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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8)화 (38/1,004)

38화 세 가지 고발

육장봉은 월령안이 이미 그 모자를 다른 곳으로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황제에게 오해의 여지를 남기며 말했다.

나중에 그 모자가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소여방이 사전에 사람을 빼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호랑이도 제 새끼는 잡아먹지 않는 법. 소여방이 자기 아들을 죽이기 아까워 남의 아이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해도 믿을 것이다.

“수천 거리의 집이라니 무슨 소린가. 육 장군, 우리 소씨 가문에는 수천 거리에 집이 없네.”

소 승상은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육장봉을 매서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수천 거리에 집이 있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육장봉은 어떻게 알았지? 월령안이 말해 준 건가?’

육장봉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소 승상을 차가운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소 승상, 제가 폐하께 사실을 아뢰고 있습니다. 문인들의 방식은 남의 말을 마음대로 자르는 것입니까? 폐하를 앞질러 말하는 겁니까? 폐하를 대신해 저에게 질문하는 겁니까?”

소 승상은 황제를 힐끔 바라보았다. 도대체 누구 때문인지는 몰라도 황제의 얼굴이 굳어지는 게 보였다. 그는 내심 떨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날카롭게 반박했다.

“육 장군, 억지 부리지 말게. 이건 분명 고의로 누명을 씌우는 게 아닌가! 누명을 쓴 내가 반박하는 게 뭐가 잘못됐단 말인가?”

이틀 전, 소 승상은 많은 사람 앞에서 육장봉에게 수모를 당했다.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입궁하여 황제를 만났다. 원래는 황제에게 육장봉이 자기 딸의 감정을 농락하고 혼사를 거절했으니, 성지를 거두어 달라고 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가 말머리를 떼자마자 황제가 암시를 했다. 아들딸을 잘 간수해서 다른 사람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말라고. 그리고 아들에게 하루빨리 혼사를 정해 주라고 귀띔했다. 나이도 많으니 참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를 수 있다면서.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들이 사고를 쳤다는 것을 알아챘다. 더는 묻지도 못하고 사죄하고는 당장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가서 물으니 과연 몹쓸 놈의 자식이 밖에 첩실을 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황제까지 이 사실을 알게 된 게 문제였다.

이제 공주에게 장가드는 것은 물 건너갔고, 못난 딸이 육비우에게 시집가는 것조차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었다.

소 승상은 소여방에게 일을 말끔하게 처리하라고 지엄하게 명령했다.

‘어제 아들 녀석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처리했다고 했는데…….’

그런데 육장봉이 그 사실을 어찌 알았는지 황제 앞에서 고발하고 있었다.

‘육장봉,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닌가! 두 가문이 금방 사돈이 되었는데 서로 돕지는 못할망정, 소씨 가문을 짓밟고 올라서려 하다니! 비열하기 짝이 없군!’

소 승상이 육장봉을 경고하듯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육장봉은 말없이 냉소를 흘렸다. 소 승상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싸늘하게 말을 이었다.

“소 승상께서 변명하려면 직접 관아에 가셔도 됩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가 곧 관아에 신고할 예정이니까요.”

그의 기억에 따르면 소여방의 사택, 양쪽 이웃집의 집문서는 월령안이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월령안에게 고발하고 배상을 요구하라고 하면 된다.

“무슨 피해자? 관아에 신고를 해? 육 장군, 그냥 낡은 집에 불이 난 것뿐이오. 그런 하찮은 일을 폐하 앞에까지 가지고 와서 소란을 피워야겠나? 변방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수도의 사정을 너무 모르는 게 아닌가?”

소 승상의 말에는 속뜻이 따로 있었다. 수도에는 수도의 규칙이 있으니 육장봉더러 적당히 나대라고 거의 대놓고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고집불통 육장봉은 소 승상에게 조소를 보냈다. 바로 고개를 돌려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신이 아뢸 일이 또 있습니다. 두 번째로 그저께 저녁, 소 승상 댁 도련님과 순천부, 형부 몇몇 관리의 자제들이 표향루에서 밤늦게까지 음주 가무를 즐겼다 합니다. 이들은 사사로이 당파를 결성해 사리사욕을 채우려 한 혐의가 있습니다.”

“마음이 맞는 젊은이들끼리 식사 한 끼 한 것뿐인데, 어찌 사사로이 당파를 결성했다 할 수 있는가?”

소 승상은 격노하여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그제야 알아차렸다. 육장봉은 오늘 그와 대적하러 왔다. 육장봉은 소씨 가문과 사돈을 맺으려는 게 아니라, 원한을 맺으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소 승상은 화가 치밀어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었다.

다른 사람이 황제 앞에서 고자질한다 해도 두렵지 않았다. 문제는 이 사람이 육장봉이라는 점이었다!

황제가 육장봉을 얼마나 신임하는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육장봉이 한 말을 곧이곧대로 다 믿지는 않는다고 해도, 최소 구 할은 믿을 게 뻔했다.

예전부터 육장봉은 줄곧 독선적이었다.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지만, 가까이하지도 않았다. 누구에게든 무슨 일이든 참견하는 법은 더더욱 없었다.

‘멀쩡하던 육장봉이 갑자기 왜 날 공격하는 거지?’

소 승상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면서도 두려움이 커졌다.

육장봉은 잠자는 호랑이였다.

“그만, 그만하게. 소 승상, 화내지 마시오. 장봉이도 사실만 말한 거지, 편견을 가지고 누굴 대적하는 건 아니잖소. 서두를 거 없소. 젊은이들 몇몇이 모여 식사 한 끼 했다고 짐이 벌을 주기야 하겠소?”

소 승상이 성이 나서 핏대까지 세운 걸 보자, 황제는 그가 쓰러질까 두려워 연신 달랬다.

황제가 위로해 주자, 소 승상은 더욱 화가 치밀어 숨을 가쁘게 쉬며 얼굴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내관이 눈치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 소 승상을 부축하여 자리에 앉혔다.

“승상, 몸을 챙기셔야죠.”

황제가 이를 보고 육장봉에게 그만하라고 눈치를 주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싸늘한 얼굴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폐하, 신이 추태를 보였습니다.”

자리에 앉은 소 승상은 얼굴빛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떨리는 손으로 황제에게 사죄했다.

사실은 정말로 화난 게 아니었다. 다만 황제에게 보여 주어 그의 마음이 약해지기를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황제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너무 높게 평가한 한편, 육장봉의 위치를 너무 낮게 평가했다.

“하찮은 일들이니 소 승상도 염두에 두지 마시게.”

황제는 부드러운 어투로 소 승상을 위로해 주었다. 그렇지만 육장봉에게도 꾸짖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사촌 동생인데, 황제인들 어찌하겠는가? 황제는 그냥 감싸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육장봉은 변경에 돌아오자마자, 황제와 조계안을 대신해 아내를 쫓아냈다는 누명을 뒤집어쓴 터라 기분이 언짢은 상태였다. 만약 육장봉이 소 승상에게 화풀이하려고 트집을 잡은 것이라면, 소 승상 본인만 아니라 소씨 가문의 모두가 꼬투리 하나 잡아낼 수 없이 깨끗하다 해도 소 승상이 참아야 했다.

소 승상을 위로하고 나서, 황제는 육장봉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장봉, 이야기는 다…… 끝났겠지?”

소 승상 몰래, 황제는 육장봉에게 그만했으면 되었다고 조용히 눈치를 주었다. 소 승상이 진짜 병이라도 나면 황제도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그러나 육장봉은 무표정하게 황제의 암시를 무시했다.

“폐하, 아직 더 있습니다.”

황제는 우거지상이 되어 의미심장하게 불렀다.

“장봉아……!”

‘소 승상이 그래도 원로 대신인데, 내 체면을 봐 주는 셈 치면 안 되겠느냐?’

육장봉은 황제를 흘끔 건너다보고는, 그나마 황제의 체면을 조금이나마 봐 주었다.

“사실, 세 번째 일은 신의 집안일이기도 합니다.”

“무슨 일이냐?”

황제는 한시름 놓았고, 소 승상도 살짝 긴장을 늦추었다.

황제는 육장봉이 무서웠다. 육장봉은 벽창호인 데다 도대체 두려운 게 없었다.

“신의 넷째 숙모가 지난 이 년간, 월령안에게서 은자 오륙만 냥을 빌렸습니다. 월령안이 어제 사람을 보내 빚 독촉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특별히 일러주었습니다. 넷째 숙모는 남 때문에 피해를 본 거랍니다.”

육장봉은 집안 망신도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말했다.

여기까지 들은 소 승상은 살짝 떨리는 입꼬리를 겨우 부여잡았다. 그러나 문득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육장봉이 말하길, 오늘 세 가지 일은 모두 소씨 가문과 관련된다고 했었다.

‘육씨 가문의 넷째 집안이면 우리 예비사위의 집안이 아닌가?’

소 승상의 얼굴빛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육장봉이 소씨 가문을 짓밟고도 모자라, 그 사돈댁마저도 짓밟으려는 건가?’

“흠흠, 빚을 졌으면 갚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황제는 동정 어린 눈길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장봉이도 참 힘들게 사는구나. 육씨 넷째 집안에는 믿음직한 사람이 없지. 그나마 육씨 가문 사내들이 대부분 전사해서 위세 부릴 웃어른이 없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장봉이의 생활도 자질구레한 일들로 가득 찼겠지. 황제인 나보다 나은 게 없어.’

황제는 ‘가슴에 사무치는 공감’에 형제간의 정까지 더해지자 궁금해서 물었다.

“장봉아, 네 넷째 숙모는 누구 때문에 곤란해진 거냐?”

‘혹시 장봉이 때문인가? 아니, 아니지. 월령안이 장봉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장봉이를 원망할 수가 없지?

그럼 장봉이가 아니면, 누구 때문일까?’

황제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장봉이 느긋하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월령안이 운영하는 제과점이 있는데, 그 집 과자를 먹고 사람이 죽었다고 고발을 당했다고 합니다. 순천부의 관리들은 증거도 찾지 않고, 바로 가게를 부수고 사장을 끌고 갔다고 합니다.”

“순천부?”

황제는 문제점을 예리하게 알아챘다.

육장봉이 아까 말했던 일까지 떠오르자, 황제는 의미심장하게 소 승상을 바라보았다.

소 승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급히 몸을 일으켰다.

“폐하, 신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짐도 그대가 모를 거라 믿소. 순천부의 사건은 순천부윤이 조사해야 마땅하니까.”

황제는 아까까지의 친절함을 거두고, 얼굴을 굳힌 채 경고했다.

그는 집정을 시작한 이래 천하의 태평과 백성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나라를 다스려 왔다.

‘짐은 한 발짝이라도 잘못 내디딜까 노심초사했거늘, 아랫사람들이 되레 짐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다니!’

“네, 폐하.”

소 승상은 황제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그와 동시에 관아에서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이 사건에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황제는 두 가지 일을 함께 묶어 문책할 것이고, 설령 소 승상의 체면을 봐준다 해도 좋은 결과가 나올 리 없었다.

황제는 소 승상이 자신의 뜻을 깨달은 것 같아 보이자 고개를 끄덕였다.

“됐소. 시간도 늦었으니 소 승상은 어서 가 보시오.”

육장봉이 오래간만에 입궁한 걸 보니, 소 승상의 고발 건만이 아닌 다른 일도 있을 터였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촌 형제끼리 모여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소 승상이 끼면 너무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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