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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황 (14)화 (14/1,004)

14화 이제 네 잘못을 따져야겠구나

육장봉은 입궁해서 황제를 알현했다. 규정에 따라 조당(朝堂)에서 하사품을 받고, 병부(兵符)를 황제에게 반환했다. 또 난각에서 황제와 조계안을 만나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궁문이 닫힐 무렵에야 황궁에서 나왔다. 그리고 장군부가 아닌 월령안의 처소로 갔었다. 그러다 보니 날이 저물어서야 장군부로 돌아오게 되었다.

덕분에 육비우는 대낮부터 지금까지 내내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육장봉이 말을 세우기 바쁘게, 친위대가 다가가 말을 끌고 갔다.

육장봉은 무표정한 얼굴로 정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군화를 신고 있어 걸을 때마다 뚜벅뚜벅 소리가 났다. 이 소리는 마치 사람 가슴을 짓누르는 듯 왠지 모를 긴장감을 조성했다.

말 울음소리가 들리자마자 육비우는 당장 고개를 돌려 불쌍한 강아지처럼 육장봉만 바라보았다. 속으로는 적당한 말을 고르며 어떻게 용서를 빌지 생각했다. 그러나 무표정한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육장봉을 보고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육장봉이 그의 곁에 다가왔을 때야 겨우 애처롭게 불렀다.

“넷째 형님.”

“들어와!”

육장봉은 걸음조차 멈추지 않고 육비우를 지나쳤다.

“네, 형님. 고맙습니다, 형님.”

육비우는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당장 손으로 땅을 짚고 후딱 일어서려 했다.

안타깝게도 기쁨이 지나치면 슬픔이 따르는 법.

뚝 소리와 함께 손목이 삐고 말았다. 오랜 시간 동안 꿇어앉은 탓에 두 다리가 저려 감각을 잃었다. 멋지게 일어나기는커녕 손목만 삐게 되었다.

육비우는 비명을 반쯤 지르다 말았다. 하지만 저 앞, 촛불 빛을 받아 일렁거리는 커다란 뒷그림자를 보자 비명을 꿀꺽 삼켜 버렸다.

“씁!”

육비우는 아파서 헐떡거리며 다친 손목을 붙잡고 땅바닥에서 꼴사납게 기어 일어났다. 잠깐 숨을 고르고 나서야 절뚝거리며 육씨 저택 안으로 걸어갔다.

“장봉아, 돌아왔구나!”

대문 안. 평온하고 인자한 이부인이나, 성격이 불같고 화사한 삼부인이나 모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둘째 숙모님, 셋째 숙모님.”

육장봉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거의 냉혹함에 가까운 담담한 표정이 두 부인의 반가움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는 줄곧 감정 변화가 거의 없는 편이었다.

“키는 더 컸는데 야위었구나.”

육장봉의 무뚝뚝함은 두 부인의 열정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두 사람은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금치 못했다.

육비우가 절룩거리며 들어오더니 육장봉과 세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 감히 더는 앞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그의 넷째 형님인 육장봉은 항상 고도의 경계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만약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가 그의 구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넷째 형님은 다리를 분질러 버리고 말 것이다.

“장봉아, 드디어 돌아왔구나. 네 넷째 숙모는 속이 상해 죽을 지경이다.”

사부인이 대청에서 뛰쳐나와 육장봉 앞으로 달려가더니 울면서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장봉아, 이 넷째 숙모를 대신해 말 좀 해 보렴! 장군부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아무도 날 안중에 두지 않고, 주인 취급도 하지를 않는구나. 네 넷째 숙부님께서 일찍 돌아가셨잖니. 이 숙모 처지가 얼마나 처량한지 너는 모를 거다. 의지할 곳 하나 없이 나, 비우, 비림 우리 셋은…….”

“넷째 숙모님, 여긴 제 장군부입니다!”

육장봉이 눈살을 찌푸리며 사부인의 일장 연설을 차갑게 끊어버렸다.

“딸꾹!”

사부인은 말문이 막혔다. 혀끝까지 밀려왔던 말을 내뱉지 못한 채 육장봉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숙모님은 여기 주인이 아니십니다. 문은 저쪽에 있습니다.”

육장봉이 입구를 가리키더니 사부인의 곁을 지나쳐 대청으로 걸어 들어갔다.

“장, 장봉아……!”

사부인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하얗게 질린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자기 귀로 듣고서도 믿을 수 없었다.

‘쌤통이다!’

이부인과 삼부인은 동정은커녕, 오히려 그녀를 흘겨보고는 뒤따라 대청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머니!”

육비우도 낯빛이 하얗게 질려 서둘러 앞으로 나아갔다. 제 어미를 말릴 요량이었다. 그런데 사부인이 아들을 확 밀쳐 버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대성통곡하며 악다구니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고! 내가 죽어야지! 죽어야 이런 꼴을 안 보지! 육씨 가문에서 사람을 잡네. 방금 조정에 돌아온 대장군이랍시고 과부 숙모를 괴롭히네! 나잇살이나 먹고 조카한테 내쫓기다니. 내가 이런 꼴로 살아서 뭘 하나. 죽어야지, 빨리 저세상에 가야지……!”

사부인이 밀쳐내는 통에, 육비우는 원래 삐었던 손목의 통증이 더 심해져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자신의 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허겁지겁 사부인 곁으로 가 꿇어앉아 다급하게 말렸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넷째 형님은 울고불고하는 걸 제일 싫어해요. 더 울었다간, 형님이…….”

“내쫓거라.”

대청 쪽에서 육장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친위대가 앞으로 다가가 사부인의 양팔을 뒤로 잡아끌었다. 그녀는 새된 비명을 질러 댔다.

육비우가 이를 보고 다급하게 달려들어 친위대를 막았다.

“안 돼! 우리 어머니를 내쫓지 마!”

“비우야, 어서, 빨리 어미를 좀 구해 주렴.”

사부인은 옷이며 비녀며 할 것 없이 볼품없게 흐트러졌다.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미친 여인 같은 꼬락서니였다. 그녀는 육비우의 다친 손을 꽉 잡아 쥐고는 당황해서 소리를 질렀다.

“비우야, 비우야……!”

“비우 도련님, 손 놓으세요. 나중에 저희 탓하지 마십시오.”

육장봉의 친위대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한마디 권했는데도 육비우가 손을 놓지 않자 적당한 힘으로 그를 밀어 떨어트렸다.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사부인을 밖으로 끌어냈다.

“못 간다! 안 돼! 가지 않겠어……! 난 육씨 가문 사부인이다. 여긴 육씨 저택이야. 너희가 날 내쫓을 순 없어!”

사부인은 힘껏 몸부림치며 울고불고 생난리를 쳤다.

“비우야, 비우야! 어서 넷째 형한테 부탁해, 어미를 구해 주렴. 어미가 이대로 내쫓기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니. 비우야……!”

사부인은 무서워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육씨 가문의 체면을 세워줄 사람은 오직 육장봉뿐이었다. 만약 오늘 장군부에서 내쫓긴다면, 다른 부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

딸도 이미 열여덟 살이나 됐으니 당장 혼처를 구해야 했다. 만약 그 어미가 망신살이 뻗치면, 딸이 어떻게 좋은 가문에 시집갈 수 있겠는가?

“넷째 형님, 형님……. 저희 어머니께서 잘못을 인정하셨어요. 이렇게 빌게요. 어머니를 놔 주세요. 이번만 용서해 주시면 안 돼요? 이렇게 내쫓기면, 나중에 사람들을 볼 낯이 있겠어요?”

사부인의 비참한 모습에 육비우는 대청에 황급히 뛰어들어 육장봉의 앞에 무릎을 꿇고 부탁했다.

“형님, 저의 어머니는 연세도 있으세요. 견디지 못할 거예요.”

육장봉에게는 규칙이 있었다. 그의 장군부에서는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 걸 금지했다. 이를 위반하면 누구든 가차 없이 쫓아냈다. 사부인은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으니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했다.

“안 돼!”

육장봉은 무자비하게 거절했다.

‘장군부에서 내쫓기면 사람들을 볼 낯이 없다고?’

월령안도 똑같이 내쫓겼다. 그래도 사람들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성안 모든 백성 앞에서 육장봉을 만났다.

‘똑같은 인간인데 월령안은 견딜 수 있고, 육비우의 어미는 못 견딘다고?’

“형님, 저의 어머니라고요!”

육비우가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육장봉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그래서?”

월령안은 자신의 명의상의 아내였다. 자신이 그걸 들먹였던 적이 있던가?

“넷, 넷째 형님……!”

육비우는 입술만 파르르 떨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악! 사람 살려! 조정에서 돌아온 대장군이 사람 잡네!”

집 밖에서 사부인이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 사라져 버렸다.

내뱉은 말은 반드시 행해야 한다. 금지된 일은 해서는 안 된다.

육장봉의 엄격함과 냉철함은 군대에서도 유명했다. 그의 앞에서 ‘봐주다’와 ‘그만하다’라는 단어는 없었다. 어느 누가 부탁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의 말은 곧 명령이었고, 아랫사람들은 그에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물론 지금 이 순간 장군부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육비우가 아무리 애원해도, 육장봉은 끝내 용서하지 않았다. 친위대가 사부인을 장군 저택에서 내쫓게 내버려 두었다.

“넷째 형님……!”

육비우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눈물투성이가 된 얼굴이 무척이나 가련해 보였다.

이부인과 삼부인은 서로 눈 맞춤을 하고는,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삼부인이 입을 열어 말했다.

“장봉아, 시간이 늦었으니 우리는 이만 가 보마. 오늘 돌아온 데다 온종일 바삐 돌아다니느라 힘들었겠지. 일찍 쉬어라.”

“둘째 숙모님, 셋째 숙모님. 살펴 가십시오.”

육장봉이 기가 세다고는 해도 예의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두 숙모를 문까지 배웅했다.

떠나기 직전, 이부인이 한참이나 주저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타일렀다.

“장봉아, 일찍 쉬거라. 그리고…… 령안이, 그 애는 참 좋은 아가씨였어. 지난 삼 년 동안, 그 애가 육씨 가문을 받쳐 주지 않았다면, 우리 가문이 지금 같은 가세를 이룰 수는 없었을 거야. 령안이는 육씨 가문과 너를 위해 아주 많은 일을 했었어. 어쨌든 다시는 그 애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를 바란다.”

“둘째 숙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육장봉은 두 숙모를 존중하는 편이라, 말투도 꽤 부드러워졌다.

물론 두 숙모가 지금처럼 계속 예의를 갖추고, 본분을 지킬 때에 한해서였다. 사부인처럼 그의 눈앞에서 난장판을 피우고, 자기 일에 간섭하려 한다면 역시 가차 없이 내쫓을 것이다.

“그래. 너도 그만 들어가거라. 나는 네 셋째 숙모와 같이 돌아가마.”

육장봉은 가족들 앞에서조차 냉정하기만 했다. 그런 사람의 부드러운 한마디에, 이부인은 기쁜 나머지 눈가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그는 두 숙모를 배웅하고 대청으로 돌아와 육비우의 앞에 앉았다.

“자, 이제 네 잘못을 따져야겠구나.”

“형님, 제,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입니까?”

아까까지만 해도 육비우는 자기 모자의 체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어머니를 내쫓은 육장봉을 원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육장봉이 앞에 앉아 입을 여는 순간 겁에 질리고 말았다. 눈만 껌뻑거릴 뿐,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육장봉은 육비우가 모르쇠로 나오자 콧방귀를 뀌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감히 내 사생활에 참견해?”

원래는 돌아와서 월령안과 합의 이혼을 할 생각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서 육비우가 제 마음대로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이혼장을 가지고 와서 월령안을 육씨 저택에서 내쳐도 된다는 건 아니었다.

분명한 건, 육비우가 월령안을 내치는 순간조차 그녀는 육장봉의 명의상의 아내였다는 점이다.

‘감히 내 아내를 내치다니. 비우 저 녀석의 간이 붓다 못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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