안이 재차 물었다.

“먹어야지! 함께 먹자꾸나!”

조계안은 오기를 부려 먹지 않겠다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월령안의 오물거리는 빨간 입술을 보자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조 대인, 가리는 음식이 있나요?”

월령안은 일어서면서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이 망할 변태와 거리를 둘 수 있겠군.’

그렇게 가깝게 있는데도 눈빛은 험악하고, 가면은 차갑고, 하는 말은 이상했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정말 조금은 겁이 났다.

이 남자는 감정 기복이 심하고 수단이 악랄했다. 그의 마음을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병이 나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조계안의 비위를 맞출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의 팔목은 아직도 아팠다.

“육장봉이 좋아하는 음식은 다 싫어한다.”

조계안이 심술을 부리듯 말했다. 월령안이 몸을 일으키자 그도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여전히 책상에 앉아 책상 위에 있던 붓을 집어 들어 손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월령안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변덕스러운 조계안을 힐끔 쳐다보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포기하고 순순히 음식을 준비하러 갔다.

조계안은 멀어져 가는 월령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신을 위해 음식을 직접 준비한다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육장봉이 지금 먹는 하루 세끼는 월령안이 정성스레 준비한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의 얼굴색은 또 어두워졌다.

뚝!

손에 들고 있던 붓이 갑자기 두 동강이 났다.

“육장봉!”

조계안은 끊어진 붓을 바닥에 내던졌다.

뚝, 소리와 함께 동강 난 붓이 한쪽에 있던 박고가(博古架 - 실내에 골동품 등을 진열하는 여러 층의 나무 진열대)에 부딪혔다. 그 위에 진열된 도자기가 쨍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져 바닥에 흩어졌다.

‘엇…….’

바닥에 흩어진 파편들을 보자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책상을 훌쩍 넘어 박고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남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바닥의 파편을 모았다. 또 옷자락을 찢어 그것들을 싼 뒤 월령안의 책상 아래로 슬그머니 숨겼다.

이걸로도 모자라 또 구석에 놓인 도자기를 몰래 빈 자리에 옮겨 두었다. 빈자리를 본 월령안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말이다.

“역시 나는 똑똑해!”

빈 곳을 메꾸고 난 조계안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서 박고가를 두어 번 쳐다보았다. 확실히 어색한 티가 나지 않자 그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인, 식사하시죠.”

문밖에서 월령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흠!”

조계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재빨리 책상 앞에 앉더니 진중하고 오만하게 말했다.

“들어오거라!”

“대인, 드세요.”

조계안의 신분을 드러낼 수 없으므로, 월령안이 직접 음식을 들고 왔다. 양이 적지 않아 팔목이 시큰거렸다. 그릇을 내려놓은 그녀는 저도 모르게 팔목을 주물렀다.

월령안이 자신이 꽉 잡는 바람에 멍든 부위를 주무르는 것을 보자, 그는 일부러 못 본 척 시선을 돌렸다. 자기가 그녀의 팔목을 멍들게 했다고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월령안은 그에게 풍성한 식사를 준비해 주었지만, 함께 식사할 생각은 없었다. 조금 전까지 그의 비위를 맞추느라 충분히 지쳐 있었다. 그와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다가는 체할지도 몰랐다.

조계안은 조금 떳떳하지 못한 짓을 해 조금 제 발이 저렸다. 게다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그녀에게 함께 먹자고 요구하지 않았다.

이 시간이면 그녀도 저녁 식사를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것이다. 또 먹으라고 하는 것은 억지였다.

조계안은 스스로가 배려심이 넘친다고 여겼다. 월령안의 ‘동반’하에 우아하지만 빠른 속도로 내온 음식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배가 부른 조계안은 매우 흡족해 조금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 기대앉아 월령안이 내온 식후 차를 들었다. 마치 사람 손에 잘 길든 큰 고양이처럼 나른하면서도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만약 지금 누군가가 그의 가면을 벗겨낸다면, 그 아래에 숨겨진 얼굴이 얼마나 만족감에 차 있는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월령안은 한쪽에 앉아 조계안을 묵묵히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조계안이 어머니의 시신을 가지고 온 걸 보면 반드시 원하는 게 있는 거야. 아까 나를 원한다느니, 옷을 벗으라느니 한 건 단지 날 화나게 하려는 거야. 절대로 조계안의 진짜 목적은 아닐 거야.’

그녀는 안달하지 않았다. 조계안이 조건을 언급할 때까지 기다렸다. 조계안이 입을 열기만 한다면, 타협의 여지가 있다면, 걱정할 게 없었다.

조계안은 월령안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손에 든 차를 다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월령안, 잘 상의해 보자꾸나.”

“좋아요.”

조계안은 드디어 정상으로 돌아와 더는 이상하게 굴지 않았다. 월령안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까 조계안의 방자하면서도 제멋대로인 모습은 정말이지 꼴불견이었다.

조계안은 배가 부르자 기분이 좋아져 여유롭게 말했다.

“내 기억으로는…… 네게 천금만큼 귀하다는 조야옥사자가 두 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사실이냐?”

조계안은 월령안과 육장봉이 나란히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을 떠올리자 화가 치밀었다. 또 그녀가 거금을 들여 조야옥사자를 두 필이나 산 이유가 육장봉과 함께 타기 위해서임을 떠올리자,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그는 월령안도, 조야옥사자도 가지고 싶었다.

“조 대인, 한발 늦으셨습니다. 그 말 두 필은 이미 육 대장군 것입니다.”

월령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말 두 필을 올해 산 것도 아니었다.

‘예전에는 물어보는 사람 하나 없더니, 요즘 왜 다들 그 말에 눈독을 들이는 거지?’

“네가 육장봉에게 주었느냐?”

조계안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가면을 사이에 두고도 그의 음험함과 불만을 느낄 수 있었다.

월령안은 무섭진 않았지만, 초조해졌다.

‘누구라도 이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미치광이를 매일 보고 싶지는 않을 거야!’

월령안은 짜증이 났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웃으면서 말했다.

“대인, 별말씀을요. 제가 뭐라고, 무슨 자격으로 육 장군께 선물을 드리겠나요.”

월령안은 자조적으로 한마디 한 뒤, 조계안이 묻기 전에 또 입을 열었다.

“며칠 전 심씨 가문의 범죄 증거를 수집했는데 어떻게 대인께 연락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참이었어요. 그 증거들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심씨 가문에서 먼저 알게 되면 또 헛수고한 거잖아요.

육 대장군은 당세의 영웅이시고 정인군자이시니 그분을 통해 이 증거들을 대인께 전해드리려고 했어요. 하지만 뜻밖에도 육 대장군이 이 일에 관심을 보이시고는 본인이 맡아서 처리하겠다고 하셨어요. 이렇게 큰 도움을 받은 차에, 장군께서 나중에 사례로 조야옥사자 두 필을 요구하시더군요. 저도 거절하기 힘들어서 드린 거예요.”

월령안은 간단명료하게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 육장봉에 관해서는 조금 양념을 치긴 했지만, 사실을 왜곡하진 않았다. 그래서 켕기는 구석이 전혀 없었다.

“네 말은…… 원래는 나를 찾으려 했단 말이지?”

조계안의 목소리는 엄동설한의 칼바람에서 따뜻한 봄바람으로 바뀌었다.

“조 대인은 제 주인이시니, 심씨 가문의 범죄 증거를 찾았으면 조 대인께 드리는 것이 당연하죠.”

월령안은 도대체 어떤 말이 조계안을 기쁘게 했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가 추켜세워 주는 말을 아주 좋아하니 역겨운 것도 꾹 참고, 일단 비위를 잘 맞춰 주자고 생각했다.

“흠흠…….”

조계안은 속으로는 기뻤지만, 짐짓 아닌 척하며 말했다.

“잘했구나!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육장봉에게 전해달라고 할 필요 없다. 천하다루(天下茶樓)의 동(童) 사장을 찾으면 된다. 믿을 만한 사람이다.”

‘월령안이 모처럼 먼저 나를 찾았는데 육장봉 그 자식이 가로채다니. 반드시 두고두고 기억해 두겠어!’

조계안은 속으로는 육장봉에게 이를 갈았지만, 입으로는 너그러운 척 말했다.

“이번 일은 육 장군이 힘을 썼고, 또 사례로 조야옥사자를 달라고 했으니 주면 그만이다. 어차피 고작 말 두 필이니까.”

조야옥사자는 천금의 값어치를 지녔다. 그러나 월령안이 육장봉에게 함께 타자고 선물해 준 것만 아니라면, 조계안의 눈에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말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조야옥사자 두 필일 뿐이다. 그가 원한다면 무슨 말을 손에 못 넣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육 대장군이 이렇게 큰 도움을 주셨는데, 마침 원하시는 말이 저한테 있으니 드려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그 조야옥사자 두 필은 그녀가 육장봉에게 품은 소녀의 사랑이자 기대였다. 그러나 이제는 힘들어도 내려놓아야 했다.

일전에 육십이에게 그중 한 필을 주겠다고 했었다. 지금 육장봉이 가져갔으니 한 필을 더 구해서 육십이에게 줘야 했다.

하는 수 없었다. 그녀는 약속을 어기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주 잘했다.”

조계안은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월령안에게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가 갑자기 황제가 맡긴 임무가 떠올랐다. 그는 말할 수 없는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 말을 꺼내면 월령안이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를 원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빨리 죽으나 늦게 죽으나, 죽는 건 똑같았다. 일전에 월령안에게 이미 기회를 준 적이 있었다. 그녀가 기회를 잡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조계안은 내키지 않았으나 결국 입을 열었다.

“월령안, 네 어머니 시신에 관하여 상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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