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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7)화 (37/1,004)

37화 보호하고 싶은 마음

암위는 육장봉의 물음에 한시름을 놓았다. 경직되었던 몸도 점차 긴장이 풀렸다.

다행스럽게도 장군은 월령안의 편지에 관해서 묻지 않았다. 그 편지에 관해 묻는다면, 대답할 엄두도 나지 않거니와 대답할 방법도 없었다.

변방에 있는 삼 년 동안, 매일 눈을 뜨든 감든 전쟁뿐이었다. 매일 목숨을 건진 것에 감사하며 죽음과 맞서야 했다.

변방의 생활은 따분하고 적막했다. 삼 년 동안, 그들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큰 압박을 받고 있었다. 월 낭자가 매달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러한 생활 속의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당시, 그들은 내려다보는 자세로 월 낭자를 광대처럼 여겼다. 연신 그녀를 희화화했고, 경멸하고 업신여기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때의 그들은 멍청하면서도 악질적이었다.

만약 삼 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천박하게 입을 놀리고 허튼짓을 한 자신을 한바탕 두들겨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출처가 금나라라고?”

육장봉은 눈썹을 살짝 치켜들고 느긋하게 등을 꼿꼿이 폈다.

“어찌 된 일이냐?”

분명 흥미가 생긴 것이었다.

암위가 이를 보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실대로 보고했다.

“장군께 아룁니다. 조 선생, 유 선생 두 분이 아직 확정을 짓지 못했습니다. 병기에서 금나라 공부의 표기와 유사한 것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암표가 흐릿해서 알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조 선생은 금나라 공부의 표기이지만, 인위적으로 지운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반면 유 선생은 누군가 고의로 본 사람이 오해를 하도록 흐릿하게 표기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병기들이 금나라의 공예 솜씨로 만든 것 같아 보이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조 선생도 병기를 만드는 데 사용한 철은 금나라에서 난 철과 재질이 같다고 했습니다. 두 분은 아직 의문이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라서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소인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금나라의 철에다 금나라 공부의 표기라. 그런데 흐릿하고 알아보기 힘들다. 이거 재미있구나.”

육장봉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월령안은 과연 교활한 새끼 여우였다.

‘어쩐지 전선에 병기를 보내면서도 황제의 의심을 살까 두려워하지 않더라니.’

그런 것도 모르고, 자신은 병기를 실마리로 철광산을 조사할 수 있다고, 괜히 월령안에게 주의를 환기했다.

뜻밖에도 그녀는 이미 대비를 해놓고 있었다.

예전에는 월령안이 철광산을 장악하고 있다고 믿지 않았다. 지금은 칠 할쯤 믿게 되었다. 나머지 삼 할은 증거를 찾아 증명해야만 믿게 될 것이다.

그러나 월령안의 신중함과 경계심을 생각했을 때, 그 증거들을 찾아내려면 꽤 힘들 것이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는 드물게도 사람에게 흥미를 느꼈다. 월령안은 성공적으로 그의 눈길을 끌었다.

“조 선생과 유 선생에게 더는 조사하지 말라고 알려라. 그 병기들의 출처는 금나라이다. 날이 저물기 전에 결과를 봐야겠다. 알겠느냐?”

육장봉은 말을 마치고, 저도 몰래 고개를 저으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줄곧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나 일도 그의 마음을 움직인 적이 없었다.

황제가 월령안을 떠보는 임무를 맡긴 것도, 그가 절대적으로 공정했기 때문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피도 눈물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랬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사심을 채우고 싶었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보호하고 싶었다.

마음속에서는 월령안의 수중에 철광산이 있을 가능성이 칠 할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녀를 보호하고 싶었다. 그녀가 철광산과 엮이지 않고, 황제의 경계심을 사지 않기를 바랐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게다가 그는 공정함이나 사심이 없는 경지를 추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이제까지 공정하게 처사하며 사사롭게 이득을 채우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그럴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월령안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당연히 보호할 것이다.

조금은 낯설었지만, 육장봉은 이런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를 들은 암위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신분을 끝까지 잊지 않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놀라 펄쩍 뛸 뻔했다.

‘장군이 월 낭자를 위해 법을 어기다니? 조사를 마치지도 않고, 위에 보고하라고? 그, 그렇다면…….’

바로 월 낭자가 장군의 마음속에서 특별한 존재임이 확실하다는 뜻이었다.

“네, 장군.”

암위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떨떠름해서 혼이 절반은 나간 상태였다.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나서도, 암위는 여전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안 돼. 꼭 암이(暗二), 육이에게 당부해야겠다. 반드시, 절대로 장군께 들켜서는 안 된다고. 우리가 월 낭자의 편지를 읽고 비웃었다는 사실을 감춰야 해. 예감이 좋지 않아. 장군께서 아시는 날에는 우리 모두 몽둥이찜질을 면치 못할 거야.”

“뭐라고 구시렁대는 거야?”

암이가 교대하러 왔다가, 눈이 퀭해 혼잣말하는 암일을 보고는 다가가서 어깨를 툭 쳤다.

“너…… 너, 깜짝 놀랐잖아!”

암일은 혼비백산하여 소리를 지를 뻔했다.

“무슨 일 있었나? 왜 그렇게 얼이 빠졌어?”

암이는 암일이 너무 놀라자 덩달아 놀랐다.

“큰일 났어.”

암일은 좌우를 둘러보고, 이 구석이 장군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임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비밀스럽게 손짓하여 암이를 불러 귓속말을 했다.

“그게 말이야…….” 

암일은 조금 전 육장봉이 한 말을 재빨리 그대로 옮겼다. 또 암이에게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확실한 건 장군께서 이제 월 낭자를 특별하게 여긴다는 거야. 우리도 진짜 조심해야 해. 장군께서 보지 못한 월 낭자의 편지를, 우리가 대신 읽었다는 것을 절대 들켜서는 안 돼.”

암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거의 울상이 되었다.

“아무래도 우린…… 죽을 것 같아!”

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 장군도 조만간에 사실을 알게 되지 않을까.

* * *

육장봉은 조계안이 아니었다. 그는 황제가 집정 초기에 소 승상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시의 지원 때문에 황제는 소 승상을 총애했다. 소씨 가문의 일에 대해서도 적당히 눈감아 주었다.

바로 소여방 사건처럼 말이다. 조계안은 월령안에게 소여방의 사생아 건을 폭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황제가 소여방의 사생아를 입적하라는 성지를 내리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황제는 소씨 가문의 체면을 고려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사실이 폭로되기 전에 무마하라고 소 승상에게 귀띔까지 해 주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사람의 정과 감사의 마음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이 년간, 소 승상과 그의 가문이 거듭하여 황제를 실망하게 한 탓에, 소 승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조만간 마모되어 사라질 것이다. 심지어 소씨 가문에 불미스러운 일이 많아질수록 황제는 소 승상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게 될 것이다.

소 승상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육장봉은 익히 알고 있었다.

소 승상과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전 같았으면 소씨 가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씨 가문이 뻔뻔스럽게 월령안을 괴롭혔기에 이 일은 이제 그와 관련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암위가 전선의 소식을 다시 정리하여 올리자, 육장봉은 새로운 증거를 들고 입궁했다.

소여방의 일에 대해서라면, 딴 사람들은 몰라도 육장봉은 황제에게 말할 수 있었다.

육장봉은 군공을 많이 세워, 황궁에서도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조서를 기다리지 않고도 바로 입궁할 수 있었다.

육장봉이 황궁에 도착했을 때는 그다지 이른 시각이 아니었다. 궁 밖에서는 대신 여러 명이 황제가 불러들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궁인이 나와 친절하게 맞아들였다.

황제의 난각에 이르니, 황제의 시중을 드는 대태감(大太監)이 소식을 듣고 직접 나와 맞이했다.

“대장군, 드디어 오셨군요. 폐하께서 요 며칠 장군을 계속 찾으셨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소 승상과 국사를 논의 중이신데, 일단 차라도 드시면서 기다리시면 어떻겠습니까?”

“필요 없네. 내가 할 이야기는 마침 소 승상과도 관련이 있는 이야기이니, 그분이 들어도 괜찮네.”

육장봉은 얼굴을 굳힌 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육장봉은 소 승상의 기분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다. 고자질은 소인배나 하는 짓이다. 일부러 대놓고 고발할 생각도 없지만, 소 승상에 대한 불만을 남들이 안다 해도 두렵지 않았다.

“대장군,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소인이 당장 들어가 아뢰겠습니다.”

육장봉이 이렇게 나오자, 대태감은 곧 그가 소 승상을 대적하러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소 승상이 알게 모르게 황제 앞에서 육장봉의 험담을 하던 걸 떠올린 대태감은 저도 몰래 도리질을 했다. 소 승상의 됨됨이에 대해서도 더 낮추어 보게 되었다.

‘똑같이 고발한다지만, 육 대장군은 떳떳하게 하지 않는가.’

황제는 육장봉이 왔다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당장 끊임없이 떠들고 있는 소 승상의 말을 중단시키고, 내관에게 육장봉을 들이라고 명했다.

“폐하!”

평상복 차림의 육장봉이 바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온몸에는 군인 특유의 강경함과 시원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그는 황제에게 포권을 해 예를 행했다. 간단한 손짓에도 당당한 기세가 묻어났다.

“장봉아, 어서, 어서 예를 거두거라.”

황제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연신 손을 저었다. 또 내관에게 육장봉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라고 명령했다.

소 승상은 천자를 가까이서 보필하는 신하라, 황제 앞에서도 앉을 수 있었다. 그는 육장봉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지만,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거만하게 앉아서 육장봉이 예를 올리기를 기다렸다.

소 승상과 육장봉은 같은 일품 대신이지만, 한 명은 문관이고, 한 명은 무관이었다. 자고로 문관이 무관보다 지위가 높고, 나이도 소 승상이 육장봉보다 연상이었다. 두 사람이 만나면 여러모로 육장봉이 예를 올려야 했다.

소 승상은 만약 육장봉이 인사하면, 황제의 앞이라도 꼭 어두운 낯빛을 보여 자신의 불만을 표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육장봉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을 뿐,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순간 소 승상의 눈에 노기가 스쳤다. 육장봉을 바라보며, 공만 믿고 안하무인이라고 비꼬려는 찰나였다. 육장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신은 세 가지 사실을 아뢰러 왔습니다. 마침 셋 다, 소 승상 댁과 관련 있는 일입니다.”

“어? 무슨 일이길래 소 승상과 관련되었단 말이냐?”

황제가 호기심에 차 물었다.

공교롭게도 조금 전, 소 승상이 아뢴 세 가지 사실 또한 모두 육장봉과 관련된 일이었다.

첫 번째, 대군(大軍)과 연락이 빈번하고, 두 번째, 경성에 돌아오자마자 여러 일에 손을 댔으며, 세 번째, 집에서 사사로이 형벌을 쓴 것으로 보아, 황제는 안중에도 없다는 주장이었다.

황제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소 승상은 그래도 원로 대신이었다. 그의 체면을 봐서 인내하며 들어주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중 육장봉이 소 승상을 겨냥하자, 황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첫 번째는 수천 거리에 있는 소씨 가문 소유의 집에 불이 났는데, 그 안에서 불타 죽은 모자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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