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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9)화 (49/1,004)

49화 저를 원하세요, 제 몸을 원하세요?

정작 월령안은 집사의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날, 육장봉에게 아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제아무리 육장봉이 매정한 인간이라도 느끼는 바가 있었으리라.

게다가 이번 일은 육비우의 잘못이었다. 그는 육씨 가문 사람이다. 그러니 육장봉이 배상하는 게 당연했다.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집사를 보내고, 월령안은 종자(粽子 - 나뭇잎으로 싼 주먹밥)처럼 칭칭 감긴 두 손을 바라보며 웃었다.

드디어 자해한 상처를 써먹을 때가 왔다. 그녀는 노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 * *

월령안은 고육지책을 준비해 두고 육장봉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정작 찾아온 사람은 육장봉이 아니라 조계안이었다.

조계안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사전에 아무 예고도 없이 월령안의 서재에 불쑥 나타났다.

깔끔하게 차려입고 여유로웠던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온통 꾀죄죄한 데다 아주 많이 지쳐 보였다. 몸에 걸친 옷은 바짝 말라붙은 짠지 같았다. 온몸에서는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 냄새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땀내와 피비린내가 섞인 데다 분변 냄새까지 났다. 또 시체 썩은 냄새도 섞인 듯했다.

조계안이 어디를 갔길래 이렇게 처참한 몰골로 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월령안은 갑자기 나타난 조계안을 보며 이맛살을 살짝 찡그렸지만, 혐오스럽다는 기색은 드러내지 않았다.

“월령안, 먹을 것 좀 있나?”

조계안은 월령안의 맞은편에 앉았다. 격식도 차리지 않고, 친구 집에 놀러 온 듯 편하게 행동했다.

그의 얼굴에 쓴 가면은 조금 어두웠다. 목소리도 심하게 쉬어 있어 아주 많이 지쳐 보였다.

월령안은 깜짝 놀라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조 대인, 우리…… 이렇게까지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요?”

“감림사(甘林寺)에 다녀왔다.”

조계안의 입술은 바싹 말라 갈라져 피딱지까지 져 있었다. 그는 혀로 입술을 핥은 후 말했다.

“당신…….”

월령안은 벌떡 일어나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조계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이 맞다. 내가 네 어머니의 시신을 찾아서 가져왔다.”

‘그런 나한테 밥 한 끼 대접하는 것조차 싫다는 건가?’

그는 월령안 때문에 하마터면 감림사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 순간 월령안은 침착해졌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더니 두 손을 겹쳐 책상 위에 놓았다. 등허리를 곧게 펴고, 침착하지만 강렬한 기세로 조계안을 바라보았다.

“조 대인, 원하시는 게 뭔가요?”

무언가를 얻으려면 포기부터 해야 한다.

월령안은 이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또 아무 이유 없이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조계안이 이토록 잘해 주는 건 그만큼 원하는 게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수 있었다. 그녀의 선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네 생각엔…… 내가 뭘 원하는 것 같으냐?”

조계안은 갑자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를 감싸고 있던 기운이 순간 사납고 잔인하게 변했다. 그는 월령안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오만하게 입을 열었다.

“월령안, 내가 신경을 쓸 만큼 가치 있는 게 너한테 있느냐?”

그가 이토록 심혈을 기울인 것은 월령안을 기쁘게 해 주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월령안은 이런 식으로 그에게 보답했다.

‘이 여자가! 어떻게 해야 내 화를 돋우는지는 잘 알고 있군!’

“모르겠습니다. 저한테 조 대인께서 원할만한 것이 뭐가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조계안이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지는 월령안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만날 때마다 항상 변덕이 심했다. 그녀도 이미 적응이 되었다.

조계안은 화가 나 두 손을 겹친 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강압적인 태도로 월령안을 바라보며 음흉하게 말했다.

“만약 내가 원하는 게…… 너라면?”

“저요?”

월령안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절했다.

“월씨 가문에서는 딸을 팔지 않습니다.”

조계안의 이 요구는 들어줄 수 없었다.

“그러면 뭐 얘기할 것이 없지.”

조계안은 몸을 뒤로 푹 기대더니 양손을 의자 손잡이에 척 걸치고 건들거렸다.

월령안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마음속의 반감을 억지로 눌렀다.

“조 대인, 진심이신가요?”

“내가 언제 너와 농을 하더냐?”

조계안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고 두 다리를 꼰 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때때로 발끝이 까닥거렸다.

“저를 원하세요, 제 몸을 원하세요?”

월령안은 여전히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아닌 남 얘기를 하듯 침착했다.

“너는 원래 내 것이다. 그리고 네 몸은……. 옷을 벗어봐라, 어디 한번 살펴보게.”

조계안은 방탕한 바람둥이처럼 천박한 말만 해댔다. 월령안을 무시하고 서슴없이 모욕했다.

하지만 월령안은 여전히 감정의 기복이 없었다. 마치 조계안에게 모욕을 당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듯했다.

심지어 평온하게 일어나 한마디로 답했다.

“네.”

그녀는 조계안이 일부러 화를 돋우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수작에 걸려들 리 없었다.

“여기서 벗어도 되나요?”

조계안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월령안은 옷고름을 풀기 시작했다.

“너……!”

조계안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 여인은 이렇게까지 모욕을 당하면서도 그에게는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고 했다.

‘육장봉에게는 부탁하면서도 왜 나한테는 부탁하지 않지? 그놈하고는 울고, 웃고, 장난까지 치면서 왜 나한테는 항상 냉정하게 거리를 두지?

내가 대체 육장봉보다 뭐가 부족하다고? 이렇게까지 심하게 말을 해도 왜 나한테는 화를 내지 않지? 왜 날 욕하지도, 나와 다투지도 않는 걸까? 어떻게 침착하게 담판하려 들지?’

조계안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월령안의 붕대를 감은 두 손을 보자, 모든 불만과 울화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는 펄쩍 뛰며 월령안의 손을 가리켰다.

“손은 어떻게 된 거냐?”

마음속으로는 걱정이 되어 어쩔 줄 몰랐으면서 정작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불만과 사나움을 가득 담고 있었다.

“손이요? 조금 다쳤어요.”

월령안은 두 손을 들어 올려 흔들었다.

“어쩌다 다쳤느냐?”

조계안은 굳은 얼굴로 캐물었다.

월령안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할 일이 없어서요. 혼자 그랬어요.”

“자해라도 한 건가?”

‘월령안이 이렇게도 멍청했던가?’

“그래요!”

그녀는 전혀 부인하지 않았다.

“풀어 봐!”

육장봉 때문에 자해했다는 것은 물어보지도 않고 알 수 있었다.

‘열 받아 죽겠군! 내가 너 때문에 목숨을 걸고 있을 때, 넌 육장봉을 때문에 자해를 해?’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지요, 조 대인!”

월령안은 조금 전에는 시원하게 승낙했지만, 사실 조계안 앞에서 옷을 벗게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여전히 수치심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조계안의 모든 신경은 그녀의 두 손에 집중되어 있었다. 또 옷을 벗으라는 얘기도 더는 하지 않자,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조계안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기 시작했다.

‘붕대를 푸는 게 옷고름을 푸는 것보다 훨씬 낫겠지?’

단지 그녀의 두 손은 모두 붕대로 감겨 있어, 푸는 동작이 굼떴다. 조계안은 그녀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 한참 풀어도 다 풀리지 않자 답답해졌다. 그는 일부러 기다리기 귀찮다는 듯이 앞으로 나아가 월령안의 손을 거칠게 붙잡았다.

“붕대 하나 제대로 못 풀면서 뭘 할 줄 안다고?”

월령안은 조계안에게 잡힌 팔목이 아팠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조계안의 기분이 아주 안 좋은 게 눈으로 보였다. 온몸으로 짜증이 난다는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이런 때 그를 건드리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조계안의 행동은 아주 빨랐다. 말하는 사이에 손의 붕대를 전부 풀었다. 손바닥에는 이미 딱지가 앉아 상처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계안은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날 속여?”

조계안은 월령안의 손을 확 뿌리치더니, 그녀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월령안 이 여자가! 정말이지 너무하는군!’

“어? 다 나았네요. 역시 조 대인은 신이네요. 제 상처가 대인을 뵙자 저절로 다 나았네요.”

월령안은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두 손을 들어 올린 채 큰 소리로 과장해서 말했다.

사실 자신의 상처가 거의 나은 걸 진작 알고 있었다. 매일 설옥고를 바르고, 사나흘을 쉬었는데 작은 상처가 낫지 않을 리 없었다.

여전히 붕대를 감고 있었던 이유는 육장봉이 올 때를 대비해서였다. 자기가 그 때문에 자해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바라서였다.

그런데 기다리던 육장봉은 안 오고, 조계안이 찾아와서 붕대까지 풀어줄 줄은 몰랐다.

그래도 옷고름을 푸는 것에 비해 붕대를 푸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조계안이 화를 내더라도 말이다. 아니, 차라리 화를 내서 좋았다. 화를 내면 아까 이야기한 조건을 잊어버릴 테니까.

‘아닌가?’

월령안은 일부러 과장해서 조계안을 동경하고 감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예쁜 눈망울에는 조계안만 오롯이 담고 있었다.

조계안은 월령안이 연기를 하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보조개가 옴폭 패이고, 그만을 바라보고 있는 월령안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있으려니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정말이지 월령안에게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월령안은 그의 천적이었고, 그를 철저하게 꺾어 버렸다!

“너 이 계집애가……. 입으로 하는 말 중에 진심은 한마디도 없구나.”

조계안은 이미 마음이 녹아내렸지만, 차갑게 대꾸했다. 월령안이 자기를 속이려 들었으니 절대로 쉽게 용서할 수 없었다.

‘반드시 월령안이 나한테 부탁하게 만들겠어!’

“조 대인, 제 말은 진심이에요. 아침에 약을 바를 때만 해도 상처가 빨갛고 가려웠는데, 대인께서 이렇게 돌아오시니 상처가 나았네요.”

월령안은 말을 하는 한편 조계안의 감정 변화를 몰래 살폈다.

자기의 무슨 말이 조계안의 마음에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 속에서 폭풍우가 지나가고 난폭함도 점차 사라지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조계안이 입에 발린 소리를 듣고 싶었나? 혹시 영웅처럼 칭송받고 싶은 건가? 문제없어. 그렇게 해 주면 되지.’

그녀는 상인 집안 출신답게,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쟁취할 줄도, 안 되는 일들을 내려놓을 줄도 알았다.

조계안을 잘 달래서 아까 내건 조건을 잊어버리게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의 시신을 내놓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더 알랑거릴 수 있었다.

“낫고 있었으니 가려웠겠지.”

조계안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설마 몰랐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다친 적이 별로 없어서 정말 몰랐어요.”

월령안은 눈을 크게 뜨고 조계안을 바라보며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그녀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켕기는 게 없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조계안의 칭송받고 싶어 하는 욕구도 충족시키려고 했다.

육장봉에게 말한 대로, 그녀가 사람을 달래어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상인으로서의 본능이었다. 그녀 본인의 기분은 딱히 중요치 않았다.

조계안은 월령안이 달래자 기분이 전부 풀어졌다. 손바닥의 상처가 비록 나았지만, 상처가 났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속은 줄 알고 생겼던 작은 불만도 모조리 사라졌다.

그의 시선이 다시 월령안의 손바닥으로 향해졌다. 문득 그녀의 팔목을 보니 눈에 띄게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어…….’

조계안은 굳어버렸다.

‘설마 내가 멍들게 한 건가? 내가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

조계안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사과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못 본 척하고 차갑게 물었다.

“육장봉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자해까지 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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