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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30)화 (30/1,004)

30화 진정한 복수

순간 사부인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그녀는 질겁하며 물었다.

“뭐라고? 무슨 헛소리야? 얼, 얼른 가라고 해! 꺼지라고! 난 차용증도 명세서도 쓴 적 없어!”

“그만 좀 하세요!”

육비우는 결국 분노해서 어머니에게 크게 고함을 질렀다. 순간 힘이 너무 들어간 나머지 엉덩이의 상처까지 당겨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사부인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벌떡 일어서더니 미치광이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얼, 얼른……! 얼른 내쫓아! 내쫓으라고! 내 말 안 들려! 월령안, 그 고얀 것이 한 가족끼리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어머니, 쫓아낸다고 그게 없던 일이 되겠어요?”

육비우는 처음에는 빚이 있다는 말에 의심을 품었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의 반응을 보니 더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비우야, 난 안 그랬다. 난 돈을 빌린 적이 없어. 월, 월령안이 한 짓이야! 그래, 월령안이 날 함정에 빠뜨린 거야. 걔가 날 속여서 문서를 쓰게 한 거야. 난 걔 돈을 받은 적이 없어. 걔 물건을 가진 적도 없고. 차용증도 전부 걔가 날 꼬드겨서 쓴 거야. 나한테 그랬었지. 다 한 가족인데 차용증을 써도 아무 일 없을 거다, 나한테 돈 달라고 따질 것도 아니라고. 그냥 장부 쓰는데 편하자고 하는 거랬어.”

사부인은 육비우의 손을 잡고 횡설수설 해명에 나섰다.

“그래서, 정말 월령안의 돈을 받았어요?”

육비우는 고개를 들었다.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는 어머니를 보자 마음이 지쳐갔다.

“나는, 나는…… 다른 방법이 없었어! 비우야, 네 외삼촌이, 외삼촌이 사고를 쳤는데 돈을 내지 않으면 다리를 분지른대! 나도 다른 수가 없었다고!”

사부인은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아 구슬프게 울었다.

“월령안에게서 얼마를 받으셨어요?”

육비우는 대충 돈을 계산해 보았다. 이번에 상금으로 받은 돈이 적어도 삼천 냥은 될 거고, 또 집에 있는 돈을 합하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 나도 기억이 안 나. 천 냥, 천 냥씩 가져와서. 하지만 많지 않아. 이건 어미가 약속할게. 정말 얼마 안 된다.”

사부인은 육비우가 갚아 줄 듯하여 보이자 울음을 그쳤다.

육비우는 이 숫자를 듣자 마음이 놓였다.

“그 사람더러 화청에서 기다리라고 해라. 내가 곧 가마.”

“비우야, 이 돈……. 이 돈은 우리가 갚을 수 없다. 월령안이 말했어.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차용증을 써도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돈이 있으면 갚는 거고, 없으면 갚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사부인은 엉금엉금 기어 일어나더니 주절주절 중얼거렸다.

“하지만 우린 지금 월령안이랑 한 가족이 아니잖아요!”

육비우는 충동적이긴 하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월령안이 일부러 트집을 잡는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 그럼 어떡하니?”

사부인 몸을 움츠렸다. 괴롭힘이라도 당한 것처럼 청승맞은 모습이었다.

“제가 먼저 만나 볼 테니까 나중에 얘기해요.”

육비우는 곤장을 팔십 대나 맞고 나니 허벅지 살이 문드러졌다. 엎드려 있어도 아팠는데 몸을 일으키자 온몸의 상처가 생생히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통증 때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렸다.

육비우는 통증을 억지로 참으며, 그를 돌보던 하인에게 몸을 기댔다.

“화청으로 가자.”

“도련님, 상처는 어쩌시고요?”

하인은 가까스로 육비우를 부축하고는 걱정스레 물었다.

“이 정도론 안 죽어!”

육비우는 퉁명스럽게 고함을 질렀다.

“비우야, 이러지 마라. 이 어미는 두렵단 말이다……”

사부인은 놀란 듯 또 움츠러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육비우는 당연히 어머니를 달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힘이 없었다.

하인의 부축을 받으며 육비우는 힘겹게 화청에 도착했다.

장부를 전하러 온 하인은 육비우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육비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앞으로 나와 인사를 올리고 장부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월령안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해주었다. 마지막에 일깨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우 도련님께서 빨리 돈을 갚으시길 바랍니다. 날이 저물기까지 한 시진 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월령안, 그 계집이 감히!”

육비우는 격분했다. 당장 장부를 빼앗아 바닥에 거칠게 내팽개쳤다. 오늘 부상을 당하지만 않았더라면 분명 장부를 짓밟았을 것이다.

월씨 가문 하인은 얼굴색 한번 변하지 않은 채 손을 모으고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 아가씨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장부는 우리가 다시 쓸 수 있다고요. 도련님께서 한 권을 찢으시면 두 권, 세 권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부인께는 이자도 붙이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우리 아가씨 기분을 거스를 경우, 이자를 복리로 계산해서 받아내도 탓하지 마십시오.”

복리는 이자의 이자를 가리켰다. 사부인이 빌려 간 액수와 기간을 생각해 보았을 때, 원금에 복리 이자가 더해지면 갚아야 할 금액이 적어도 세 배는 불어날 터였다.

이 말을 들은 육비우는 화가 나서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월씨 가문의 하인은 육비우의 분노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말을 마치자 손을 모으고 한마디만 한 채 떠나갔다.

“소인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거기 서지 못해……! 악, 아파!”

육비우가 정신을 차리고 그를 불러 세우려고 움직인 순간, 엉덩이의 상처에 무리가 가면서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나마 좀 나아졌을 때는 이미 월씨 가문의 하인이 떠나간 후였다. 육비우는 울적한 마음으로 바닥 위의 장부를 가리키며 하인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외부인이 없으니 체면을 차릴 것 없이 장부를 펼쳐보았다. 하나하나 똑똑히 쓰인 장부를 보자 그의 얼굴색이 크게 변했다.

어머니의 행동과 월씨 가문의 강경한 태도를 보았을 때, 이 장부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진짜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빚을 진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랐다.

육비우는 빠른 속도로 마지막 장까지 넘겼다. 위에 써진 숫자를 본 순간,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합계: 오만일천삼백사십이 냥.]

“이렇게 많이? 이게 말이나 돼? 어머니가 어쩌다 무슨 돈을 이렇게나 많이 빌렸단 말이야?”

육비우는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분노에 가득 찬 그는 엉덩이의 상처도 잊고, 장부를 재빠른 속도로 넘겨보았다.

거기에는 언제, 무슨 이유로, 얼마나 빌렸는지가 똑똑히 적혀져 있었다. 심지어 어머니가 쓴 차용증도 차곡차곡 베껴 쓰여 있었다.

그중 구 할은 외삼촌 댁에 일이 생겨 도와준다는 이유로 빌려 간 것이었다. 제일 많이 빌렸을 때의 액수는 만 냥에 달했고, 제일 적은 것도 삼백 냥은 되었다.

“어머니가 미친 거 아니야?”

‘이렇게 많은 돈을 빌려다가 전부 자기가 썼다는 거잖아!’

특히 최근 반년은 빌려 간 돈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월령안의 가게에서 가져간 물건이 더욱 많았다.

‘진심으로 월령안의 돈은 쉽게 써도 된다고 생각한 건가?’

육비우는 화가 나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는 급히 집안의 장방(賬房 - 금전 출납을 맡아보던 사람)을 불러오라고 했다.

“우리 집 곳간에 현금이 얼마나 있느냐?”

월령안이라는 여자는 한 번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육비우는 알고 있었다.

그날 자신이 월령안에게 크게 미움을 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여동생에게도 불똥이 튀어, 다른 두 사촌 여동생은 받았던 혼수를 혼자만 받지 못했다.

그는 그 정도가 그녀의 복수라고 생각했었다. 놀랍게도 월령안은 그의 예상보다 더 독했다. 진정한 복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월령안이 정말로 어머니가 쓴 차용증을 여기저기에 붙여 놓는다면, 육씨 가문 넷째 집안의 명성은 그날로 끝장이 난다.

“도련님, 곳간의 현금은 천 냥이 안 됩니다.”

장방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올린 후 대답했다.

“뭐라고?”

엉덩이의 상처만 아니었으면 육비우는 진작에 깜짝 놀라 펄쩍 뛰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건대, 삼 년 전 내가 떠날 때만 하여도 집에 십만 냥은 있지 않았느냐? 겨우 삼 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이냐? 은표로 바꿨느냐?”

육씨 가문의 네 집안 중, 그들 넷째 집안이 가장 부유했다. 현금도 제일 많았었는데, 어머니가 관리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의 어머니는 출신이 미천하고 살림을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조부모는 육비우의 아버지를 안타깝게 여겼다. 또 육비우는 육장봉을 제외하면 육씨 가문의 유일한 사내아이였다. 그래서 조부모는 세상을 떠나기 전, 따로 모아둔 사유재산까지 전부 넷째 집안에 물려주었다.

넷째 집안이 운영하는 사업은 없었지만, 십만 냥이 넘는 재산으로는 혼인하고도 남았다. 그래서 그와 여동생은 전혀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돈이 없다고 하다니!

“도련님, 돈을 은표로 바꾸지는 않으셨습니다. 어디에 쓰셨는지는 소인도 모릅니다. 마님께서 직접 곳간에서 가져가신 겁니다.”

장방도 말하면서 화가 났는지 은근슬쩍 사부인의 흉을 보았다.

대갓집이라 하더라도, 금전 지출은 모두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적어도 장방을 통해 장부에라도 적어 놔야 하는데, 이 집안은 그러지도 않았다.

이 집안의 모든 지출은 사부인이 혼자 결정했다. 그녀는 큰돈을 가지고 나가면서도 이유조차 제대로 대지 않았다. 마님이 매번 차용증을 쓰는 데 동의하지 않았더라면, 장방인 그조차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을 판이었다.

“도련님, 이게 이 집안의 장부입니다. 살펴보시지요.”

장방은 육비우가 그를 왜 찾는지 몰랐으나, 그래도 미리 장부를 가지고 왔다. 안 그래도 예전부터 장부를 도련님에게 보여 주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육비우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장부를 보자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삼 년 동안 선물 하나 오간 게 없는데, 돈은 모두 마님이 빼 갔단 말이냐? 그럴싸한 이유도 없이? 장부를 이런 식으로 관리해 왔단 말이냐?”

“도련님, 소인은 마님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장방은 말하면서 코끝이 시큰해졌다.

“소인은 일개 장방일 뿐입니다. 장부를 적기만 할 뿐이죠.”

“저택의 호원(護院 – 옛날 저택의 안전을 지키는 사람들)들은? 전부 밥만 축내는 밥통들이냐?”

육씨 가문의 호원들은 전부 전장에서 은퇴한 노병들이었다. 몸에 장애가 있긴 해도 능력은 쓸 만했고, 하나같이 육씨 가문에 충성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많은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 하나 막지 못했을까? 여기엔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게 분명해!’

“원래의 호원들은 전부 마님께서 쫓아냈습니다. 우리 저택에서는 밥만 축내는 불구들은 취급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장방이 말을 마치자 육비우가 욕을 했다.

“어머니가 내쫓는다고 나갔단 말이냐? 돼지처럼 미련하긴! 배은망덕한 인간들 같으니. 우리 집안에서 봉급을 받고는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으면서 어머니를 탓해!”

장방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비우 도련님, 마님께서는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멀쩡한 사람이라면 견디지 못할 겁니다.”

육씨 저택의 호원들은 비록 몸에 장애가 있으나 육씨 가문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미가 죽은 건 아니었다. 멀쩡한 사내라면 누구도 사부인의 모욕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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