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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4)화 (24/1,004)

24화 어머니를 닮았나 보죠

월령안은 앞으로 한 걸음 성큼 나아가 문 중앙을 막아 나섰다.

“꾀병을 부려 파혼하고 도망치고! 꾀병을 부려 돈을 떼먹으려 하고! 꾀병을 부리는 것이 소씨 가문 전통인가 보죠?”

“월 낭자, 여긴 소씨 저택입니다. 감히 제멋대로 굴지 마세요. 우리 나리께서는 돌아가신 부인을 생각해 아가씨를 봐주는 겁니다. 이렇게 점점 더 무례하게 나오니 저 같은 하인도 차마 보고만 있을 수가 없네요.”

소 승상을 부축하고 어의를 부르던 하인이 눈치 빠르게 월령안을 질책했다. 아주 떳떳하다는 태도였다.

“소 승상은 부인이 돌아가신 지 삼 년이 지나도록 매장하지 않으셨죠. 당신네 소씨 가문에서 돌아가신 부인은 참 체면이 서겠네요!”

소씨 집안사람들은 월령안의 돌아가신 어머니를 들먹이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는 어머니 얘기를 듣자 소씨 가문 전체를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삼 년, 시신을 버려둔 지도 삼 년이 되었다. 시신은 이미 부패해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이 년 전, 소 승상은 사람을 시켜 그녀에게 썩은 고기 한 단지를 보내, 철기 사업을 내놓으라고 협박한 적이 있었다.

‘소씨 가문 사람은 누구든 용서 못 해!’

월령안은 양손을 꽉 움켜쥔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씩 겨우 내뱉었다.

“돈 물어내요! 아니면 당신네 소씨 저택 대문을 부술 거니까!”

“월령안, 나는 일품 대신이다. 여긴 일품 대신 저택이야. 네가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소 승상은 이가 갈릴 정도로 화가 났다.

그가 승상이 된 뒤, 누구도 감히 이런 식으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황제조차도 그를 정중하게 대했다.

“저도 일 품 부인이에요! 제가 행패를 부렸으면, 그러면 어쩔 건데요?”

월령안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빈정거렸다.

“네가 무슨 일 품 부인이냐? 육 장군이 이미 너를 내쫓았잖느냐!”

육장봉은 곧 그의 사위가 될 터였다. 월령안이 이렇게 육장봉에게 매달리는 것을 절대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육장봉은 황제와 사이가 남달랐다. 육장봉이라는 사위가 있다면 그들 소씨 가문은 한발 더 나아가 작위를 얻어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육장봉이 저를 내쫓았지만, 조정에서 아직 칙명을 거두어 가지 않았어요. 조정이 칙명을 거둬들이지 않는 한, 저 월령안은 여전히 조정에서 칙명으로 봉한 일 품 장군 부인이에요! 소 승상의 따님이 사람을 시켜 일 품 장군 부인의 거처를 때려 부순 게 무슨 죄인지 알고나 계신가요? 제가 고발만 하면, 시집은커녕 죽지나 않으면 잘나신 아버지 덕이겠죠!”

육장봉의 아내라는 신분으로 육씨 가문의 보호뿐만 아니라 조정의 보호도 받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전부 그녀와 상관없는 얘기였다.

일 품 장군 부인이라고 자처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이, 이것이……!”

소 승상은 월령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었다. 이번에는 연기가 아니고 정말로 화가 난 것이었다.

더군다나 육장봉이 여태껏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월령안 곁에 서 있는 모습은 그의 화를 더욱 돋우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육장봉이 월령안의 편을 드는 줄 알 것이다.

‘내 사위가 될 놈이……! 어디 두고 보자! 내 사위가 되기만 하면 똑바로 가르쳐야겠어.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배상할 거예요, 말 거예요? 배상하지 않겠다면 지금 당장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서 가는 내내 소리를 지르며 입궁해서 고발할 거예요! 어차피 어제 온갖 망신을 다 당했는데, 그깟 망신, 한 번 더 당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녀는 육장봉을 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소씨 가문은, 소함연은 육장봉을 잃을 수 없었다.

육장봉처럼 좋은 ‘사윗감’이 눈앞에 있는데, 소 승상이 소함연의 명예에 오점을 남길 리가 없었다.

소 승상은 월령안 때문에 화가 나서 미쳐 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만약 육장봉만 여기에 없었다면 하인더러 월령안을 끌어내 제대로 혼쭐을 내주라 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소 승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가서 은표를 가져오너라!”

‘이 돈을 줘도 월령안은 쓰지 못할 것이다!’

“진작에 이렇게 하셨어야죠. 제 시간만 낭비했네요.”

월령안은 전형적인, 이득을 얻으면 고분고분해지는 인간이었다.

소 승상은 화가 나서 월령안을 비꼬았다.

“네 어미의 가장 큰 소원이 네가 평생 평안히 사는 거였다. 령안아, 네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줘야지!”

“소 승상,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효성은 지극하거든요. 온 세상 사람을 괴롭히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어머니께 실망을 끼쳐드리진 않을 거예요.”

월령안은 지지 않고 반격했다.

어머니를 실망을 끼쳐드리지 않기 위해 소씨 가문을 망가뜨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평안히 지낼 수 있겠어? 내가 평안하지 않으면 어머니한테 효성스러운 딸이 될 수 없는데!’?

소씨 가문의 하인은 눈치가 빨랐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을 보자 얼른 은표를 작은 상자에 넣어 소 승상 앞에 가져갔다.

“나리.”

소 승상 얼굴에는 노기가 역력했다. 얼굴이 시커멓다 못해 먹물까지 짜낼 수 있을 지경이었다. 하인의 손에서 상자를 받아 열어본 그는 은표를 한 다발 꺼내어 월령안 앞에 내던졌다.

“가져가라!”

육장봉은 소 승상의 동작을 눈치채고 월령안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월령안은 피하려 했지만, 육장봉의 행동이 더 빨랐다. 하지만 둘이 힘을 쓰는 방향이 달라서 그녀는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그는 재빨리 반응했다.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조심하시오!”

허리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자 월령안은 멍해졌다. 그러나 바로 침착함을 되찾더니 한 걸음 물러서서 소원한 태도로 싸늘하게 말했다.

“육 장군께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육장봉은 한 손을 등 뒤에 두고 무표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등 뒤에 놓은 손을 저도 모르게 움켜쥐었다.

월령안의 허리는 뼈가 만져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부드러웠다. 옷을 사이에 두고도 손안에 잡힌 부드러움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은표는 바닥에 흩어져 휘날렸다. 몇 장은 바람에 날려 계단 아래로 떨어졌지만, 주우러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월령안은 눈을 살며시 내리깔면서 마음속의 동요를 지우려고 했다. 그녀가 다시 시선을 들어 소 승상과 대치할 때는 또 전의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소 승상, 제게 배상해 주시는 은표가 어디에 있나요? 죄송합니다. 제가 시력이 좋지 않아 보이지 않는데요.”

“월령안, 눈이 멀었느냐?”

소 승상은 속으로 손아랫사람과 체통 없이 따지지 말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월령안의 건방진 모습을 보자 마음속의 울화를 참지 못했다.

그는 월령안의 어머니와 혼인만 하면 이 모녀를 통해 월씨 가문의 재산 전부를 손에 넣고 주무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모녀는 예상과 달리 영리했다. 특히 월령안은 어린 나이에 어찌나 영특한지 월씨 가문 재산을 움켜쥔 채 조금도 밖으로 새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어머니한테서 시력이 나쁜 눈을 물려받았나 보죠.”

월령안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소씨 가문의 하인을 때렸고, 소씨 가문에게 돈을 물어내라고 했다. 또 기세를 몰아 소 승상이 그녀와 소씨 집안은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였다. 이렇게 보면 그녀는 비록 약간의 손해를 보았지만, 소 승상이라고 해서 그녀에게서 이득을 본 게 딱히 없었다.

‘이번 장사는 손해 보지 않았네!’

소 승상은 냉정해지려고 다짐했다.

‘월령안 같은 계집애 따위에게 끌려다닐 수야 없지!’

소 승상은 남몰래 한숨을 푹 쉬고 바닥에 흩어진 은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은표는 여기에 있다. 액수가 맞는지 스스로 세어봐라.”

“제가 보기엔 소씨 저택 대문을 부수는 것이 더 좋겠네요. 제가 이십만 냥을 내건다면 야밤에 소씨 저택 대문을 부술 이름 없는 용사가 있지 않을까요?”

월령안은 의논하는 어조로 말을 하다가 또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돼요, 안 되겠네요. 그래도 여기가 황제 폐하께서 계시는 수도인데, 법에 어긋나는 일은 아무래도 시키지 않는 게 좋겠어요. 소 승상의 고향이 동안(同安)이라고 기억하는데요. 제가 이십만 냥을 내걸면 소씨 가문의 사당을 부술 협객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그럼, 황제 폐하가 계시는 수도가 아니라면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해도 된다는 건가?’

육장봉은 월령안을 바라보며 하마터면 이렇게 물을 뻔했다.

“월령안, 적당히 해라!”

소 승상은 화가 나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내가 정녕 네 죄를 묻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허풍을 떠는 것도 법도에 어긋나나요?”

월령안은 억울하다는 듯이 소 승상을 바라보았다.

“소 승상, 저한테 어떤 죄명을 붙이실 건가요? 허풍을 친다고요? 아니면 제가 돈이 너무 많다고요?”

한편 이때, 어두운 곳에 있던 협객 차림을 한 두 사람이 월령안의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그중 어려 보이는 한 사람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옆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맹주님, 수도 사람들은 돈이 참 많은가 봐요. 저 바닥에 떨어진 은표 좀 보세요. 맹주님, 제가 가서 저 소씨 가문인지 뭔지 하는 가문의 사당을 부숴 주면 저 여인이 정말 이십만 냥을 줄까요?”

“닥쳐!”

해진 옷을 걸치고 걸걸한 인상을 풍기는 기골이 장대한 남자가 곁에 있는 젊은이에게 눈을 부라리더니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떠나기 전, 남자는 일부러 월령안을 흘긋 바라보고는 그녀의 생김새를 기억해 두었다.

‘아주 복덩이가 따로 없군.’

소씨 저택 입구에 선 소 승상은 월령안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 그는 육장봉이 자신을 도울 의향이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결국 울분을 참으며 하인을 시켜 은표들을 줍게 한 뒤, 그 은표들을 상자에 담아 그녀에게 건네주게 했다.

“월 낭자, 세어 보시죠!”

월령안은 받지 않고 육일을 바라보았다.

“받으세요!”

육일이 멍하니 서 있다 몰래 육장봉을 쳐다보았다. 육장봉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은표를 받아 들었다.

“소 승상은 돈이 참 많네요!”

월령안은 배상금을 받고 나서도 소 승상을 비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승상댁 따님께서 다음에 또 남의 집 대문을 때려 부수겠다면 우리 집을 먼저 선택해 주세요. 다음에는 할인해서 배상금은 칠 할만 받을게요.”

소 승상은 화가 나 쓰러질 지경이었다.

육일은 돈 상자를 받아든 채 고개를 숙이고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러나 육장봉은 미간을 더욱 찌푸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월령안의 성질머리는 확실히 좋지 못하군. 사람들한테 미움을 사기 십상이겠어.’

육장봉은 소 승상에게 포권을 했다.

“소 승상, 실례했습니다!”

“장봉, 내 오늘은 자네를 붙잡지 않겠네.”

아무리 예쁜 사윗감이라도 소 승상 자신이 체면을 잃게 되니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 안에서 여인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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