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33)화 (33/1,004)

33화 위기를 기회로

월령안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제과점의 최근 일 년간 출납부를 서재로 가져오라고 하는 한편 가게의 그 일꾼도 데려오라고 했다.

장부를 맞추어 보며, 사들인 재료와 판 간식을 전부 잘 정리해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도표로 만들었다.

지금 가진 자료로는 이 일 년간 가게의 과자를 어떤 사람에게 팔았는지 전부 알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일꾼이 있으니 최근 사흘 동안 누구에게 과자를 팔았는지를 확실하게 알아내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게에서는 고급화 노선을 취했다. 좋은 재료로 만들었고, 가격도 비쌌기에 그녀의 가게에 와서 간식을 사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유층이나 귀족층이었다. 최소한 중산층은 되어야 했고, 일반 서민은 살 엄두도 못 냈다.

일꾼은 사흘간 어느 집안에서 무슨 제품을 사 갔는지 기억을 자세히 더듬었다. 월령안은 그 내용을 기록한 뒤, 저택의 하인에게 이 몇몇 집안의 하인을 찾아가서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들에게 증언을 확보한 뒤 서명까지 받아올 수 있다면 가장 좋았다.

월령안은 자신의 일방적인 말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트집 잡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증거를 충분히 준비해야만 했다.

골치 아픈 일에 엮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증언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들의 이웃을 찾아가 증언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같은 거리의 일꾼들과 가게의 사장들에게도 부탁할 예정이었다.

하늘 아래 영원한 비밀은 없다. 그녀의 가게는 번화가에 있다. 누군가가 가게에 들락거렸다면 반드시 목격자도 있을 테니, 그녀를 위해 증언을 해 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중 몇몇 가문은 문턱이 제법 높았다. 이런 가문에서는 규칙이 많고, 하인 따위를 상대해 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월령안이 직접 찾아가 잘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모두 단골인데다, 평소 월령안도 단골들에게는 인심을 넉넉하게 베풀었다. 그들은 누군가 가게의 사장을 악의로 모함했다는 것을 알자, 월령안의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대부분은 아주 협조적이었다. 심지어 관아를 두려워하지 않는 몇몇은 관아까지 가서 월령안을 위해 증언을 해 주겠다고도 했다.

월령안은 연신 감사의 인사를 하는 한편 감탄했다.

‘세상엔 아직도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이들에게 승낙을 받으니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

이번 사건은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쓴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소씨 가문을 찾아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상대방이 관아에 고발했으니 이쪽에서도 정상적인 절차를 밟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순천부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순천부윤은 인정에 구애되지 않는, 공정하고 올바른 사람이었다. 소여방의 방식으로는 기껏해야 그녀의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어 고생을 시키는 것뿐, 순천부윤의 판결에는 간섭하지는 못할 것이다.

월령안이 충분한 증거를 내놓아 그녀의 가게와 점원들의 결백만 밝혀낸다면, 소여방도 그녀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심지어 이번 위기는 그녀의 가게가 변경에서 이름을 떨칠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소여방은 죽은 사람을 가지고 그녀를 모함했다. 그녀의 가게에서 파는 과자에 독이 들어 있어 먹으면 죽는다고 했다. 관아에 갈 정도로 일을 크게 벌인 걸 보니, 그녀가 부리는 가게의 사장만을 노린 게 아니었다. 그녀의 명성과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목적이 더욱 강했다.

사람과 명성이란, 나무와 그 그림자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법이다.

월령안은 변경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서, 나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독이 든 재료로 음식을 만들었고, 그걸 먹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녀의 명예는 실추될 게 뻔했다. 앞으로 무슨 장사를 하든 그녀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녀의 물건을 사려는 사람도 사라질 것이다.

소여방은 그녀를 망하게 할 셈이었다. 하지만 상대를 너무 얕잡아 보았다.

위기를 잘 이용한다면, 본인의 실력이 충분히 강하다면, 이는 전환점이 되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녀의 가게에서 얼마나 좋은 재료를 쓰는지 그녀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이번에는 완벽한 역전을 이뤄낼 자신이 있었다.

‘소여방이 본전도 못 찾게 만들어 주겠어!’

월령안의 눈이 번뜩였다.

‘감히 날 괴롭히다니. 고작 망신을 한 번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드디어 심씨 가문을 써먹을 데가 생겼군.”

월령안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옅은 웃음을 지었다. 가슴팍의 옷 주름을 툭툭 털고는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아가씨.”

문을 나서자 하인이 다가왔다.

“육씨 가문에서는 지금까지 아무 답이 없습니다. 소씨 저택으로 찾아간 사람도 없고요.”

이미 해가 저문 시간이었다. 월씨 저택의 회랑과 지붕 아래에는 벌써 등불이 밝혀져 있었다.

육비우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월령안은 가볍게 웃었다.

“보아하니 육비우는 내가 상인으로서 얼마나 신용을 잘 지키는지 모르는 것 같구나. 이렇게 되었으니 나도 그놈의 체면 따위는 봐줄 필요가 없겠네.

서재에 가서 왼쪽 두 번째 서랍 안에 있는 차용증을 전부 꺼내 절름발이 육에게 가져다주거라. 여기 차용증 금액의 삼 할만 나한테 주고, 나머진 전부 가져도 좋다고 해.”

‘절름발이 육’이라는 이름은 비록 촌스러웠으나, 그의 세력은 작지 않았다.

절름발이 육은 변경의 암흑가에서도 육 할의 세력을 차지했다. 나름대로 변경에서 내로라하는 거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상인이었다. 그렇다 보니 밝은 쪽으로도, 어두운 쪽으로도 전부 친분을 쌓아 두고 있었다. 그녀와 절름발이 육은 몇 번 거래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록 어둠에 몸담고 있었지만, 평범한 백성을 괴롭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기만의 장사가 있었고, 평소에도 돈을 받아내고 빚을 독촉하는 등의 일을 했다.

돈을 받아내고 빚을 독촉하는 일은 무시할 게 아니었다. 이번에 그녀가 의뢰한 한 건만 봐도 그렇다. 육 사부인은 그녀에게 약 오만 냥을 빚졌는데, 절름발이 육이 이 건을 접수하면 금액의 칠 할, 즉 삼만오천 냥을 벌게 된다. 게다가 절름발이 육은 사람 몇 명 외에는 본전이 들어갈 일이 없으니 전부 순이익인 셈이었다.

이런 장사는 돈을 빨리 벌 수 있어 부럽다고 생각한 적도 한번은 있다. 하지만 부러워만 했을 뿐이다. 월씨 가문은 정직한 장사만 했고, 어둠의 세력과 결탁한 적이 없었다.

“예, 아가씨.”

하인이 대답하고 나자, 월령안이 나갔다. 하인은 서재에서 일하는 하녀에게서 육씨 가문 사부인이 쓴 차용증을 받아, 그날 밤으로 절름발이 육에게 가져다주었다.

* * *

월령안은 육씨 가문의 일을 처리하고, 서쪽 뜰에 있는 노인을 찾아갔다.

“영감님, 영감님……! 빨리 나오세요!”

월령안은 도착하기도 전에 소리부터 질렀다.

“시끄럽다! 이 녀석아, 오밤중에 왜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냐?”

노인은 말로는 귀찮은 척했지만, 당장 바퀴 의자에 앉아 밖으로 나왔다.

월령안은 화청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과자를 집어 입안에 밀어 넣었다. 예절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요!”

“저녁을 먹지 않았느냐?”

노인은 월령안의 지친 모습을 보자 온종일 바삐 보냈음을 눈치챘다.

“네.”

월령안은 대답하고 나서 입안의 과자를 꿀꺽 삼키고, 또 물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소여방 그 쓰레기가 절 괴롭히는데 가만히 앉아 죽기를 기다릴 순 없죠. 영감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벌써 찾았어요. 순천부윤이 재판을 시작하기만 하면, 소여방을 순식간에 해치워서 제 디딤돌로 만들어 줄 거예요.”

월령안은 말을 마치자 일부러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나 강하지?’라며 과시하는 듯한 괴상한 표정이었다.

노인은 그 모습을 보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바빠지자 확실히 좋았다. 할 일이 생기니 육장봉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그다지 괴롭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일만 해결해서는 안 돼요. 소여방을 아주 혼쭐 내 줄 거예요. 나 월령안이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줘야죠.”

노인 앞에서 ‘강한’ 척한 뒤, 그녀는 또 과자 한 조각을 집어 입안에 밀어 넣었다. 두 볼이 불룩하게 불어나자 곡식을 훔쳐먹은 비단털쥐 같았다. 작고 아름다운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노인에게 오면, 월령안이 좋아하는 짠맛이 나는 간식을 늘 먹을 수 있었다.

‘여자애들은 대부분 왜 달콤한 음식만 좋아할까? 내가 짜고, 고기가 든 간식이 맛있다고 하면 왜 날 징그럽다는 눈빛으로 볼까? 또 내가 여자답지 않다고 한 사람도 있었지.

이해가 안 돼. 짠맛이 나는 간식을 먹는 거랑 여자다운 게 무슨 상관이람?’

“어디서부터 손을 댈 생각이냐?”

노인은 바퀴 의자를 움직여 다가와 월령안의 빈 잔에 차를 가득 따라 주었다.

월령안은 사양하지 않고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마신 후 입안의 음식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제야 겨우 간에 기별이 가는 것 같았다.

“심씨 가문이요. 심씨 가문은 전에 제가 곤란할 때를 틈타 이득을 보려고 제 수중의 재산을 강매하려고 했잖아요? 이번에 아예 한꺼번에 결판을 내려고요. 제가 육씨 가문의 보호가 없더라도, 개나 소나 건드릴 수 있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줄 거예요. 하는 김에 소 승상과 소여방에게도 경고하려고요. 제가 정말 그들을 겁낸다고 착각하지 말라고요.”

소여방이 그녀의 수족인 가게 사장을 건드렸으니, 그녀는 소씨 가문의 팔을 잘라낼 셈이었다.

‘누가 더 고통스러울지 두고 보자고!’

“심민을 만나려고?”

노인은 일전에 월령안에게 소개해 준 사람이 떠올라 떠보듯 물어보았다.

월령안은 입안에 간식을 계속 밀어 넣으며 말했다.

“아뇨. 제가 아무나 만날 수는 없죠. 저와 손잡을 만한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때, 만나러 오라고 하세요.”

“그 말이 맞다. 이런 때에 심민을 만났다간 놈들이 경계심을 가질지도 몰라.”

노인은 월령안의 말에 무조건 수긍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적당한 핑계까지 대 주었다.

“심민은 심씨 가문을 증오한다면서요? 복수를 하고 싶어하지 않나요? 심씨 가문은 일 처리가 제멋대로고, 소 승상이라는 배경만 믿고 법에 어긋나는 일을 얼마나 많이 해댔는데요. 심민이 심씨 가문에 있었으니 이 몇 년간의 증거를 수집해 놓기는 했겠죠? 심씨 가문의 범죄 증거를 가지고 절 만나러 오라고 하세요.”

심씨 가문의 뒤에는 소 승상이 있었다. 심민이 심씨 가문을 무너뜨리려면 증거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이 증거를 소 승상을 무너뜨릴 힘이 있는 사람에게 보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심민이 내놓은 증거는 밖에서 나돌다가 결국 심씨 가문의 가주 손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망하는 건 심씨 가문이 아니라 심민이었다.

월령안은 그의 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의도만 가지고 심민에게 증거를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실력을 보일 기회를 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봐라. 내게는 이 범죄 증거를 심씨 가문과 맞설 수 있는 관원들에게 보낼 능력이 있어. 소 승상이 나서더라도 심씨 가문을 보호하지 못할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