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27)화 (27/1,004)

27화 중독성 있는 여인

소씨 가문은 아주 악랄했다. 만약 그 모자를 찾아내면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모자를 안전하게 지켜야 했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월씨 가문은 사람을 숨기는 일에 대해서라면 아주 전문가였다.

“육장봉은? 오늘 그렇게 때마침 나타난 게 우연이냐, 아니면 사전에 소식을 받은 거냐?”

소여방을 건드리지 못하자 월령안은 아주 언짢아졌다. 그러나 그녀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번에 안 되면 다음번에 하면 되고, 이 방법이 잘못됐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소씨 가문이 늘 순조롭게 정상에 있지만은 못할 거야. 나라고 평생 억압을 받으며 진흙탕에서 뒹굴기만 하지는 않을 거고. 난 반드시 일어날 거야.

또 고양(高陽) 소씨 자제들은 하늘 아래 널리고 널렸고, 소 승상의 직계가족만 있는 것도 아니야. 다른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아가씨, 육 장군은 오늘 황제 폐하를 대신해 군사들에게 상을 내리러 가던 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소 집사가 사람들을 거느리고 길거리에서 행패를 부리는 모습을 봤다더군요. 사람을 시켜 영문을 물어보았다가 소씨 가문에서 우리 집안을 괴롭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합니다. 소인이 다른 것은 알아내지 못한 것을 보니 우연인 듯싶습니다.”

확실히 조금 공교롭기는 했지만, 우연히 마주쳤을 뿐이었다.

“우연이면 됐다.”

월령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 있는 장부에 시선을 두었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집어 들지는 않았다.

육장봉은 오늘 큰 도움이 되었다. 도움을 받자마자 그의 넷째 숙모에게 빚을 받으려 하는 것은 좀 인정머리 없는 짓 같았다.

‘됐다, 나중에 하자. 어쨌든 나한테 빚을 진 건 반드시 받아 낼 거니까.’

월령안은 장부를 서랍 안에 넣어두고 하인에게 말했다.

“육씨 가문을 잘 지켜보아라. 거기서 무슨 움직임이 생기면 바로 보고해. 소씨 가문은 지켜볼 것 없어. 예전에 연락하던 하인들도 당분간은 연락하지 말아라.”

“네, 아가씨.”

하인이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다른 분부가 없자 그는 물러갔다.

월령안은 방 안에 잠시 앉아 있다가 시간을 보고 화청으로 향했다.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었다.

하인이 시간에 맞춰 음식을 식탁에 하나하나 올려 두었다. 월령안은 손을 씻은 뒤 식탁 앞에 앉았다.

그러나 상에 올라온 양고기 요리 두 가지를 보자 젓가락을 든 손이 잠시 멈췄다. 그녀는 그 음식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음식들은 치우렴. 앞으로도 올릴 필요 없어.”

그녀는 양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몇 가지 음식은 육장봉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늘 그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어보려고 시도했었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아도, 삼 년 내내 최대한 먹어보려고, 좋아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할 수는 없었다. 삼 년이나 노력했지만, 그 음식들은 좋아지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노력하던, 육장봉이 날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

하인이 다가와서 월령안이 가리킨 음식들을 가져갔다. 그제야 그녀는 다시 젓가락을 들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어느새 눈물이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그녀는 육장봉의 발걸음을 따라 십 년을 걸었지만, 단 하루 만에 그를 억지로 내려놓아야만 했다. 마치 심장을 도려내기라도 한 것처럼 둔통이 느껴졌다.

월령안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이렇게 비굴한 월령안이라니. 나도 내가 우습네.”

잠시 후, 월령안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차분함을 되찾은 뒤였다. 그녀는 다시 젓가락을 들고 예전과 같이 혼자 식사를 했다.

‘십 년이나 이렇게 지냈잖아. 나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어.’

* * *

육씨 저택.

육장봉은 성문이 닫히기 전에 저택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하인이 달려와 육비우가 기다리고 있다고 알렸다.

육장봉은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서재에서 기다리라고 전해라.”

이각(二刻 - 약 30분) 뒤, 목욕을 마친 육장봉이 서재에 나타났다.

“넷째 형님.”

육장봉의 발걸음 소리를 듣자 육비우가 나는 듯이 뛰어와 조심스럽게 인사를 올렸다.

육장봉은 그를 훑어보고는 책상 앞에 앉았다.

“벌을 받으러 가지 않았느냐?”

“형님, 바로 그 일을 상의하러 온 거예요. 황제 폐하께서 함연이와 저를 맺어주셨어요. 석 달 안에 혼사를 치르라고요. 처벌을 받는 일은 좀…….”

혼사를 언급할 때, 육비우는 즐거운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난 줄곧 함연이가 형님을 사모하는 줄 알았는데 진정 사모하는 사람은 나였구나! 그럼 그렇지. 변방에서 함연이를 보살핀 것은 나인데 말이야. 함연이는 형님을 몇 번 보지도 못하고, 말도 걸어 본 적 없는데 어떻게 내가 아니라 형님을 좋아하겠어.’

“안 된다!”

육장봉이 피도 눈물도 없이 차갑게 거절했다.

“형님, 제발요. 다친 몸으로 혼인을 할 수는 없잖아요?”

육비우의 얼굴에서 기쁜 기색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로 울상을 지으며 사정했다.

“형님, 평생 딱 한 번뿐이잖아요. 제발요, 이렇게 빌게요.”

“그냥 혼례 의식일 뿐이다. 네가 없어도 된다.”

육장봉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육비우에게 해결 방법을 찾아주었다. 육비우는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형님, 제가 신랑이에요. 제가 아내를 맞이하는 거라고요. 저 없이 어, 어떻게 혼례를 올린단 말이에요?”

육장봉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삼 년 전, 내가 어떻게 혼인을 했었느냐?”

‘나도 혼례에 나타나지 않았는데 똑같이 아내를 맞이하지 않았던가? 월령안도 나한테 불만이라고 한 적이 없었는데?’

월령안을 떠올리자 육장봉은 그의 오른손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분명 손을 몇 번이나 씻었는데도, 손바닥에는 오전에 월령안의 허리에서 느껴진 감촉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옷을 사이에 두고도 느껴지던 그 부드러운 감촉이 떠올라, 슬그머니 오른손을 꽉 움켜쥐었다.

육비우는 육장봉이 다른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투덜거렸다.

“형님, 이건 다르죠. 형님은 월령안과 혼인하기 싫어했지만, 저는 함연이와 혼인하고 싶어요. 그리고 혼인할 때 신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신부가 얼마나 민망하겠어요. 저는 함연이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육장봉은 머릿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환상을 떨쳐버리고 눈을 들었다. 육비우가 끝없이 우는소리를 하고 있었다. 더는 들어주기도 싫어,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할 말은 다 했느냐? 다 했으면 썩 나가거라!”

“형님…….”

육비우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형님이 절 이렇게 매정하게 대하시면 안 되죠! 전 형님의 친사촌 동생이란 말이에요.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친사촌 남동생이요!”

“꺼져!”

육장봉은 육비우에게 질려서 한마디도 더 하고 싶지 않았다.

변경에 돌아오자 그의 주변은 월령안으로 가득 채워진 듯했다. 월령안의 흔적이 없는 데가 없었다. 그녀가 육씨 저택에 없는 게 분명한데도, 육장봉의 일상 곳곳은 그녀로 물들어 있었다.

어제는 막 돌아왔을 때라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부터 월령안의 그림자는 시도 때도 없이 그의 곁에 나타났다.

예를 들자면 목욕부터 그랬다.

월령안은 사람을 시켜 뜰 안에 목욕통을 설치해 놓았다. 그의 마당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하지만 월령안이 손댄 것들은 전부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되돌려 놓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육비우의 혼사도 월령안의 작품이었다.

월령안이라는 이 여인은 정말 무서웠다. 육장봉 주변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봐주지도 않았지만, 또 공교롭게도 그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일을 저질렀다. 모든 일이 마음에 쏙 든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딱히 반감을 사지도 않았다.

‘정말 중독성이 있군.’

육비우를 돌려보낸 육장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월령안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했다. 그러나 화청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가 앞에 놓인 양고기국과 양고기 구이를 본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물어볼 필요도 없이 이것도 월령안의 솜씨였다.

월령안은 정말이지 그의 주변 환경을 아주 질서정연하고 깔끔하게 정비해 두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것마다 전부 마음에 들었다. 이걸 거부하자니 괜히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았다.

육장봉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젓가락을 들어 양 갈비를 집었다. 맛만 보았을 뿐인데도 이 고기가 국경 밖에서 나는 제일 좋은 어린 양고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육질이 부드럽고 누린내가 전혀 없었다.

양고기는 신선도가 제일 중요한데, 이건 갓 잡은 듯했다. 월령안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살아 있는 양을 구해 왔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 뒤로 매일 신선한 어린 양의 고기를 먹게 되자, 육장봉은 빈곤함이 자신의 상상력을 제한했음을 알게 되었다.

월령안은 그의 맛있는 한 끼를 위해 변경(汴京)의 교외에 국경 밖의 나무와 풀을 옮겨 심었다. 또 노련한 변방의 양치기까지 데려와 양을 치게 했다. 오로지 육장봉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다.

놀랍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놀라움에 그쳤을 뿐이다. 어쨌든 마음만 있다면 이런 일들을 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월령안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었을 뿐이다.

육장봉은 평소 습관대로 그날의 공무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며칠 내내 고단한 나날을 보냈더니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눈만 감으면 머릿속에서 월령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여인은 정말 중독성이 있군. 내 주변의 작은 틈 조차 놓치지 않고 전부 준비해 놓다니.

* * *

육장봉이 침대에 누운 시간과 딱 일각 차이로, 월령안도 휴식을 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 눕자 이불을 끌어당겨 덮었다. 습관적으로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매만지다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월령안은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하인의 보고를 받았다.

“아가씨, 수천(袖天) 거리의 그 집에 불이 났어요.”

“사람은 무사하니?”

소씨 가문 사람들이 상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우리 쪽 사람들이 빨랐어요. 그들보다 먼저 모자를 빼돌려서 사람은 무사합니다. 그들이 의심할까 봐 소인이 일단 시신 두 구를 사서 넣어 놨습니다. 오늘 아침에 불에 탄 시신을 발견하면 분명 모자가 죽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인은 다행이라는 듯 말을 하다가 곧 얼굴을 굳혔다.

“그런데 불길이 너무 세서 양쪽에 있는 집들도 피해를 봤습니다. 그 집은 우리가 얼마 전에 진(陳)씨 가문에 판 건데, 혹시 영향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월령안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진씨 가문에 돈을 두 배로 물어주고 사과하렴. 나중에 좋은 집이 생긴다면 제일 먼저 그들에게 팔겠다 전해라. 그래도 내키지 않아 하면 내버려 두어라.”

이런 일을 꺼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기 집에서 사람이 죽지는 않았어도, 이웃이 비명횡사를 당했으니 찝찝하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만약 진씨 가문에서 그 저택을 환불 받겠다 한다면 집문서를 전씨 가문으로 가져가거라. 그리고 그 불이 난 집에는 사연이 있다고 말하거라. 만약 진씨 가문에서 환불을 원하지 않는다면, 전씨 가문의 하인을 끌어들여라. 불이 난 그 집이 소씨 가문 큰 도련님의 저택이고, 거기서 죽어 나간 사람이 어린아이와 그 어미라는 사실도 흘려 두렴.”

소여방의 사생아라는 패는 이미 글렀다. 하지만 아직도 다른 방향으로 쓸 수는 있었다.

‘최소한 본전을 찾아올 수는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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