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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46)화 (46/1,004)

46화 육비우의 복수

사람에게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낌새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희로애락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약간의 흔적은 남기는 것이 보통이다.

자기 사람들이 내부 사정을 알아내기 힘들다는 것은 월령안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정의 곁가지 정도를 수소문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었다.

곁가지만 가지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실히 알기는 어렵지만, 낌새는 어지간히 알아챌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해도 괜찮았다. 상황이 이상하니, 조금이라도 많이 묻고 많이 알아 두는 편이 나았다.

상업계는 전장과 같았다. 여기서는 모든 게 시시각각 변하기에 정보가 곧 생명이었다.

월령안은 줄곧 여러 방면의 정보를 수집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조만간에 쓸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빠짐없이 수집했다.

사람들은 월령안이 타고난 재능으로 별로 힘들이지 않고 돈을 번다고만 생각했다. 사실 사람들 앞에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려고, 보이지 않는 노력을 얼마나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제과점 사건은 비정상적으로 순조로웠다. 관련 인물들이 모두 월령안을 위해 증인으로 나서겠다고 약속했으며 태도도 무척이나 좋았다. 월령안은 되레 불안하기만 했다.

‘누군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게 분명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공급상 몇몇은 대단히 골치 아픈 상대였다. 그들에게는 전부 뒷배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지금의 월령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설령 그녀가 여전히 육씨 가문의 대부인이라고 해도 체면을 봐준다는 보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도대체 누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 사람들이 고분고분 말을 듣게 했을까?’

월령안은 사람을 시켜, 몇몇 공급상이 지난 사흘 동안 만난 사람과 한 일을 자세히 알아보았다. 다들 최근에 수도의 귀인들에게 줄을 대어, 새 거래처를 적지 않게 텄다고 했다. 그런데 이 귀인들은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아랫사람을 시켜, 그 몇몇 귀인 저택의 하인들을 통해 소식을 알아 오라고 했다. 돈을 잔뜩 뿌렸지만, 아무 수확이 없었다.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 귀인들은 모두 오래된 공신이나 귀족이다 보니, 그녀가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정보에 월령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 몇몇 귀인은 소 승상이 설득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공급상들이 그녀를 대하는 살가운 태도에서, 그들이 적이 아닌 벗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조계안인가?”

조계안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육장봉은 분명 아닐 것이었다.

육장봉은 그날 떠난 뒤 경성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가 받은 정보에 따르면 경성을 떠났지만, 구체적으로 무얼 하러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도 관심이 없었다. 육장봉이 어디에 무엇을 하러 가든 그녀와 무슨 상관인가.

그걸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하루빨리 수중의 사업을 말끔히 정리하고, 경성에서의 인맥을 다져야만 했다. 청주로 가 있는 동안 변경의 사람들이 그녀를 잊어버린다면, 나중에 돌아왔을 때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제과점 일을 확실히 알아보고 나자, 그제야 가슴을 짓누르던 큰 돌을 내려놓은 것만 같았다.

월령안도 더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병든 몸을 이끌고 누적된 사무를 여유롭게 처리해 나갔다. 그렇게 한 시진을 일하고 잠깐 휴식을 취하려고 장부를 막 내려놓았을 때였다. 하녀가 허겁지겁 달려 들어왔다.

“아가씨, 아가씨! 큰일 났어요!”

초조하고 겁에 질린 하녀를 보고, 월령안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또 무슨 일이냐?”

“육, 육씨 가문의 그 도련님이 사람을 끌고 쳐들어왔어요.”

하녀는 다급한 나머지 당장 눈물을 쏟을 판이었다.

“뭐라고? 육비우가?”

월령안이 머리를 갸웃하고 의아해서 되물었다.

‘육비우가 아직 덜 혼난 모양이군? 감히 내 집까지 쳐들어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들어 보니 비우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듯했어요.”

하녀가 재빨리 대답했다.

“하, 육비우도 참……. 그래도 육 씨라고 크게 어쩌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왔단 말이지. 됐다. 그까짓 멍청한 애송이가 뭐가 두렵단 말이냐. 날 좀 부축해줘.”

소씨 가문에서 사람을 끌고 왔을 때는 그래도 신경이 쓰였다. 소 승상이 모질고, 수단이 악랄하단 것을 훤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 승상이 권세가 있고, 수완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하인들을 시켜 그녀를 때려죽여도, 소 승상의 신분과 수완으로는 그 사실 자체를 손쉽게 무마할 수 있었다. 그녀가 소 승상의 손에 죽는다고 해도 헛죽음이 될 게 뻔했다.

그러나 육비우는 달랐다. 그는 그냥 육씨 가문에서 응석받이로 자란 소년일 뿐이었다. 사람을 끌고 왔다고 해도 육비우 본인의 체면이나 좀 세울 수 있을까. 그녀는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월령안은 병이 다 낫지 않아 아직 허약한 상태였다. 두어 걸음 옮겼더니 힘들어서, 아예 서두르지 않고 연교(軟轎 – 가볍고 푹신하게 만든 가마)를 가져오게 했다.

앞뜰에서 벌어진 소동에 하인들은 다들 겁이 더럭 났다. 월령안이 연교를 요구하자, 하인은 재빨리 달려가서 연교를 가져다 월령안을 앉히고 앞뜰로 갔다.

중간의 자그마한 꽃밭을 지날 무렵, 월령안은 쿵쾅쿵쾅 부수는 소리와 육비우의 기고만장한 고함을 들을 수 있었다.

“부숴! 완전 작살을 내란 말이다! 무슨 일이든 내가 모두 뒷감당할 테니까.”

“안 됩니다. 그만 하세요!”

월씨 가문의 하인이 울음 섞인 소리로 말렸지만, 금방 육비우의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몰락한 장사치 집안 주제에 감히 우리 육씨 가문을 해코지해. 오늘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자기가 진짜 일품 부인인 줄 알겠지! 부숴! 가산(假山 - 정원에 돌을 쌓아 산처럼 만든 장식)도 부수고, 문이며 창이며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깨끗하게 부숴 버리란 말이야.

아, 사람은 가만 두거라. 우리 육씨 가문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권세를 믿고 막무가내인 건 아니거든. 월령안이 날 건드리지만 않았으면, 나도 오늘 이렇게까지 이 집을 결딴내지는 않았을 거다.”

육비우는 상처가 채 낫지 않은 탓에 병사의 부축을 받으며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마치 대군을 지휘하여 공격하는 장군처럼 열정과 기세가 넘쳐나 보였다.

하인들이 월령안이 앉은 연교를 메고 들어섰다.

그녀는 머리를 갸웃하더니, 왼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난장판이 된 앞뜰을 훑어보았다. 굶주린 늑대처럼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얼굴에 웃음을 띤 채 말했다.

“난 또 뉘시라고. 육씨 가문 작은 도련님이었구나. 오랜만이에요. 그간 안녕하셨나요?”

월령안은 여전히 병색이 완연했고, 목소리도 가냘프고 열기가 없었다.

한창 부수는 데 열을 올리던 병사는 월령안의 말을 듣자 고개를 들어 그녀를 힐끗 보았다.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높이 앉아 있는 그녀를 본 순간, 손동작을 멈칫하더니 어째서인지 더는 부수지 못했다.

“월령안, 드디어 나타났군!”

육비우는 월령안을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았다.

그러는 육비우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월령안은 하인에게 지시했다.

“날 내려다오. 가서…… 의자를 가져 오거라.”

“네!”

월령안이 평소처럼 침착하자, 놀랐던 하인 역시 안정을 되찾았다.

앞뜰에서 육비우의 사람들 때문에 한쪽에 몰려 벌벌 떨기만 하던 하인들도 월령안이 나타나자, 마치 정신적 지주라도 본 것처럼 너도나도 그녀의 주위를 에워쌌다.

“아가씨, 드디어 오셨군요.”

“무슨 큰일이라고. 당황할 필요 없다.”

월령안이 다독이며 웃어 보였다. 다시 고개를 돌려 한쪽에 굳어 있는 병사를 보고 말했다.

“부숴. 왜 안 부수는 거야? 한참 재미나게 듣고 있었는데.”

“…”

병사는 순간 대답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멍하니 굳어졌다.

‘월 낭자가 실성한 게 아닐까?’

“월령안, 미쳤나?”

육비우는 빚쟁이에게 털려 텅텅 빈 자신의 저택을 생각하면, 당장 월령안을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자 오히려 움직이지 않았다.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거지?’

월령안은 육비우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는 다시 한번 재촉했다.

“부수라니까요! 우리 집을 부수러 온 거잖아요? 이제 겨우 시작했잖아요. 계속 부수세요! 고작 이 정도로 멈추면 어떡해요?”

월령안은 한담이라도 나누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병사는 왠지 몸이 오싹해져 들어 올린 나무 몽둥이를 더는 휘두를 수 없었다.

“어서 부수라니까!”

월령안은 갑자기 말투를 차갑게 바꾸었다.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다.

쨍그랑!

누군가 깜짝 놀라 손을 움찔하다가 그만 유리창 하나를 깨트렸다.

육비우는 얼굴빛이 시뻘겋게 변해 호통을 쳤다.

“부수지 마!”

‘내 밑에 있는 놈이 왜 월령안의 명령을 들어?’

그런데 말을 뱉자마자 금방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급히 한마디 덧붙였다.

“내가 너희한테 부수라고 했느냐?”

“비우 도련님, 이건…… 이건 도련님이 저희더러 부수라고 하셨잖아요?”

육비우의 말에 병사가 억울하여 투덜거렸다.

“닥쳐! 여기가 네가 끼어들 자리냐?”

육비우는 병사를 표독스럽게 쏘아보았다. 낯이 뜨겁기도 하고 화가 치밀기도 했다.

‘이 얼간이들이 누구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지도 구분 못 하다니. 내가 어쩌다 이런 바보 같은 자식들을 끌고 왔지?’

만약 육장봉의 친위대라면 이처럼 눈치코치도 없지는 않았을 거다. 안타깝게도 그의 넷째 형님은 수도에 없어 사람을 빌려 쓸 수 없었다.

‘아니지. 만약 넷째 형님이 계셨다면…….’

육장봉을 떠올리자 육비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엉덩이의 상처가 더 아픈 것 같았다. 그는 급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머릿속의 생각을 지웠다.

그는 몰래 한숨을 쉬고 다시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또다시 그 안하무인 육씨 가문의 도련님으로 돌아왔다.

그는 험상궂은 얼굴로 월령안에게 소리를 질렀다.

“월령안, 오늘 나한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누굴 찾아가도 소용없다고. 오늘, 이 육비우가 너희 집을 부수지 않는다면 성을 갈 거야.”

“아, 그러세요? 그럼 비우 도련님 편한 대로 하세요. 일손이 부족하면 사람 몇 명 붙여 드릴까요?”

월령안은 육비우를 쳐다보지도 않고 하인에게 자신을 부축하게 했다. 느릿느릿 앞으로 걸어가 하인이 가져온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하인들이 연교를 걸리적거리지 않게 치웠다.

그녀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육비우는 화가 나 뒤집어질 지경이었다.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내, 내가 못할 줄 알아?”

“부수라니까요! 말리는 사람도 없는데.”

월령안은 자리에 앉은 뒤 하인에게 손짓했다.

“다과를 내오거라.”

“너, 너 뭐 하자는 거야? 월령안, 난 진짜로 너희 집을 부숴 버릴 거야!”

육비우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가 데려온 병사는 나무 몽둥이를 든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월씨 가문의 하인들이 하나같이 그들을 쳐다보자 다들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까 그들이 때려 부술 때도 월씨 가문의 하인들은 이렇게 그들을 쳐다보기만 했었다. 그때는 의기양양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왠지 농락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비우 도련님. 여기서 말린다면 내가 월 씨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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