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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22)화 (22/1,004)

22화 버팀목이 어떻게 되어줄 겁니까

월령안은 속이 조금 쓰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상인 집안 출신이라 대범하지 못하니 육 대장군께서 너그러이 봐주세요. 친형제 간이라도 계산은 확실하게 해야죠. 하물며 우린 서로 가깝지도 않잖아요. 툭 터놓고 먼저 얘기하는 게, 나중에 옥신각신 다투는 것보다 낫지 않나요? 육 대장군!”

육장봉의 말대로 그녀는 상인 집안의 딸답게 입만 열면 돈 이야기였다. 지체 높은 가문 아가씨들처럼 세상 물정을 모른 채 고상하게 살 수가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교육은 금전의 중요성이었다.

가장 먼저 알아들은 말이 ‘돈 많이 벌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조정에 바칠 돈을 벌지 못하면 식구들과 생이별해야 한다는 소리가 뒤따랐다.

“아버지가 우리 령안이를 위해 돈을 많이 많이 벌어야겠다. 우리 령안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령안아, 이 오라버니가 돈을 많이 많이 벌 거야. 가주 두 명 몫의 돈을 벌 거야. 나중에 우리 남매가 가주가 되면 내가 널 먹여 살리마. 넌 그냥 행복하기만 하면 돼.”

그녀는 월씨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났을 무렵, 월씨 가문 후손들의 가주 쟁탈전은 장장 십이 년 동안이나 진행되었다.

팔 년 뒤, 그녀가 여덟 살이 되던 해에 월씨 가문의 가주 쟁탈전이 드디어 끝났다. 그녀는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월씨 가문 모든 실패자들과 함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야만 했다.

그녀를 이 세상에 남기려면 월씨 가문은 거액의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 돈을 벌기 위해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위험을 무릅쓰고 북요로 향했다. 두 사람은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월씨 가문의 어마어마한 재산, 그리고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목숨 덕분이었다.

상인 가문 출신의 그녀가 이익을 좇고, 입만 열면 돈 얘기만 하는 것은, 금전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목숨과 인생은 수많은 재산과 맞바꿔 지켜온 것이었다. 당연히 금전을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월령안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육장봉을 외면했다.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때마침 소 승상이 하인들에게 둘러싸여 걸어 나오고 있었다. 소 승상은 먼발치서 육장봉을 확인하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육 장군께서 왕림하셨는데 이 몸이 영접이 늦었구먼.”

월령안은 소 승상과 맞서 싸우기 위해 다급히 정신을 다잡았다. 늙은 여우 같은 소 승상은 몇 년간 어머니와 육장봉을 구실로, 자신에게 적잖게 손해를 입혔다.

‘오늘에야말로 전에 받아 간 것들을 몽땅 토해내게 하겠어!’

소 승상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줄곧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왔을 무렵에는 일부러 걸음걸이를 재촉하여 손님을 반기는 척했다.

안타깝게도 육장봉은 이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냉랭하게 문 앞에 버티고 서서는 소 승상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거의 오만불손에 가까운 자태였다.

그러나 소 승상은 아무것도 못 본 척했다. 육장봉에게 다가가서 웃음을 띤 채 몸을 비켜서며 안내했다.

“귀한 손님이 오셨군. 육 장군, 어서, 어서 들어오시게.”

“집 안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육장봉이 차갑게 대답했다.

“소 승상께서 월 낭자의 버팀목이 되어 줄 거라 들었습니다. 마침 제가 여기 있으니 말씀해 보십시오. 어떻게 월 낭자의 버팀목이 되어 주시겠다는 겁니까?”

“이게……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소 승상이 놀란 얼굴을 하였다. 곧 월령안에게 눈길을 주더니 온화하게 말했다.

“령안아, 혹시 무슨 오해가 생긴 게 아니냐?”

사실 소 집사가 꽁꽁 묶인 모습을 보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누가 감히 승상에게 죄를 물을 수 있겠나?’

“오해가 아니에요.”

월령안이 웃는 낯으로 소 승상을 바라보았다.

육장봉도 이에 협조하여 인정사정없이 캐물었다.

“왜 이러십니까? 소 승상께서 월 낭자의 버팀목이 되기를 포기하신 겁니까?”

“자네들 무슨 얘기인가? 영문을 모르겠군. 육 장군, 자네 혹시 나한테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겐가?”

소 승상이 얼굴의 미소를 싹 거두고, 권신으로서의 위압감을 내뿜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하인들은 겁에 질려 급히 머리를 떨구며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육장봉과 월령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육장봉이 월령안을 넘겨다 보며 비아냥조로 말했다.

“월 낭자, 보아하니 소 승상께서는 낭자의 처소를 부수려고만 했지, 버팀목이 되어 주려는 뜻은 없는 듯하오. 어서 가서 관아에 고발하시오. 내가 증인이 되어 주겠소.”

“육 장군, 감사합니다.”

월령안도 장단을 맞추며 육장봉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소 승상의 눈에 서릿발처럼 싸늘한 기운이 스쳤다. 그러나 얼굴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자네들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구먼.”

“별말씀을.”

육장봉은 그녀의 몸을 일으키는 시늉만 하고 역시나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모르셔도 됩니다. 관아에서 알아서 밝혀낼 겁니다.”

육장봉이 계단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사람들이 승상 댁의 하인들이 맞습니까?”

“이건…….”

소 승상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 집사는 소씨 가문의 집사로서 밖에서도 어지간히 알아주는 인물이라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는 속으로 이까짓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소 집사를 욕할 수밖에 없었다.

“승상 댁의 하인들이면 얘기가 간단하겠습니다.”

육장봉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말투를 싹 바꾸어 냉혹하게 명령했다.

“한 사람당 다리 하나씩 분질러 안에 던져 넣거라.”

“네, 장군.”

육장봉의 친위대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곧바로 소씨 가문 하인들의 정강이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우둑, 우둑, 하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하인들은 고통스러운 나머지 처참하게 울부짖었다.

“나리, 나리, 제발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친위대의 행동이 얼마나 재빨랐던지, 소 승상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하인 스무 명의 다리가 모두 분질러진 다음이었다.

소 승상은 얼굴 근육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

“육 장군, 여긴 우리 소씨 저택일세. 자네가 멋대로 활개 칠 곳이 아닐세!”

“소 승상께서 불만이 있으시면 관아에 가서 저를 고발하십시오.”

육장봉은 말을 마치고 친위대에 명했다.

“던져라.”

“자네, 자네……! 육장봉,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자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은 말게나.”

소 승상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비뚤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 일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친위대는 하인들을 계단에 끌어다 놓고, 소 승상의 앞에서 한 명씩 소씨 저택 안으로 던져 넣었다. 소 승상이 빨리 피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함께 봉변을 당할 뻔했다.

“악!”

“억!”

“살려 주세요!”

이미 부상을 입은 하인들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니, 다들 아프다며 아우성을 쳤다.

맨 마지막으로 던져진 사람은 소 집사였다. 그는 아파서 까무러친 상태였지만, 때마침 놀라서 깨어나고 말았다. 그는 운이 좋았다. 까무러치는 바람에 말에 끌려가며 뛸 수가 없으니 다른 하인들과 함께 묶이지 않았다. 던져질 때도 하인들 위에 떨어지다 보니 어디 찰과상은 없었다.

정신을 차린 소 집사는 다리가 부러진 고통도 잊고, 소 승상 앞으로 허겁지겁 기어갔다.

“나리, 나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육 장군이 사람을 잡습니다. 이러다 사람 죽겠습니다요!”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소 승상은 성이 나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부들거렸다. 수염마저 곧추설 정도였다. 이 한마디에도 기력이 차고 넘쳤다.

“나리, 소인, 소인은 명을 받고…….”

소 집사도 머리가 좋은 놈이었다. 반쯤 말했을 무렵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 멈췄다가 이야기의 방향을 교묘하게 비틀어버렸다.

“나리, 그게 말입니다. 큰아가씨가 둘째 아가씨를 가엽게 여기셨습니다. 둘째 아가씨가 마음이 안 좋을 테니, 조금이나마 숨이 트이게 소인한테 여기로 모셔오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도착했을 때, 육 장군이 사람을 끌고 와서 둘째 아가씨를 괴롭히고 있었지 뭡니까. 소인은 둘째 아가씨를 보호하려다 육 장군의 친위대와 충돌했습니다요. 소인들은 친위대의 상대가 되기나 하겠습니까. 나리, 나리…… 저와 둘째 아가씨 좀 살려 주십시오!”

“이 개자식이! 지금 뭐라는 거야?”

나이 어린 육십이는 소 집사가 누명을 씌우자 분을 참지 못하고 뛰어 들어가 혼을 내주려고 했다. 그러나 서열이 가장 높은 육일(陸一)에게 저지당했다.

“입 다물어라.”

“육 장군, 내 하인의 말이 맞는가?”

소 승상은 집사의 말을 듣고 나자 속으로는 다소 느긋해졌다. 하지만 얼굴에는 더욱 성난 기색을 띠었다. 마치 사람이라도 잡아먹을 듯 육장봉을 노려보았다.

“하!”

육장봉은 냉소를 흘리며 소 승상을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소 승상은 자신이 우세를 점하자 육장봉을 가만두려 하지 않았다. 소매를 휙 떨치며 신랄하게 공격했다.

“육 장군, 사람을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지! 어제 자네가 모든 이들 앞에서 령안이를 저버려도, 자네가 삼 년간 밖에서 싸운 공로와 종묘사직을 위한 공로를 생각해 따지지 않았네.

그런데 오늘, 또 사람을 끌고 가서 령안이를 괴롭히다니! 다행히 우리 집안 하인들이 갔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령안이가 여자 혼자 몸으로, 자네한테 괴롭힘을 당해 죽었을지도 모르겠구먼.”

소 승상이 정의로운 체하며 질책하자 월령안이 냉소하며 물었다.

“그래서요. 소 승상께서 저의 버팀목이 되시겠다고요? 소 집사가 말대로 육씨 가문에 따져서 제 권리를 찾아 주시겠다고요?”

‘육장봉도 나쁜 놈이지만, 소 승상은 더 나쁜 놈이잖아?’

“령안아! 이 일은 걱정하지 말거라. 이 일을 황제 폐하 앞에까지 끌고 간다고 한들, 내가 나서서 이야기할 것이다.”

소 승상은 월령안의 말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자기한테 유리한 얘기만 했다. 그는 월령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월령안이 육장봉을 미워하는 것은 사실이나, 자신과도 원수지간이었다. 그러니 육장봉을 대적하기 위해 자신과 손을 잡을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그래서요? 소 승상께서 제 권리를 찾아 주시겠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었군요? 승상댁의 집사가 우리 집까지 찾아와 저를 도와주려 했다는 것도 거짓말이죠? 흥, 어쩐지. 당신네 두 가문이 곧 사돈을 맺을 텐데, 어떻게 저 같은 여자 하나 때문에 서로 척을 지겠어요?”

월령안은 일부러 성난 척했다.

소 승상과 손을 잡고 육장봉을 대적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육장봉과 합심하여 소 승상을 골탕 먹일 수는 있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내 원한의 기준을 조금은 낮출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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