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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6)화 (16/1,004)

16화 그녀는 이제 내 사람이야

“그럼 황형께서는 장봉이를 믿으십니까?”

조계안이 옆으로 옮겨 앉으며, 앞에 놓인 장과 접시를 황제의 손에 건네주었다.

“물론 믿고말고! 장봉이마저도 믿지 않으면, 짐이 누굴 믿겠느냐?”

황제도 싫은 내색 없이 장과를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었다. 누군가에게 화풀이라도 하듯 우걱우걱 씹었다.

조계안은 눈을 내리깔며 눈 속의 웃음기를 감추었다.

황형은 지금까지도 성만 나면 죽기 살기로 음식을 먹는 습관을 고치지 못했다. 밝은 햇빛 아래에서 사는 사람만이 이처럼 천진난만한 습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과 같은 사람은 화를 낼 자격조차 없었다.

그것도 잠시뿐, 조계안은 바로 마음속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억누르고 다시 물었다.

“그럼 황형, 저는 믿으십니까? 장봉이만큼 절 믿으십니까?”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

황제가 조계안을 흘겨보았다.

“너와 난 친형제가 아니냐. 짐이 나 자신은 못 믿어도, 너만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계안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더니, 눈을 감아 일렁이는 눈물을 감추었다.

“황형이 저희 둘을 믿는 것처럼, 저와 장봉이도 황형을 믿습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장봉이가 황형께 화가 좀 났다고 해도 곧 지나갈 겁니다.”

‘바로 이렇게요! 황형처럼 단순하고, 직설적인 분한테는 원망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쌍둥이로 태어나 하나는 햇빛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하나는 어둠 속에서 허덕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빼앗고 싶다는 생각은 결코 없었다.

‘그래, 계속 이렇게 가는 거야. 더는 황형을 곤란하게 하지 말자.’

조계안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 * *

자정이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육장봉이 평상복 차림으로 달빛을 밟으며 황제의 난각에 소리 없이 나타났다.

황제는 육장봉의 모습을 본 순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벌떡 몸을 일으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장봉아, 짐은 네가 화가 나서 안 오는 줄 알았구나.”

황제를 뒤따르던 조계안은 산만한 표정이었다. 웃는 듯 마는 듯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황형, 그러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셨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장봉이는 우리와 형제잖아요. 형제간에 오해가 생기면 풀면 됩니다. 황형께 정말로 화를 낼 리가 있겠습니까.”

“계안이 말이 맞습니다.”

육장봉은 황제에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눈길은 조계안한테 머물렀다.

오늘 벌어진 이 모든 사건은 조계안이 꾸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다만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조계안이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생사를 같이한 형제였다. 일이 생기면 터놓고 얘기를 해야지, 왜 수작을 부려 함정에 빠뜨리려 했을까?

“계안, 오늘 일은 모두 네 탓이다. 어서 빨리 장봉이한테 사과하지 못할까.”

황제가 조계안에게 눈을 부릅떠 보였다.

“네네네. 제가 사과하면 될 게 아닙니까.”

조계안은 황제의 ‘핍박’에 못 이겨 육장봉에게 읍을 하며 허리를 굽혀 사죄했다.

“장봉, 오늘 일은 모두 내 잘못이다. 월령안을 온전히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너를 모함해 누명을 씌웠어.”

“월령안 때문이라고?”

육장봉은 조계안에게 몸을 일으키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기왕 사죄할 거면, 성의껏 해야 하는 것이 도리 아닌가?

“그래 맞아. 월령안을 위해서야!”

조계안은 육장봉이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몸을 일으켰다.

“월령안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형제를 모함했나?”

조계안이 어딘가 숨기는 구석이 있는 거 같아, 육장봉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조계안은 그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 내며 전혀 피하지 않았다.

“별수 없었어. 자신의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난 뒤, 월령안이 유일하게 신경 쓰는 사람은 너였으니까. 만약 너를 증오하지 않고, 너에 대한 희망을 끊어버리지 않았다면 결코 순순히 범씨 가문과 싸우려 하지 않았을 거야.”

“그럼 기억해 둬라. 어찌 되었든 간에, 월령안은 나 육장봉의 아내다!”

조계안의 속셈에 신경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모함했으면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여자는 이젠 너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조계안이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이혼장에 관해서 제가 조왕 전하께 알려드려야 하겠습니까?”

육장봉이 조계안의 옆을 지나가다가 잠깐 멈추더니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귓속말을 했다.

“계안! 다음은 없어!”

반나절이라는 시간으로는 변경이라는 이 흙탕물을 확실하게 파악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렇다고 해서 낮에 당했던 것처럼, 조계안한테 코를 꿰어 휘둘릴 수는 없었다.

육장봉은 바보가 아니었다. 낮에 조계안에게 질질 끌려다녔던 건, 변경을 떠난 지 삼 년이나 되다 보니 이곳의 국면을 파악하지 못해 당했을 뿐이었다.

‘장봉이가 뭔가를 눈치챈 건가?’

조계안은 잠깐 당황하다가 다시 육장봉에게 눈길을 돌렸다. 육장봉은 이미 그의 곁을 지나쳐 황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폐하, 월령안의 의중을 떠보았습니다. 사적으로 병기를 산 것은 인정했지만, 철광산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추측해 보건대, 월령안의 수중에는 철광산이 없을 것 같습니다. 병기들은 다른 경로로 얻은 듯합니다.”

평상복 차림의 육장봉은 대낮처럼 예의를 차려 황제의 아래쪽에 앉지 않았다. 황제와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철광산이 없다고? 월씨 가문의 철광산이 아직 월령안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았단 말인가?”

황제는 미심쩍어하며 미간을 좁히고 깊은 사색에 잠겼다.

육장봉이 눈썹을 찌푸렸다.

“월씨 가문에 철광산이 있단 말입니까?”

‘월씨 가문이 철광산을 가지고 있었다고? 멸족을 당하려고 했단 말인가?’

“아니다. 십 년 전, 월씨 가문에서 보고가 들어왔었다. 아랫사람들이 북요의 국경 지대에서 철광산을 발견했다고. 월씨 가문의 가주와 월령안의 오라비가 애초에 북요에 갔던 것도, 장사를 빌미로 철광산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려 했던 거야. 애석하게도 아무런 소식도 전하지 못한 채 사고를 당하고 말았지.”

황제는 한숨짓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다음에는 철광산에 대한 단서가 끊겼다. 선황께서도 사람을 파견하여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선황께서 붕어하시기 전, 짐에게도 철광산을 계속 찾으라고 당부하셨다. 그런데 월령안이 갑자기 대량의 병기를 전선으로 보낸 거야. 짐이 의심할 수밖에 없지.”

“그래서, 철광산은 진짜로 존재하기는 하는 겁니까?”

육장봉이 묻자 황제가 피식 웃었다.

“월씨 가문 사람들은 항상 신중했어. 확실하지 않은 소식은 보고하지 않았지.”

황제는 월령안은 분명히 철광산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철광산은 바로 십 년 전 월씨 가문이 국경 지대에서 발견한 철광산일 터였다.

조계안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육장봉과 황제가 철광산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가 다시 몸을 돌렸을 때, 얼굴에는 느긋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황형, 철광산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아직 없습니다. 월령안의 수중에 철광산이 있다고 단정 짓기에는 너무 섣부릅니다.”

“철광산이 없다면, 월령안이 어디서 그렇게 많은 병기를 내놓을 수 있었단 말이냐?”

황제가 조계안에게 눈을 부릅떴다.

“너도 예전에는 월령안의 수중에 철광산이 있다고 의심하지 않았더냐. 그래서 장봉이에게 월령안한테 가서 알아보라고 한 게 아니냐?”

“전 다만 의심했을 뿐입니다! 황형, 의심이라는 말도 모르십니까? 증거가 없을 경우 추측하는 거 말입니다. 장봉이더러 알아보라고 했지만,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그냥 월령안을 한번 떠보라고 한 거예요. 월령안이 장봉이한테는 감정이 남다르잖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봉이만은 속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조계안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앉더니, 웃는 얼굴로 육장봉에게 말을 건넸다.

“장봉아, 나한테 화내지 않을 거지? 나도 나랏일을 위해서 그랬다.”

“아니!”

육장봉의 얼굴은 서리가 내린 듯 차가웠다.

“다음부터는 증거가 없는 일은 함부로 떠벌리지 마. 네 한마디 때문에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니까.”

월령안이 철광산을 가졌는지는 모른다. 다만 조계안의 ‘월령안에게 철광산이 있는 것 같다’라는 한마디에, 황제가 월령안을 죽일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황제가 줄곧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고, 월령안 본인이 능력이 뛰어나서 망정이었다. 조계안의 의심 한 번에 월령안은 열 번 죽어도 모자랄 뻔했다.

“십 년 전, 월씨 가문에서 확실히 보고했었잖아. 나도 합리적으로 추측을 했을 뿐이다. 특정인이나 특정 사건을 겨냥했던 건 아니야.”

조계안은 웃음을 거두고 육장봉을 몰래 노려보았다.

‘육장봉, 이 자식 아주 음흉하네. 월령안이 듣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그녀가 이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조계안을 평생 미워할 게 뻔했다.

“십 년 전이면 월령안은 고작 여덟 살밖에 안 됐을 때입니다. 월씨 가문에서 이렇게 큰일을 여덟 살밖에 안 되는 여자애한테 알려줬을까요?”

육장봉은 ‘여자애’라는 세 글자에 특별히 힘을 주었다. 그 말을 들은 황제의 얼굴에서 구름이 적잖게 걷혔다.

“그러게 말이다. 십 년 전이면 월령안이 너무 어렸지. 철광산에 대해서 정말로 몰랐을 수도 있겠구나.”

황제는 크게 탄식하더니 또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 전선에 보낸 병기는 도대체 어디서 난 거지?”

“그 병기들은 전선에 있습니다. 폐하께서 저를 믿으신다면 사람을 시켜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육장봉이 때맞춰 말을 받으며 제안했다.

월령안이 지난 삼 년 동안 자신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아직 몰랐다. 그녀가 적인지 친구인지도 몰랐다. 다만 반드시 주도권을 장악해야만, 앞으로 벌어질 모든 사건에 대해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알았다.

황제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짐은 당연히…….”

조계안은 심상치 않다 싶어 서둘러 끼어들었다.

“황형, 이 일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육장봉이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조왕 전하, 월령안은 곧 전하를 위해 일을 할 겁니다.”

조계안이 월령안을 위기에 한 번 빠트린 적이 있으니, 두 번째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더는 조계안에게 월령안을 해칠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됐다.

조계안은 이를 갈았다. 반면 입으로는 기고만장하게 대꾸했다.

“네가 일깨워 주지 않으면 잊을 뻔했군. 월령안은 내 사람이지. 이 건에서는 확실히 내가 빠지는 게 맞겠네.”

육장봉이 피식 웃으며 비꼬아 말했다.

“안됐지만, 월령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월령안이 멍청이도 아니었다. 오늘 일 전부를 조계안이 꾸몄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누명을 씌운 것도 그렇다. 그는 삼 년 동안이나 변경을 비웠으니 이곳의 일에 대해서는 일절 모른다. 설령 월령안을 싫어한다고 해도, 입성하기도 전에 아내를 내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만나본 적도 없는 월령안을 딱히 싫어할 까닭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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