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그 사람, 돌아보지 않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저는 아가씨가 딱해요.”
추수는 말을 하다가 또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아가씨는 십 년 내내 육 장군님을 사모해 왔고, 또 칠 년을 공들여서 아내가 되었잖아요. 육 장군님이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으니까 이젠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되어버리다니요.”
“너 정말 바보구나. 네 아가씨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란다. 걱정하지 마. 난 내가 받은 서러움은 곱절로 갚아 주는 사람이야. 지금 갚지 못하는 건 이자까지 쳐서 갚아 줄 거야.”
월령안은 추수의 등을 다독이며 낮은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됐다, 울지 마라. 상천이 돌아와서 네 눈이 퉁퉁 부은 걸 보고 네가 싫어졌다 그러면 큰일이잖니.”
아무리 정당한 권리라고 한들, 되찾을 수 없을 때도 있다. 황실에서 원한다면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참아야만 했다.
“아가씨…….”
추수는 부끄럽고 분해서 월령안을 밀쳐냈다.
“됐다, 됐어. 말 안 할게. 말 안 하면 되지?”
월령안은 추수가 화내기 전에 제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눈을 감고 머리를 돌려 추수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마차는 황혼 속을 천천히 달려 성 동쪽에 있는 다섯 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이 저택은 월령안과 그녀의 어머니가 변경에 처음 왔을 때 산 집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 소씨 가문에 들어가지 않았었다. 어머니가 소씨 가문에 시집간 뒤에도, 그녀는 줄곧 이 저택에서 지냈다.
삼 년 전, 그녀는 이 저택에서 나와 시집을 갔었다. 하지만 오늘 돌아왔다.
다시 저택으로 돌아오게 되자 씁쓸했지만 즐겁기도 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추수가 걱정하지 않도록 그녀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집에 들어서자 바로 추수에게 쉬라며 내보냈다.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안뜰에 들어섰을 때, 입구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던 노인을 보자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녀는 흐느끼며 서럽게 불렀다.
“영감님……!”
“꼬마야, 돌아왔구나!”
노인의 자애로운 목소리를 듣자 월령안이 더는 참지 못하고 품에 와락 안겼다. 그녀는 노인의 무릎에 엎드려 펑펑 울었다.
“영감님, 너무 속상해요. 가슴이 너무 아파요.”
“울어라. 울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한쪽 팔이 없는 노인은 외팔로 월령안을 안아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영감님, 저 쫓겨났어요. 전 이젠 집이 없어요! 또 집을 잃었어요.”
오늘 하루 겪은 서러움을 떠올린 월령안은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펑펑 터뜨렸다.
“이 늙은이가 아직 있잖느냐!”
‘이 못난 것, 집이 없다니. 여기가 네 집이 아니면 어디란 말이냐?’
월령안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울었다.
“영감님, 그놈들이 절 괴롭혔어요. 육장봉도, 조계안도, 황제까지도 절 괴롭혀요…….”
‘삼 년이나 참았는데……!’
삼 년간, 그녀는 줄곧 전전긍긍하면서 지내왔다. 자신이 해낸 모든 것을 황제의 눈앞에 보여주었고, 모든 사업도 조정에 사실대로 보고했었다. 황제에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황제는 끝내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삼 년간, 정말 최선을 다하며 최고가 되려고 노력했다. 목숨을 내던지며 돈을 벌었다. 변방의 병사들을 지원하려고 밤낮없이 뛰어다니며 돈을 벌었다. 또한 궁중의 관료들과 황제에게도 잘 보이려 애를 썼다.
이 모든 것을 황제의 눈앞에 보여준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자신은 돈을 탐하는 게 아닌, 육장봉을 돕고 싶을 뿐이라는 일편단심을 봐 주기만을 바라서였다.
육장봉이 전쟁만 끝내고 돌아오면 이 모든 것을 조정에 바칠 수도 있었다. 육장봉만 있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는 그녀에게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월령안은 노인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엉엉 우느라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노인은 몇 번 달래 주다가 월령안이 더 크게 울자 그녀를 밀쳐냈다.
“됐다, 됐어……. 이만큼 울면 되지 않았느냐. 내 옷에 눈물 콧물 묻히지 마라.”
“싫어요! 울 거예요. 울어야겠어요! 이렇게 서러움을 겪었는데 울지 말라뇨.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고도 제 스승이세요? 저에게 요만큼만 한 애정도 없는 거예요?”
월령안은 울면서 천연덕스럽게 눈물과 콧물을 노인의 옷으로 마구 닦아냈다.
“그만하면 됐다. 네 꼴 좀 봐라. 꼴사나워 죽겠구나.”
노인은 불쾌하다는 기색을 비쳤지만, 월령안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다리에 엎드리게 내버려 두었다. 때때로 하나 남은 외팔로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 주었다.
“사람이 아무리 꼴사나워도 죽지는 않잖아요. 서러워야 죽죠. 저 보고 울지도 못하게 하면 전 서러워서 죽을 거예요. 그러면 어디 가서 저처럼 똑똑한 제자를 찾아서 노후를 보장해 드리겠냐고요.”
마음속의 서러움을 전부 토해내듯 펑펑 울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하지만 많이 지쳐 있었다.
그녀는 체면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노인 옆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노인의 옷자락을 끌어당겨 팽, 하고 코를 풀었더니 싫다는 듯 뿌리쳤다.
“비단옷은 이런 점이 안 좋아요. 코를 풀어도 불편하다니까요. 앞으로 면으로 된 옷을 입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드릴게요.”
“얘야, 깜빡했구나. 널 찾아온 사람이 있다. 네가 올 때까지 한참 기다렸어.”
노인은 우느라 엉망진창이 된 월령안을 바라보며 장난기 서린 웃음을 지었다.
“누군데요? 누가 이렇게 눈치도 없이 이 시간에 절 찾아와요? 전 지금 사람을 만날 기분이 아니에요. 그 사람 보고…… 제 기분이 좋아지거든 다시 얘기하자고 해요.”
월령안은 노인의 텅 빈 옷소매를 잡아당겨 코를 풀면서 볼멘소리로 말했다.
“흠흠…….”
노인은 목을 가다듬으며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기엔 늦은 것 같구나. 이미 사람이 와 있어.”
노인은 말을 마치고 뒤에 있는 홍예문을 가리켰다. 월령안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이 있는 사람은…….
‘육장봉이잖아!’
군장 차림새의 육장봉이 홍예문 아래에 서 있었다. 우뚝 서 있는 그 모습은 풍채가 남달랐다.
이미 석양이 진 무렵이라 주변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육장봉이 서 있는 곳은 마치 자체적으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모든 빛이 그에게 쏟아진 듯, 어둠 속에서도 그곳만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육. 장. 봉!”
월령안은 깜짝 놀란 채 그 자리에 굳어졌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이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아냐, 아냐! 이건 분명 환각이야. 육장봉이 우리 집에 있을 리가 없어. 절대 그럴 리 없지! 이건 환각이야. 내가 너무 울어서 머리가 어떻게 됐나 봐. 눈이 안 좋아졌나? 잘못 본 걸 거야.”
월령안은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자신이 본 것을 부정했다. 몸의 먼지를 툭툭 털고, 노인에게 말을 했다.
“영감님, 저 먼저 갈게요. 내일 다시 뵈러 올게요.”
말을 마친 그녀는 밖으로 두어 걸음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니지. 여긴 우리 집 마당인데 내가 어딜 가려고 했던 거야!”
다시 몇 걸음 더 옮겼지만, 여전히 홍예문 아래에 서 있는 그 사람을 보자 화가 나 폭발할 지경이 되었다.
“당신 왜 아직도 있는 거예요? 내가 말했잖아요. 이건 환각이라고. 처음부터 여기 온 적이 없는 것처럼 내 눈앞에서 좀 사라지면 안 되나요?”
‘눈치도 없네! 이렇게까지 암시를 줬으면 알아들었어야 할 거 아냐?’
“흠……. 미안하군. 나중에 다시 와야 할까?”
홍예문 아래 서 있던 육장봉은 주먹으로 입을 가리며 목을 가다듬더니 정중하게 물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재미있어요?”
월령안은 화가 나 짜증을 내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육장봉이 어떻게 이 시간에 자신의 집에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보이고 말았다. 그녀의 체면은 철저하게 구겨졌다.
‘앞으로 육장봉 얼굴을 어떻게 보지? 미치겠네!’
월령안은 노인에게 눈을 부라리며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게 다 영감님 잘못이에요! 미리 말해 주지도 않고.’
노인은 낮은 소리로 웃다가 말했다.
“그 뭐냐, 둘이 천천히 얘기하게. 이 노인네는 방해하지 않겠네.”
노인이 의자의 손잡이 부분을 눌렀다. 평범하던 의자가 갑자기 이 촌(寸 – 1촌은 약 3cm) 높아지더니 아래에는 바퀴 네 개가 튀어나왔다. 평범한 의자는 순식간에 노인이 외팔로 쉽게 조종할 수 있는 바퀴 의자가 되었다.
노인이 외팔로 바퀴 의자를 조종하면서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월령안의 곁을 지나칠 때, 일부러 멈춰 서서 손짓을 해 그녀가 가까이 오게 하였다. 그녀가 허리를 숙이자 노인은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령안아, 육장봉과 잘 얘기를 해 보려무나. 화는 내지 말고. 어떤 일이든 털어놓고 얘기를 하다 보면 무슨 오해이든 조만간에 풀린단다.”
월령안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와 육장봉 사이에는 오해라고 할 만한 것도, 얘기할 만한 것도 없었다. 육장봉이 그녀를 찾아온 목적도 감정 따위를 나누려는 게 아닐 것이 분명했다.
육장봉, 이 남자는 감정이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육장봉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만한 곳이 없겠소?”
육장봉의 목소리는 낮고 깊이가 있었다. 어조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군인 특유의 시원스럽고 명료한 말투였지만, 고상함이 물씬 묻어났다.
예전에는 저 목소리를 듣기 위해 늘 그의 주변을 살그머니 맴돌았었다.
월령안은 눈물을 닦고 마음속의 소용돌이를 꾹꾹 눌러 삼킨 채 평온하게 말했다.
“화청(花廳 – 화원 등에 설치된 응접실)은 어떨까요?”
“은밀한 곳이면 좋겠소.”
육장봉이 대답했다.
“건물 안의 왼쪽에서 세 번째 방이 서재입니다. 옷을 갈아입고 올 테니 육 장군께서는 먼저 가서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육장봉은 공무를 처리하러 왔다는 듯한 말투였다. 월령안도 그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육장봉은 차갑게 돌아서서 안뜰로 향했다.
월령안은 그 자리에 선 채 떠나지 않았다. 대신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져 가는 육장봉을 바라보았다.
십 년간, 제일 많이 봐온 것은 육장봉의 뒷모습이었다.
삼 년 전, 항상 어두운 곳에 숨어 육장봉의 점점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지켜보곤 했었다. 수도 없이, 소리를 내서 부르고 싶었다.
‘육 장군.’
하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소리를 내서 부르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기회조차 사라질까 두려웠다.
천지신명에게 수없이 기도했었다. 제발 육장봉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해달라고, 단 한 번만이라도 좋다고 말이다. 아쉽게도 천지신명은 그 기도를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육장봉은 단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늘 똑같이 굳세고 꿋꿋하게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십 년간 항상 육장봉의 뒤에서 그의 그림자를 열심히 좇았다. 그럴수록 그는 그녀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그녀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육장봉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역시 그는 고개를 돌리지도, 멈춰 서지도 않았다.
‘육장봉은 감정이 없어. 저 사람의 마음속에는 전쟁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월령안은 넋이 나간 채 그의 뒷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퍼뜩 정신을 차리자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십 년이나 지났잖아. 이젠 끝을 볼 때가 된 거야.’
월령안은 눈을 감고 흐느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번에는 육장봉이 돌아보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오늘부터 더는 육장봉의 그림자를 좇지 않을 거야. 오로지 나만의 길을 가겠어.’