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황 (21)화 (21/1,004)

21화 돈을 더 내야 하나요

월령안의 열 번째 시도가 실패한 후, 육장봉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됐소. 그대로 두시오.”

“이 멍청한 말 같으니!”

월령안은 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말을 한 대 쥐어박았지만, 세게 때리지는 않았다.

갓 태어났을 때부터 거의 삼 년을 키우다 보니 정이 들었다. 채찍질하기조차 아까운 녀석을 화가 났다고 해서 힘껏 때리기는 더욱 아까웠다.

“짐승도 주인을 따라간다지.”

육장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

월령안은 고개를 돌려 육장봉을 째려보며 말했다.

“그 말이 맞네요. 짐승도 주인 따라간다. 제가 똑똑했으면 오늘 같은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겠죠.”

만약 삼 년 전, 육장봉이 아니라 다른 평범한 사내에게 시집갔다면 지금처럼 힘들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제 파악 하나는 잘하는군.”

육장봉이 머리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가르치는 보람이 있다는 듯 흐뭇해하는 모습이었다. 그 바람에 화가 난 월령안은 하마터면 말채찍으로 그 얼굴을 후려갈길 뻔했다.

그래도 월령안은 끝끝내 참아냈다. 그 얼굴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큰길에서 그를 채찍질했다간, 육장봉 본인이 개의치 않는다고 해도 조정에서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참아야지!’

월령안은 도도하게 콧방귀를 뀌고는 고삐를 힘껏 당겨 두 말을 떼어놓았다.

“이 바보야, 어서 가지 못해?”

주인이 화가 난 것을 알아챘는지 조야옥사자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더는 육장봉의 말을 밀어내지도 않았다. 다만 기 싸움은 계속되어 육장봉의 말보다 머리 하나는 꼭 앞서려 했다. 조금만 뒤떨어지면 바로 쫓아갔다.

육장봉의 말도 남에게 당하거나, 남보다 뒤처지려는 성격이 아니었다. 조야옥사자가 앞으로 나아가면 제꺽 쫓아가 자기가 머리 하나는 앞서려 했다. 두 말이 서로 겨루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고 달렸다. 그 바람에 뒤따르는 친위대를 한참이나 떨궈 놓아, 단둘이서만 따로 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 * *

다루 안. 방금 일을 마치고 난 조계안은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침 월령안과 육장봉 두 사람이 나란히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말은 말끼리, 사람은 사람끼리 나란히 달라붙어 있었다. 두 말의 색깔이 달랐으니 망정이지, 다루에서 내려다보면 말 하나에 두 사람이 같이 탄 것처럼 보였다.

조계안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당장 뛰어 내려가 두 사람을 떼어 놓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무슨 일인지 내려가 알아보거라.”

육장봉은 월령안처럼 말과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다. 그냥 말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래서 조계안의 눈길이 그들에게 닿자마자 금세 알아차렸다.

다루를 지나치는 순간, 육장봉은 눈을 들어 조계안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조계안은 이상하게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인지 그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바로 눈길을 돌리고 말았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육장봉과 월령안은 이미 멀어져 뒷모습만 남았다.

“육장봉, 재수 없는 놈…….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조계안은 화가 치밀어 창문을 주먹으로 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산산조각이 났다.

바로 이때, 월령안과 육장봉을 겨우 따라잡은 친위대가 소씨 가문의 하인들을 끌고 가는 모습이 조계안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 모습을 본 조계안은 그제야 노기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조계안의 시위도 자세히 알아보고 와서 보고했다.

“주인님, 소씨 가문에서 사람을 보내 월 낭자를 괴롭혔다고 합니다. 마침 육 장군님께서 지나가다가 월 낭자를 곤경에서 구해 주었다고 합니다.”

“소씨 가문은 무슨 속셈이라더냐?”

조계안이 가면을 바로잡으며 차갑게 물었다.

“월 낭자를 소씨 저택으로 모셔 가려고 했답니다. 말로는 월 낭자의 편을 들어 육씨 가문에 따지려 했다 합니다.”

시위가 사실대로 보고했다.

“흥……!”

조계안이 하찮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 소씨 영감탱이가 점점 더 뻔뻔해지는군. 황형이 체면을 좀 봐준답시고, 자기가 진짜 잘난 줄 아나 보지. 이 변경에서는 자기 멋대로 굴어도 된단 말이냐.”

시위는 머리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계안은 육장봉의 친위대가 소씨 가문의 하인들을 끌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섰다.

“가자, 우리도 입궁하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소씨 가문에 내려야 할 성지가 둘 있으니, 오늘 같이 내리는 것으로 해야겠군!’

조계안은 시위를 거느리고 신속하게 입궁했다. 동시에 월령안과 육장봉도 말들의 기 싸움 덕에 가장 빠른 속도로 소씨 저택에 다다랐다.

소씨 저택에 도착하자 육장봉이 고삐를 당겨 말을 세웠다. 조야옥사자도 그제야 멈춰 섰다. 월령안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재빨리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두 말이 또 겨룰까 두려워 조야옥사자를 한쪽으로 끌어당겼다.

육장봉도 말에서 내렸다. 소씨 저택의 주홍빛 대문을 가리키며 월령안에게 말했다.

“가서 문을 열라 하시오.”

“네, 지금 저보고…… 문을 두드리란 거예요?”

월령안이 자신을 가리키며 불가사의하다는 눈빛으로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육장봉, 이 인간이 이러고도 남자야?’

“그럼, 내가 해야겠소?”

육장봉이 불쾌한 듯 소씨 저택의 대문을 바라보았다.

‘이깟 대문짝은 내가 한 번 걷어차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데?’

월령안은 그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가지요!”

그녀는 씩씩거리며 계단을 올라가더니 대문 앞에 서서 발로 걷어찼다.

“문 열어!”

그러나 주홍빛 대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끼익, 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월령안은 눈을 크게 뜨고 한참 동안 대문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있는 힘껏 한 번 더 걷어찼다. 역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다가가 손으로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문 열어! 문을 열라고!”

이번에는 소리는 냈지만, 소씨 저택의 문지기를 불러내지는 못했다.

“안 되겠군!”

어느새 육장봉이 월령안의 옆에 다가섰다. 그녀를 힐끗 보더니 발을 들어 대문을 걷어차려 했다.

월령안이 깜짝 놀라 저지했다.

“안 돼요! 이러다 망가지면 저는 물어내지 않을 거예요!”

“망가지면 망가지는 거지. 이 세상에 감히 나더러 물어내라는 사람은 아직 없었소!”

육장봉이 거침없이 걷어찼다.

우지끈!

빗장이 끊어지며 두 대문짝이 천천히 뒤로 움직였다. 희한하게도 대문에는 발자국만 남아 있을 뿐, 균열은 하나도 없었다.

월령안은 눈이 휘둥그레져 바라보았다. 바로 몸을 돌려 육장봉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대단하시네요.”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지 모를 문지기가 기척을 듣고 허둥지둥 달려 나왔다.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멀리서 큰 소리를 질러 댔다.

“웬 놈이냐? 감히 소씨 저택에서 소란을 피워? 죽고 싶은 게냐?”

“나다!”

육장봉이 입을 열었다. 마침 달려 나오던 문지기가 육장봉과 월령안을 보고는 욕지거리를 해댔다.

“인제 보니 그 잡종이구나. 웬 잡놈을 꾀어다 붙어먹고 소씨 저택 대문까지 찾아와서 소란을 피워? 모르지…….”

“육. 장. 봉. 이다.”

육장봉이 미간을 구기며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

‘소씨 가문 하인의 입이 걸레보다 더럽군. 청소나 한번 해야겠어.’

“뭐라고요?”

문지기는 그만 말문이 막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육장봉을 쳐다보았다.

‘환청은 아니겠지?’

“내가 육장봉이다! 어서, 소 승상께 내가 보잔다 전해라.”

육장봉은 문밖에 버티고 서서 대문 안으로는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육, 육, 육 대장군님?”

문지기는 깜짝 놀라 풀쩍 뛰더니, 연신 뒷걸음질을 쳤다.

“기, 기다리십시오. 저희, 저희 나리께서 금방 나오실 겁니다.”

문지기는 무언가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러나 후다닥 일어나 뒤에서 귀신이라도 쫓아온다는 듯이 냅다 뛰었다.

월령안도 한기를 내뿜는 육장봉을 넌지시 보고는 조용히 옆으로 비켜서서 그와 거리를 두었다.

이 남자의 기세가 너무 강렬했다. 어제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겨 감히 그를 가로막고 흥정을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가 그리 무섭소?”

육장봉이 곁눈질로 월령안의 행동을 보고는 물었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칫하더니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요.”

육장봉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어제는 배짱이 두둑하지 않았소?”

‘내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나?’

“어제는 화가 치밀어 아무 생각이 없었나 보죠.”

어제는 육장봉을 칼로 찔러 벌집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니 못 할 짓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볼 때 당신은 매우 영리한 사람이오.”

육장봉이 그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누구보다 명석하지.”

월령안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육 대장군께서는 저를 과대평가하시네요. 저는요, 멍청이예요. 그러니까 혹시 어리석은 짓을 하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세요. 저처럼 힘없는 여자와 실랑이하지 마시고요.”

어제 육장봉에게 달려가 따질 때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랐었다. 만약 냉정해진 다음 찾아갔다면, 그녀는 더욱 험한 짓도 했을 것이다.

황제가 두 사람 사이가 벌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이상, 일을 더 크게 벌이는 쪽이 황제의 뜻에 더 부합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육장봉도 인지하고 있었다. 어제 그녀가 어떤 짓을 하더라도 그는 순순히 따라 주었을 것이다.

‘아깝다! 아주 좋은 기회를 놓쳐 버렸어!’

월령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한탄했다.

“장군님, 저희, 저희가 왔습니다!”

육장봉의 친위대 열두 명이 소씨 가문의 하인들을 끌고 헐레벌떡 도착했다.

육장봉은 월령안을 조용히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말에 끌려 달려오느라 땅에 널브러져 헐떡이는 하인들을 내려다보며 명령을 내렸다.

“한 사람당 팔 하나씩을 부러뜨린 다음에 안에다 던져 넣어라.”

소씨 가문의 하인을 관아에 보낸다 한들, 관아에서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며칠 감금해 좋은 걸 먹이며 접대하다가 풀어줄 것이 뻔했다. 그러니 이들을 법대로 처리하는 대신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갚아 주는 게 나았다.

“네, 장군님.”

친위대가 명을 받들었다.

이 말을 듣자, 땅에 퍼질러 앉은 하인들은 아픔도 잊은 채 모두 무릎을 꿇고 연신 절을 하며 애걸복걸했다.

“장군님, 살려주십시오! 육 장군님, 살려주십시오!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하지 않을 겁니다!”

애원하는 소리로 소란스러운 가운데 월령안이 갑자기 물었다.

“팔을 부러트려 줬으니 돈을 더 내야 하나요?”

“뭐라고 했소?”

육장봉이 고개를 돌려 월령안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육 장군이 팔을 부러트려 줬으니까 제가 돈을 더 내야 하나고요?”

월령안이 이맛살을 구기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스물여 명이면 십여만 냥이다. 물론 지불할 수는 있지만 어쩐지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 사람들은 이미 힘이 다 빠졌다. 그녀 혼자서도 몽둥이를 휘둘러 팔을 부러뜨릴 수 있었다. 불필요한 돈을 쓸 이유가 없었다.

“필요 없소!”

육장봉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덤으로 한 것으로 하지.”

월령안처럼 돈밖에 모르고, 모든 일을 돈과 연관시키는 여자는 처음이었다.

“육 장군, 그럼 감사드려요.”

월령안이 살포시 예를 올리며 달콤한 미소를 덤으로 보여줬다.

“상인 집안 여인이라, 과연 현실적이군.”

돈이 들 것 같은 일에는 육 대장군이고, 돈이 들 것 같지 않으면 육 장군이라니. 이 여인은 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그 점을 숨기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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